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33자)
한 사람 값
상단 막내가 무림맹을 샀습니다 · 도경
곽씨네 객잔 뒷방은 원래 장작을 쌓아 두던 곳이라 송진 냄새가 벽에 배어 있었다. 그 냄새 위로 피 냄새와 쑥 냄새가 덮였다. 철우는 장작 대신 깐 거적 위에 모로 누워 있었고, 왼쪽 어깨에서 가슴 위까지 감은 무명천이 등잔불 아래서 천천히 붉게 번졌다. 칼집은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마흑산의 칼이 쇠가죽 여러 겹을 지나 비스듬히 갈라 놓아서, 짐승 이빨처럼 닳았던 끝이 두 갈래로 벌어져 있었다.
마을 침쟁이는 예순 줄의 노인이었는데, 상처를 꿰매면서 쉬지 않고 말을 했다. 바늘이 한 번 들어갈 때마다 말 한 마디가 나왔다.
“칼집으로 받았구먼. 칼집이 아니었으면 뼈까지 갔어. 근데 칼집으로 받을 거면 왜 칼을 안 뽑았나? 뽑았으면 받을 필요가 없었을 거 아냐? 젊은 사람이 참 이상해.”
철우는 이를 악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늘이 살을 꿸 때마다 철우의 오른손이 거적을 움켜쥐었다. 보화는 그 손을 붙잡고 있었다. 손가락이 하나씩 보화 손등을 파고들었다. 아팠다. 보화는 손을 빼지 않았다.
열여덟 바늘을 꿰매고 침쟁이가 손을 씻었다.
“약값까지 은 두 냥이오.”
보화는 품에서 은 두 냥을 꺼내 침쟁이 손에 올려놓았다. 침쟁이가 눈을 끔뻑였다. 은을 보고, 보화를 보고, 다시 은을 보았다.
“안 깎소?”
“네.”
“관문 마을에선 다들 깎소. 반은 깎던데.”
“오늘은 안 깎아요.”
침쟁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갔다. 문간에서 한 번 돌아보았다. 깎지 않는 상인을 처음 본 얼굴이었다. 보화도 그런 자기를 처음 보았다.
흑풍관 관문 앞에서 마흑산의 칼이 내려왔을 때, 철우는 칼을 뽑지 않고 칼집째 들어 올려 받았다. 쇠가죽이 갈라지는 소리와 살이 갈라지는 소리가 같이 났다. 철우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피가 탁자 위 반쪽 주판에 튀었다. 마흑산은 두 번째 칼을 내리지 않았다. 칼끝을 내리고 오래 철우를 보더니 이렇게만 말했다. “끝내 안 뽑는구나. 데려가라. 다음에는 날로 와라.” 그리고 등을 돌렸다. 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산을 내려올 때 철우를 업은 것은 갈팔이었다. 갈팔은 내려오는 내내 욕을 했고, 욕하는 내내 한 번도 철우를 내려놓지 않았다.
반쪽 주판에 튄 피는 마르면서 알 사이에 검게 끼었다. 보화는 그것을 닦지 않았다.
*
밤이 깊었다. 등잔 기름이 반쯤 줄었을 때 철우가 눈을 떴다. 열 때문에 눈이 젖어 있었다.
“아가씨.”
“네. 물 드려요?”
철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참 천장의 그을음 자국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 짐꾼이 죽은 거, 저는 몰랐습니다.”
보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이 흥정이라는 생각은 그 밤에는 들지 않았다. 그냥 들었다.
“도망치고 세 해 동안, 칼을 뽑으려고 하면 그 손등이 보였습니다. 생선 비늘이 말라붙은 손등이요. 그래서 칼집째 쳤습니다. 칼집째 치면 피가 안 나니까, 제가 사람을 안 다치게 하는 줄 알았습니다. 아가씨 아버님은 그걸 보시고 아무것도 안 물으셨습니다. 그게 좋았습니다.”
철우가 숨을 골랐다. 꿰맨 자리가 당기는지 얼굴이 찡그려졌다.
“총채주 말이 맞습니다. 저는 제 손만 깨끗이 남겼습니다. 열한 해 동안.”
철우가 그렇게 긴 말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보화는 그 말을 하나도 셈하지 않았다. 세지 않고 다 들었다. 다 듣고 나서 반쪽 주판을 철우 손에 쥐여 주었다. 피가 검게 낀 쪽을 위로 해서였다.
“제가 사람을 다 쪼갠대요. 총채주님이. 반쪽 주판으로.”
