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361자)

팔지 않는 사람들

구독자 십만 엄마 유튜버 · 윤은류

오춘엽은 오후 두 시 반에 남궁반찬 유리문 위에 현수막을 걸다가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서예 할머니가 붓으로 쓴 현수막이었다⁠. 「⁠팔지 않는 사람들⁠」 글씨는 반듯했는데 마지막 「⁠들⁠」 자가 천 끝에 몰려 작아져 있었다⁠. 할머니가 천 길이를 안 재고 썼다고 했다⁠.

“⁠들이 쪼그라졌네⁠.⁠”

“⁠사람이 많아서 쪼그라진 것이여⁠. 뜻이 있어⁠.⁠”

“⁠뜻은 지금 지었지⁠?⁠”

“⁠지금 지었어⁠.⁠”

가게 안은 사람으로 꽉 찼다⁠. 진열대 앞에 접이식 의자 열두 개가 두 줄로 놓였다⁠. 낚시 할아버지는 아이스박스에 광어회를 떠 왔다⁠. 반찬 가게에 회를 들고 오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희자가 혀를 찼고⁠, 할아버지는 반찬 옆에 회 있으면 잔치라고 했다⁠. 보험 광고를 찍는다는 2기 여자는 춘엽이 밤새 뜬 털실 가림막 뒤에 앉았다⁠. 회색 털실로 뜬 가림막이 진열대 끝에서 의자 하나를 가렸다⁠. 가림막 위로 여자의 파마머리 끝만 보였다⁠.

염득갑은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작업복을 다려 입고 왔다⁠. 무릎 위에 노란 털실 모자를 올려 두고 있었다⁠. 지난 월요일 춘엽이 남겨 둔 모자였다⁠. 득갑은 모자를 쓰지 않고 손으로 계속 만지작거렸다⁠.

진열대 가운데에 의자 하나가 비어 있었다⁠. 등받이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희자가 매직으로 쓴 글씨였다⁠. 「⁠은결 미디어 류옥채 이사님⁠」 의자 앞 접시에 깍두기가 담겨 있었다⁠. 화요일에 담근 깍두기였다⁠. 춘엽이 한 조각을 몰래 집어 먹었다⁠. 맛이 들어 있었다⁠.

*

남궁희자는 오후 세 시 정각에 삼각대 위 빨간 스웨터 휴대전화의 녹화 단추를 눌렀다⁠. 「⁠LIVE⁠」가 떴다⁠. 숫자가 오천⁠, 만⁠, 만오천으로 올라갔다⁠. 성율이 두 번째 휴대전화를 가로로 들고 가게 구석에 서 있었다⁠. 예늘은 쪽방 노트북 앞에서 채팅창을 보고 있었다⁠.

“⁠우리 학생들⁠. 오늘은 반찬 없어⁠. 사람이 반찬이여⁠. 동기들 하나씩 인사혀⁠.⁠”

낚시 할아버지가 일어나 광어회 접시를 들어 보였다⁠. 「⁠바다 할아버지⁠」 채널이라고 했다⁠. 집 주소를 묻는 댓글이 달리면 이제 동기들이 같이 신고한다고 했다⁠. 서예 할머니가 일어나 붓펜으로 허공에 「⁠품앗이⁠」를 썼다⁠. 화면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채팅창이 박수 이모티콘으로 덮였다⁠. 털실 가림막 뒤에서 손 하나가 올라와 흔들렸다가 내려갔다⁠.

득갑의 차례가 왔다⁠. 득갑은 일어나지 않고 앉은 채로 말했다⁠. 목소리가 처음에 갈라졌다⁠.

