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24자) · 지호 · 6월 1일
어서 오세요
자정의 빨래방 · 도경
5월 29일 금요일 낮에 흰 트럭이 왔다. 비닐에 싸인 새 세탁기가 골목을 올라왔고, 기사가 공구 벨트를 철컥거리며 들어왔고, 문정수가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기사는 3번 앞에 섰다. 문정수가 5번을 가리켰다.
“저거 빼.”
“3번 아닙니까?”
“5번이 제일 안 돌아. 저거 빼고 새거 넣어.”
“본사에서 3번이라고 했는데요.”
“본사가 여기 와서 세탁기 돌려 봤어? 5번이 넉 달 동안 열한 번 돌았어. 내가 세 봤어.”
기사는 두 번 물었고, 두 번 다 같은 대답을 들었다. 세 번째는 묻지 않았다. 점심을 못 먹은 사람은 세 번 묻지 않는다. 5번이 빠지고 새 기계가 들어갔다. 기사는 새 기계 사진을 찍었다. 조작판에 5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문정수는 그 사진이 본사로 가는 것을 봤다. 「신림4호점 설비 교체 완료」. 3번은 그대로 있었다. 유리문에 정우석의 손자국이 아직 있었다.
그것이 문정수의 두 번째 거짓말이었다. 첫 번째는 발주였고 두 번째는 번호였다.
6월 1일 월요일 새벽 열두 시 오십오 분. 지호는 문을 밀었다. 문이 안 열렸다. 유리문 옆에 어제까지 없던 검은 상자가 붙어 있었다. QR. 지호는 휴대폰을 꺼내 워시앤고 앱을 열었다. 손님용 앱. 화면을 상자에 댔다. 딸깍. 문이 열렸다.
센서가 딩, 하고 울었고, 그 뒤에 다른 소리가 났다.
“워시앤고 신림4호점입니다. 어서 오세요.”
카운터 위 회색 상자에서 나온 여자 목소리였다. 천장 네 모서리의 검은 반구에 빨간 점이 하나씩 켜져 있었다. 지호는 그 점 넷을 차례로 봤다. 그러고는 점퍼를 의자에 걸고 세제 통을 열었다. 1번부터 6번까지. 3번이 반이었다. 채웠다.
지호는 오늘 용역이 아니었다. 용역은 5월 31일로 끝났다. 문정수가 토요일에 봉투를 하나 줬다. 현금. 6월분. 「내 직원으로 해. 본사는 몰라도 돼.」 지호는 봉투를 받았고 본사가 모를 리 없다는 말은 안 했다. 봉투는 반지하 책상 서랍에 그대로 있었다. 열어 보지 않은 채로.
한 시 사십 분에 정우석이 왔다. 문 앞에서 멈췄다. QR 상자를 봤다. 휴대폰을 꺼내 앱을 열고, 화면을 댔다. 딸깍. 어서 오세요. 정우석은 그 목소리를 듣고 천장을 한 번 봤다. 빨간 점 넷. 그리고 3번으로 가서 수건 두 장을 넣었다. 동전. 창가 두 번째 의자.
두 시 정각에 스피커가 울렸다.
“고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세탁물이 없는 고객님은 퇴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여자 목소리. 어서 오세요와 같은 높이. 정우석은 수건이 3번에 들어 있었다. 세탁물이 있었다. 방송은 정우석한테 한 것이 아니었다. 카운터 뒤의 지호한테 한 것이었다. 지호는 세탁물이 없었다.
지호는 카운터에 앉은 채로 있었다. 머리 위 상자에서 나온 목소리가 방을 한 바퀴 돌고 세탁기 유리에 부딪쳐 돌아왔다. 형광등 여섯 개 아래에서 방은 어제와 똑같이 환했고, 어제와 다른 것은 천장의 빨간 점 넷뿐이었다. 그 점이 방을 다른 방으로 만들었다. 수족관에 누가 밖에서 손전등을 비추는 것 같았다.
두 시 오 분에 방송이 다시 나왔다. 같은 문장. 두 시 십 분. 같은 문장. 정우석이 3번에서 수건을 꺼냈다. 이제 정우석도 세탁물이 없었다. 방송은 이제 둘한테 하는 것이 됐다. 두 시 십오 분.
