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27자) · 지호 · 5월 14일

낮의 3번

자정의 빨래방 · 도경

낮의 빨래방은 다른 가게다. 5월 14일 목요일 오후 두 시. 형광등은 꺼져 있고 유리창으로 들어온 해가 타일 바닥에 세탁기 여섯 대의 그림자를 길게 눕혔다. 냄새도 다르다. 세제 냄새는 같은데 그 위에 햇빛에 데워진 먼지 냄새와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골목 냄새가 얹힌다. 튀김 기름과 오토바이 매연. 밤에는 없는 것들.

지호는 길 건너 반지하에 산다. 빨래방 유리창이 보이는 방이다. 밤에는 그 창의 불빛이 반지하 창살 사이로 들어와 천장에 줄무늬를 만든다. 낮에는 아무것도 안 들어온다. 지호는 한 시 삼십 분에 그 방에서 나왔다. 계단 열한 개를 올라와 골목에 서니 해가 눈에 들어왔다. 밤에 넉 달을 다닌 골목이 낮에는 다른 골목이었다. 고시원 창문마다 빨래가 널려 있고, 편의점 앞 매대에 아이스크림 냉동고가 나와 있고, 어느 집 담장의 라일락이 다 졌다.

지호는 한 시 오십 분에 왔다. 낮에 이 문을 연 것은 면접 날 이후 처음이었다. 점퍼 대신 셔츠. 카운터에 앉지 않고 창가 첫 번째 의자에 앉았다. 손님이 하나 있었다. 오십 대 여자가 커튼 두 장을 6번에 돌리고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여자는 지호를 한 번 보고 다시 휴대폰을 봤다. 커튼은 봄마다 빠는 것이고, 봄마다 빠는 사람은 남을 안 본다.

문정수는 오지 못했다. 목요일은 아내가 투석하는 날이라 병원에 있었다. 그가 아침에 전화로 한 말은 짧았다. 본사가 오늘 온대. 3번 뜯으러. 내가 못 가니까 지호 씨가 가서 안 된다고 해. 내 이름으로. 지호는 알겠다고 했다. 왜 오늘이냐고는 묻지 않았다. 문정수가 먼저 말했다. 위층 사장님 민원이 구청에서 본사로 갔대. 그래서 25일 안 기다리고 온대.

두 시 십 분에 골목 입구에 흰 트럭이 섰다. 적재함에 새 세탁기 한 대가 비닐에 싸여 실려 있었다. 강민재가 조수석에서 내렸다. 회색 점퍼. 태블릿.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이십 대 후반 기사였다. 작업복에 공구 벨트, 얼굴에 점심을 아직 못 먹은 표정.

강민재가 문을 열었다. 센서가 울었다. 그는 창가의 지호를 봤다.

“한지호 씨. 낮에 계시네요.”

“점주님 대신 나왔습니다.”

“점주님은요.”

“병원이십니다.”

강민재는 고개를 끄덕이고 3번으로 갔다. 기사가 뒤따랐다. 기사는 3번을 위아래로 훑었다. 십일 년 된 중고 드럼세탁기. 유리문 테두리의 고무가 갈라져 있고, 조작판 글자가 반쯤 지워져 있고, 옆면에 누가 긁은 자국이 손바닥만 했다. 기사는 3번 뒤쪽 벽을 보고, 급수 밸브를 보고, 배수 호스를 발로 건드렸다. 호스가 빠졌다. 기사가 도로 꽂았다.

“이거 호스도 갔네요.”

“다 갔습니다.”

강민재가 태블릿을 열었다.

“문 점주님이 25일 교체 예정이라고 문자 주셨습니다. 부품 발주 완료라고. 그런데 구청에서 소음 민원이 본사로 넘어왔어요. 새벽 두 시 이후 팔십 데시벨. 민원이 들어온 설비를 열흘 더 두는 건 본사가 못 합니다. 그래서 앞당긴 겁니다.”

“점주님이 오늘은 안 된다고 하십니다.”

“이유가요.”

“이유는 안 말씀하셨습니다. 안 된다고만.”

강민재는 지호를 봤다. 그러고는 기사를 봤다. 기사는 공구 벨트에서 드라이버를 꺼내려다 말고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한지호 씨. 이 기계는 점주님 소유입니다. 본사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점주님 동의가 필요하고, 25일 교체 예정이라는 문자가 그 동의입니다. 날짜가 앞당겨진 것뿐이에요.”

