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142자)
갑문
상단 막내가 무림맹을 샀습니다 · 도경
해염 염전 북쪽 끝에는 열 해 넘게 아무도 쓰지 않은 못이 셋 있었다. 둑이 무너져 바닷물이 제멋대로 드나들었고, 바닥에 갯풀이 자라 소금 대신 게가 살았다. 땅 임자는 바닷가 마을 촌장이었는데, 촌장은 그 못을 보화가 빌리겠다고 하자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고 다음에는 값을 두 배로 불렀다.
“한 해에 은 서른 냥.”
“게 키우는 못에 서른 냥이요? 게 값 빼 주세요. 제가 게를 다 잡아서 촌장님 댁에 드릴게요.”
“게는 내 게다.”
“그러니까 드린다고요. 게 값이 다섯 냥이면 스물다섯 냥이고, 무너진 둑 쌓는 품삯을 제가 내니까 그 값 빼면 스무 냥이에요.”
촌장은 결국 스무 냥을 받았다. 받고 나서도 무엇을 잃었는지 몰라 게 바구니를 들고 오래 서 있었다.
염부들의 빚은 그대로였다. 염부들이 상회 아닌 사람에게 소금을 팔면 손도장이 깨졌다. 그러니 보화는 소금을 사지 않기로 했다. 대신 사람을 샀다. 염부들이 자기 염전에서 일을 마친 뒤, 보화가 빌린 못에서 반나절씩 일하고 일당을 받는다. 그 못에서 나온 소금은 처음부터 보화 것이다. 염부가 판 소금이 아니라 보화가 품을 사서 구운 소금이다.
장포가 그 말을 듣고 한참 웃다가 진지해졌다. “노태감이 이걸 알면 가만있겠냐?”
“가만있지 않으시겠죠. 그래도 손도장에는 못 걸어요. 손도장에 품 팔지 말라는 말은 없잖아요.”
“그건 어떻게 알아?”
“어제 아저씨가 그 종이 바닥에 펼쳐 놓으셨을 때 다 읽었어요. 세 번이요.”
열이틀 동안 염부 열다섯이 무너진 둑을 다시 쌓고 갯풀을 걷어 냈다. 보화는 둑 위에 앉아 일당을 나눠 주었는데, 한 사람 반나절에 사 전이었다. 상회에 소금을 팔아 손에 쥐던 것보다 많았다. 사흘째부터는 다른 염전 염부들이 둑 아래에 와서 기웃거렸다. 열이틀째 아침, 못 바닥에 처음으로 하얀 결정이 맺혔다. 장포가 그 소금을 한 줌 쥐어 보화 손바닥에 올려 주었다. 소금이 햇볕에 따뜻했다.
*
이백 섬을 실은 배가 양주 남쪽 갑문에 닿은 것은 보름 밤이었다. 갑문은 운하 물높이가 다른 두 구간 사이를 잇는 수문으로, 배가 들어가면 아래 문을 닫고 물을 채워 위 구간 높이까지 배를 띄워 올렸다. 양주에 들어가는 남쪽 배는 모두 이 갑문을 지나야 했다. 수문을 여닫는 일은 관아가 맡긴 수문장과 수문꾼 여섯이 했다.
갑문 아래 문은 닫혀 있었다. 수문장 집 창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보화가 배에서 내려 수문장 집 문을 두드렸다. 한참 만에 문이 열렸고, 배가 나온 수문장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밤엔 안 엽니다.”
“지난달까지는 자정 전에 오는 배는 열어 줬잖아요. 아직 자정 전이에요. 북 소리 아직 안 났어요.”
“이번 달부터 바뀌었소.”
“누가 바꿨어요?”
수문장이 대답하기 전에 둑 위에서 등불 여러 개가 다가왔다. 맨 앞에 상회의 금박 학이 찍힌 등이 흔들렸고, 그 뒤로 검은 옻칠 가마가 따라왔다. 가마가 수문장 집 앞에 멈췄다. 발이 걷히고 노태감이 내렸다. 그 곁에 상회 집사 엄 씨가 섰다. 엄 집사 뒤로 몽둥이를 든 왈패 열이 늘어섰다.
“이 갑문은 관아 것이다.” 노태감이 말했다. “관아는 양주 소금이 상회 소금창을 거쳐 들어오는 걸 좋아한다. 수문장이 그 뜻을 헤아렸을 뿐이다.”
“얼마에 헤아렸어요?”
엄 집사가 앞으로 나섰다. “말조심하시오. 수문장께 밤 수고비로 열 냥을 드렸을 뿐이오.”
