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47자) · 문정수 · 5월 22일
교체 예정일
자정의 빨래방 · 도경
워시앤고 본사는 가산디지털단지 지식산업센터 십일 층에 있다. 5월 22일 금요일 오후 두 시. 문정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안경을 두 번 올리고 회의실 문을 열었다. 유리 벽으로 된 방. 긴 탁자, 의자 여덟, 벽에 전국 가맹점 지도. 지도 위에 초록 점이 이백열두 개 찍혀 있고, 그중 하나가 신림4호점이었다.
앉아 있는 사람은 둘이었다. 강민재. 그리고 가맹운영팀장 서지연. 마흔다섯. 남색 재킷, 안경 없음, 앞에 서류 두 부. 문정수는 회의실에 들어올 때 슬리퍼가 아니라 구두를 신고 있었고, 트레이닝복이 아니라 십 년 된 양복을 입고 있었다. 양복에서 옷장 냄새가 났다. 나프탈렌.
“앉으세요, 점주님.”
문정수가 앉았다. 서지연이 서류 한 부를 밀었다. 가맹 재계약 조건서. 7월 1일자.
“세 가지입니다. 설비 표준, 원격 관제 전환, 그리고 체류 관리. 두 번째는 6월 1일부로 자동이고, 세 번째는 관제가 하니까 점주님이 하실 건 없습니다. 첫 번째만 남았어요.”
“3번이요.”
“네. 3번.”
강민재가 태블릿을 돌렸다. 화면에 사진이 있었다. 3번 세탁기. 그 앞에 나란히 선 두 남자. 빠진 배수 호스와 녹물 자국. 그 옆 화면에 구청 민원 접수증. 「새벽 두 시 이후 세탁기 소음 팔십 데시벨 이상. 이 층 거주자」.
“25일이라고 하셨는데 앞당겨 갔더니 거부하셨습니다. 점주님 지시로요.”
“그날은 안 됐어요.”
“이유를 들어도 될까요?”
문정수는 서류를 봤다. 조건서 세 줄. 그 아래 서명란. 그는 서명란에서 눈을 떼고 서지연을 봤다.
“손님이 있어요.”
“3번을 쓰는 손님이요.”
“네. 넷이요. 지난주에 넷이 됐어요.”
서지연은 강민재를 봤다. 강민재는 그 숫자를 몰랐다. 태블릿에 둘이라고 적혀 있었다.
“점주님. 3번을 쓰는 손님 넷이 3번 때문에 오는 손님이라고 해도, 그 넷이 새벽 두 시에 팔십 데시벨을 내면 위층 한 사람이 못 잡니다. 그 한 사람이 민원을 넣었고요. 본사는 넷보다 그 한 사람을 먼저 봅니다. 그게 표준이에요.”
“압니다.”
“그리고 그 넷 중에 둘은 세탁물이 없죠.”
문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탁물 없이 새벽에 앉아 있는 남자 손님이 있는 지점에 세탁물을 들고 오는 여자 손님이 안 오게 됩니다. 저희 데이터가 그래요. 체류자가 있는 지점은 여성 고객 야간 이용이 삼 할 줄어요. 강 슈퍼바이저가 지호 씨한테 한 말이 그겁니다. 저희는 안 오는 사람 몫으로 옵니다.”
문정수는 안경을 올렸다. 회의실 유리 벽 너머로 사무실이 보였다. 서른 명쯤이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중 누구도 새벽 한 시에 세탁기 앞에 앉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문정수는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말하지 않았다.
“3번은 제가 십일 년 전에 산 첫 기계예요.”
“압니다. 중고로요.”
“그걸 바꾸면 손님 넷이 갑니다.”
“바꾸지 않으면 재계약이 안 됩니다. 점주님 매출의 육 할이 본사 앱 예약입니다. 가맹이 끊기면 그 육 할이 하루에 없어져요.”
서지연은 그 말을 나쁘게 하지 않았다. 강민재가 그러듯이. 이 회사 사람들은 사실을 말할 때 목소리를 안 바꿨다.
“그리고 한지호 씨 건이요.”
강민재가 태블릿을 넘겼다. 다른 사진. 낮의 빨래방. 셔츠를 입은 지호가 3번 옆에 서 있는 사진.
