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063자) · 지호 · 5월 7일
3번은 소리가 커요
고시촌 무인 빨래방 · 도경
새벽 한 시에 신림동 고시촌 골목에서 불이 켜진 유리창은 하나다. 워시앤고 신림4호점. 골목 끝 편의점은 간판만 켜 두고 안은 어둡고, 세 골목 건너 고시원 열두 곳은 창마다 커튼이다. 빨래방만 안이 환하다. 따뜻한 형광등 여섯 개가 세탁기 여섯 대와 건조기 넉 대와 창가 의자 다섯 개를 비추고, 밖에서 보면 그것이 골목에 놓인 수족관처럼 보인다. 물 대신 세제 냄새가 찬 수족관.
골목은 오월 밤 냄새를 한다. 편의점 튀김기 기름, 하수구, 어느 집 담장의 라일락. 그것들이 골목 폭 삼 미터 안에서 섞여 있다가 빨래방 문이 열리면 라벤더 세제 냄새에 밀려난다. 문이 닫히면 다시 돌아온다. 이 골목에서 밤새 냄새가 바뀌는 자리는 여기뿐이다.
한지호는 열두 시 오십오 분에 문을 밀고 들어왔다. 넉 달째 같은 시각이다. 1월 8일 목요일에 시작했다. 그날 면접에서 점주가 물은 것은 둘이었다. 밤에 잘 안 자느냐, 혼자 있는 게 괜찮으냐. 지호는 둘 다 네라고 했고, 그다음 날부터 나왔다. 문에 종은 없다. 대신 문틀 위 센서가 딩, 하고 한 번 운다. 지호는 카운터 뒤로 가서 점퍼를 벗어 의자에 걸고, 카운터 밑에서 라벤더 가루 세제 한 통을 꺼내 자동 투입기 여섯 개를 차례로 열어 봤다. 1번부터 6번까지. 3번만 통이 반이었다. 3번은 아무도 안 쓰니까 세제가 안 준다. 지호는 그 통을 채우지 않고 닫았다. 넉 달 동안 그렇게 했다.
바닥은 대걸레로 닦는다. 세탁기 앞 통로부터 창가까지 여덟 번 밀면 끝난다. 밤에 온 사람들이 흘린 것은 대개 세제 가루와 머리카락과 동전이다. 오늘은 3번 앞에 녹물 자국이 있었다. 3번은 탈수 때 몸을 떨어서 배수 호스가 조금씩 빠진다. 지호는 걸레로 자국을 문지르고, 호스를 손으로 밀어 넣었다. 호스 끝에서 쇳내가 났다. 오래된 물에서 나는 냄새. 그는 손을 씻지 않고 카운터로 돌아갔다. 밤새 손에서 그 냄새가 났다.
카운터는 원래 다림질대였다. 십일 년 전까지 이 자리가 세탁소였을 때 건물주가 여기서 셔츠를 다렸다. 무인으로 바뀌면서 기계만 들어오고 다림질대는 그대로 남아 카운터가 됐다. 나무 상판에 다리미 자국이 세 개 있다. 갈색으로 눌어붙은 세모. 그 위에 동전 교환기와 점검 일지와 벽시계에서 떼어 온 탁상시계가 놓여 있다. 지호는 일지를 펴고 날짜를 썼다. 5월 7일 목요일. 그리고 볼펜을 놓았다.
한 시 오 분에 센서가 울었다.
들어온 사람은 손님이 아니었다. 회색 점퍼에 회사 로고. 왼손에 태블릿, 오른손에 검은 막대 같은 것. 마흔쯤 된 남자가 문 안쪽에 서서 천장을 한 번 보고, 카메라 자리를 확인하듯 네 모서리를 차례로 봤다. 그러고 나서야 카운터를 봤다.
“본사 강민재입니다. 야간 실사 나왔습니다.”
지호는 일어섰다. 강민재는 명함을 내밀지 않았다. 태블릿을 돌려 화면을 보여 줬다. 지점 이름과 오늘 날짜와 「설비 표준 점검」이라는 글자.
“점검 용역이시죠. 한지호 씨.”
“네.”
“앉아 계셔도 됩니다. 제가 다 합니다.”
강민재는 먼저 창가로 갔다. 의자 다섯 개를 셌다. 손가락으로.
“표준은 셋입니다. 대기 의자.”
“원래 다섯이었습니다.”
“압니다. 세탁소 때 것이죠. 둘은 다음 주에 빼겠습니다.”
