14화(5,322자)

간을 보는 사람

구독자 십만 엄마 유튜버 · 윤은류

라이브가 끝난 것은 오후 다섯 시였다⁠. 남궁성율은 휴대전화를 내리자마자 가게 밖으로 나왔다⁠. 손바닥이 땀에 젖어 있었다⁠. 두 시간 동안 휴대전화를 한 번도 내리지 않았다⁠. 골목 공기가 차갑지 않은데도 숨이 차가웠다⁠.

골목 어귀 철물점 처마 밑에 경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야구 모자를 쓰지 않은 남자가 내렸다⁠. 손에 빈 반찬 통을 들고 있었다⁠. 성율은 뒤집개를 화면으로만 백 번 넘게 보았다⁠. 얼굴을 본 적은 두 번이었다⁠. 한 번은 셀카봉 너머로⁠, 한 번은 맞불 라이브의 휴대전화 두 대 사이로⁠.

“⁠월명동아들 형이죠⁠.⁠”

“⁠뒤집개⁠.⁠”

둘이 처마 밑에서 마주 보았다⁠. 강현곤이 먼저 웃었다⁠. 웃음이 금방 꺼졌다⁠.

“⁠형 댓글 덕에 먹고살았어요⁠. 형이 한 번 붙으면 댓글이 오백 개씩 늘었어요⁠. 영상 올리고 형 언제 오나 기다린 밤도 있어요⁠.⁠”

“⁠나도 형 덕에 석 달 동안 못 잤어요⁠.⁠”

현곤이 반찬 통을 내밀었다⁠. 성율은 받지 않았다⁠.

“⁠엄마한테 직접 줘요⁠. 통 바닥에 갖다 달라고 써 놨잖아요⁠.⁠”

“⁠할머니 보면 또 새 통 주실 거잖아요⁠.⁠”

“⁠주겠죠⁠. 그럼 그것도 다 먹고 또 가져와요⁠.⁠”

현곤이 반찬 통을 내려다보았다⁠.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성율에게 보였다⁠. 뒤집개TV의 관리 화면이었다⁠. 「⁠십만 반찬 할매⁠, 맛 검증 앞에서 국자 들었다⁠」 「⁠십오만 반찬 할매⁠, 빚 사천이백의 진실⁠」 영상 둘 옆에 「⁠삭제⁠」 단추가 있었다⁠. 현곤이 두 번 눌렀다⁠. 「⁠영구 삭제하시겠습니까⁠?⁠」가 두 번 떴다⁠. 두 번 「⁠예⁠」를 눌렀다⁠.

“⁠두 개 합쳐서 조회수 백구십만이에요⁠. 내 채널에서 제일 잘된 거⁠.⁠”

“⁠아깝겠네요⁠.⁠”

“⁠아까워요⁠.⁠”

현곤은 그렇게 말하고 반찬 통을 들고 남궁반찬 유리문 쪽으로 걸어갔다⁠. 성율이 뒤를 따랐다⁠. 유리문 안에서 엄마가 깍두기 접시를 치우다가 고개를 들었다⁠. 현곤이 문을 밀었다⁠. 경첩은 울지 않았고 종만 울렸다⁠.

*

남궁희자는 깍두기 접시를 내려놓고 유리문 앞의 남자를 보았다⁠. 야구 모자를 쓰지 않은 얼굴이 생각보다 어렸다⁠. 남자가 반찬 통을 진열대 위에 올렸다⁠. 깨끗이 씻은 통이었다⁠. 동기들이 의자를 접다 말고 남자를 보았다⁠. 춘엽이 털실 뭉치를 쥐었다⁠. 던질 자세였다⁠.

“⁠통 갖다 드리러 왔어요⁠.⁠”

“⁠들어와⁠.⁠”

희자는 통을 뒤집어 바닥을 보았다⁠. 매직 글씨가 그대로 있었다⁠. 「⁠남궁반찬⁠. 다 먹고 통은 갖다 주쇼⁠.⁠」 희자는 통을 바로 놓고 진열대 문을 열었다⁠. 남은 깍두기를 통에 담았다⁠. 뚜껑을 닫아 남자 앞으로 밀었다⁠.