“⁠나는 채널을 팔았어요⁠. 「⁠철물 고치는 할아버지⁠」 오천 받고⁠. 집사람 수술비였어요⁠. 팔고 나서는 회사가 써 준 대로 읽었어요⁠. 무릎이 춤을 춥니다⁠. 내 무릎은 멀쩡혀요⁠. 허리가 아프지⁠. 자식들헌테 손 벌리지 마시고 하루 두 알로⁠. 나는 자식헌테 손 벌렸어요⁠. 그 말을 읽었어요⁠.⁠”

득갑이 휴대전화를 화면 앞으로 들었다⁠. 은결 출연자 공지방의 글을 찍은 사진이었다⁠. 「⁠협력 채널 이슈로 월명동 관련 질문이 오면 답하지 마시고⁠」

“⁠이것이 그 회사 공지방이여요⁠. 협력 채널⁠. 뒤집개 같은 채널을 그 회사가 협력 채널이라고 불러요⁠. 나는 위약금 이천을 물고 나왔어요⁠. 내 돈이 아니고 희자 씨 돈으로⁠.⁠”

채팅창이 멈췄다가 터졌다⁠. 「⁠위약금을 대신 냄⁠?⁠」 「⁠할머니 빚 갚을 돈 아님⁠?⁠」 희자는 대답하지 않고 깍두기 접시를 득갑 앞으로 밀었다⁠. 득갑이 한 조각을 먹었다⁠. 씹으면서 노란 털실 모자를 머리에 썼다⁠.

세 시 이십 분⁠, 유리문의 종이 울렸다⁠. 경첩은 울지 않았다⁠. 류옥채가 혼자 들어왔다⁠. 법무팀 직원도 없었다⁠. 류옥채는 가게 안의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고⁠, 비어 있던 의자 등받이의 종이를 읽고⁠, 의자에 앉았다⁠. 라이브 숫자가 이만을 넘었다⁠.

*

류옥채는 의자에 앉자마자 깍두기 한 조각을 먹었다⁠. 맛이 들어 있었다⁠. 무가 거짓말을 안 한다는 말이 맞았다⁠. 류옥채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화면을 보았다⁠. 빨간 스웨터를 입은 휴대전화의 렌즈가 작고 검었다⁠. 열두 해 동안 수많은 렌즈 뒤에 서 있었다⁠. 렌즈 앞에 앉은 것은 처음이었다⁠.

“⁠은결 미디어 류옥채입니다⁠. 초대해 주셔서 왔습니다⁠.⁠”

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님 말씀도 들어야 공평허지요⁠. 허쇼⁠.⁠”

류옥채는 외워 둔 숫자부터 말했다⁠.

“⁠저희가 지난 세 해 동안 지켜본 어르신 채널이 백이십 개입니다⁠. 그중 일흔 개가 한 해를 못 넘기고 그만두셨어요⁠. 악플 때문에⁠, 집 앞에 오는 사람 때문에⁠, 자식 회사 앞에 오는 사람 때문에⁠. 저희가 산 채널 마흔두 개 가운데 그만둔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희가 미리 낸 수술비가 열한 건이에요⁠. 전주 한지 부채 선생님 심장 수술도 그중 하나고요⁠.⁠”

채팅창에 한 줄이 올라왔다⁠. 「⁠제 아버지예요⁠. 은결 아니었으면 수술 못 했어요⁠」 성율이 화면 너머로 채팅 줄을 보고 숨을 삼켰다⁠. 전주 국밥집의 여자였다⁠.

“⁠협력 채널⁠, 맞습니다⁠. 뒤집개도 저희가 돈을 댔습니다⁠. 날짜를 맞췄고요⁠. 그건 제 잘못입니다⁠. 지난 목요일 집 앞에 간 채널은 그날 밤 계약을 끊었어요⁠. 대문은 저희가 정한 선 밖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채널을 처음 붙인 게 저희니까 그것도 제 잘못입니다⁠.⁠”

가림막 뒤에서 2기 여자가 기침을 했다⁠. 류옥채는 가림막을 보았다⁠. 털실 사이로 파마머리가 보였다⁠. 류옥채는 여자가 누군지 알았다⁠. 보험 광고를 석 달째 찍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말씀드려요⁠. 저희가 손을 떼면 다음 달에도 일흔 개가 그만둘 거예요⁠. 여기 계신 분들 품앗이로는 다 못 막으세요⁠. 저는 그 일흔 개를 줄이는 일을 해요⁠. 줄이는 방법이 깨끗하지 않았던 건 인정합니다⁠. 방법을 바꾸겠습니다⁠. 일을 그만두지는 않겠습니다⁠.⁠”

털실 가림막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2기 여자였다⁠. 얼굴은 나오지 않았다⁠.