그는 의자 등받이를 한 번 흔들어 보고, 카운터로 와서 점검 일지를 들췄다. 넉 달치 페이지를 엄지로 넘겼다. 세제 보충, 바닥, 동전 교환기. 같은 글자가 같은 자리에 넉 달 동안 적혀 있었다.
“손님 수는 왜 안 적으셨습니까?”
“적으라는 칸이 없습니다.”
“그렇네요.”
강민재는 일지를 덮었다. 그러고 나서 3번 앞으로 갔다. 다른 다섯 대는 보지 않았다. 검은 막대를 3번 유리문 앞에 세우고, 동전 대신 태블릿으로 관리자 모드를 열어 빈 드럼을 돌렸다. 물이 들어가고, 드럼이 천천히 돌다가, 탈수로 넘어갔다. 그때 소리가 났다. 쇠가 쇠를 갈면서 우는 소리. 카운터 위의 동전 교환기 뚜껑이 잘게 떨렸다. 강민재는 막대의 숫자를 봤다.
“팔십이.”
그는 숫자를 태블릿에 적었다.
“나머지 다섯은 육십일에서 육십삼입니다. 본사 표준은 육십오 이하고요. 3번은 교체 대상 설비입니다. 점주님께 두 번 공문 나갔습니다.”
지호는 카운터에서 나오지 않았다.
“손님 두 분이 3번을 쓰십니다.”
강민재가 돌아봤다. 처음으로 지호 얼굴을 봤다.
“손님이 세탁기를 고르는 게 아닙니다. 표준이 고릅니다. 손님은 아무거나 넣어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걸 원하고요.”
“그 두 분은 소리 때문에 쓰십니다.”
“소리 때문에요.”
강민재는 그 말을 받아 적지 않았다. 탈수가 끝나고 소리가 그쳤다. 빨래방이 다시 조용해졌고, 그 조용함 속에서 세제 냄새와 3번 벨트에서 올라온 고무 타는 냄새가 섞였다. 강민재는 코를 한 번 찡그리고 유리문을 열어 냄새를 확인했다.
“벨트도 갔네요.”
그는 태블릿을 접었다.
“6월 1일부터 전 지점 원격 관제로 갑니다. 카메라, 스피커, 자동 잠금. 새벽 점검 용역은 5월 말로 종료고요. 점주님께 들으셨을 겁니다.”
“들었습니다.”
“세탁물 없이 체류하는 분들은 관제센터에서 퇴장 안내를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한지호 씨가 그 일을 안 하신 거고요.”
“제 일이 아니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없어지는 겁니다.”
강민재는 그 말을 나쁘게 하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는 목소리였다. 그는 문 앞에서 한 번 더 천장을 봤다.
“카메라는 다음 주에 답니다. 5월 말까지 계시는 거죠.”
“저는 일요일까지입니다.”
강민재가 잠깐 멈췄다.
“그러면 남은 삼 주는 점주님이 직접 하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넉 달 동안 세탁물 없이 온 사람은 그 남자 하나가 아니었다. 화요일 두 시의 여자는 이불을 갖고 왔지만 이불이 도는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3번만 봤고, 세 시의 고시생은 양말 한 켤레를 갖고 와서 두 시간을 앉아 있었다. 네 시의 택시 기사는 작업복을 넣고 의자에서 잤다. 강민재의 종이는 그들 모두를 향한 것이었다.
그는 점퍼 안주머니에서 코팅된 종이를 한 장 꺼내 유리문 안쪽에 붙였다. 「세탁물이 없는 고객님은 이용을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테이프를 네 귀에 붙이는 손이 빨랐다. 많이 붙여 본 손이었다.
센서가 울고 문이 닫혔다. 한 시 삼십 분. 지호는 카운터에 앉았다. 3번 유리문이 열려 있었다. 그는 일어나서 그 문을 닫았다. 닫을 때 손에 벨트 냄새가 묻었다. 그리고 문 안쪽에 붙은 종이를 봤다. 떼지 않았다. 대신 창가 의자 다섯 개를 원래 자리대로 밀어 놓았다. 강민재가 흔든 등받이 하나가 비뚤어져 있었다.
한 시 사십 분에 센서가 다시 울었다.