“⁠또 주실 줄 알았어요⁠.⁠”

“⁠알믄서 왔어⁠?⁠”

“⁠네⁠.⁠”

“⁠그라믄 됐다⁠.⁠”

현곤은 통을 받지 않고 서 있었다⁠. 성율이 문간에서 둘을 보았다⁠.

“⁠할머니⁠, 영상 두 개 지웠어요⁠. 빚 영상이랑 국자 영상이랑⁠.⁠”

“⁠그려⁠.⁠”

“⁠그게 다예요⁠. 사과는 안 할게요⁠. 사과하면 거짓말 같아서요⁠.⁠”

희자는 현곤을 오래 보았다⁠. 맛을 보기 전에 냄새부터 맡는 얼굴이었다⁠.

“⁠니 엄마는 요새 뭣 허냐⁠?⁠”

현곤이 대답을 못 하고 한참 있다가 말했다⁠.

“⁠집에 있어요⁠. 허리가 망가져서요⁠. 할머니들한테 빚 다 갚고 나서⁠.⁠”

희자는 진열대에서 반찬 통 두 개를 더 꺼냈다⁠. 멸치볶음과 장조림이었다⁠. 깍두기 통 옆에 나란히 놓았다⁠.

“⁠이것은 니 엄마 것이여⁠. 허리 아픈 사람은 장조림이 좋아⁠. 씹기 편혀⁠. 메추리알은 굴려서 깠어⁠.⁠”

현곤이 통 세 개를 내려다보았다⁠. 이번에는 손을 들지 않았다⁠. 두 팔로 통 세 개를 안아 들었다⁠.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나갔다⁠. 춘엽이 털실 뭉치를 내려놓았다⁠.

*

차예늘은 일요일과 월요일 이틀 동안 쪽방 노트북 앞에서 메시지를 읽었다⁠. 희자 선생님 채널로 들어온 메시지였다⁠. 처음 온 것은 대구에서 떡집을 하는 일흔한 살 할머니의 딸이었다⁠. 「⁠어머니가 라이브를 보고 우셨어요⁠. 은결이 지켜 준 건 맞는데⁠, 이제 떡 대신 관절약을 썰래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두 번째는 여수의 할아버지였다⁠. 손자 학교 이름이 댓글에 올라 채널을 지웠던 사람이었다⁠. 다시 찍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는 혼자 말고 품앗이로⁠. 세 번째는 2기에서 끝내 전화를 받지 않던 다섯 번째 사람이었다⁠. 「⁠춘엽 씨 깍두기 아직 남았는지 물어봐 주세요⁠.⁠」

월요일 오후까지 메시지가 마흔세 개 들어왔다⁠. 은결에 채널을 판 사람이 열넷⁠, 팔까 말까 하는 사람이 스물⁠, 그냥 반찬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아홉이었다⁠. 예늘은 메시지를 지역별로 나누어 춘엽 아주머니에게 보냈다⁠. 춘엽 아주머니는 단톡방을 지역마다 하나씩 새로 열었다⁠. 「⁠품앗이 대구방⁠」 「⁠품앗이 여수방⁠」 방장은 다 춘엽 아주머니였다⁠.

월요일 저녁⁠, 군산 지역 신문 누리집에 기사가 하나 올라왔다⁠. 「⁠월명동 반찬 가게에서 열린 ‘⁠팔지 않는⁠’ 라이브⁠… 시니어 크리에이터 채널 매매 논란⁠」 기사 끝에 은결 미디어의 입장이 한 줄 붙어 있었다⁠. 「⁠협력 채널 운영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겠습니다⁠.⁠」 예늘은 마지막 문장을 오래 보았다⁠. 이사님이 직접 쓴 문장이었다⁠. 고르고 공손했다⁠.

예늘의 휴대전화는 아직 조용했다⁠. 오는 것은 춘엽 아주머니의 고양이 이모티콘과 엄마의 「⁠밥 먹어라⁠」뿐이었다⁠. 내용증명 이후로 은결 법무팀에서 아무 연락이 없었다⁠. 엄마가 미용실에서 롤을 말다가 말했다⁠. 조용한 것이 제일 무서운 것이여⁠.

