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19자) · 정우석 · 5월 19일
안 간다
자정의 빨래방 · 도경
5월 19일 화요일 새벽 두 시 오 분. 파란 이케아 가방이 골목을 올라왔다. 이불 여자는 이번 주에도 3번에 넣었다. 동전을 넣고 창가 첫 번째 의자에 앉았고, 창가 두 번째 의자에는 정우석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지난주처럼 서로를 안 봤다. 다만 여자가 앉을 때 정우석이 자기 가방을 의자 밑으로 밀어 넣었다. 자리를 넓혀 주는 것이었다.
월요일 낮에 카메라가 달렸다. 천장 네 모서리에 하나씩, 검은 반구. 아직 안 켜졌다. 6월 1일에 켜진다고 기사가 말하고 갔다. 스피커는 카운터 위 벽에 붙었다. 손바닥만 한 회색 상자. 지호는 카운터에 앉을 때 그 상자 밑에 앉는 셈이 됐다. 상자에서는 아직 아무 소리도 안 났다. 문정수는 월요일 낮에 와서 카메라를 올려다보고, 3번을 보고, 아무 말 없이 갔다. 강민재의 보고는 목요일에 문정수 휴대폰으로 갔고, 문정수는 그것을 지호한테 보여 주지 않았다. 「25일」이라고만 했다. 엿새 남았다.
두 시 이십 분에 고시생이 왔다.
“저 화요일도 오기로 했어요.”
카운터에 그렇게 말하고 3번 앞에 섰다. 3번은 이불을 돌리고 있었다. 고시생은 양말을 꺼내다 말고 도로 후드 주머니에 넣었다.
“3번이 돌고 있으면 안 넣어도 되죠. 소리만 있으면 돼요.”
그는 창가 세 번째 의자에 앉아 민법 문제집을 폈다. 지난 일요일에 표시해 둔 쪽. 이불 여자가 고시생을 봤다. 양말도 안 넣고 앉은 스물여섯 살을. 고시생이 여자한테 목례를 했다. 여자는 안 했다. 안 했지만 다음 순간 자기 패딩 자락을 조금 당겼다. 옆자리에 사람이 있을 때 하는 동작이었다.
두 시 사십 분에 택시 기사 김만수가 왔다.
“교대가 두 시 반으로 바뀌었어요. 이번 주부터.”
작업복을 4번에 넣고 동전을 넣고 창가 다섯 번째 의자에 앉았다. 앉아서 방을 둘러봤다. 정우석, 이불 여자, 고시생, 지호. 넷이 다 3번 쪽을 보고 있었다.
“교대를 바꾼 건 회사고, 회사는 내가 어디서 자는지 몰라요. 알면 안 되고.”
김만수는 그렇게 덧붙이고 천장의 카메라를 봤다.
“저거 켜지면 알겠네.”
“6월부터입니다.”
“그럼 5월까지 실컷 자야지.”
“오늘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화요일이잖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김만수는 어깨를 한 번 올렸다 내리고 눈을 감았다. 코를 골기 전에 3번이 탈수로 넘어갔다. 쇠 우는 소리. 이불 무게가 실린 소리. 동전 교환기 뚜껑이 떨렸다. 위층에서 발소리가 났다. 침실에서 거실까지. 거실에서 멈췄다. 내려오지 않았다. 민원은 이미 넣었고, 넣은 사람은 내려올 이유가 없었다.
센서가 울린 것은 그 소리 한가운데였다.
스물넷. 회색 후드 집업에 청바지, 등에 배낭. 문 안쪽 코팅 종이가 눈높이에 있었다. 여자는 그것을 읽었다. 세탁물이 없는 고객님. 읽고 나서 방을 봤을 때 세탁물이 없는 사람이 셋이었다. 부산에서 밤 버스를 타고 온 사람의 얼굴. 여자는 문 안에 서서 방을 봤다. 세탁기 여섯 대, 창가 의자 다섯, 형광등, 그리고 두 번째 의자의 아버지.
“아빠.”
정우석이 돌아봤다. 일어서지 않았다.
“하은아.”
“여기서 뭐 해.”
정우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탈수 소리가 방을 채우고 있었다. 하은은 그 소리 속에서 아버지한테 걸어갔다. 배낭을 안 벗었다. 의자 앞에 서서 아버지를 내려다봤다.