두 달 동안 매일 온 남자였다. 마흔 중반. 검은 코트. 코트에서 담배 냄새가 났는데 남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늘 창가에서 두 번째 의자에 앉았다. 휴대폰을 안 봤다. 다른 세탁기가 돌 때는 안 보고 3번이 돌 때만 그쪽을 봤다. 3번은 거의 안 돌았으니까 남자는 거의 아무것도 안 보고 한 시간을 앉아 있다 갔다.
남자는 문 안쪽의 종이를 봤다. 읽는 데 삼 초가 걸렸다. 읽고 나서 지호를 봤고, 지호는 고개를 젓지도 끄덕이지도 않았다.
오늘은 들고 있었다. 세탁물 가방을. 남색 천 가방. 손잡이가 한쪽만 닳아 있었다.
지호가 카운터에서 일어났다. 두 달 동안 처음이었다. 남자는 1번 앞에 섰다. 잠깐 서 있었다. 그러고는 몸이 옆으로 돌아 3번으로 갔다. 유리문을 열고, 흰 것을 넣고, 동전을 넣었다. 오백 원 여덟 개. 손이 익숙하지 않아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동전은 3번 앞 녹물 자국 위에서 멈췄다. 지호가 그것을 주워 남자에게 건넸다. 동전이 차가웠다. 지호가 말했다.
“저기요.”
남자가 돌아봤다.
“3번은 소리가 커요.”
남자가 지호를 봤다. 한참 봤다.
“알아요.”
남자는 창가 두 번째 의자로 갔다. 늘 앉던 자리. 코트를 벗지 않고 앉았다. 3번이 돌기 시작했다. 물 들어가는 소리. 유리 안에서 흰 것이 물을 먹고 무거워졌다. 지호는 카운터로 돌아가지 않고 서 있었다.
“손님.”
“네.”
“무슨 소리랑 비슷해요?”
남자가 처음으로 지호를 똑바로 봤다.
“뭐라고요?”
“3번 소리요.”
지호는 다림질대를 짚었다.
“저도 이 소리 좋아해서요.”
“3번 소리요.”
“네.”
지호는 다림질대를 짚은 채로 서 있었다.
“저희 집에 세탁기가 저거랑 같은 모델이었어요. 베어링 나가면 저렇게 울어요. 고치면 조용해지는데 저희 집 건 안 고쳤어요.”
“왜요.”
“돈이 없어서요.”
지호는 그렇게 말하고 조금 웃었다. 소리 없이.
“근데 나중에는 그 소리가 나야 잠이 왔어요.”
남자는 세탁기 쪽을 봤다. 3번은 계속 돌고 있었다. 드럼 안에서 흰 것이 뒤집혔다.
“저희 집사람이.”
남자가 말했다. 두 달 만에 처음으로 한 문장 넘게 말했다.
“밤에 빨래를 돌렸어요.”
“네.”
“저는 그게 시끄러워서 화를 냈고요.”
지호가 다림질대에서 손을 뗐다.
“두 달 전에 죽었어요.”
세탁기가 탈수로 넘어갔다. 소리가 커졌다. 동전 교환기 뚜껑이 떨렸다. 남자는 그 소리 속에서 계속 말했다.
“집에 있으면 조용해요.”
“네.”
“조용한 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지호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남자 옆에 놓았다. 앉지는 않았다.
“손님.”
“네.”
“저 이번 주까지만 하고 그만둬요.”
“아, 네.”
“근데.”
지호는 3번을 봤다.
“저 세탁기 안 고치도록 사장님한테 말해 둘게요.”
남자가 지호를 봤다. 두 달 동안 처음으로 두 사람 눈이 마주쳤다.
“고맙습니다.”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 옆에 놓은 의자에도 앉지 않았다. 다림질대 앞에 서서 3번을 봤다. 유리에 형광등이 비쳐서 드럼 안이 잘 안 보였다. 대신 유리문 안쪽에 붙은 코팅 종이가 3번 유리에 거꾸로 비쳤다. 거꾸로 된 글자는 읽히지 않았다. 남자도 그쪽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빨래방 폭만큼의 거리가 있었고, 그 거리를 소리가 채웠다.
탈수가 끝났다. 조용해졌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십 초쯤 지나고 남자가 일어나서 유리문을 열었다. 안에서 젖은 빨래 냄새가 올라왔다. 세제 냄새와 3번의 고무 냄새와 그 위에 얹힌, 사람이 오래 덮은 천의 냄새. 남자가 꺼낸 것은 이불 커버 하나였다. 흰 바탕에 모서리마다 회색 선. 두 사람 크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