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207자)

도장

상단 막내가 무림맹을 샀습니다 · 도경

열한 해 전, 청석관의 겨울밤은 돌벽에서 냉기가 배어 나와 막사 안 이불을 축축하게 만들었다. 열여섯 살 철우는 갈팔 옆자리에서 자다가 이불을 뺏겼고, 뺏긴 이불을 도로 뺏어 오느라 잠을 설쳤다. 그래서 그날 밤 누각 아래가 시끄러워졌을 때 막사에서 제일 먼저 깬 것도 철우였다.

관문 앞 탁자에 늙은 짐꾼 하나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지게에는 말린 생선 몇 꾸러미가 얹혀 있었는데, 통행세를 낼 돈이 모자랐다. 짐꾼은 꾸러미를 다 내놓겠다고 빌었다. 마흑산은 그 앞에 서서 칼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때 마흑산은 서른다섯이었고, 목덜미의 칼자국은 지금보다 셋이 적었다.

“통행세를 안 낸 자는 손 하나를 두고 간다.” 마흑산이 말했다. “철우, 네가 해라. 관문을 서려면 한 번은 해야 한다.”

철우는 칼을 뽑았다. 대장간 영감이 칼집 끝에 이빨 모양으로 쇠를 붙여 준 지 이레 된 칼이었다. 짐꾼이 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눈을 감았다. 그 손등에 굳은살과 생선 비늘이 말라붙어 있었다. 비린내가 났다.

철우는 칼을 도로 칼집에 넣었다. 그리고 칼집째 짐꾼의 손등을 내리쳤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짐꾼이 비명을 질렀고, 손을 감싸 쥐고 땅에 뒹굴었다. 피는 나지 않았다.

마흑산은 오래 말이 없었다. 누각 위에서 졸개들이 숨을 죽였다.

“칼집째로.” 마흑산이 마침내 말했다. “그건 손을 남겨 준 거냐, 네 손을 아낀 거냐?”

철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열여섯이었다.

그날 밤 철우는 칼집을 허리에 차고 관문 뒤 절벽 길로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한 번도 뒤를 보지 않았다. 그 뒤 세 해를 떠돌았고, 열아홉에 양주 부두에서 짐을 지다 금씨 상단 주인 금만복의 눈에 띄었다. 금만복은 철우의 칼집 끝을 보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게 철우가 그 집에 남은 이유였다.

*

옛 나루의 돌계단은 이끼가 껴서 미끄러웠다. 새벽 안개가 운하 위에 낮게 깔려 있었고, 어젯밤 들어온 소금 배는 그 안개 속에 거적을 덮고 웅크리고 있었다. 뱃전에서 바닷물이 마른 자국이 하얀 띠로 남아 있었다.

배 주인은 장포라는 사내였다. 남쪽 바닷가 해염 염전에서 소금을 굽는 염부들의 우두머리로, 서른 남짓에 팔뚝이 보화 허벅지만 했다. 장포는 보화를 처음에 상회 사람인 줄 알고 칼 대신 노를 들었다.

“상회 사람 아니에요. 상회에서 쫓겨난 사람이에요.”

“쫓겨난 사람이 뭘 하러 와?”

“소금 사러요. 상회 소금창 거치지 않고. 섬에 얼마 받으세요?”

장포가 노를 내렸다. “상회는 우리한테 섬에 두 전 쳐준다.”

“두 전이요? 양주에서는 두 냥인데요?”

“그래. 양주에서 두 냥에 파는 소금을, 우리한테서는 두 전에 가져간다. 열 배다. 그래서 밤에 몰래 가져와 옛 나루에서 뒷골목 가게에 판다. 섬에 다섯 전.”

보화의 손가락이 품속 주판 위에서 저절로 움직였다. 섬에 다섯 전에 사서 청석관 너머로 넘기면, 통행세 두 냥을 수레마다 내도 열 배가 남았다.

“섬에 여섯 전 드릴게요. 대신 지금 가진 거 다요. 그리고 다음 배부터는 염전에 직접 가서 살게요. 오늘 이 배 돌아갈 때 저 태워 주세요.”

“여섯 전?” 장포가 눈을 끔뻑였다. “깎는 게 아니라 올리는 거야?”

“올려야 다음에도 저한테 팔죠. 깎는 건 다음 번에 할게요.”

장포가 큰 소리로 웃었다. 안개 속에서 웃음이 물 위를 굴러갔다.