“…”
“맞는 말이에요. 저 오늘 침쟁이 값 안 깎았어요. 처음이에요. 근데 그거 오빠 값이라서 안 깎은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지금도 오빠를 셈하고 있는 거예요. 안 깎는 쪽으로요.”
철우가 주판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알 하나가 딸깍 올라갔다.
“그러니까 오빠도 오빠를 셈해요. 열한 해 전 그 손등 하나에, 오빠 손을 통째로 거는 거. 그건 손해예요. 제가 상인이라서 알아요.”
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았다. 감은 눈꼬리로 무언가 흘러 귀 쪽으로 내려갔다. 열 때문인지 다른 것 때문인지 보화는 묻지 않았다.
*
새벽녘 보화가 물을 데우러 부엌에 들어갔을 때 곽 씨 아주머니가 아궁이 앞에 앉아 있었다. 불을 지피지 않고 그냥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지게 멜빵 하나를 올려놓고 있었는데, 멜빵 가죽이 땀에 절어 검게 반들거렸다.
“앉으시오.”
보화는 아궁이 맞은편에 앉았다. 부엌 바닥의 흙이 차가웠다.
“아가씨가 관문을 열면 우리 돌이는 굶소.”
“돌이가 누구예요?”
“내 아들이오. 스물넷.” 곽 씨가 멜빵을 쓸었다. “관문이 막힌 세 해 동안 돌이는 밀짐을 졌소. 관문을 안 지나고 산 뒤 짐승 길로 소금이며 비단을 지고 넘는 거요. 녹림도 그 길은 못 막소. 너무 험해서. 한 번 넘으면 다섯 냥이오. 부두 짐꾼 한 달 품삯의 두 배 반을 한 번에 받소. 우리 객잔에 오는 손님 반이 밀짐꾼이고, 나머지 반은 밀짐꾼한테 짐을 맡기는 장사꾼이오.”
보화는 주판을 꺼내지 않았다. 꺼내지 않아도 숫자가 보였다.
“관문이 열리면 아무도 짐승 길로 안 넘소. 수레로 넘지. 다섯 냥짜리 밀짐꾼이 두 냥짜리 수레 짐꾼이 되거나, 그것도 못 되고 놀게 되오. 객잔도 그렇소. 관문 앞에서 묵어 가던 손님들이 이제 그냥 지나가오. 수레는 하루에 관문 셋을 다 넘으니까.”
“돌이 씨는 제가 짐꾼으로 쓸게요. 우두머리로요. 한 달에 세 냥.”
“다섯 냥을 벌던 애가 세 냥을 받으면 그게 감사할 일이오?”
“목숨값은 빼셔야죠. 짐승 길에서 떨어져 죽는 밀짐꾼이 해마다 몇이에요?”
곽 씨의 손이 멜빵 위에서 멈췄다. 아궁이 속 재가 바람에 조금 날렸다.
“작년에 둘이오.” 곽 씨가 말했다. “그중 하나는 돌이 동무였소. 돌이가 업고 내려왔소. 이미 죽은 걸.”
보화는 할 말을 잃었다. 목숨값을 빼자고 한 것은 셈이었는데, 곽 씨에게 그건 셈이 아니었다.
“아가씨 말이 맞소. 목숨값을 빼면 세 냥이 낫지. 근데 아가씨, 그걸 내가 몰라서 이러는 줄 아시오? 돌이는 그 길밖에 모르오. 열여덟부터 짐승 길만 탔소. 수레 끄는 법도, 주판 셈도, 남 밑에서 고개 숙이는 법도 모르오. 아가씨가 관문을 열면 돌이 같은 애들 마흔이 한꺼번에 쓸모가 없어지오. 그 애들이 갈 데가 어디겠소? 녹림이오. 마흑산 밑으로.”
곽 씨가 일어섰다. 멜빵을 벽 못에 걸었다.
“관문을 열지 마시오. 그 말 하려고 밤새 앉아 있었소. 저 방의 호위 무사는 다 나을 때까지 내가 돌보겠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요.”
“안 열면 금씨 상단이 망해요. 해염 염부들은 다시 노태감 빚에 묶이고요. 흑풍관 아래 산채 아이들은 쭉정이 쌀을 먹고요.” 보화도 일어섰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커졌다. “아주머니, 저 열 거예요. 돌이 씨 같은 사람 마흔이 쓸모없어지는 거, 그것도 셈에 넣고 열 거예요. 마흔 명 일거리를 제가 만들 거예요. 못 만들면 그건 제 빚이에요.”
