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67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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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십만 엄마 유튜버 · 윤은류

대문 밖의 젊은 남자 둘은 스물을 갓 넘긴 얼굴이었다⁠. 하나는 모자를 거꾸로 썼고⁠, 하나는 마스크를 턱에 걸었다⁠. 셀카봉 두 개가 남궁성율의 얼굴을 향해 있었고⁠, 성율의 휴대전화가 두 남자의 얼굴을 향해 있었다⁠. 세 화면이 서로를 찍었다⁠.

“⁠아저씨 누구세요⁠?⁠”

“⁠이 집 아들이요⁠. 할머니는 주무세요⁠.⁠”

“⁠한마디만 하시면 되는데요⁠. 구독자들이 할머니 목소리 듣고 싶대요⁠.⁠”

“⁠구독자들은 내일 세 시에 들으면 돼요⁠. 가게에서⁠. 집은 자는 데예요⁠.⁠”

성율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석 달 동안 새벽마다 댓글창에서 높이던 목소리를 오늘은 낮췄다⁠. 모자 거꾸로 쓴 남자가 셀카봉을 성율의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성율은 물러나지 않고 제 휴대전화를 조금 더 들었다⁠.

“⁠지금 저도 찍고 있어요⁠. 두 분 얼굴이랑 이 시각이랑 우리 집 문패요⁠. 내일 경찰서에 같이 내려고요⁠.⁠”

마스크를 턱에 건 남자가 셀카봉을 내렸다⁠. 옆집 미용실 이 층 창문이 드르륵 열렸다⁠. 원장이 파마 롤을 머리에 가득 단 채 몸을 내밀었다⁠.

“⁠너그들 지금 몇 시여⁠! 내가 지구대에 전화혔어⁠! 오 분이믄 와⁠!⁠”

두 남자가 서로를 보았다⁠. 롤 단 머리가 창문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손에 빗자루를 들고 있었다⁠. 두 남자는 셀카봉을 접고 골목 밖으로 뛰었다⁠. 뛰면서도 라이브는 끄지 않았다⁠.

지구대 순경은 십이 분 뒤에 왔다⁠. 서른 중반의 순경은 성율의 영상을 끝까지 보고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대문을 넘어 들어오지는 않았네요⁠. 두드리기만 하고⁠. 지금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순찰을 자주 돌게요⁠.⁠”

“⁠또 오면요⁠?⁠”

“⁠또 오면 또 부르세요⁠.⁠”

순경이 돌아간 뒤 성율은 대문 빗장을 두 번 확인했다⁠. 마당에서 돌아서자 엄마가 마루 끝에 앉아 있었다⁠. 잠옷 위에 다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무릎 위에 국자를 올려놓은 채였다⁠.

“⁠엄마⁠, 들어가 자요⁠.⁠”

“⁠니가 잘 막더라⁠.⁠”

엄마는 국자를 무릎 위에 둔 채 일어나지 않았다⁠.

*

이튿날 오후 한 시⁠, 남궁희자는 가게 유리문 밖에 줄이 선 것을 처음 보았다⁠. 반찬을 사러 온 줄이 아니었다⁠. 꽃을 든 사람⁠, 홍삼 상자를 든 사람⁠, 휴대전화를 높이 든 사람이 섞여 있었다⁠. 대전에서 왔다는 여자는 희자 손을 잡고 울었다⁠. 광주에서 온 대학생은 사진 한 장만 찍자고 했다⁠. 희자는 열네 번 웃었고 열네 번 브이를 했다⁠. 열다섯 번째 사람은 사진 대신 반찬을 샀다⁠. 깻잎 두 통이었다⁠. 희자는 손님이 통을 뒤집어 밑을 보는지 지켜보았다⁠. 손님은 보지 않았다⁠.

유리문에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아침에 셔터를 올렸을 때 다섯 장이었고⁠, 오후 한 시에는 열한 장이었다⁠. 「⁠동정팔이 할매⁠」 「⁠빚은 니가 갚아⁠」 「⁠남편 팔아 구독자 사냐⁠」 누가 언제 붙였는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성율이 떼면 한 시간 뒤에 또 붙어 있었다⁠.