지호는 벽에 붙은 스티커를 봤다. 「관제센터 24시간 1588-」. 카운터 위 유선 전화기를 들었다. 넉 달 동안 한 번도 안 쓴 전화기였다. 수화기에서 먼지 냄새가 났다.
“워시앤고 관제센터입니다.”
“신림4호점입니다.”
“네, 신림4호점 화면 보고 있습니다.”
강민재였다. 전환 첫날 밤이었고, 슈퍼바이저가 관제실에 앉아 있었다.
“방송 멈춰 주십시오.”
“한지호 씨. 명단에 없으십니다. 세탁물도 없고요.”
“점주님 직원입니다.”
“본사 시스템에는 없습니다. 시스템에 없으면 손님이고 손님은 세탁물이 있어야 합니다.”
지호는 천장의 빨간 점을 봤다. 강민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그 점 너머의 지호였다.
“손님 한 분 더 계십니다. 방금 세탁물 꺼내셨습니다.”
“압니다. 창가 두 번째 의자. 두 달 전부터 그 자리에 앉은 분이죠.”
“내보내지 마십시오.”
“제가 내보내는 게 아닙니다. 방송이 안내하는 거고요.”
방송이 나왔다. 두 시 이십 분. 수화기 너머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강민재 쪽 화면에서 나는 소리였다. 두 사람이 같은 문장을 두 곳에서 들었다.
“그리고 한지호 씨.”
“네.”
“3번 자리에 옛날 기계가 그대로 보입니다. 교체 완료 보고는 5번 자리였고요. 문 점주님이 번호를 바꾸셨습니다.”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점주님께는 아침에 연락 갑니다. 지호 씨 건은 지금 말씀드립니다. 용역 계약은 5월 31일로 끝났고, 오늘부터 현장에 계시면 체류로 기록됩니다. 방금 전화하신 것도 기록에 남습니다. 점주님이 따로 고용하신 걸로 안다고 하셔도 본사는 그걸 인정 안 합니다. 해지 통보 나갑니다.”
“누구한테요.”
“점주님한테요. 지호 씨 고용을 해지하라고요.”
“안 하시면요.”
“그러면 가맹 위반입니다.”
지호는 수화기를 든 채로 3번을 봤다. 손자국. 그 옆에 정우석이 앉아 있었다. 정우석은 전화를 듣고 있었다. 내용은 몰라도 얼굴을 보면 아는 것이 있었다.
“강 선생님.”
“네.”
“지금 화면에 몇 명 보이십니까?”
“둘이요.”
“이름 아십니까?”
강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호는 수화기를 내려놨다.
정우석이 창가에서 물었다.
“뭐래요.”
“이름을 모른답니다.”
정우석은 그 대답을 듣고 3번을 봤다. 자기 손자국이 있는 유리를.
두 시 삼십 분에 스피커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다른 문장이었다.
“관제센터 안내입니다. 세탁물이 없는 고객님이 계속 체류하시어 매장을 임시 폐점합니다. 안에 계신 분은 퇴장하실 수 있습니다. 출입은 잠깁니다.”
형광등 여섯 개 중 넷이 꺼졌다. 남은 둘이 카운터와 3번 위를 비췄다. 문 옆 QR 상자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밖에서는 못 들어오고 안에서는 나갈 수 있는 문.
정우석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호도.
반쯤 어두워진 방에서 냄새가 먼저 달라졌다. 형광등이 꺼지면 세제 냄새가 무거워진다. 빛이 없으면 냄새가 가라앉는다. 3번 밑 물 자국에서 쇳내가 올라왔다. 두 사람은 그 냄새 속에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카운터 뒤, 한 사람은 창가 두 번째 의자. 그 사이에 여섯 걸음.
두 시 사십 분에 유리창 밖에 사람이 왔다. 김만수. 남색 작업복. 문을 밀었다. 안 열렸다. 휴대폰을 꺼내 상자에 댔다. 빨간불. 안 열렸다. 그는 유리를 두드렸다. 안에서 지호가 문 앞으로 갔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섰다.
“왜 안 열려요.”
유리 너머라 입 모양으로 읽었다.
“폐점이랍니다.”
“나 세탁물 있는데.”
김만수가 작업복 가방을 들어 보였다. 지호는 스티커의 번호를 가리켰다. 김만수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지호는 그 통화를 유리 너머로 봤다. 김만수의 입이 빨라졌다. 그러고는 전화를 끊고 유리를 봤다.