그 웃음 끝에 나루 위쪽 계단에서 발소리가 났다. 여럿이었다. 금대성이 상단 짐꾼 여섯과 함께 안개를 헤치고 내려왔다. 대성의 손에 붉은 비단으로 싼 네모난 것이 들려 있었다. 비단 끝이 풀어져 있어서, 안에 든 옥돌 도장의 모서리가 보였다. 금씨 상단 도장이었다. 아버지가 서른 해를 쓴 도장이었다.

“이 배 못 떠난다.”

“오빠, 이건 상단 배가 아니에요. 장포 아저씨 배예요.”

“옛 나루는 금씨 상단이 관아에서 쓰는 허가를 받은 나루다. 허가는 이 도장 이름으로 났다. 상단 장남이 이 나루에서 배를 못 띄우게 하면 못 띄운다.” 대성이 장포를 보았다. “그리고 당신. 상회 몰래 소금 들여온 걸 관아에 알리면 당신 배는 몰수다.”

장포의 얼굴이 굳었다. 염부들이 뱃전에서 하나둘 일어섰다. 노를 든 손이 많았다.

보화가 그 사이에 섰다. 철우가 보화 반걸음 뒤에 섰다.

“오빠가 관아에 알리면 오빠도 걸려요. 오빠 나루에서 몰래 소금이 오갔으니까요.”

“그래서 미리 와서 막는 거다.” 대성의 목소리가 낮았다. “보화야, 노태감 어른이 알면 상회 약조가 깨진다. 약조가 깨지면 상단은 이번 겨울을 못 넘긴다. 아버지 약값도 상회 돈이야. 알아?”

보화는 몰랐다. 아버지 약값이 어디서 나오는지 물은 적이 없었다. 셈을 그렇게 많이 하면서 그 셈은 한 번도 안 했다. 보화의 손이 주판에서 떨어졌다.

“오빠, 그 약조 깨지 마요. 제가 깰게요.”

“무슨 소리냐?”

보화는 장포 배 고물로 걸어갔다. 고물 기둥에 작은 깃발 하나가 꽂혀 있었다. 어젯밤 보화가 장포에게 소금을 사겠다며 내밀었던 금씨 상단 깃발이었다. 하얀 바탕에 금색 동전 무늬가 수놓인 깃발이었다. 보화는 깃발을 뽑아 둘둘 말았다. 그리고 대성에게 내밀었다.

“이 배에 금씨는 없어요. 금씨 상단 나루에 금씨 아닌 배가 하나 서 있는 거고, 그 배에 금보화라는 사람이 탔어요. 오빠가 관아에 알리시려면 금보화를 알리세요. 상단은 몰랐다고 하시고요.”

대성은 깃발을 받지 않았다. 보화는 깃발을 대성의 도장 위에 얹었다. 비단 위에 비단이 겹쳤다.

“너, 그럼 금씨가 아니게 된다.”

“이름은 먹지도 못한다니까요.” 보화가 웃었다. 웃는데 입꼬리가 한쪽만 올라갔다. “오빠, 아버지 약값 상회 돈이라면서요. 그 약값, 제가 벌어서 드릴게요. 상회 돈 안 쓰셔도 되게요. 그때까지만 그 도장 꼭 쥐고 계세요.”

대성은 도장 위의 깃발을 내려다보았다. 짐꾼 여섯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그중 하나는 곰 영감과 같이 짐을 지던 사내였다. 그 사내가 조용히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또 하나가 물러섰다.

대성이 고개를 들었다. “가라.”

보화는 대성의 얼굴을 보지 않고 배에 올랐다. 배가 흔들렸다. 철우가 뒤따라 올라 뱃전에 섰다. 장포가 삿대로 돌계단을 밀었다. 배가 안개 속으로 미끄러졌다.

나루 쪽을 돌아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보화는 돌아보고 말았다. 대성은 돌계단 위에 그대로 서 있었다. 깃발과 도장을 가슴에 안고 있었다. 안개가 대성을 천천히 지웠다.

*

첫날 밤 배는 갈대밭 옆에 닻을 내렸다. 모기가 구름처럼 일었고, 염부들은 쑥을 태워 연기를 피웠다. 쑥 연기가 눈을 맵게 했는데, 매운 것이 모기에 뜯기는 것보다 나았다. 장포가 보리밥 한 덩이와 짠지 한 쪽을 보화에게 건네더니 손바닥을 내밀었다.

“뱃삯.”

“네?”

“양주에서 해염까지 사람 하나 태우면 오 전이다. 호위까지 둘이니 한 냥.”

“아저씨, 이 배 원래 빈 배로 내려가는 거잖아요. 저 안 타도 노는 똑같이 저으시고요.”

“사람이 타면 배가 무겁다.”

