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057자) · 지호 · 5월 10일

다음 사람

자정의 빨래방 · 도경

5월 10일 일요일 새벽 한 시. 지호의 마지막 근무였다. 문틀 센서가 딩, 하고 울었고 지호는 점퍼를 의자에 걸고 세제 통을 열었다. 1번부터 6번까지. 3번은 목요일 밤 이후로 통이 조금 줄어 있었다. 지호는 그 통을 채웠다. 넉 달 만에 처음이었다. 라벤더 가루가 투입구에 쏟아지면서 마른 꽃 냄새가 올라왔고, 그 냄새는 곧 고무 냄새에 덮였다.

일요일 새벽의 골목은 다른 날보다 냄새가 적다. 편의점 튀김기가 토요일 밤에 꺼지고, 고시원 창문들은 주말이라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다가 한꺼번에 꺼진다. 빨래방 앞을 지나는 발소리도 적다. 지호는 창가에 서서 그 골목을 잠깐 봤다. 넉 달 동안 본 골목이었고,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그런 얼굴은 아니었다. 밖에서 보면 그저 형광등 아래 서 있는 스물여덟 살 남자였다.

카운터 서랍에는 인수인계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었다. 세제 위치, 동전 교환기 열쇠, 대걸레 짜는 법. 지호는 그것을 종이에 안 적었다. 다음 사람이 오면 말로 하면 되는 것들이었다. 다음 사람은 월요일 새벽부터였다. 점주가 본사 소개로 용역 업체에서 구했다고 했다. 이름은 몰랐다.

한 시 사십 분에 남자가 왔다. 목요일의 남자. 검은 코트. 오늘은 가방이 작았다. 수건 세 장. 남자는 1번 앞에 서지 않고 바로 3번으로 갔다. 동전을 넣을 때 하나도 안 떨어뜨렸다. 창가 두 번째 의자에 앉았고, 3번이 돌기 시작했고, 지호는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말을 안 했다. 목요일에 한 말이 이 방에 아직 남아 있어서 새로 할 말이 없는 사람들 같았다.

탈수가 끝났을 때 남자가 수건을 꺼내며 물었다.

“오늘까지죠.”

“네.”

“다음 분한테 말은.”

“하려고요.”

남자는 수건을 개지 않고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문 앞에서 한 번 돌아봤다. 문 안쪽 종이가 아직 붙어 있었다. 남자는 그것을 보고, 지호를 보고, 나갔다. 두 시 사십 분.

세 시 정각에 고시생이 왔다. 스물여섯. 회색 후드에 슬리퍼, 겨드랑이에 민법 문제집. 손에는 양말 한 켤레. 그는 넉 달 동안 일요일 새벽 세 시마다 왔고 양말 한 켤레를 2번에 넣고 두 시간을 앉아 있다 갔다. 오늘은 2번 앞에서 멈추더니 3번을 봤다.

“오늘 3번 안 돌아요?”

“손님이 넣으시면 돕니다.”

“아니 저는 양말인데.”

고시생은 양말을 들고 3번과 2번 사이에 서 있었다. 삼 초쯤. 그러고는 3번에 넣었다. 양말 한 켤레가 드럼 안에서 혼자 뒹굴었다. 동전을 넣으면서 그가 말했다.

“목요일에 저 소리 들으면서 민법 열두 쪽 나갔어요. 조용하면 세 쪽이에요. 이거 과학이에요.”

“네.”

“그만두신다면서요. 다음 분한테 3번 얘기 좀 해 주세요. 고치지 말라고.”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시생은 창가 세 번째 의자에 앉아 문제집을 폈다. 3번이 돌기 시작했고, 탈수에서 쇠 우는 소리가 났고, 고시생은 그 소리 속에서 책장을 넘겼다. 양말 한 켤레를 위해 물 사십 리터가 돌았다.

세 시 십 분에 카운터 위 휴대폰이 울렸다. 점주 문정수였다. 문자 한 줄.

「내일 오기로 한 사람 못 온대. 그만뒀대.」

지호는 그 문자를 오래 봤다. 답을 쓰지 않았다. 삼 분 뒤에 전화가 왔다.

“지호 씨. 봤지.”

“네.”

“내가 지금 갈게.”

“지금요.”

“어. 자다 깼어. 갈게.”