“날짜도 조건입니다.”

“조건이요.”

“25일이라고 하셨으면 25일입니다. 오늘은 아닙니다.”

기사가 드라이버를 도로 넣었다. 강민재는 태블릿을 접지 않았다. 화면에 문정수의 문자가 떠 있었다.

“지호 씨. 이건 점검 용역이 할 말이 아닙니다.”

“점주님이 하라고 하신 말입니다.”

“점주님이 전화 되십니까?”

“투석 중이라 안 되십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문정수는 아침에 그렇게 말해 뒀다. 세 시까지는 전화 안 받는다고. 강민재는 시계를 봤다. 두 시 이십 분.

6번이 탈수로 넘어갔다. 커튼 두 장이 도는 소리. 육십일 데시벨. 그 소리가 방을 채우는 동안 아무도 말을 안 했다. 커튼 여자가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세 남자를 봤다. 흰 트럭과 비닐에 싸인 세탁기를 봤다. 그러고는 다시 휴대폰을 봤다.

센서가 울었다.

검은 코트가 아니었다. 낮이라 회색 셔츠. 남자는 문 안에 서서 트럭을 한 번 돌아보고, 3번 앞의 세 사람을 봤다. 마흔여섯. 휴직 중인 사람의 낮이었다. 걸어서 골목을 지나다가 트럭을 봤다는 얼굴.

남자는 아무 말 없이 3번 옆으로 왔다. 지호 옆에. 강민재가 그를 봤다.

“고객님이세요.”

“네.”

“지금 세탁하실 거면 6번이 곧 끝납니다.”

“이 기계 씁니다.”

남자가 3번을 가리켰다. 손가락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이 기계는 교체 대상입니다.”

“압니다. 소리가 커요.”

“그래서 바꾸는 겁니다.”

“그래서 씁니다.”

강민재는 그 말을 받지 않았다. 대신 태블릿을 들어 남자를 봤다. 그러고는 지호를 봤다. 두 사람이 3번 앞에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낮에. 세탁물 없이.

“고객님이 세탁기를 고르는 게 아닙니다. 표준이 고릅니다.”

“그러면 저는 고객이 아닌가 봅니다.”

남자는 그 말을 조용히 했다. 화내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사실을 확인하는 목소리. 강민재는 처음으로 대답을 못 했다. 기사가 벽에 기대 있다가 몸을 세웠다.

강민재가 태블릿을 내렸다. 그리고 남자한테 말했다. 지호가 아니라 남자한테.

“고객님. 제가 표준 얘기를 하는 건 고객님을 안 보는 게 아닙니다. 반대예요. 밤 두 시에 혼자 빨래방에 들어온 여자 손님이 옆에 모르는 남자가 앉아 있으면 어떨지, 그걸 보는 겁니다. 카메라하고 스피커는 그 손님을 위한 거예요. 3번은 위층에서 자는 사람을 위해서 바꾸는 거고요. 저는 여기 안 오는 사람들 몫으로 여기 옵니다.”

남자는 그 말을 들었다. 반박하지 않았다.

“그 손님이 여기 안 오는 이유가 저 때문이면 제가 안 오겠습니다.”

“그건 고객님이 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정합니까?”

강민재는 대답 대신 태블릿을 다시 들었다. 기사가 벽에서 몸을 뗐다.

“저 밥 먹고 와도 됩니까?”

강민재가 기사를 봤다.

“오늘 안 뜯을 것 같은데요.”

강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기사는 그것을 허락으로 알고 나갔다. 트럭 적재함의 새 세탁기가 비닐 안에서 해를 받아 빛났다. 기사는 그 옆을 지나 편의점으로 갔다. 공구 벨트가 걸을 때마다 철컥거렸다.

강민재는 태블릿을 세워 사진을 찍었다. 3번. 그 앞의 두 사람. 빠진 호스와 바닥의 녹물 자국. 찍고 나서 말했다.

“점주님께 보고합니다. 교체 거부, 그리고 점검 용역 한지호 씨가 근무 시간 외에 현장에 있었던 것. 세탁물 없는 고객이 낮에도 체류한 것. 다 들어갑니다.”

“네.”

“지호 씨. 이 일이 5월 말에 끝나는 건 아시죠. 그다음에 지호 씨가 여기 있으면 그건 그냥 체류예요. 저 고객님하고 같은.”