“열 냥이요.” 보화가 수문장을 보았다. 수문장의 눈이 땅을 보았다. “수문장님, 그 열 냥은 문을 안 여는 값이죠. 문을 여는 값은 얼마예요?”
“아가씨…”
“수문세가 배 하나에 두 냥이고, 밤에 수문꾼 여섯이 일하면 한 사람에 오 전씩 세 냥. 다섯 냥이에요. 그리고 안 여는 값 열 냥을 돌려주셔야 하니까, 제가 그 열 냥도 드릴게요. 열다섯 냥.”
“스무 냥.” 엄 집사가 말했다.
“스물다섯.”
“서른!”
갑문 아래 물소리 위로 값이 오르내렸다. 수문꾼들이 하나둘 집에서 나와 구경했다. 장포의 염부들이 뱃전에 늘어서서 값이 오를 때마다 휘파람을 불었다. 수문장의 얼굴이 처음에는 하얗다가 붉어졌다가, 서른 냥 소리가 나자 눈이 반짝였다.
“사십.” 엄 집사가 이를 악물었다.
보화가 주판을 품에 넣었다. “그럼 그만할게요.”
엄 집사가 입을 벌렸다. 노태감이 처음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수문장님, 사십 냥 받으세요. 대신 내일 아침에 양주 장터 사람들한테 제가 말할 거예요. 소금 배가 갑문 앞에 와 있었는데 수문장님이 사십 냥 받고 안 열어 주셔서 소금이 섬에 두 냥이라고요. 갑문 지나다니는 배가 하루 쉰 척이에요. 그 배 주인들이 내일부터 수문장님한테 수고비를 얼마씩 드릴지 저는 모르겠어요.”
수문장의 얼굴이 하얘졌다. 수문꾼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수문꾼들도 따라 끄덕였다. 그 사람들도 갑문을 지나는 배에서 밥을 먹었다.
엄 집사가 왈패들에게 손짓했다. “배를 밀어내!”
왈패 열이 둑을 뛰어 내려왔다. 몽둥이가 뱃전을 내리쳤다. 염부 하나가 노로 막다가 어깨를 맞고 물에 빠졌다. 철우가 배에서 뛰어내렸다. 칼집이 두 번 움직이자 왈패 둘이 둑에 쓰러졌다. 셋째가 철우 뒤에서 몽둥이를 쳐들었다.
쇠가 울리는 소리가 났다. 몽둥이가 반으로 잘려 떨어졌다.
하연이 둑 위에 서 있었다. 검은 무복 위로 달빛이 흘렀고, 장검은 이미 칼집 밖이었다. 하연은 숨을 고르지도 않고 왈패 넷째와 다섯째의 몽둥이를 차례로 잘랐다. 몽둥이 끝이 물에 떨어져 퐁퐁 소리를 냈다.
“이 배 짐의 사 할은 무림맹 재무당 몫이다.” 하연이 말했다. 목소리가 갑문 벽에 부딪혀 울렸다. “맹 몫을 건드린 자는 맹이 셈한다.”
“당주님, 이 배 짐은 소금이고 관문 통행세는 아직 아니에요.” 보화가 작게 말했다. “사 할은 관문 넘을 때부터예요.”
“지금 그 말을 꼭 해야 하냐?”
“나중에 계산 틀리면 안 되잖아요.”
하연은 대꾸하지 않고 엄 집사 쪽으로 칼끝을 돌렸다. 왈패들이 뒷걸음질 쳤다. 철우가 물에 빠진 염부를 건져 올렸다. 염부가 물을 토하며 웃었다.
노태감은 가마 곁에 서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하얀 수염이 밤바람에 조금 흔들렸다. 노태감은 엄 집사에게 그만하라는 손짓을 했고, 왈패들이 몽둥이 토막을 든 채 물러났다. 그리고 노태감은 보화에게 걸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노태감의 손톱이 깨끗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소금도 흙도 한 번 안 만져 본 손이었다.
“무림맹 당주까지 끌어들였구나.” 노태감이 낮게 말했다. “맹이 상회 일에 칼을 뽑았다는 말은 내일 양주 바닥에 다 퍼진다. 맹주가 그 말을 들으면 저 당주는 끝이다. 너는 저 사람 목을 걸고 소금 이백 섬을 들여온 거다. 그 셈은 했느냐?”
보화는 하연을 보았다. 하연은 칼을 거두면서 보화 쪽을 보지 않았다.
“했어요.” 보화가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노태감은 웃지 않고 가마에 올랐다. 등불들이 둑을 따라 멀어졌다.
수문장이 소리쳤다. “문 열어라!”
