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21자)

칼 대 주판

상단 막내가 무림맹을 샀습니다 · 도경

흑풍관은 이름처럼 골짜기 바람이 검었다. 양쪽 절벽이 해를 반나절 넘게 가렸고, 바람은 그 그늘을 지나오면서 차가워져 한여름에도 목덜미에 소름을 돋게 했다. 마흑산은 관문 뒤 산채 창고 앞에 서서 쌀가마를 셌다. 창고 문틀에 칼로 그은 금이 세로로 수십 줄 나 있었는데, 열흘마다 한 줄씩 그은 금이었다. 오늘 그을 금 옆에는 빈자리가 넓었다.

“몇 가마냐?”

“백열둘입니다.” 산채의 책사 백 서생이 말했다. 백 서생은 과거에 세 번 떨어지고 산에 들어온 선비로, 손가락에 늘 먹물이 묻어 있었다. “식구 삼천이 한 끼에 아홉 가마를 먹으니, 열이틀 치입니다. 사흘을 하루 두 끼로 줄이면 열나흘.”

“관문 셋 통행세는?”

“지난달 청석관에서 여섯 냥 들어왔습니다. 갈팔이 만두 얻어먹고 받은 그 여섯 냥이요. 흑풍관과 낙안관은 영 냥.”

마흑산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고 앞마당에서 산채 아이들이 나무칼을 들고 관문 놀이를 했다. 하나가 탁자 역을 맡아 엎드렸고, 하나는 상인 역을 맡아 짐을 진 시늉을 했고, 나머지는 통행세를 받는다며 상인 역 아이의 주머니를 털었다. 상인 역 아이가 울면서 말했다. “두 냥으로 깎아 주세요!” 아이들이 와르르 웃었다.

마흑산은 그 말을 어디서 배웠는지 묻지 않았다. 청석관 졸개들이 산채로 돌아와 몇 날 며칠 그 이야기만 했다.

관문 아래쪽 길에서 수레바퀴 소리가 났다. 쌀 수레 다섯이 올라오고 있었다. 수레 앞에 선 사내는 상회 집사 엄 씨였다. 엄 씨는 갑문에서 몽둥이를 잘린 날 이후 처음으로 산에 올라왔는지, 산길에 숨이 차 얼굴이 벌겠다.

“총채주님, 어른께서 보내신 쌀이오. 쉰 가마.”

“빚이 또 느는군.”

“이자는 늘 하던 대로요. 어른 말씀은 하나요. 그 금씨 막내가 흑풍관에 오면, 관문을 열어 주지 말라는 것이오. 흥정도 하지 말고. 아예 산을 못 내려가게 하면 더 좋고.”

마흑산은 쌀가마 하나를 한 손으로 들어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가마가 가벼웠다. 손가락으로 찔러 보니 겉에만 쌀이었고 안은 쭉정이가 반이었다. 마흑산은 가마를 엄 집사 발치에 내려놓았다. 가마가 터지면서 쭉정이가 엄 집사 신발 위로 쏟아졌다.

“노태감한테 전해라. 내 관문에서 누구를 내려보내고 누구를 붙잡을지는 내가 정한다. 그리고 쌀은 쌀로 보내라.”

엄 집사가 쭉정이를 털면서 물러났다. 백 서생이 붓을 들고 문틀의 새 금 옆에 작게 숫자를 적었다. 마흑산은 그 숫자를 보지 않았다. 안 봐도 알았다.

*

전날 밤 청석관 너머 곽씨네 객잔에서, 보화는 철우에게 남으라고 말했다. 가죽에 칼끝으로 새긴 글씨는 혼자였고, 혼자 오라는 사람 앞에 둘이 가면 흥정이 첫마디부터 기운다고 했다. 철우는 객잔 마루 끝에 앉아 칼집 끝의 닳은 쇠를 엄지로 문지르며 듣고 있었다.

“여기서 기다려요. 사흘 안에 안 내려오면 하연 당주님한테 가고요.”

“예.”

“진짜 예예요? 그냥 예예요?”

“예.”

보화는 그 대답을 믿기로 했다. 믿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 밤만은 정말로 믿고 싶었다. 곽 씨 아주머니가 부엌에서 나오다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혀를 차고 만두 한 접시를 마루에 탁 내려놓았다. 값은 받지 않았다. 대신 “둘 다 먹고 둘 다 내려오시오” 하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새벽, 보화가 객잔 문을 열었을 때 철우는 문 앞에 서 있었다. 이슬에 어깨가 젖어 있었고, 칼집은 허리에 있었다. 밤새 거기 서 있었던 사람의 얼굴이었다.

