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17자) · 지호 · 6월 4일

반대쪽 끝

자정의 빨래방 · 도경

6월 4일 목요일 저녁 일곱 시. 지호는 세 골목 건너 다세대 주택 삼 층 계단을 올라갔다. 손에 아무것도 안 들고. 계단참마다 유모차와 자전거와 신발장이 나와 있었고, 삼 층 끝 집 문 앞에 파란 이케아 가방이 접혀서 놓여 있었다.

6월 1일 새벽 이후 지호는 빨래방에 안 갔다. 길 건너 반지하 창살로 유리창 불빛만 봤다. 밤마다 그 불빛 속을 정우석이 지나 들어갔고, 두 시에 스피커가 울었고, 정우석은 수건을 넣고 꺼내고 앉아 있었고, 방송은 계속됐다. 정우석이 수요일 낮에 반지하에 와서 그렇게 전했다. 방송은 이제 아무도 안 듣는다고. 고시생은 방송이 나올 때 문제집을 소리 내어 읽는다고. 3번은 그대로라고.

송미래가 문을 열었다. 잠옷 바지가 아니라 청바지. 머리는 낮에 묶은 그대로.

“오셨어요.”

“네.”

화요일 새벽에 송미래는 빨래방에 갔고, 지호가 없었고, 창가 두 번째 의자의 남자가 길 건너 반지하를 가르쳐 줬다. 수요일 낮에 송미래가 반지하 창살을 두드렸다. 부탁이 하나 있다고. 어머님 이불을 가는 날인데 남편이 지방이고 혼자서는 어머님을 못 든다고. 지호는 알겠다고 했다. 왜 자기한테 묻느냐고는 안 물었다. 이불 접는 손을 본 사람이 묻는 것이었다.

집은 방 둘에 거실 하나였다. 창문이 다 열려 있고 선풍기가 침대 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6월 초저녁 바람이 창으로 들어와 방 냄새를 밖으로 밀었다. 다 못 밀었다. 벽에 아이 그림이 한 장 붙어 있었다. 유치원 크레용. 그 밑에 달력. 화요일마다 동그라미. 거실에 병원 침대가 있었다. 난간이 올라간 침대. 그 위에 일흔아홉 살 여자가 누워 있었다. 조복순. 눈은 떠 있었다. 천장을 보고 있었다. 방에 냄새가 있었다. 지호가 화요일마다 3번 앞에서 맡던 냄새. 소변과 연고와 오래 누운 몸. 그리고 그 위에 라벤더 세제 냄새. 지금 덮고 있는 이불이 지난 화요일에 3번에서 나온 이불이었다.

“어머님. 도와주실 분 오셨어요.”

조복순은 눈을 안 돌렸다. 송미래가 지호를 봤다.

“말은 다 들으세요. 대답을 안 하실 뿐이에요.”

지호는 침대 옆에 섰다. 손을 씻고 왔느냐고 송미래가 물었고, 지호는 씻겠다고 했다. 싱크대에서 손을 씻는 동안 송미래는 새 이불을 꺼냈다. 같은 이불이었다. 두 채를 번갈아 쓴다고 했다. 한 채가 3번에 있는 동안 한 채가 침대에 있다.

“어떻게 하세요, 보통.”

“제가 어머님을 옆으로 밀고, 이불을 반 빼고, 다시 반대로 밀고, 나머지 반 빼요. 혼자 하면 사십 분이에요.”

“둘이면 십 분입니다.”

송미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지호를 봤다. 사십 분을 십 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십 분을 해 본 사람이었다.

지호가 침대 왼쪽에 섰다. 송미래가 오른쪽. 지호가 조복순의 어깨와 골반에 손을 댔다. 손이 먼저 자리를 찾았다. 어디를 잡아야 아프지 않은지 아는 손이었다.

“어머님. 옆으로 갑니다.”

조복순이 옆으로 돌아갔다. 가벼웠다. 일흔아홉 해가 삼십 킬로그램이 조금 넘었다. 지호의 손이 어깨뼈 위에서 잠깐 멈췄다. 뼈가 손바닥에 다 잡히는 무게였다. 송미래가 이불을 빼기 시작했다. 젖은 자리가 드러났다. 냄새가 올라왔다. 송미래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도로 돌렸다. 지호는 안 돌렸다.

“연고를 먼저 바르세요. 이불 넣기 전에.”