“점검 용역이 근무 시간 외에 현장에서 본사 지시를 막았습니다. 용역 계약상 점주님 대리 권한이 없어요.”
“내가 시켰어요.”
“점주님이 시키셨어도 권한이 없는 건 같습니다.”
“그럼 나를 뭐라고 해요. 그 사람 말고.”
서지연이 손을 들어 강민재를 멈췄다.
“한지호 씨는 5월 말에 끝납니다. 이 건은 안 적어요. 대신 6월부터 그분이 현장에 있으면 관제가 체류자로 봅니다. 점주님이 따로 고용하셔도 같아요. 본사 시스템은 용역 명단에 없는 사람을 손님으로 봐요. 손님은 세탁물이 있어야 하고요.”
문정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볼펜을 손에 쥐고 있었다.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날짜를 쓰세요. 이번 달 안으로.”
문정수는 볼펜을 들었다. 서류의 설비 표준 항목 옆 빈칸. 「3번 설비 교체 예정일」. 그는 볼펜을 세 번 들었다 놨다. 강민재가 그것을 봤다. 서지연은 보지 않았다. 창밖을 보고 있었다.
문정수가 썼다. 글씨가 컸다. 다림질대에 종이를 놓고 세탁 표를 쓰던 손이었다. 숫자를 크게 쓰는 버릇.
5월 29일.
금요일. 일주일 뒤. 그는 서명란에도 이름을 썼다. 볼펜이 종이를 눌렀다. 나프탈렌 냄새가 나는 양복 소매가 서류 위를 지나갔다.
“고맙습니다, 점주님.”
“고마울 거 없어요.”
문정수가 일어섰다. 서지연도 일어섰다. 강민재는 앉은 채로 태블릿에 날짜를 적었다. 문정수가 문을 열다가 돌아봤다.
“강 선생.”
“네.”
“그 손님 넷 이름 알아요?”
강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몰라요. 지호 씨만 알아요.”
강민재는 태블릿에서 고개를 들었다. 문정수는 이미 문밖이었다.
문정수는 나갔다. 유리 벽 너머 사무실을 지나 복도로 갔다. 서른 명 중 누구도 고개를 안 들었다. 이백열두 개 초록 점 가운데 하나가 다녀간 것이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안경을 벗어 양복 소매로 닦았다. 닦을 것도 없는 안경을.
그날 밤 열두 시 사십 분. 빨래방 문은 열려 있고 안은 환하고 아무도 없었다. 정우석은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문 옆, 위층으로 올라가는 바깥 계단 셋째 단에 앉았다. 콘크리트 계단. 낮의 열이 다 식어서 차가웠다. 계단에 앉으면 빨래방 유리창이 옆으로 보이고 골목이 앞으로 보였다. 정우석은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오월 말인데 코트였다. 그 코트를 벗으면 담배 냄새가 없어질 것이고, 담배 냄새는 아내가 마지막 겨울에 병원 옥상에서 피운 것이었다.
골목은 조용했다. 편의점 냉동고 돌아가는 소리가 골목 끝에서 오고, 고시원 창문 하나에서 라디오 소리가 작게 났다. 빨래방 형광등 빛이 정우석 구두 끝까지 왔다가 거기서 끊겼다. 계단은 빛 밖이었다. 정우석은 빛 밖에 앉아서 빛 안을 봤다. 천장 모서리의 검은 반구 넷이 형광등 아래에서 반짝였다. 아직 안 켜진 눈.
열두 시 오십 분에 골목 아래에서 발소리가 올라왔다. 슬리퍼가 아니었다. 구두. 예순여덟 살 여자가 손가방을 들고 골목을 올라왔다. 계 모임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여자는 계단 앞에서 멈췄다.
“남의 집 밑에서 뭘 듣는 거요.”
정우석이 고개를 들었다. 일어서지는 않았다.
“기다립니다.”
“뭘.”
“한 시요.”
한정옥은 그를 봤다. 화요일 새벽에 창가 두 번째 의자에서 본 남자. 세탁물이 없던 남자.
한정옥한테서 고기 냄새가 났다. 계 모임은 늘 고깃집이었다. 예순여덟 살 여자 일곱이 두 달에 한 번 모여 삼겹살을 굽고 남편들 얘기를 했다. 절반은 죽은 남편이었다. 한정옥은 그 냄새를 옷에 묻힌 채로 계단 앞에 서 있었다.