“빚은 갚으면 끝나지. 사람은 안 끝나오.”
곽 씨는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보화를 더 보지 않았다. 불이 붙으면서 솔가지가 탁탁 터졌다. 보화는 물 데울 솥을 들고 서 있다가, 결국 아궁이 곁에 솥을 내려놓고 곽 씨가 불을 다 지필 때까지 기다렸다. 곽 씨는 솥을 아궁이에 올려 주었다. 아무 말도 없었다.
*
더운물을 들고 뒷방에 돌아오니 철우가 일어나 앉아 있었다. 무명천 위로 피가 새로 배어 나왔고, 철우는 갈라진 칼집을 허리에 차려고 끈을 더듬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뭐 하세요?”
“흑풍관에.”
“누우세요.”
“아가씨 혼자 가시면…”
“안 가요. 오늘은 아무 데도 안 가요. 누우세요.”
철우는 끈을 놓지 않았다. 보화는 솥을 내려놓고 철우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주판을 꺼냈다.
“호위 품삯이 한 달 세 냥이죠. 하루 한 전이에요. 지금부터 누워 계시면 하루 두 전 드릴게요. 앉아 계시면 한 전, 일어서시면 영 전, 칼집 차시면 오빠가 저한테 한 전 내셔야 해요.”
철우가 보화를 보았다. 보화는 진지했다. 철우의 손이 끈에서 천천히 떨어졌다. 철우는 한참 셈하는 얼굴을 하더니, 거적 위로 도로 누웠다. 누우면서 꿰맨 자리가 당겨 숨을 들이켰다.
“두 전.” 철우가 천장을 보며 말했다.
“네, 두 전.”
“밤에도 누워 있으면.”
“밤은 원래 누워 있는 거니까 안 쳐요.”
철우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짧았고, 웃자마자 어깨를 감싸 쥐며 얼굴을 찡그렸다. 부엌 쪽에서 곽 씨의 국자가 솥을 긁다가 잠깐 멈췄다.
*
해가 뜨고 한참 뒤, 객잔 문이 벌컥 열렸다. 갈팔이었다. 얼굴의 멍이 누렇게 바래 가고 있었고, 등에 커다란 보따리를 지고 있었다. 갈팔은 보따리를 객잔 마루에 내던졌다. 보따리가 풀리면서 마른 약초 묶음이 쏟아졌다. 쑥, 당귀, 그리고 산채에서만 캐는 검은 뿌리 몇 개.
“총채주님이 보낸 거 아니다.”
“네.”
“내가 그냥 가져온 거다. 산채 약방에서. 몰래.”
“네.”
“네만 하지 마! 철우 놈 버릇 옮았냐?”
갈팔은 마루 끝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곽 씨에게 술을 청했다가, 곽 씨가 국자를 들자 물을 청했다. 물을 한 사발 다 마시고 나서 갈팔은 한숨을 쉬었다.
“산채 쌀이 쭉정이다. 상회 늙은이가 보낸 쌀이 반은 겨다. 그걸 받고도 총채주님은 아무 말 못 하신다. 빚이 있으니까.”
보화의 귀가 섰다. “빚이요?”
“세 해 동안 통행세로 모자란 쌀을 상회 늙은이한테 빌려 썼다. 은 이천 냥 넘는다더라. 백 서생이 문틀에 새로 금 그을 때마다 숫자가 늘어. 총채주님이 관문을 안 여는 거, 그것도 반은 그 늙은이 말을 들어서다. 관문 열리면 상회 소금이 안 팔린다고, 빚 갚을 때까지 막아 두라고.” 갈팔이 침을 퉤 뱉었다. “녹림 총채주가 장사꾼 빚에 묶여 길을 막는다. 산채 애들이 알면 웃는다.”
보화는 마루에 쏟아진 약초 사이로 손을 뻗었다. 검은 뿌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흙냄새가 났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품 안의 반쪽 주판을 쥐었다. 알이 움직였다. 이천 냥. 해염 염부들의 빚 천이백 냥. 둘 다 노태감이 쥐고 있었다.
보화는 경매장 분타 벽에 붙었던 방을 떠올렸다. 이자를 못 낸다던 맹. 아무도 안 사던 맹채. 손을 들었던 그날.
“갈팔 두목님.”
“뭐?”
“노태감 어르신이 총채주님 빚 문서를 어디 두시는지 알아요?”
갈팔이 물사발을 내려놓았다. 보화를 한참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웃기 시작했다. 터진 입술이 다시 터질 만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