“아. 저는 늘 이불 먼저.”

“이불 먼저 하면 연고 바를 때 또 밀어야 합니다. 두 번 미는 거예요.”

송미래가 연고를 가져왔다. 지호가 조복순을 잡고 있는 동안 송미래가 발랐다. 엉치뼈 위. 붉은 자리 두 개. 연고 냄새가 기름처럼 퍼졌다. 지호는 조복순의 얼굴을 봤다. 눈이 천장에서 지호한테 왔다. 잠깐. 그리고 도로 천장으로 갔다.

새 이불이 들어갔다. 지호가 이불 끝을 침대 매트리스 밑으로 말아 넣었다. 모서리를 삼각으로 접어서. 송미래가 그 손을 봤다.

“병원에서 배우셨어요.”

“어머니가 병원에 안 계셨습니다. 집에서요. 이 년.”

“혼자요.”

“네.”

“낮에는 뭐 하셨어요.”

“이거요.”

송미래는 다음 말을 안 했다. 대신 헌 이불을 접었다. 지호가 반대쪽 끝을 잡았다. 두 사람이 이불을 접었다. 침대 옆 좁은 자리에서. 이불이 파란 가방에 들어갔다.

“그 세탁기요.”

송미래가 물었다.

“어머니 것. 안 고쳤다는.”

“네.”

“지금은요?”

“방 뺄 때 집주인이 가져갔습니다. 작년 오월에.”

지호는 그렇게만 말했다. 조복순이 천장을 보고 있었다. 방에서 냄새가 조금 바뀌어 있었다. 새 이불의 세제 냄새가 위로 올라오고 연고 냄새가 그 밑에 깔렸다. 십 분이었다.

지호는 침대 난간을 올렸다. 딸깍. 조복순의 손이 이불 위에 나와 있었다. 지호가 그 손을 이불 안으로 넣었다. 손이 차가웠다. 6월인데. 오래 누운 사람의 손은 계절을 안 탄다.

“화요일에 3번 돼요?”

“저는 이제 거기 없습니다.”

“그래도요. 3번은 있죠.”

“12일까지는요. 구청 회의가 그날입니다. 그다음은 모릅니다.”

송미래는 가방을 들었다.

“저 그 회의 가요. 편지 왔어요. 이해관계인이래요. 이불 냄새가 이해관계래요.”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 앞에서 송미래가 말했다.

“다음 주에도 와 주세요. 목요일.”

“네.”

“돈 드릴게요.”

“괜찮습니다.”

“안 괜찮아요. 아는 사람이 할 일이라면서요. 아는 사람한테는 돈을 줘야 돼요.”

송미래는 그 말을 하면서 처음으로 웃었다. 넉 달 동안 3번 앞에서 한 번도 안 보인 얼굴이었다. 남편이 지방에서 격주로 오고, 아이는 친정에 있고, 이 집에서 웃을 일이 화요일마다 이불 한 채라고 했다.

지호는 그 말을 받았다.

밤 열 시에 반지하 창살을 누가 두드렸다. 정우석이었다. 남색 천 가방과 검은 봉지. 봉지에서 소주 두 병과 새우깡 냄새가 났다. 가방에는 이불 커버가 들어 있었다.

“집에서 돌렸어요. 오늘.”

정우석이 반지하 문 앞에서 말했다. 방은 작았다. 창살 너머로 골목 바닥이 눈높이에 있고, 밤에는 빨래방 유리창 빛이 창살을 지나 천장에 여섯 줄 줄무늬를 그린다. 정우석은 그 줄무늬를 올려다봤다. 지호가 넉 달 동안 잠들 때마다 본 것이었다. 책상, 침대, 옷걸이. 사람 둘이 서면 남는 자리가 없었다.

“새 세탁기로요. 하은이가 사 줬어요. 지난주에. 조용한 거로.”

“네.”

“조용하더라고요. 이불 커버 돌리는 동안 옆에 서 있었는데, 아무 소리도 안 나요. 탈수도 조용해요. 하은이가 전화로 그랬어요. 아빠 이제 밤에 집에서 돌려. 그러겠다고 했어요. 돌렸고요. 그래서 꺼내고 못 접었어요.”