“⁠이사님 말 맞어요⁠. 나 석 달 전에 그만둘라고 혔어요⁠. 손주 학교 이름이 댓글에 나와서⁠. 은결이 그 댓글 다 지워 줬어요⁠. 법무팀이 편지도 보내 줬고⁠. 그건 고마워요⁠.⁠”

류옥채가 가림막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여자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근디 지금 나는 보험 광고 읽어요⁠. 내가 안 든 보험을⁠. 한 달에 두 번⁠. 읽을 때마다 우리 영감이 들어 놓은 보험 증서가 생각나요⁠. 그것은 진짜였는디⁠. 이사님⁠, 지켜 준 것은 고마운디⁠, 지켜 준 다음에 내 입이 내 것이 아녀요⁠. 나는 여기 앉어만 있을라고 왔는디⁠, 앉어 있으니께 말이 나오네⁠.⁠”

가림막 위로 파마머리 끝이 흔들렸다⁠. 춘엽이 가림막 너머로 손을 넣어 여자의 손을 잡았다⁠. 류옥채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림막을 오래 보았다⁠.

*

차예늘은 쪽방 노트북 앞에서 화면 공유 단추 위에 손가락을 올려 두고 있었다⁠. 이사님의 말이 다 맞았다⁠. 수술비도⁠, 일흔 개도⁠. 예늘은 수습 주간에 이사님의 숫자들을 실제로 보았다⁠. 이사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사람을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예늘은 현곤에게 받은 사진을 열었다⁠. 단추를 눌렀다⁠. 라이브 화면 한쪽에 「⁠K팀장⁠」의 메시지가 떴다⁠. 「⁠대출 사천이백⁠. 이자일 25일⁠. 출처는 묻지 마세요⁠」 다음 장⁠. 「⁠할머니가 화내는 장면 하나만 건지면 됩니다⁠」

“⁠이건 뒤집개 운영자가 직접 받은 메시지예요⁠. 본인이 보여 줘도 된다고 했어요⁠. 회사 서버가 아니고 본인 휴대전화예요⁠.⁠”

예늘은 쪽방에서 나와 진열대 앞으로 걸어갔다⁠. 이사님 맞은편에서 멈췄다⁠. 이사님이 예늘의 얼굴을 보았다⁠.

“⁠이사님⁠, 일흔 개를 줄이신다는 거 믿어요⁠. 그런데 화내는 장면 하나만 건지라는 건 줄이는 일이 아니잖아요⁠. 선생님이 화내셨으면 이사님은 그 장면 들고 선생님을 사러 오셨을 거잖아요⁠.⁠”

류옥채는 화면에 뜬 메시지를 끝까지 읽었다⁠. 눈을 피하지 않았다⁠.

“⁠K는 저희 운영팀장입니다⁠. 지시는 팀장이 했고⁠, 팀장이 하게 둔 건 저예요⁠. 제 책임입니다⁠.⁠”

채팅창이 다시 반으로 갈렸다⁠. 「⁠책임진다는 사람은 처음 봄⁠」 「⁠그래도 사람 겁준 건 겁준 거지⁠」 희자는 채팅창을 보지 않고 류옥채를 보았다⁠. 류옥채는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내고 있었다⁠.

*

남궁성율은 휴대전화를 가로로 든 채 류옥채의 태블릿을 찍고 있었다⁠. 무엇이 나올지 몰랐다⁠. 찍는 사람이 가장 늦게 알았다⁠. 류옥채가 태블릿을 들어 엄마의 삼각대 렌즈 앞에 댔다⁠. 성율의 화면에도 태블릿이 크게 잡혔다⁠.

문자 메시지 화면이었다⁠. 보낸 사람의 이름은 「⁠남궁성율⁠」이었다⁠. 사월 첫 주⁠, 밤 열두 시 사십 분⁠.