문정수는 세 시 사십 분에 왔다. 회색 트레이닝복 바지에 패딩 조끼, 슬리퍼. 안경을 쓰고 있었고 안경 다리 한쪽이 테이프로 감겨 있었다. 쉰여덟. 넉 달 동안 지호가 낮에 두 번 본 사람이었다. 새벽에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안경을 올렸다. 올리고 나서 한 번 더 올렸다.

“앉을 데.”

지호가 창가 의자를 하나 끌어다 카운터 앞에 놓았다. 고시생이 문제집에서 고개를 들고 문정수를 봤다. 슬리퍼와 테이프 감은 안경을 보고, 누군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다시 책을 봤다. 3번은 이미 멈춰 있었다. 고시생은 양말을 안 꺼내고 있었다. 꺼내면 갈 이유가 생기니까. 문정수는 앉아서 빨래방을 둘러봤다. 형광등 여섯 개. 세탁기 여섯 대. 자기 가게였다.

“밤에 오니까 딴 데 같네.”

“네.”

“지호 씨. 5월 말까지만 해 줘. 삼 주.”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용역 업체가 사람 다시 구한대. 근데 삼 주짜리를 누가 와. 6월부터는 본사가 카메라로 본다잖아. 그때까지만.”

“낮 일이 다음 달부터입니다.”

“그럼 딱 맞네.”

문정수가 안경을 올렸다. 지호는 다림질대 위 탁상시계를 봤다. 세 시 오십 분.

“조건이 있습니다.”

“뭐.”

“3번 세탁기 안 고치는 겁니다.”

문정수가 지호를 봤다. 안경 너머로. 그러고는 3번을 봤다. 유리문이 닫혀 있고, 그 앞 바닥에 녹물 자국이 마른 채로 있었다.

“그거는.”

“네.”

“그거 고쳐야 재계약이 돼. 본사가 공문을 두 번 보냈어. 7월 재계약 조건에 설비 표준이 들어가 있어. 육십오 데시벨.”

“압니다.”

“아는데 왜.”

“손님 두 분이 그걸 쓰십니다. 소리 때문에.”

문정수는 그 말을 이해 못 한 얼굴이었다. 안경을 올릴 것 같았는데 올리지 않았다.

“지호 씨. 소리 때문에 세탁기를 쓰는 사람이 어딨어.”

“한 분은 집이 조용해서 오십니다. 한 분은 그 소리를 아십니다.”

“그게 무슨.”

“목요일에 그분이 두 달 만에 처음으로 빨래를 가져오셨습니다. 3번에 넣으셨습니다. 제가 3번 안 고치도록 말해 두겠다고 했습니다.”

“누구한테.”

“점주님한테요.”

문정수가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렸다. 그는 3번 앞으로 가서 유리문을 열어 봤다. 안에서 고무 냄새가 났다. 그는 문을 닫았다.

“지호 씨는 오늘까지야. 약속 못 지키는 거네.”

“그래서 남으라고 하시는 거 아닙니까?”

문정수가 돌아봤다. 웃지 않았다. 웃음이 나올 자리였는데 안 나왔다.

“5월 말까지는 안 고쳐. 6월은 나도 몰라.”

“네.”

“그거면 남는 거야.”

“네.”

고시생이 네 시에 양말을 꺼냈다. 젖은 채로 후드 주머니에 넣었다. 나가면서 카운터 앞에 서더니 문정수한테 말했다.

“사장님이세요?”

“어. 왜.”

“3번 고치지 마세요. 저 시험이 십일월이에요.”

문정수는 대답을 못 했다. 고시생이 나갔다. 문정수가 지호를 봤다.

“저 사람도 3번이야?”

“오늘부터요.”

네 시 십오 분에 센서가 울었다. 택시 기사였다. 쉰둘. 남색 작업복 위에 회사 조끼. 교대를 끝내고 오는 사람. 조끼 가슴에 이름표. 김만수. 그는 문 앞에서 문정수를 보고 잠깐 멈췄다가, 지호를 보고, 다시 들어왔다. 작업복 상의를 벗어 4번에 넣었다. 동전을 넣고 창가 다섯 번째 의자에 앉았다. 이 분 뒤에 코를 골았다.

문정수가 낮게 말했다.

“저 사람도 세탁물 있잖아.”

“네. 저분은 소리가 나야 주무십니다.”

“무슨 소리.”