“제가 몇 근인데요? 소금 한 섬보다 가벼워요. 아저씨가 소금 몇 섬 싣고 올라오셨어요? 이백 섬이요? 그 무게를 끌고 올라오신 분이 저 하나 무겁다고 하시면 안 되죠.”

“호위는 무겁잖아.”

장포가 철우를 가리켰다. 철우는 뱃전에 앉아 보리밥을 씹고 있었다. 보화가 철우를 보았다. 철우는 씹는 것을 멈추고 자기 몸을 내려다보았다.

“철우 오빠는 아까 노 저었어요. 반나절이요. 노꾼 품삯이 반나절에 삼 전이에요. 그러니까 아저씨가 철우 오빠한테 삼 전 주셔야 하고, 제 뱃삯 오 전에서 빼면 이 전. 짠지 한 쪽 값 빼면 한 전.”

“짠지는 공짜다!”

“공짜면 빼도 되죠.”

염부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장포는 결국 보화 손바닥에서 동전 한 닢을 집어 갔다. 집어 가면서 혀를 찼는데, 그 혀 차는 소리에 웃음이 섞여 있었다.

밤이 깊어 염부들이 거적 위에서 잠들자 배 위에는 쑥 연기와 물소리만 남았다. 보화는 고물에 앉아 반쪽 주판을 무릎에 올려놓고 알을 튕기지 않았다. 갈라진 나무 결을 엄지로 쓸기만 했다. 철우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와 앉았다.

“아버지 약값이요. 저는 몰랐어요. 오빠가 어디서 구해 오는지 한 번도 안 물었어요.”

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 셈은 잘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제일 가까운 셈을 안 했어요. 오빠는 그걸 혼자 하고 있었는데.”

물 위로 물고기 하나가 튀었다가 떨어졌다. 철우는 그 자리를 한참 보다가 입을 열었다.

“큰도련님은 셈을 늦게 하십니다. 대신 끝까지 하십니다.”

보화는 고개를 돌려 철우를 보았다. 철우는 벌써 다시 물만 보고 있었다. 그날 밤 철우가 한 말은 그것이 다였다.

*

운하를 따라 남쪽으로 이틀을 내려가자 물빛이 바뀌었다. 흙탕물이 연둣빛이 되었다가 회색이 되었고, 사흘째 아침에는 바람에서 소금기가 났다. 염전은 바다를 향해 끝없이 펼쳐진 얕은 못이었다. 못마다 바닷물이 햇볕에 졸아 하얀 결정이 맺혔고, 그 위를 맨발의 염부들이 나무 밀대를 밀며 오갔다. 발바닥이 소금에 쓸려 갈라져 있었다. 땡볕이 염전 바닥에 반사되어 눈을 뜨기가 어려웠다.

보화는 배에서 내리면서 신발을 벗었다. 염부들이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아가씨, 발 다 터져.”

“발 터지는 값도 소금값에 들어가 있잖아요. 얼마나 아픈지 알아야 값을 제대로 쳐 드리죠.”

첫 걸음에 보화는 소리를 질렀다. 두 번째 걸음에는 이를 악물었다. 세 번째 걸음에 철우가 말없이 보화를 등에 업었다. 염부들이 휘파람을 불었다. 보화는 철우 등에서 내려 달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철우 귀에 대고 말했다.

“오빠, 업은 값은 안 드려요.”

“예.”

장포의 염막은 염전 끝 갈대 지붕 아래 있었다. 염부 열댓이 모였다. 보화는 염막 바닥에 반쪽 주판을 놓고 말했다. 섬에 여섯 전, 한 달에 천 섬, 운임은 보화가 대고, 선금으로 지금 가진 은 백 냥을 놓고 가겠다고.

염부들은 기뻐하지 않았다. 서로 얼굴을 보았다. 장포가 한참 머뭇거리다가 염막 안쪽 상자에서 누렇게 바랜 종이 다발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종이마다 붉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보화는 그 붉은 자국을 보자마자 알았다. 창고에서 대성이 들고 있던 종이와 같은 색이었다.

“우리 염전 사람들은 다 노태감한테 빚이 있다.” 장포가 말했다. “흉년에 쌀값을 빌렸다. 빚을 갚을 때까지 우리 소금은 상회한테만 판다고 손도장을 찍었다. 밤배는 우리가 굶어 죽기 싫어서 띄운 거다. 천 섬을 아가씨한테 팔면, 노태감이 이 종이를 들고 관아로 간다.”

“빚이 얼마예요?”

“다 합쳐서 은 천이백 냥.”

보화의 손에는 은 백 냥이 있었다. 주판알이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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