「⁠이사님⁠,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엄마가 그만두게 해 주세요⁠. 저는 엄마가 다치는 걸 못 봐요⁠. 돈이 들면 제가 낼게요⁠.⁠」

“⁠이것도 공평하게 보여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어머님⁠, 처음 저희를 부른 건 아드님이에요⁠.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저희는 방법을 고른 겁니다⁠. 고른 방법이 나빴어요⁠. 그래도 부탁은 아드님이 하셨어요⁠.⁠”

가게 안의 숨소리가 멎었다⁠. 성율의 휴대전화 화면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성율은 휴대전화를 내리지 않았다⁠. 내리면 자기 얼굴을 숨기는 것이었다⁠. 화면 속에서 엄마가 돋보기를 위생모 위에서 내려 썼다⁠.

*

강현곤은 골목 어귀 문 닫은 철물점 처마 밑에 경차를 세우고 운전석에서 라이브를 보고 있었다⁠. 한 달 전 셀카봉을 들고 섰던 자리였고⁠, 닷새 전 맞불 라이브를 하러 왔던 자리였다⁠. 오늘은 셀카봉이 없었다⁠. 조수석에 빈 반찬 통이 하나 있었다⁠. 예늘이 할머니에게 전해 주지 않고 도로 돌려준 두 번째 통이었다⁠. 직접 가져가라고 했다⁠.

화면에 자기가 받은 메시지가 떴다⁠. 화내는 장면 하나만⁠. 현곤은 자기가 받은 문장을 화면 너머로 다시 읽었다⁠. 자기 휴대전화에서 볼 때보다 글씨가 컸다⁠. 채팅창에 「⁠뒤집개 이놈도 공범⁠」이라는 줄이 올라왔다⁠. 현곤은 공범이라는 줄을 끝까지 읽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대리운전을 하던 밤에 들은 어떤 욕보다 짧았고⁠, 어떤 욕보다 오래 남았다⁠.

유리문 너머로 할머니의 위생모가 보였다⁠. 할머니가 태블릿에 얼굴을 바짝 대고 있었다⁠. 현곤은 차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 아직 들어갈 때가 아니었다⁠. 반찬 통을 무릎에 올려놓고 라이브를 계속 보았다⁠.

*

남궁희자는 태블릿에 얼굴을 바짝 대고 아들의 문자를 읽었다⁠. 한 글자씩 읽었다⁠. 라이브 숫자가 삼만을 넘었다⁠. 채팅창이 아들의 이름으로 덮였다⁠. 희자는 채팅창을 보지 않았다⁠. 문자를 끝까지 읽고 돋보기를 벗었다⁠.

“⁠밤 열두 시 사십 분이네⁠.⁠”

류옥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애가 그 시간에 안 자고 내 영상 댓글창에서 싸웠어요⁠. 석 달을⁠. 그날도 싸우다가 이사님헌테 이것을 보냈겄지⁠.⁠”

희자는 태블릿을 류옥채 쪽으로 돌려 밀었다⁠.

“⁠내 아들이 무서웠던 거여요⁠. 엄마가 다칠까 봐⁠. 이 애 아버지가 목요일 밤에 냉장고 앞에서 쓰러졌어요⁠. 이 애는 서울서 세 시간 걸려 내려왔는디 다 끝나 있었어요⁠. 그 뒤로 이 애는 목요일 밤마다 잠을 못 자요⁠. 무서운 사람이 보낸 문자여요⁠, 이것은⁠.⁠”

희자는 깍두기 한 조각을 집어 류옥채 접시에 올렸다⁠.

“⁠이사님은 그 무서움을 사 간 거고⁠.⁠”

류옥채가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깍두기를 집지 않았다⁠. 희자는 고개를 돌려 가게 구석의 아들을 보았다⁠. 아들의 휴대전화가 다시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화면 너머의 아들 눈이 빨갰다⁠.

“⁠성율아⁠, 찍는 것 계속 찍어⁠. 끄지 말고⁠.⁠”

1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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