“예라고 하셨잖아요!”

“예라고만 했습니다.”

“그게 무슨…”

“남겠다고는 안 했습니다.”

보화는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흥정에서 진 기분이었다. 그것도 철우한테. 여덟 해 만에 처음이었다. 보화는 진 값을 따질 수가 없어서, 철우 젖은 어깨의 이슬을 손바닥으로 털어 주는 것으로 끝냈다.

*

보화는 흑풍관 앞 돌계단을 오르면서 숨을 세 번 쉬고 한 번 멈췄다. 절벽에서 내려온 바람이 땀을 식혔다가 다시 얼렸다. 철우가 보화 반걸음 앞에 섰다. 칼집이 허리에 있었다. 짐승 이빨처럼 닳은 끝이 계단을 오를 때마다 바위에 닿아 딱딱 소리를 냈다.

관문 위 누각에 산적들이 빽빽하게 늘어섰다. 청석관의 열셋과는 달랐다. 백은 넘어 보였고, 다들 활을 들고 있었다. 그 사이에 아이들 얼굴도 몇 섞여 있었는데, 아이들은 활이 아니라 돌멩이를 쥐고 있었다.

관문 아래 탁자는 하나였다. 이번 탁자는 다리가 반듯했다. 마흑산이 그 너머에 앉아 있었고, 탁자 위에는 이미 칼이 놓여 있었다. 칼집 없이 맨날이었다. 바람에 날이 조금씩 울었다.

보화는 탁자 앞에 섰다. 반쪽 주판을 칼 옆에 놓았다. 그리고 주먹을 펴서 탁자 위에 알 하나를 굴렸다. 대장간에서 새로 깎아 온 흑단 알이었다. 다른 알보다 색이 옅었다.

“분타 경매장에서 잃어버린 알이 셋이에요. 하나는 제가 새로 깎았어요. 은 두 전 들었어요. 나머지 둘은 총채주님이 물어 주세요.”

누각 위에서 누군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콧김을 뿜었다. 마흑산이 고개를 들지 않았는데도 그 웃음이 뚝 끊겼다.

“두 알에 네 전.” 마흑산이 말했다. “통행세에서 빼 주마.”

보화는 눈을 깜빡였다. 산적 두목이 알 값을 셈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럼 흥정하시는 거죠?”

“앉아라.”

보화는 앉았다. 걸상이 차가웠다. 철우는 앉지 않고 보화 뒤에 섰다. 마흑산의 눈이 보화 어깨너머 철우에게 갔다가 돌아왔다.

“청석관에서 수레 하나에 두 냥으로 깎았다지. 흑풍관도 두 냥을 바라고 왔겠군.”

“아니요. 흑풍관은 한 냥 반이요.”

“왜 더 싸지?”

“청석관보다 길이 험해서 수레가 덜 와요. 덜 오는 관문이 비싸면 아예 안 와요. 그리고 흑풍관은 지금 영 냥 버시잖아요.”

마흑산의 손가락이 칼등을 한 번 쓸었다. “그걸 어떻게 아나?”

“갈팔 두목이 만두 두 접시 반 드시면서 다 말해 줬어요. 반 접시째에 제일 많이 말했고요.”

마흑산 뒤에 선 백 서생이 기침을 하는 척하며 고개를 돌렸다.

“제 제안은 이래요.” 보화가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했다. “관문 셋 통행세를 합쳐서 수레 하나에 다섯 냥. 대신 한 달에 수레 마흔 대를 넘기고, 가을까지 백 대로 늘려요. 그러면 한 달 오백 냥이에요. 지금 버시는 여섯 냥의 여든 배요. 그리고 수레 백 대를 끌려면 짐꾼 삼백, 호위 백이 있어야 해요. 그 사람들은 산채에서 쓸게요. 짐꾼은 한 달 품삯 두 냥, 호위는 세 냥. 산채 식구 삼천 가운데 사백이 품삯을 받으면, 한 달에…”

“구백 냥.” 마흑산이 말했다.

보화의 손가락이 멈췄다. 맞는 숫자였다.

“너는 그걸 다 낼 돈이 있나?”

“지금은 없어요. 수레가 오가면 생겨요. 처음 석 달은 반만 드리고, 나머지는 소금으로 드릴게요. 해염에 제 염전 못이 셋 있어요.”

