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156자)

총채주님도 빚졌네요

상단 막내가 무림맹을 샀습니다 · 도경

아버지 금만복의 방은 한낮에도 발을 내려 어두웠다. 약탕기에서 올라온 김이 천장에 닿았다가 식어 벽을 타고 흘렀고, 감초와 숙지황의 달큰한 냄새가 방 안 어디에나 눌어붙어 있었다. 아버지는 반년째 같은 자리에 누워 있었다. 눈은 떠 있었고, 오른손 검지만 가끔 움직였다.

보화는 아버지 머리맡에 쭉정이 쌀가마를 내려놓았다. 가마 터진 자리에서 겨가 흘러 이불 위에 떨어졌다. 대성이 문간에 서서 그것을 보았다.

“이게 뭐냐?”

“노태감 어르신이 흑풍관 산채에 보내는 쌀이에요. 겉에만 쌀이고 안은 겨예요. 오빠가 상회 약조로 받기로 한 운임 몫도 이런 식일 거예요.”

“말 함부로 하지 마라.”

“그럼 보세요.” 보화가 가마에 손을 넣어 한 줌 쥐었다가 펴 보였다. 겨가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오빠, 아버지 약값 상회 돈이라고 했죠. 약값 받으실 때 무슨 쌀로 받으셨어요?”

대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방 한구석의 쌀독으로 걸어가 뚜껑을 열었다. 아버지 죽을 쑤는 쌀이었다. 대성은 한 줌 쥐었다. 손바닥 위에서 겨가 반이었다. 대성은 그 손바닥을 오래 내려다보았다.

“…알고 있었다.” 대성이 말했다. “석 달 전부터. 쌀이 이상하다는 거. 근데 상회 약조를 깨면 상단이 망하니까, 그냥 체로 쳐서 죽을 쒔다. 매일 아침에.”

보화는 몰랐다. 아침마다 부엌에서 들리던 사각사각 소리가 체 치는 소리였다는 것을, 그 소리를 내던 사람이 큰오빠였다는 것을.

“오빠, 부탁이 있어요.”

“말해라.”

“노태감 어르신이 마흑산 총채주한테 빌려준 돈이 은 이천 냥 넘어요. 그 빚 문서를 사 주세요. 저는 상회에서 쫓겨나서 못 사요. 오빠는 상회 사람이니까 살 수 있어요.”

“그걸 사서 뭐 하게?”

“총채주님 빚쟁이가 될 거예요. 맹 빚쟁이가 됐던 것처럼요.”

대성이 처음으로 웃었다. 웃음이 짧았고 힘이 없었다. “너는 정말 빚만 사는구나.”

“남들이 안 사는 거만 사요. 싸니까요.”

“노태감 어른이 그걸 왜 팔겠냐?”

“총채주님이 노태감 집사 신발에 쭉정이를 쏟았대요. 노태감 어르신은 이제 그 빚을 못 받을 빚으로 셈하고 계실 거예요. 못 받을 빚은 팔고 싶어지죠. 근데 저한테는 안 파실 거고, 오빠한테는 파실 거예요. 오빠가 상단 돈을 쏟아 넣으면 금씨가 더 빨리 상회에 묶이니까요.”

대성은 쌀독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의 오른손 검지가 이불 위에서 한 번 움직였다. 대성은 그 손가락을 오래 보았다.

“아무 뜻도 없는 거라고 했었지.”

“네. 오빠가요.”

대성은 벽장에서 붉은 비단에 싼 상단 도장을 꺼냈다. 그 위에 둘둘 만 깃발 하나가 얹혀 있었다. 나루에서 보화가 얹어 준 그대로였다.

*

양주 상회 회관 안채는 대청보다 작았고, 더 서늘했다. 노태감은 그곳에서 금씨 상단 장남을 맞았다. 대성이 마흑산의 빚 문서를 사겠다고 하자, 노태감은 놀라지 않았다. 놀라지 않는 얼굴이 대성을 더 긴장하게 했다.

“막내가 시켰느냐?”

“막내는 상회에서 쫓겨났습니다. 이건 금씨 상단의 셈입니다.” 대성은 미리 연습한 말을 했다. 연습할 때보다 목소리가 높았다. “녹림 빚을 금씨가 쥐면, 금씨는 관문 셋을 쥔 자를 쥐게 됩니다. 그건 상회에도 이롭습니다.”

노태감은 찻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얼마를 생각하느냐?”

“이천 냥 빚이니… 천오백.”