*

염득갑은 화요일 저녁 학습관 3층 교실 강사 책상 위에 보자기를 풀었다⁠. 김밥이 세 줄씩 든 도시락 통이 열네 개였다⁠. 춘엽이 아침부터 쌌다고 했다⁠. 득갑은 도시락을 나르는 일을 맡았다⁠. 집사람이 걷는 연습을 하는 사이 병원 매점에서 나무젓가락을 사 왔다⁠.

강사가 칠판 앞에 서서 헛기침을 했다⁠.

“⁠말씀드릴 게 있어요⁠. 오늘 아침 학교 운영 위원회를 열었어요⁠. 수료생 명단은 앞으로 어디에도 넘기지 않기로 했어요⁠. 은결 후원도 이번 학기로 끝이에요⁠. 다음 학기 예산은⁠… 아직 없어요⁠.⁠”

교실이 조용했다⁠. 춘엽이 손을 들었다⁠.

“⁠예산 없으믄 우리가 도시락 싸⁠. 강사님 월급은 못 주지마는⁠.⁠”

“⁠월급은 시에서 나와요⁠.⁠”

“⁠그라믄 됐네⁠!⁠”

교실이 웃었다⁠. 득갑은 서예 할머니가 나무젓가락 싸는 종이마다 붓펜으로 쓴 글씨를 보았다⁠. 「⁠품⁠」 「⁠앗⁠」 「⁠이⁠」 세 장을 모아야 한 단어가 되었다⁠. 득갑이 받은 젓가락 종이에는 「⁠앗⁠」 자만 있었다⁠. 득갑은 「⁠앗⁠」 자 종이를 작업복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떨었다⁠. 「⁠득갑이 다시 고칩니다⁠」 구독자가 천을 넘었다는 알림이었다⁠. 득갑은 아내에게 전화하려다 그만두고 사진을 찍어 보냈다⁠. 답이 금방 왔다⁠. 「⁠오늘 복도 끝까지 걸었음⁠. 당신 구독자보다 내 걸음이 빠름⁠.⁠」 득갑은 화면을 춘엽에게 보여 주었고⁠, 춘엽은 교실 전체에 보여 주었다⁠.

*

류옥채는 화요일 밤 열 시에 남궁반찬 셔터를 두드렸다⁠. 희자가 미리 문자로 시간을 정해 두었다⁠. 혼자 오시라고⁠, 카메라 없이⁠. 셔터가 반쯤 올라갔다⁠. 가게 안에는 형광등 하나만 켜져 있었다⁠. 진열대 위 삼각대는 접혀서 서랍 안에 들어가 있었다⁠.

희자는 진열대 옆 접이식 상 앞에 앉아 있었다⁠. 상 위에 국수 두 그릇이 놓여 있었다⁠. 멸치 육수에 소면⁠, 고명은 김가루와 애호박⁠. 류옥채는 의자에 앉기 전에 국수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애호박은 볶아서 올라가 있었다⁠. 새우젓 냄새가 났다⁠.

“⁠이사님 어머니 국수는 내가 못 끓여요⁠. 나는 내 국수만 끓여요⁠. 그래도 애호박은 볶았어요⁠.⁠”

류옥채가 의자에 앉았다⁠. 젓가락을 들지 않고 한참 그릇을 보았다⁠. 희자는 먼저 먹지 않고 기다렸다⁠. 류옥채가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그다음에 국수를 들어 올렸다⁠. 소리 내어 빨아들였다⁠. 국수는 마시는 거라고 했던 어머니처럼⁠.

희자는 류옥채가 반 그릇을 비울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류옥채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간이 맞네요⁠.⁠”

“⁠새우젓으로 했어요⁠.⁠”

“⁠저희 어머니도요⁠.⁠”

류옥채가 가방에서 서류 두 장을 꺼냈다⁠. 이번에는 숫자를 외워서 말하지 않았다⁠. 서류를 그대로 상 위에 놓았다⁠.