“그 소금이 산을 올라오려면 관문이 열려야 하고, 관문이 열리면 내 통행세가 다섯 냥으로 줄고, 석 달 동안 삼천 식구는 반만 받은 품삯으로 산다.” 마흑산이 천천히 말했다. 숫자를 하나하나 탁자 위에 내려놓는 말투였다. “석 달이면 겨울이다. 겨울에 산채 아이들이 반만 먹고 버티는지 너는 아나?”

보화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셈은 해 보지 않았다. 누각 위 아이들의 돌멩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너는 하나를 빼먹었다.” 마흑산이 칼자루를 쥐었다. 칼은 들지 않았다. 쥐기만 했다. “녹림이 관문에서 통행세를 받는 건 돈 때문만이 아니다. 산채는 관문으로 선다. 관문을 지키는 자가 녹림이고, 관문을 버린 자는 녹림이 아니다. 관문을 버리고 도망친 자가 하나 있다.”

마흑산의 눈이 철우에게 박혔다.

“통행세는 다섯 냥으로 해 주마. 품삯 셈도 받아 주마. 대신 철우를 두고 가라.”

바람이 멈췄다. 누각 위의 활시위들이 한꺼번에 당겨지는 소리가 났다. 아이들이 돌멩이를 쥔 손을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철우 오빠는 안 팔아요.”

“누가 판다고 했나? 원래 내 사람이다. 열여섯까지 내 밥을 먹었다. 그 밥값도 안 갚고 도망쳤다. 너는 상인이니 밥값이 얼마인지 알 거다.”

“그럼 밥값을 셈해 드릴게요. 열여섯 해, 하루 세 끼…”

“셈하지 마라.” 마흑산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커졌다. 탁자가 울렸다. “사람을 셈하지 마라. 너는 관문 셋을 열겠다고 와서, 사람 하나 값을 깎으려 든다. 산채 사람 삼천을 품삯으로 셈하고, 철우를 밥값으로 셈한다. 너는 그 반쪽 주판으로 사람을 다 쪼개는구나.”

보화는 주판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갈라진 나무 결이 손바닥을 찔렀다. 처음으로 반박할 숫자가 떠오르지 않았다.

철우가 앞으로 나섰다. 보화 곁을 지나 탁자 앞에 섰다. 마흑산과 철우 사이에 탁자 하나와 칼 하나가 있었다.

“제가 남겠습니다.”

보화가 철우의 소매를 잡았다. “안 돼요.”

“관문 셋이 열립니다.”

“안 된다니까요. 오빠 그렇게 길게 말하지 마요. 길게 말하면 무서워요.”

철우는 소매를 빼지 않았다. 대신 보화 손등 위에 자기 손을 잠깐 얹었다가 떼었다. 손이 뜨거웠다. 경매장에서 잡았던 손과 반대였다.

마흑산이 일어섰다. 탁자 위의 칼을 집었다.

“남는다고? 남겠다는 놈이 칼집을 허리에 차고 있나? 그 칼집으로 열한 해 전에 무엇을 했는지 너는 아직도 모르는 척하느냐?”

철우의 턱이 굳었다.

“그날 너는 짐꾼 손을 남겨 줬다고 생각하겠지. 그 짐꾼은 손등뼈가 으스러져 다시는 지게를 못 졌다. 이듬해 겨울에 굶어 죽었다. 칼로 잘랐으면 손 하나 없이도 지게는 졌을 거다. 칼집째 친 건 너였다. 칼을 안 뽑은 손으로, 너는 네 손만 깨끗이 남겼다.”

보화가 철우를 보았다. 철우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남겠다면 오늘 관문 앞에서 칼을 뽑아라. 칼집째 말고 날로. 나를 이기면 관문 셋을 열어 주마. 지면 너는 여기 남고, 이 아이는 내려간다.”

“싫어요!” 보화가 소리쳤다. “그런 흥정 없어요! 사람 걸고 하는 흥정은…”

마흑산은 보화를 보지 않았다. 칼끝이 천천히 올라가 철우의 가슴께에 멈췄다. 골짜기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 날이 바람을 받아 낮게 울었다.

철우의 손이 칼집으로 갔다. 칼자루를 쥐었다. 뽑지 않았다. 손등의 힘줄이 굵어졌다가, 풀렸다가, 다시 굵어졌다.

“뽑아라, 철우.”

철우는 뽑지 않았다.

마흑산의 칼이 먼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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