두 시 반⁠, 희자는 내일 장사할 무를 썰었다⁠. 무 하나를 반으로 가르고⁠, 반을 다시 반으로 가르고⁠, 납작하게 썰었다⁠. 서른 해 동안 눈을 감고도 썰던 무였다⁠. 일곱 번째 조각에서 칼끝이 비뚤어졌다⁠. 여덟 번째 조각에서 칼이 도마를 비껴 손톱 끝을 스쳤다⁠. 피는 나지 않았다⁠. 희자는 칼을 도마 위에 내려놓았다⁠.

손을 펴서 보았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희자는 손을 앞치마에 문질렀다⁠. 다시 폈다⁠. 아직 떨렸다⁠.

“⁠엄마⁠?⁠”

성율이 진열대 너머에서 엄마를 보았다⁠. 희자는 무 한 조각을 집어 혀에 댔다⁠. 무는 달고 맵고 시원해야 했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희자는 무 조각을 다시 혀에 댔다⁠. 혀끝이 무를 알아보지 못했다⁠.

“⁠성율아⁠, 이 무 맛이 어떠냐⁠?⁠”

성율이 한 조각을 받아먹었다⁠.

“⁠달아요⁠. 좀 맵고⁠.⁠”

“⁠그려⁠.⁠”

희자는 위생모를 벗어 계산대 위에 놓았다⁠. 오후 세 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삼각대는 접힌 채 진열대 밑에 있었다⁠. 희자는 처음으로 삼각대를 펴지 않았다⁠. 석 달 만이었다⁠.

*

차예늘은 비응항 방파제 앞 편의점 파라솔 아래에서 강현곤을 만났다⁠. 어젯밤 열한 시에 현곤에게서 문자가 왔다⁠. 「⁠누나⁠, 내일 잠깐 봐요⁠. 할머니 집 영상 건⁠.⁠」 예늘은 엄마 미용실 롤을 한 줌 주머니에 넣고 나왔다⁠. 무슨 일이 생기면 던지라고 엄마가 쥐여 준 것이었다⁠.

현곤은 야구 모자를 벗고 있었다⁠. 모자를 벗으니 생각보다 어려 보였다⁠. 파라솔 탁자 위에 반찬 통 하나가 놓여 있었다⁠. 비어 있었고 깨끗이 씻겨 있었다⁠.

“⁠이거 할머니 갖다 주세요⁠. 두 번째 통이에요⁠. 제가 갖다 드리면 또 새 통 주실 것 같아서⁠.⁠”

“⁠직접 가요⁠.⁠”

“⁠못 가요⁠. 할머니 집 앞에 간 놈들이 제가 있던 방 사람들이에요⁠.⁠”

현곤이 휴대전화를 탁자 위에 밀었다⁠. 화면에 「⁠K팀장⁠」과 주고받은 메시지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현장 소스 좋네요⁠. 맛 시험 부분은 빼 주세요⁠」부터 「⁠대출 사천이백⁠. 이자일 25일⁠. 출처는 묻지 마세요⁠」를 지나 「⁠할머니가 화내는 장면 하나만 건지면 됩니다⁠」까지⁠.

“⁠누나 사진은 회사 서버 찍은 거라 소송 걸리죠⁠. 이건 제 휴대전화예요⁠. 제가 받은 거예요⁠. 제가 보여 주는 건 아무도 못 막아요⁠.⁠”

“⁠왜 줘요⁠?⁠”

현곤이 빈 반찬 통 뚜껑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우리 엄마 보험 팔다가 회사가 망했을 때⁠, 할머니들이 우리 집 대문을 두드렸어요⁠. 엄마는 이불 뒤집어쓰고 있었고요⁠. 나는 대문까지는 안 가요⁠. 그건 내 선이에요⁠. 은결이 그 선을 넘겼어요⁠. 나 잘라 놓고 다른 놈 시켜서⁠.⁠”

예늘은 휴대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자기 휴대전화를 꺼내 현곤의 화면을 한 장씩 찍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다 찍고 나서 주머니의 롤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이건 왜요⁠?⁠”

“⁠엄마가 무슨 일 생기면 던지라고 줬어요⁠. 안 던졌으니까 두고 가요⁠.⁠”

현곤이 롤 하나를 집어 들고 웃었다⁠. 바다에서 갈매기가 파라솔 위를 지나갔다⁠.