보화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첫마디에 천오백을 부른 오빠를 보며 눈을 감았을 것이다. 대성도 말하고 나서 아차 싶었다. 노태감의 눈가 주름이 깊어졌다.

“천오백이라. 좋다.”

“…아, 아니, 천이백.”

“한 번 부른 값을 물리느냐? 금씨는 그렇게 장사하느냐?”

대성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대성은 셈이 늦었다. 늦게 하는 대신 끝까지 했다. 대성은 노태감 앞에서 숨을 세 번 쉬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어르신이 흑풍관에 보내신 쌀이 반은 겨였습니다. 저희 아버님 약값으로 주신 쌀도 그랬습니다. 석 달 치입니다. 그 겨 값을 빼 주십시오. 그리고 녹림 빚은 녹림이 안 갚으면 휴지입니다. 휴지 값도 빼 주십시오. 천 냥.”

노태감의 찻잔이 탁자에 닿는 소리가 처음으로 컸다.

“네 막내가 하던 말투를 너도 하는구나.”

“제가 오빠입니다. 막내가 저한테 배웠습니다.”

거짓말이었다. 노태감도 알았다. 노태감은 한참 대성을 보다가 엄 집사를 불러 서랍에서 종이 다발을 꺼내게 했다. 마흑산의 손도장이 찍힌 종이 스무 장이었다. 노태감은 그 다발을 탁자 위에 내던졌다.

“천 냥. 대신 금씨 셋째 창고를 담보로 잡는다. 석 달 안에 못 갚으면 창고는 상회 것이다.”

대성은 도장을 꺼냈다. 붉은 비단을 풀었다. 깃발은 풀지 않고 품에 그대로 두었다. 도장이 종이에 찍히는 순간 대성의 손이 한 번 떨렸다. 아버지가 서른 해 쓴 도장이었다.

회관 뒷골목 끝에서 보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성은 아무 말 없이 종이 다발을 내밀었다. 보화가 받아 들고 맨 위 장을 넘겼다. 노태감의 인장 옆에 금씨 상단 도장이 찍혀 있었다. 아직 인주가 덜 말라 있었다.

“천 냥이다. 깎았다.”

“처음에 천오백 부르셨죠?”

대성이 멈칫했다. “어떻게 알아?”

“오빠 이마에 땀이요. 천 냥이면 그렇게 안 나요.”

대성은 소매로 이마를 훔쳤다. 그러고 나서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막냇동생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툭 쳤다. 아프지 않게.

“창고 잡혔다. 석 달이다. 셈은 네가 해라.”

“네. 끝까지는 오빠가 하시고요.”

*

흑풍관 산채 대청은 통나무 기둥 스물네 개가 지붕을 받치고 있었다. 기둥마다 칼자국이 나 있었고, 바닥에는 짐승 가죽이 깔렸다. 대청 가장 안쪽 높은 자리에 마흑산이 앉았고, 그 아래 좌우로 산채 두목 서른이 늘어앉았다. 갈팔은 맨 끝자리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보화는 대청 한가운데 섰다. 곁에 철우가 있었다. 어깨에 감은 무명천이 옷 밖으로 비죽 나왔고, 허리에는 갈라진 칼집을 실로 얼기설기 꿰매어 차고 있었다. 하루 두 전을 마다하고 따라온 걸음이었다.

보화는 품에서 종이 다발을 꺼내 마흑산 앞 탁자 위에 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반쪽 주판을 놓았다. 알 사이에 마른 피가 아직 검게 끼어 있었다.

마흑산은 종이 맨 위의 자기 손도장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대청 안이 조용해졌다. 두목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총채주님도 저한테 빚졌네요?”

대청 끝에서 갈팔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마흑산의 눈이 갈팔에게 갔다. 갈팔은 웃음을 기침으로 바꾸려다 실패하고, 결국 탁자 밑으로 머리를 박았다.

“노태감이 이걸 너한테 팔았나?”

“우리 오빠한테요. 천 냥에요. 셋째 창고 잡혀서요.” 보화가 손가락으로 종이를 툭 쳤다. “이천 냥 빚에 이자가 세 해치 붙었어요. 노태감 어르신 이자가 맹 이자보다 세요. 한 해 이 할이에요. 다 합치면 삼천사백오십육 냥. 산채가 통행세로 그걸 갚으시려면 지금 버시는 대로면 마흔여덟 해 걸려요.”

“그래서 산을 내놓으라는 거냐?”