“아무 소리요. 4번도 됩니다. 집에 가면 조용해서 못 주무신대요. 낮에 자야 하는데 옆집이 공사 중이라고.”

문정수는 기사를 봤다. 입을 벌리고 자는 쉰두 살 남자를. 4번이 돌고 있었고, 그 소리는 3번보다 훨씬 작았다. 코 고는 소리가 세탁기 소리보다 컸다. 문정수는 그 소리를 십 초쯤 듣고 나서 안경을 벗어 조끼로 닦았다. 닦을 것도 없는 안경이었다.

“지호 씨는 저런 걸 다 알아.”

“일이 아닌데 알게 됩니다.”

“일이 아닌데.”

“네.”

문정수는 다시 앉았다. 패딩 조끼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고, 안경을 올리고, 화면을 멀리 뒀다 가까이 뒀다 했다. 노안이었다. 그는 한참 뭔가를 쳤다. 다 치고 나서 지호에게 화면을 돌렸다.

「강민재 슈퍼바이저님. 신림4호점 3번 설비 5월 25일 교체 예정입니다. 부품 발주 완료. 문정수.」

“이렇게 보내 놓으면 이번 달은 안 와.”

“발주 하셨습니까?”

“안 했지.”

문정수는 전송을 눌렀다. 화면이 밝았다가 어두워졌다. 그는 휴대폰을 조끼 주머니에 넣고 손바닥으로 무릎을 두 번 쓸었다. 거짓말을 하고 난 사람이 하는 손짓이었다. 지호는 그것을 봤고 아무 말도 안 했다. 목요일에 남자한테 한 말이 이제 두 사람이 나눠 진 거짓말이 됐다. 지호는 오늘까지라고 했고 오늘까지가 아니었다. 문정수는 발주했다고 했고 발주하지 않았다.

“지호 씨는 낮 일 있다며. 그것도 진짜야?”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정수도 다시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은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앉아 4번이 도는 것을 봤다. 기사는 계속 잤다.

다섯 시에 지호가 바닥을 닦았다. 여덟 번. 문정수가 대걸레를 받아서 한 번 밀어 봤다. 두 번째에는 안 했다. 다섯 시 삼십 분에 기사가 깨서 작업복을 꺼냈다. 마르지 않은 채로 가방에 넣었다. 나가면서 문정수한테 목례를 했다. 문정수도 했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한테 하는 인사였다.

“해장국 먹자.”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아. 새벽에 남한테 부탁하고 밥도 안 사면 그게 뭐야.”

문정수의 차는 골목 입구에 있었다. 십이 년 된 카니발. 안에서 방향제 냄새와 오래된 커피 냄새가 났다. 지호는 조수석에 앉았다. 문정수는 시동을 걸지 않았다.

“지호 씨.”

“네.”

“나 십일 년 전에 저기서 다림질했어. 한정옥 세탁소. 위층 사장님 밑에서.”

“들었습니다.”

“기계 들이고 무인으로 바꾸자고 한 게 나야. 사장님은 반대했고. 사람이 안 와도 돈이 되는 게 이상하다고.”

밖이 밝아 오고 있었다. 골목 끝 편의점 간판이 아침 빛에 묻혀 안 보이기 시작했다. 빨래방 유리창만 아직 환했다. 지호가 불을 안 껐다.

“근데 사람이 오더라고. 안 만나려고 오는 사람이. 그게 십일 년이야.”

“네.”

“3번은 그때 산 첫 기계야. 여섯 대 중에 제일 오래됐어.”

문정수가 시동을 걸었다.

“그래서 안 고친 거야. 지호 씨 때문 아니고.”

“네.”

“강 슈퍼바이저는 그런 거 몰라. 알 필요도 없고. 그 사람은 표준 지키는 게 일이야. 나는 가게 지키는 게 일이고. 지호 씨는.”

문정수가 말을 멈췄다. 기어를 넣었다.

“지호 씨는 뭐 지키는 거야?”

지호는 앞유리를 봤다. 골목 끝에서 편의점 알바가 매대를 밖으로 밀어 내고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차가 골목을 빠져나갔다. 지호는 뒤를 안 봤다. 빨래방 불은 켜진 채였다. 그 안에 아무도 없었다. 3번 유리문에 아침 해가 비쳐서 드럼 안이 처음으로 환하게 보였다. 비어 있었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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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밤에책2026.06.01· 2화

    설정이 과하지 않게 깔려서 편하게 따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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