갑문 아래 문이 열리고, 배가 들어가고, 문이 닫혔다. 위쪽 수문에서 물이 쏟아져 들어오자 배가 천천히 떠올랐다. 물 오르는 소리가 갑문 벽에 울렸다. 보화는 뱃전을 잡고 배가 한 자씩 올라가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위 구간 물높이에 닿았을 때 멀리서 자정을 알리는 북이 울렸다.
*
새벽 부두에 소금 이백 섬이 내려지자 사람들이 몰려왔다. 상회 가게들은 금씨 막내 소금을 받지 않았으므로, 보화는 부두 돌바닥에 거적을 깔고 직접 팔았다. 섬에 한 냥. 반 섬도 팔고, 한 되도 팔았다. 해가 중천에 오르기 전에 백오십 섬이 나갔다. 허리 굽은 할머니가 또 왔다. 이번에는 동전 한 닢을 내밀었다.
“지난번에 두 닢 냈으니 이번엔 한 닢이오.”
“할머니, 그런 셈이 어디 있어요?”
“단골 셈이오.”
보화는 소금 한 되를 할머니 바구니에 담았다. 할머니가 돌아서자 보화는 몰래 한 줌을 더 얹었다.
장터 쪽에서 소식이 왔다. 상회 소금 가게들이 값표를 고쳐 달기 시작했다고 했다. 섬에 한 냥 반. 오후에는 한 냥 이 전이 되었다.
점심 무렵 보화는 부두 일꾼 아이를 상단 뒷골목으로 보냈다. 얼마 안 가 곰 영감이 조카 만석을 데리고 나타났다. 영감은 여전히 빈 담뱃대를 물고 있었다. 보화가 소금 포대 하나를 툭 쳤다.
“영감님, 잘했어요. 그러니까 다시 부르는 거예요.”
곰 영감은 대답 대신 담뱃대를 허리춤에 꽂고 포대를 어깨에 올렸다. 서른 해 진 짐을 지는 어깨였다. 만석이 따라 포대를 들다가 휘청거렸고, 영감이 그 뒤통수를 쳤다. 이번에는 소리가 경쾌했다.
하연은 부두 끝 말뚝에 앉아 그것을 보고 있었다. 왼쪽 소매가 찢어져 있었고, 그 아래 팔뚝에 가는 핏줄이 말라붙어 있었다. 왈패 몽둥이를 자르다 튄 나무 가시에 긁힌 자리였다. 보화가 다가가 그 옆에 앉았다.
“편지 받고 와 주실 줄 몰랐어요.”
“보름 밤에 갑문에 닿는다고, 맹 몫이 걸렸다고 써 놓고 몰랐다고?”
“오실 확률을 칠 할로 쳤어요.”
“나머지 삼 할은?”
“만두 사 드시느라 늦으시는 거요.”
하연이 보화를 노려보았다. 보화는 하연이 그 만두 한 접시를 끝내 못 사 먹은 아침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당주님, 맹주님이 아시면 어떻게 돼요?”
“당주 자리를 내놓는다. 이미 말했잖아.”
“그럼 그 값은 제 몫에서 드릴게요. 사 할에서 오 할로.”
하연이 처음으로 보화를 똑바로 보았다. “너는 사람 목값도 일 할로 셈하냐?”
“네. 제가 아는 셈이 그것밖에 없어요. 대신 일 할씩 계속 올릴 수는 있어요.”
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찢어진 소매를 걷어 올리고 팔뚝의 핏자국을 침 묻힌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그 손이 아까보다 덜 굳어 있었다.
해가 기울 무렵 부두 끝으로 낯선 사내 하나가 절뚝거리며 걸어왔다. 사내는 목에 두꺼비 쇠붙이를 걸고 있었다. 얼굴 한쪽이 퍼렇게 부어 눈이 반쯤 감겨 있었고, 입술이 터져 있었다. 갈팔이었다.
철우가 일어섰다. 갈팔은 철우를 보고 웃으려다가 터진 입술이 아파서 얼굴을 찡그렸다.
“총채주님이 청석관에서 산적이 만두 먹은 얘기를 들으셨다.” 갈팔이 말했다. “이건 그 값이고.”
갈팔이 자기 얼굴을 가리켰다. 그리고 품에서 접힌 가죽 한 장을 꺼내 보화에게 내밀었다. 가죽에는 칼끝으로 그은 글씨 「흑풍관. 혼자.」가 새겨져 있었다.
“혼자라는 건 저 혼자예요?”
“그래.” 갈팔이 철우를 흘끗 보았다. “근데 총채주님은 네가 혼자 안 올 걸 아신다. 그래서 하나 더 전하라고 하셨다. 데려오려면 칼집도 같이 가져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