“아니요. 이자 안 받을게요. 원금 이천 냥도 한 푼 안 받아요. 관문 셋에서 수레마다 받으시는 다섯 냥 가운데 한 냥만 빚 갚는 데 돌리세요. 수레 백 대면 한 달 백 냥, 스무 달이면 끝나요. 그리고 지난번 셈 그대로 산채 사람 사백은 짐꾼과 호위로 써요. 처음 석 달 품삯은 반이 아니라 다 드릴게요.”

마흑산이 눈을 가늘게 떴다. “다 준다고? 돈이 어디서 나나?”

“해염 염전에서요. 그리고 하나 더요.” 보화가 숨을 골랐다. 이것은 셈이 아니었다. 흑풍관 관문 앞에서 대답하지 못한 물음의 답이었다. “겨울 쌀이요. 산채 식구 삼천이 겨울을 나려면 쌀 삼백 가마가 들어요. 백 서생님한테 물어봤어요. 서리 내리기 전에 양주에서 진짜 쌀 삼백 가마를 올려 보낼게요. 겨 없는 쌀로요. 해염 소금 배가 내려갈 때 비어서 가거든요. 그 배에 남쪽 쌀을 실어 올리면 운임이 거의 안 들어요.”

대청 안 두목들이 웅성거렸다. 산채 뒤편 창고 쪽에서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다. 관문 놀이를 하고 있었다.

“빚은 다 안 받고, 품삯은 다 주고, 쌀까지 준다. 너는 무엇을 남기나?”

“관문이요. 관문 셋이 열리면 양주에서 낙안관 너머 장터까지 삼백 리 길이 열려요. 그 길로 제 소금이 한 달에 천 섬 넘어가요. 섬에 여섯 전에 사서 북쪽에서 세 냥에 팔아요. 총채주님 산채가 그 길을 지켜 주시는 값이 다섯 냥이고, 그 가운데 한 냥이 제 빚이에요.”

마흑산은 손가락을 접어 셈하지 않았다. 눈만 감았다가 떴다. 그 사이에 셈이 끝나 있었다.

“철우는.”

대청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철우가 반걸음 앞으로 나섰다. 보화가 그 소매를 잡지 않았다. 대신 마흑산을 보았다.

“총채주님이 사람을 셈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안 했어요. 철우 오빠는 이 흥정에 없어요. 밥값도, 칼집 값도요. 철우 오빠가 총채주님하고 따로 할 셈이 있으면 그건 두 분 사이 일이에요. 저는 안 끼어요.”

“네가 안 끼면 철우가 여기서 날을 뽑을 수도 있다.”

“그럼 그때는 끼어요. 치료비가 비싸서요.”

두목 몇이 웃음을 삼켰다. 마흑산은 웃지 않았다. 마흑산은 철우를 보았다. 철우의 허리에서 실로 꿰맨 칼집을 보았다.

“그 칼집, 아직 차고 있구나.”

“예.” 철우가 말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했다. “날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아직 못 뽑습니다. 뽑게 되면 오겠습니다.”

마흑산이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대청 기둥이 울렸다. 웃음이 그쳤을 때 마흑산은 탁자 위의 빚 문서를 집어 백 서생에게 넘겼다.

“청석관과 흑풍관을 연다. 오늘부터 두 관문을 합쳐 수레 하나에 석 냥만 받는다. 셈은 백 서생이 해라. 낙안관은 서리 전에 쌀 삼백 가마가 산채 창고에 들어오는 날 연다. 겨가 한 줌이라도 섞이면 안 연다.”

“겨 없어요. 제가 체로 칠게요. 우리 오빠가 체 잘 쳐요.”

*

이튿날 아침, 청석관 아치 문이 활짝 열렸다. 갈팔이 누각 위에서 두꺼비 깃발을 흔들었다. 찐빵 같은 두꺼비가 바람에 펄럭였다. 금씨 상단 짐마차 여섯이 소금을 싣고 문을 지났다. 놋그릇에 은이 떨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사흘 뒤 흑풍관 문도 열렸다.

보화는 흑풍관 누각 위에 서서 반쪽 주판을 튕겼다. 연 관문 둘. 이어진 길 이백 리. 낙안관 하나가 남아 있었다. 서리까지 스무 날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해염에서 올라온 장포가 흑풍관 아래까지 숨이 턱에 차서 뛰어왔다.

“아가씨, 양주 남쪽 쌀 도가들이 하나같이 쌀을 안 판다오. 상회 방이 또 돌았소. 금씨 막내한테 쌀 한 톨 팔면 상회에서 내쫓는다고.”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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