“당신이 그 사람이지. 세탁물 없이 오는.”
“네.”
“그 소리 들으러.”
“네.”
한정옥은 계단을 올라가지 않았다. 손가방을 고쳐 들고 계단 옆 담에 기댔다. 담에서 낮의 온기가 조금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 소리가 남의 잠이야.”
“압니다.”
“알면 왜 와.”
정우석은 빨래방 유리창을 봤다. 환한 방. 빈 의자 여섯.
“모르는 사람이 없어서요.”
한정옥은 그 말을 받지 않았다. 잠옷 바람으로 내려왔을 때와 구두를 신고 서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이었다. 잠옷은 화를 냈고 구두는 물었다.
“그 소리가 뭐랑 비슷해.”
정우석은 지호가 처음 물었던 것과 같은 말을 들었다. 대답도 같았다.
“집사람이 밤에 돌리던 소리요.”
“죽었어?”
“네. 곧 석 달입니다.”
한정옥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놀라지 않았다. 예순여덟에는 그 말이 놀랍지 않다.
대신 다른 말을 했다.
“나도 소리로 살았어.”
정우석이 그를 봤다.
“저 안에서 삼십 년 다렸어. 다리미 김 빠지는 소리. 치익, 하고 한 번. 하루에 이백 번. 우리 영감 십 년 누워 있을 때 그 소리 들으면서 버텼어. 영감이 위에서 기침하면 내가 밑에서 김을 뺐어. 그게 대답이었어.”
정우석은 아무 말도 안 했다.
“영감 가고 나서 문 서방이 기계 들이자고 했어. 다림질대 그대로 두고. 나는 반대했는데 이겼어, 문 서방이. 그다음부터 밤마다 동전 소리야. 내 다림질대 위에서. 십일 년.”
“그래서 못 주무시는 겁니까?”
“3번 소리 때문에 못 자는 거야. 그건 그냥 시끄러운 거야. 딴 얘기 섞지 마.”
한정옥은 담에서 몸을 뗐다. 계단을 올라가려고 정우석 옆을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말했다.
“25일 아니야. 29일이래. 문 서방이 오늘 낮에 전화했어. 그날 새 기계 들어온대.”
정우석이 몸을 돌렸다. 한정옥은 계단 위에 서 있었다.
“나한테 왜 전화했는지 알아? 미안하다고. 그 소리 일주일만 더 참으라고. 십일 년 참았는데.”
그는 현관문을 열었다. 열기 전에 한마디를 더 했다.
“일주일 뒤에는 조용해질 거야. 당신도 나도.”
문이 닫혔다. 정우석은 계단에 앉은 채로 있었다. 위에서 발소리가 현관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침실로 갔다. 그리고 멈췄다. 정우석은 그 발소리가 멈춘 자리를 천장 너머로 올려다봤다. 십 년 누워 있던 남자의 기침이 나던 자리.
한 시에 지호가 왔다. 골목을 올라오다가 계단의 정우석을 봤다. 지호는 멈추지 않았다. 문을 열었고, 센서가 울었고, 안에 들어가서 점퍼를 걸고, 세제 통을 열었다. 1번부터 6번까지. 3번 통이 반이었다. 지호는 채웠다. 정우석이 계단에서 일어나 들어왔다. 코트에서 계단 냄새가 났다. 콘크리트와 밤이슬.
“29일이래요.”
정우석이 말했다.
“들었습니다.”
“위층 분한테 들었어요.”
지호는 세제 통을 닫았다. 정우석은 창가 두 번째 의자에 앉지 않고 3번 앞에 섰다. 유리문에 손을 댔다. 낮에 강민재가 소음계를 세우던 자리. 손바닥이 유리를 가렸다.
“일주일이면 몇 번 돌아요.”
“손님이 넣으시는 만큼요.”
정우석은 손을 뗐다. 유리에 손자국이 남았다. 지호는 그것을 닦지 않았다. 카운터로 돌아가 앉았고, 머리 위 회색 스피커 상자는 아무 소리도 안 냈고, 천장 모서리의 검은 반구 넷은 아무것도 안 봤다. 아직은. 일주일이었다. 정우석이 창가 두 번째 의자에 앉았다. 두 사람은 3번을 봤다. 손자국이 유리 위에서 마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