“⁠소 취하서예요⁠. 편집자님 건하고 어머님 명예 훼손 건⁠. 둘 다 거두겠습니다⁠. 대신 하나만 부탁드려요⁠. 편집자님이 저희 서버에서 찍은 사진⁠, 그것만 지워 주세요⁠. 뒤집개 운영자 메시지는 그분 것이니까 저희가 상관할 일이 아니에요⁠. 서버 사진은 저희 회사 안이에요⁠. 회사 안의 것은 회사 안에 두고 싶어요⁠.⁠”

“⁠그것만⁠?⁠”

“⁠그것만이요⁠. 협력 채널은 이번 달로 다 끊습니다⁠. K팀장은 어제 그만뒀어요⁠. 채널 사는 일은 계속합니다⁠. 사는 사람이 없으면 버려지는 채널이 더 많아요⁠. 그건 어머님도 아시잖아요⁠. 대구 떡집 어르신 따님이 어머님께 메시지 보낸 것도 알아요⁠. 그분 계약은 제가 다시 보겠습니다⁠. 떡을 다시 써실 수 있게요⁠.⁠”

희자는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았다⁠. 류옥채의 말에서도 단맛이 빠져 있었다⁠. 쓴맛만 남아 있지도 않았다⁠. 고들빼기를 오래 씹었을 때처럼 쓴맛 뒤에 다른 맛이 있었다⁠.

“⁠이사님은 계속 살 거고⁠, 나는 계속 안 팔 거고⁠.⁠”

“⁠네⁠.⁠”

“⁠그라믄 우리는 계속 싸우겄네⁠.⁠”

“⁠아마도요⁠.⁠”

“⁠싸워도 국수는 먹고 싸워요⁠.⁠”

희자는 소 취하서를 돋보기로 끝까지 읽었다⁠. 다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휴대전화를 들어 예늘에게 문자를 보냈다⁠. 「⁠서버 사진 지워라⁠. 니가 찍은 것만⁠. 현곤이 것은 두고⁠.⁠」 숫자 1이 바로 지워졌다⁠. 답이 왔다⁠. 「⁠지금 지워요⁠, 선생님⁠.⁠」

희자는 계산대 밑으로 허리를 숙여 상자 하나를 꺼냈다⁠. 금박 띠를 두른 홍삼 상자였다⁠. 한 달 전 류옥채가 놓고 간 그대로였다⁠. 비닐도 뜯지 않았다⁠.

“⁠이것은 돌려줄라요⁠. 우리 아들은 이제 잠을 자요⁠.⁠”

류옥채가 홍삼 상자를 받았다⁠. 두 손으로 받았다⁠. 상자를 무릎에 올려놓고 남은 국수를 마저 먹었다⁠. 국물까지 다 마셨다⁠. 그릇을 상 위에 내려놓는 소리가 형광등 아래에서 작게 울렸다⁠.

*

남궁희자는 류옥채가 셔터 밑으로 나간 뒤 국수 그릇 두 개를 개수대로 옮겼다⁠. 쪽방 커튼이 젖혀지고 성율이 나왔다⁠. 커튼 뒤에서 내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카메라 없이 오라고 했으니 아들도 휴대전화를 꺼 두고 있었다⁠.

“⁠엄마⁠, 진짜 다 거뒀어요⁠?⁠”

“⁠거뒀어⁠.⁠”

“⁠그럼 끝난 거예요⁠?⁠”

“⁠이사님허고 나 사이는 안 끝났어⁠. 그 양반은 또 사러 올 것이고 나는 또 안 팔 것이여⁠. 끝난 것은 소송이여⁠.⁠”

희자는 냉장고 문에 붙은 은행 편지를 보았다⁠. 자석 두 개로 붙여 둔 편지였다⁠. 「⁠대출 만기 안내 — 2027년 6월 30일⁠」 열엿새 남아 있었다⁠. 빚 갚을 통장에는 삼백만 원이 남아 있었다⁠. 원금을 줄여 오라던 은행 직원의 말이 편지 위에 겹쳐 보였다⁠.

성율이 엄마 옆에 와서 같이 편지를 보았다⁠. 한참 보다가 고무장갑을 끼고 국수 그릇을 씻기 시작했다⁠. 그릇을 다 씻고 나서 성율이 말했다⁠.

“⁠엄마⁠, 그거 나도 같이 가요⁠. 은행⁠.⁠”

희자는 대답하지 않고 행주로 상을 닦았다⁠. 상 위에 국물 자국이 동그랗게 두 개 남아 있었다⁠. 희자는 둘 중 하나만 닦고 하나는 남겨 두었다가⁠, 나중에 마저 닦았다⁠.

14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