“시스템이 폐점 상태라 못 연대요. 아침에 점주가 열어야 된대요.”
“네.”
“나 어디서 자.”
지호는 대답을 못 했다. 유리 너머 쉰두 살 남자의 얼굴이 형광등 빛 반쪽을 받고 있었다. 밤새 남을 태워다 준 사람이 자기 잘 자리를 못 찾는 얼굴. 김만수는 창가 의자를 봤다. 반쯤 어두운 방 안에 정우석이 앉아 있는 것을. 그리고 계단으로 갔다. 위층 올라가는 바깥 계단 셋째 단. 정우석이 열흘 전에 앉았던 자리. 김만수는 거기 앉아서 눈을 감았다. 작업복 가방을 베개로 했다. 이 분 뒤에 코를 골았다. 유리 너머로도 들렸다.
세 시에 고시생이 왔다. 계단의 김만수를 보고, 잠긴 문을 보고, 안의 두 사람을 봤다. 문제집을 겨드랑이에 낀 채로 유리에 이마를 댔다.
“3번 돌아요?”
지호가 고개를 저었다. 고시생은 잠깐 서 있다가 김만수 옆 계단에 앉았다. 넷째 단. 문제집을 폈다. 골목 가로등 밑에서. 코 고는 소리 옆에서.
“민법이 안 읽히네.”
그 말은 안에서 안 들렸다. 지호는 두 사람이 계단에 앉은 것을 봤다. 안에는 둘, 밖에는 둘. 유리 하나. 형광등 둘.
지호는 카운터 위 스피커 상자를 올려다봤다. 그러고는 정우석이 꺼내 둔 수건 두 장 중 하나를 집어 상자 위에 덮었다. 젖은 수건. 상자가 수건 밑에서 다음 방송을 했다. 세탁물이 없는 고객님은. 소리가 반으로 줄었다. 수건에서 3번 냄새가 났다. 세제와 고무와 물.
일 분 뒤에 전화가 울렸다. 유선 전화기. 지호는 받지 않았다. 여섯 번 울리고 끊겼다. 정우석이 창가에서 말했다.
“스피커 가리지 말라는 거겠죠.”
“네.”
“치울 거예요?”
“마르면요.”
정우석이 웃었다. 소리 없이. 어두운 쪽에 앉아서.
네 시 십 분에 문정수가 왔다. 트레이닝복. 슬리퍼. 테이프 감은 안경. 계단에서 자는 김만수와 문제집 든 고시생을 지나 QR 상자에 점주 앱을 댔다. 빨간불이 초록으로 바뀌었다. 문이 열렸다. 형광등이 다 켜졌다. 김만수가 깼다.
문정수는 카운터 앞에 섰다. 젖은 수건이 덮인 스피커를 봤다. 지호를 봤다.
“해지래.”
“들었습니다.”
“나는 경고. 번호 바꾼 거 걸렸어. 다음은 계약 해지래.”
“네.”
문정수는 스피커 위의 수건을 걷었다. 걷어서 카운터에 놓았다. 젖은 자국이 다림질대 위에 네모나게 남았다. 다리미 자국 세 개 옆에.
“지호 씨. 오늘부터 여기 오면 안 돼.”
“네.”
“근데 3번은 안 뺐어.”
문정수는 그 말을 하고 안경을 올렸다. 김만수가 들어와서 작업복을 4번에 넣었다. 고시생이 들어와서 3번에 양말 한 켤레를 넣었다. 동전 소리. 3번이 돌기 시작했다. 정우석이 그쪽을 봤다. 지호는 점퍼를 입었다. 네 시 이십 분이었다. 넉 달하고 스물사흘 만에 처음으로 지호가 세 시간을 못 채우고 문을 나섰다. 센서가 울었다. 어서 오세요, 하고 스피커가 말했다. 나가는 사람한테.
지호는 길을 건넜다. 반지하 계단 열한 개를 내려가기 전에 한 번 돌아봤다. 골목에서 유일하게 환한 유리창. 그 안에 셋이 있었고 3번이 돌고 있었다. 소리는 길 건너까지 안 왔다. 그 소리를 못 듣는 자리에 지호가 서 있었다. 넉 달 만에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