정우석은 가방을 내려놓고 이불 커버를 꺼냈다. 흰 바탕에 모서리마다 회색 선. 두 사람 크기. 방에서는 펼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계단으로 나갔다. 반지하 계단 열한 개. 지호가 위쪽 계단에서 한 끝을 잡고 정우석이 아래쪽 계단에서 한 끝을 잡았다. 이불 커버가 계단 위에 비스듬히 펴졌다. 골목 가로등 빛이 그 위에 떨어졌다.

“한 번 접어요.”

접었다. 두 번. 세 번. 이불 커버에서 새 세제 냄새가 났다. 라벤더가 아니었다. 정우석이 산 세제였다. 그 냄새에는 3번이 없었다.

접은 것을 정우석이 가슴에 안았다. 두 사람은 계단에 앉았다. 소주를 땄다. 종이컵이 없어서 병째로 한 모금씩. 새우깡 봉지가 계단 사이에 놓였다.

골목에서 취한 사람 둘이 지나갔다. 계단 위에 앉은 두 남자와 소주병과 새우깡을 내려다보고, 한 사람이 뭐라고 했고, 다른 사람이 웃었고, 지나갔다. 정우석은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지호 씨는 왜 그 일을 했어요.”

정우석이 물었다.

“새벽에 세탁기 지키는 거. 사람 적어서 그랬다는 건 알아요. 그것 말고.”

지호는 소주병을 무릎에 놓았다.

“면접 보러 간 날이 1월 7일이었습니다. 낮 두 시. 점주님이 두 가지 물으시고 끝났는데, 나가려는데 3번이 돌았습니다. 누가 넣었는지 모르겠어요. 탈수 소리가 났습니다.”

정우석은 듣고 있었다.

“어머니 것하고 같은 소리였습니다. 같은 모델이라서요. 작년 오월에 그 세탁기를 집주인이 트럭에 실어 가는 걸 저는 계단에서 봤습니다. 안 잡았습니다. 잡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날 3번 소리를 듣고 그다음 날부터 나왔습니다.”

“그 소리 들으려고요.”

“네.”

“매일 밤.”

“3번이 돌 때만요. 거의 안 돌았습니다. 화요일 두 시하고, 손님이 오시고 나서부터요.”

정우석이 소주를 한 모금 마셨다.

정우석은 소주병을 들었다가 안 마시고 내려놨다. 병 바닥이 콘크리트에 닿는 소리가 작게 났다. 그 소리 말고는 골목이 조용했다.

“그럼 나 때문에 들었네요. 두 달 동안.”

“손님이 넣으신 날은요.”

“나는 안 넣었잖아요. 두 달 동안 앉아만 있었지.”

“앉아 계신 날은 저도 앉아 있었습니다.”

정우석은 이불 커버를 안은 채로 웃었다. 소리 없이. 지호도 그렇게 웃었다.

“낮 일은요. 다음 달부터라던.”

“없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정우석은 소주병을 내려놓고 이불 커버를 다시 봤다.

“이거 회의 끝나고 3번에 넣을 거예요. 마지막이든 아니든.”

“네.”

“그때 지호 씨가 반대쪽 잡아 줘요. 하은이는 부산이고.”

지호는 알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계단에 앉아 있었다. 계단 위 이불 커버가 펴졌던 자리에 가로등 빛이 그대로 떨어져 있었다. 이불 커버가 없으니 그냥 콘크리트였다. 골목 위쪽에서 빨래방 형광등 빛이 담을 넘어 왔다. 소리는 안 왔다. 정우석이 그쪽을 봤다.

“저기 지금 누가 있을까요?”

“열 시니까 아무도요.”

“한 시에 가면 있을까요?”

“손님이 가시면 하나는 있습니다.”

정우석이 일어섰다. 이불 커버를 가방에 넣고, 소주 한 병을 지호 옆에 두고, 계단을 올라갔다. 골목에서 돌아봤다.

“지호 씨. 이름 물어봐 줘서 고마웠어요. 낮에.”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우석이 골목을 올라갔다. 빨래방 쪽으로. 열 시 사십 분이었다. 지호는 계단에 남아서 소주병을 봤다. 새우깡 봉지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손에서는 아직 연고 냄새가 났다. 씻었는데 남아 있었다. 지호는 그 손을 무릎에 놓고 골목 위쪽 빛을 봤다. 한 시까지 두 시간 이십 분이었다. 갈 수 없는 곳까지의 시간을 재는 것은 넉 달 만에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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