*

류옥채는 저녁 일곱 시⁠, 셔터를 반쯤 내린 남궁반찬에 들어왔다⁠. 유리문의 쪽지는 성율이 다 떼어 낸 뒤였다⁠. 테이프 자국만 유리에 남아 있었다⁠. 류옥채는 테이프 자국을 하나씩 세어 보았다⁠. 열한 개였다⁠.

희자는 진열대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위생모를 쓰지 않았고⁠, 정수리의 동그란 머리가 조금 풀려 있었다⁠. 성율이 엄마 옆에 서 있었다⁠. 류옥채는 서류를 꺼내지 않았다⁠.

“⁠어머님⁠, 마지막으로 드리는 말씀이에요⁠. 계약서는 없습니다⁠. 조건만 말씀드릴게요⁠.⁠”

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달 말 대출⁠, 사천이백 전부 저희가 갚아 드리겠습니다⁠. 채널은 어머님 것으로 그대로 두세요⁠. 이름도 영상도⁠. 팩트방망이 영상은 오늘 밤 안에 내리게 하겠습니다⁠. 저희 협력 채널이니까 저희가 내릴 수 있어요⁠. 대신 한 해 동안 저희 광고 세 편만 찍어 주세요⁠. 세 편이요⁠. 내용은 어머님이 고르세요⁠.⁠”

성율이 숨을 들이쉬었다⁠. 엄마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엄마⁠, 이건 받아요⁠.⁠”

희자는 아들을 올려다보았다⁠.

“⁠세 편이에요⁠. 채널도 엄마 거고⁠, 빚도 없어지고⁠, 대문 앞 영상도 내려가요⁠. 이건 엄마가 지는 게 아니에요⁠. 엄마가 버틴 거예요⁠. 이사님이 물러선 거예요⁠.⁠”

류옥채는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덧붙이지 않는 것이 가장 강한 말이라는 것을 류옥채는 알았다⁠.

희자가 진열대 문을 열고 무 깍두기 통을 꺼냈다⁠. 오후에 썰다 만 무로 담은 것이었다⁠. 젓가락으로 한 조각 집어 혀에 댔다⁠. 맛이 돌아와 있었다⁠. 달고⁠, 맵고⁠, 덜 익어서 아삭했다⁠. 희자는 깍두기를 천천히 씹었다⁠.

“⁠이사님⁠, 팩트방망이는 이사님이 내릴 수 있는 것이지요⁠?⁠”

“⁠네⁠.⁠”

“⁠뒤집개도 이사님이 붙였던 것이고⁠.⁠”

“⁠네⁠.⁠”

“⁠그라믄 이사님이 내릴 수 있는 것은 이사님이 붙일 수도 있는 것이여⁠.⁠”

류옥채가 처음으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광고 세 편 찍으믄 나는 한 해 동안 이사님 회사 이야기를 못 혀요⁠. 우리 학교 2기에 판 사람이 다섯⁠, 3기에 둘⁠. 그 사람들 지금 남이 쓴 대본 읽어요⁠. 나 하나 살리는 대가로 그 일곱 사람 입을 막는 것이여⁠. 득갑 씨 입도 막고⁠.⁠”

“⁠어머님⁠, 그분들은 그분들이 고르신 거예요⁠.⁠”

“⁠그려⁠. 그 사람들이 골랐어⁠. 나도 골라요⁠.⁠”

희자는 깍두기 통을 류옥채 앞으로 밀었다⁠.