“압니다.”

“그럼 왜 하세요.”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도 안 했다. 6번이 멈췄다. 커튼 여자가 일어나 커튼을 꺼냈다. 젖은 커튼에서 창문 냄새가 났다. 오래 걸려 있던 천에서 나는 먼지와 햇빛 냄새. 여자는 건조기로 갔다.

강민재는 문 앞에서 한 번 돌아봤다. 문 안쪽의 코팅 종이가 그대로 있었다. 그는 그것을 확인하고 나갔다. 트럭은 기사가 밥을 먹고 올 때까지 골목 입구에 서 있었다. 비닐 안의 새 세탁기가 오후 해에 계속 빛났다.

남자는 창가 두 번째 의자에 앉았다. 낮에 앉는 것은 처음이었다. 해가 의자에 바로 들어서 남자는 눈을 조금 찡그렸다.

“낮에도 여기 계셨어요.”

지호가 물었다. 낮에 묻는 말은 밤에 묻는 말과 달랐다. 밤에는 안 물어도 되는 것을 낮에는 묻게 된다.

“지나가다가요. 집이 저 위예요. 트럭이 보여서.”

“매일 지나가십니까?”

“낮에는 걸어요. 밤에는 여기 오고.”

남자는 그 말을 하고 3번을 봤다. 낮의 3번은 밤과 달랐다. 유리문에 해가 비쳐서 드럼이 안 보였다. 대신 유리에 골목이 비쳤다. 트럭과 비닐과 세탁기.

“저 사람 말이 맞아요. 6월이면 여기 카메라가 나를 봐요. 나가라고 방송하고.”

“네.”

“지호 씨는 없고요.”

“네.”

“그런데도 오늘 나왔네요.”

지호는 대답 대신 걸레를 들고 3번 밑을 닦았다. 호스에서 샌 물. 낮에 보니 녹이 더 붉었다. 남자가 그것을 보고 있었다.

“우리 집 세탁기도 저랬어요. 밑에서 물이 새고. 집사람이 걸레를 대 놓고 돌렸어요. 저는 그거 보면서 화를 냈고요. 고치든지 버리든지 하라고.”

“네.”

“지금은 그 걸레가 아직 그 자리에 있어요. 못 치우겠어서.”

지호는 걸레를 짰다. 낮이라 물이 미지근했다.

“성함이.”

두 달하고 열흘 만에 물었다. 남자는 잠깐 지호를 봤다.

“정우석이요.”

“한지호입니다.”

“알아요. 저 사람이 자꾸 불러서.”

정우석은 그 말을 하고 웃었다. 소리는 없었다. 지호도 그렇게 웃었다. 낮의 빨래방에서 두 사람이 처음으로 같은 얼굴을 했다.

세 시에 문정수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호는 밖으로 나가서 받았다. 골목 입구에 트럭이 아직 있었고, 기사가 운전석에서 김밥을 먹고 있었다. 지호는 짧게 말했다. 안 뜯었습니다. 25일이라고 했습니다. 사진 찍어 갔습니다. 저하고 손님하고요. 문정수는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병원 복도 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렸다.

“그 손님 낮에도 왔어?”

“지나가다가요.”

“지나가다가 세탁기 앞에 서?”

“네.”

“지호 씨.”

“네.”

“25일에는 나도 못 막아.”

“압니다.”

전화가 끊겼다. 지호는 빨래방으로 돌아갔다. 커튼 여자는 가고 없었다. 남자는 아직 창가 두 번째 의자에 있었고, 해가 조금 옮겨 가서 이제 남자 얼굴에는 안 닿았다. 3번 앞 바닥에 걸레가 놓여 있었다. 지호가 놓고 나간 것. 정우석은 그 걸레를 보고 있었다. 지호는 걸레를 치우지 않았다. 카운터에 앉지도 않았다. 창가 첫 번째 의자에 앉아서, 정우석과 한 자리 건너, 해가 타일 위에서 조금씩 옮겨 가는 것을 봤다. 세 시 이십 분에 트럭이 떠났다. 비닐에 싸인 새 세탁기가 골목을 빠져나가는 동안 두 사람은 그것을 봤고, 3번은 그 뒤에 그대로 있었다. 열하루 남았다.

4화는 어땠나요?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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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곱줄2026.06.03· 4화

    대사 하나하나가 인물을 만들어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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