“집에 갔더니 없어. 한 시에. 불도 안 켜져 있고. 위치 켜 놓은 거 잊었지.”
“어.”
“여기 매일 와?”
“어.”
“뭐 하러.”
정우석은 3번을 봤다. 하은도 3번을 봤다. 이불 한 채가 드럼 안에서 쏠리면서 기계가 떨고 있었다. 하은은 그것을 삼 초쯤 봤다. 이해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이해하려고 보는 얼굴이었다.
“나가서 얘기해.”
정우석이 일어섰다. 코트를 안 입었다.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나갔다. 센서가 울었다. 문이 닫히고, 두 사람은 유리창 바로 밖 골목에 섰다. 골목은 어두웠다. 편의점 간판 불빛이 골목 끝에서 오고, 빨래방 형광등이 유리를 넘어 두 사람 발밑에 네모난 빛을 깔았다. 그 빛 안에 두 사람이 섰다. 밖은 오월 밤 냄새였을 것이다. 안에서는 세제 냄새와 이불 냄새뿐이었다. 안에서 다 보였다. 소리는 안 들렸다.
탈수가 끝났다. 방이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 속에서 이불 여자와 고시생과 김만수와 지호가 유리창을 봤다. 밖에 선 두 사람을. 골목은 어둡고 안은 환해서, 밖에서는 안이 보이고 안에서는 밖이 잘 안 보인다. 그런데 오늘은 유리 바로 앞이라 보였다. 형광등 빛이 유리를 넘어가서 두 사람 얼굴에 닿았다.
하은이 말하고 있었다. 입이 빠르게 움직였다. 정우석은 듣고 있었다. 팔짱을 안 끼고, 주머니에 손을 안 넣고, 그냥 서 있었다. 하은이 손으로 빨래방을 가리켰다. 유리창 안의 넷을. 넷은 그 손가락을 봤다. 그러고는 자기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아무도 고개를 안 돌렸다.
“이런 거 보면 안 되는데.”
고시생이 낮게 말했다.
“보면 안 되는데 봐요, 다들.”
김만수가 대답했다. 택시 뒷자리에서 우는 사람을 백미러로 보는 것과 같은 얼굴로. 안 보는 척하면서 다 보는 얼굴. 이불 여자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젖은 이불이 3번 안에 그대로 있었다. 꺼낼 때가 지났는데 안 꺼냈다.
밖에서 하은이 울기 시작했다.
소리는 안 들렸다. 어깨가 먼저 흔들리고, 손이 얼굴로 올라가고, 배낭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정우석이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뻗은 손이 공중에 있었다. 하은이 그 손을 쳐 냈다. 세게는 아니었다. 정우석의 손이 내려갔다. 하은이 뭐라고 했다. 짧게. 정우석이 고개를 저었다. 하은이 다시 말했다. 정우석이 다시 저었다.
“부산 가자는 거예요.”
지호가 말했다. 넷 중 아무도 지호한테 묻지 않았는데 말했다.
“따님이 부산에 계세요. 혼자 두면 안 된다고 지난달부터 그러셨대요.”
“안 간대요?”
고시생이 물었다.
“안 가신대요.”
정우석의 입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길었다. 안에서는 안 들렸지만 넷은 그 입을 봤다. 하은이 울면서 들었다. 정우석이 유리창을 한 번 돌아봤다. 안을. 3번을. 넷을. 그리고 딸을 다시 봤다.
밖의 말은 이랬다. 나중에 정우석이 지호한테 그대로 옮겨 줬다.
이불 커버 빨았다. 엄마 냄새 다 빠졌다. 그거 알고 넣은 거다. 냄새는 언젠가 빠지고, 빠지고 나면 아무것도 안 남는 줄 알았는데 소리가 남더라. 저 기계 소리. 엄마가 밤마다 돌리던 소리. 부산 가면 그 소리 없다. 너희 집 세탁기는 조용하다. 나는 조용한 데 못 있다. 두 달 동안 여기 와서 그거 알았다. 안 간다.
하은은 그 말을 듣고 한참 서 있었다. 그러고는 배낭을 고쳐 멨다. 아버지를 안 안았다. 대신 유리창을 봤다. 안의 넷을. 눈이 마주쳤다. 이불 여자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고시생이 문제집을 봤다. 김만수는 안 돌렸다. 쉰두 살 택시 기사는 밤에 우는 사람을 많이 태워 봤다.