“⁠드쇼⁠. 오늘 담근 거라 아직 덜 익었어요⁠. 토요일이믄 맛이 들어요⁠.⁠”

류옥채는 깍두기 한 조각을 집어 먹었다⁠. 덜 익은 무가 이 사이에서 큰 소리를 냈다⁠. 류옥채는 다 씹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토요일에 맛이 든다고요⁠.⁠”

“⁠들어요⁠. 무는 거짓말을 안 혀⁠.⁠”

류옥채가 일어나 셔터 밑으로 허리를 숙였다⁠. 나가기 전에 한 번 돌아보았다⁠. 성율을 보았다⁠.

“⁠성율 씨⁠, 아까 하신 말씀 맞아요⁠. 이건 어머님이 지는 게 아니었어요⁠. 어머님이 안 받으셨으니 이제 누가 지는지는 토요일에 정해지겠네요⁠.⁠”

셔터가 내려왔다⁠. 성율은 엄마 어깨에서 손을 내렸다⁠. 엄마가 깍두기 통 뚜껑을 닫고 아들 손에 쥐여 주었다⁠. 냉장고에 넣으라는 손짓이었다⁠. 성율은 통을 들고 한참 서 있었다⁠. 엄마가 방금 오억과 사천이백과 광고 세 편을 깍두기 한 통과 바꾸는 것을 보았다⁠.

*

오춘엽은 이튿날 아침부터 전화를 돌렸다⁠. 단톡방에 글만 올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얼굴을 봐야 오고⁠, 목소리를 들어야 온다고 했다⁠. 며느리가 동기 명단을 큰 글씨로 뽑아 주었고⁠, 춘엽은 이름 옆에 동그라미와 가위표를 쳤다⁠.

3기는 다 동그라미였다⁠. 낚시 할아버지는 회를 떠 오겠다고 했고⁠, 서예 할머니는 「⁠팔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현수막을 붓으로 쓰겠다고 했다⁠. 2기에서 채널을 판 다섯 사람이 문제였다⁠. 둘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하나는 받자마자 끊었다⁠. 네 번째 사람은 보험 광고를 찍는다는 예순넷의 여자였다⁠.

“⁠춘엽 씨⁠, 나는 못 가⁠. 계약서에 회사 욕허믄 위약금이라고 써 있어⁠.⁠”

“⁠욕허라는 것이 아녀⁠. 와서 깍두기만 먹고 가⁠.⁠”

“⁠화면에 나오믄 그것이 욕이 된대⁠.⁠”

“⁠그라믄 화면 밖에 앉어 있어⁠. 내가 털실로 가림막 떠 줄게⁠.⁠”

수화기 너머에서 웃음이 터졌다⁠. 웃다가 여자가 말했다⁠. 「⁠나는 가 볼게⁠. 앉어만 있을게⁠.⁠」 춘엽은 이름 옆의 가위표를 동그라미로 고쳤다⁠. 다섯 번째 사람은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춘엽은 문자 한 줄을 남겼다⁠. 「⁠토요일 세 시⁠. 안 와도 깍두기는 남겨 둠⁠.⁠」

*

밤 열 시⁠, 남궁희자는 채널의 커뮤니티 칸에 글을 썼다⁠. 돋보기를 쓰고 한 글자씩 눌렀다⁠. 오타가 나면 지우고 다시 눌렀다⁠. 성율이 대신 쳐 주겠다고 했다⁠. 희자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학생들⁠. 토요일 오후 세 시⁠, 가게에서 라이브 합니다⁠. 시니어 유튜버 학교 동기들이 다 같이 나옵니다⁠. 채널 안 판 사람도 나오고⁠, 판 사람도 나옵니다⁠. 은결 미디어 류옥채 이사님 자리도 하나 비워 둡니다⁠. 오시면 깍두기 드립니다⁠. 남궁희자⁠.⁠」

희자는 올리기 단추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손가락이 떨리지 않았다⁠. 눌렀다⁠. 성율이 엄마 어깨너머로 화면을 보다가⁠, 휴대전화를 들어 엄마의 손가락을 찍었다⁠. 올라간 글 밑으로 댓글이 붙기 시작했다⁠. 「⁠갑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알람 맞춤⁠」 「⁠깍두기 몇 개까지 줘요⁠?⁠」 희자는 마지막 댓글에 답을 달았다⁠. 「⁠먹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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