문이 열렸다. 센서가 울었다. 하은이 먼저 들어왔다. 눈이 붉었다. 정우석이 뒤따라 들어와서 창가 두 번째 의자에 앉았다. 늘 앉던 자리. 하은은 서 있었다.
지호가 카운터에서 나와 의자를 하나 끌어다 놓았다. 정우석 옆. 하은은 그 의자를 봤다. 그러고는 앉았다. 배낭을 무릎에 놓고. 이불 여자가 패딩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옆으로 건넸다. 고시생이 받아서 김만수한테 건넸고, 김만수가 받아서 하은한테 건넸다. 휴지 한 장이 의자 네 개를 건너갔다. 하은은 받았다.
“아저씨들은 뭐예요.”
하은이 물었다. 코가 막힌 목소리로.
“3번 손님이야.”
김만수가 대답했다.
“3번이 뭔데요.”
“제일 시끄러운 거.”
하은은 3번을 봤다. 젖은 이불이 든 채로 멈춰 있는 기계를.
“우리 아빠도요?”
“응. 제일 오래된 손님.”
하은이 웃었다. 울다가 나온 웃음이라 반은 코 푸는 소리였다. 스물네 살은 우는 것도 웃는 것도 빨랐다. 정우석은 딸이 웃는 것을 옆에서 봤다. 두 달 만이었을 것이다. 그런 얼굴이었다. 고시생이 그 소리에 문제집에서 고개를 들었다가 도로 숙였다.
이불 여자가 일어나 3번 문을 열었다. 젖은 이불 냄새가 났다. 오늘은 그 냄새가 방에 퍼지는 것을 아무도 피하지 않았다. 지호가 반대쪽 끝을 잡았다. 두 사람이 이불을 접었다. 모서리를 맞추고, 반으로, 다시 반으로. 젖은 이불 무게가 두 사람 팔에 나뉘어 실렸다. 하은이 그것을 봤다. 아버지가 그것을 보는 것도 봤다.
“아빠 이불도 저렇게 접어?”
“혼자는 못 접어.”
“그래서 안 접었구나. 침대에 그냥 있더라.”
정우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은은 휴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내일 낮에 같이 접어. 그리고 나 내려갈게.”
하은은 그 말을 하면서 3번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 얼굴이 아니라 기계를.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디를 봐야 하는지는 알게 된 얼굴이었다.
“어.”
“근데 나 다음 달에 또 와.”
“어.”
“그때도 안 가면 또 와.”
김만수가 일어섰다. 4번이 진작 끝나 있었다. 작업복을 꺼내 가방에 넣고, 하은한테 말했다.
“아버지 집까지 태워다 줄게. 공짜는 아니고. 기본요금.”
“택시 기사예요?”
“보면 몰라?”
하은은 작업복을 봤다. 회사 조끼. 이름표. 그리고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세 시 사십 분이었다. 위층에서 발소리가 거실에서 침실로 갔다. 정우석은 딸을 따라 나가지 않았다. 창가 두 번째 의자에 앉아서 3번을 봤다. 텅 빈 드럼. 이불 여자가 나가고, 김만수와 하은이 나가고, 고시생이 남았다. 고시생은 문제집을 덮었다.
“오늘 여덟 쪽밖에 못 했어요.”
“네.”
“근데 괜찮아요.”
정우석이 네 시에 일어섰다. 코트를 입고, 문 앞에서 지호를 봤다.
“밖에서 한 말 들었어요?”
“아니요.”
“안 들렸으면 됐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갔다가, 센서가 울리기 전에 도로 문을 잡았다.
“아니. 들어요.”
그리고 골목에서 딸한테 한 말을 그대로 옮겼다. 이불 커버, 냄새, 소리. 지호는 카운터에 서서 들었다. 다 듣고 나서 아무 말도 안 했다. 정우석도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 센서가 울었다.
지호는 걸레를 들고 3번 밑을 닦았다. 물 자국. 그 옆에 하은이 앉았던 의자가 나와 있었다. 지호는 그 의자를 도로 밀어 넣지 않았다. 창가 의자가 여섯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