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225자)
이자는 관문으로
상단 막내가 무림맹을 샀습니다 · 도경
무림맹 양주 분타의 금고는 지하 계단을 열두 칸 내려간 곳에 있었고, 문은 손바닥 두 개 두께의 쇠문이었다. 재무당주 하연은 허리에 찬 열쇠로 그 문을 열 때마다 손목에 힘을 주었는데, 문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안을 보기 싫어서였다. 횃불을 들이밀자 텅 빈 선반 위로 쥐 한 마리가 달아났다. 선반 끝에 동전 세 닢이 놓여 있었다. 지난달에는 다섯 닢이었다.
“쥐가 두 닢 가져갔나 보군.”
뒤따라 내려온 분타 집사가 헛기침을 했다. “당주님, 그 두 닢은 제가 지난번 방 붙일 풀값으로 썼습니다.”
하연은 동전 세 닢을 집어 품에 넣었다. 맹 금고가 하연의 품보다 가벼워진 순간이었다.
“경매는 어떻게 됐소?”
“팔렸습니다.”
하연의 눈이 커졌다. 맹주 몰래 경매를 연 사람은 하연 자신이었다. 맹주는 맹채를 다시 사들이는 일을 체면이 깎이는 일이라 여겼고, 하연은 체면보다 빚이 무거웠다. 양주 큰 상회 가운데 하나가 헐값에 사 가면 그 상회와 마주 앉아 원금을 깎고 이자를 미루고, 그렇게 몇 해를 벌 셈이었다.
“어느 상회요? 노태감이오?”
“금씨 상단 막내라는 아가씨입니다. 스물이랍니다. 백 장을 몽땅, 장당 세 냥도 안 되게 사 갔습니다. 마흑산이 탁자에 칼을 꽂았는데도 값을 깎았습니다.”
하연은 그 말을 두 번 들어야 했다. 집사가 두 번째로 말할 때는 손짓까지 보탰는데, 칼이 꽂히는 대목에서 집사의 손이 너무 세게 내려와 선반에 부딪혔다.
“스무 살짜리 상인 하나가 맹의 빚을 다 쥐었다는 말이오?”
“예. 그리고 오늘 저녁 방을 보고 그 아가씨가 ‘그럼 맹이 저한테 빚졌네요’라고 했답니다. 문지기가 들었습니다.”
하연은 계단을 다 올라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 올라가서는 칼을 찼다.
새벽 운하 둑에는 벌써 만두 장수가 솥을 걸어 두었다. 김이 물 위로 낮게 깔렸고, 밤새 짐을 부린 뱃사람들이 쪼그려 앉아 뜨거운 만두를 손바닥 사이로 굴리며 후후 불었다. 하연은 밤을 꼬박 새운 배가 그 냄새에 먼저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품에서 동전 세 닢을 꺼내 솥 앞에 내밀었다.
“한 접시.”
“네 닢입니다, 나리.”
하연은 손바닥의 세 닢을 내려다보았다. 맹 금고를 통째로 털어 온 돈이었다. 만두 장수가 하연의 무복 가슴에 수놓인 맹의 문양을 보더니 눈치 빠르게 말했다. “맹에서 오신 분이면 세 닢에 드리지요. 대신 하나 빼고.”
“빼지 마시오. 하나 모자란 접시를 들고 다니면 맹이 하나 모자라 보이오.”
“그럼 네 닢 주셔야지요.”
하연은 동전을 도로 품에 넣었다. 그리고 빈속으로 금씨 상단 쪽 골목을 향해 걸었다. 뒤에서 만두 장수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하연이 평생 들어 본 혀 차는 소리 가운데 가장 값싼 소리였다.
*
보화는 마구간 옆 철우의 방에서 눈을 떴다. 밤새 말이 콧김을 내뿜는 소리와 건초 냄새가 벽 틈으로 들어왔고, 아침 해는 그 틈으로 가늘게 쏟아져 이불 위에 금을 그었다. 철우는 약속대로 마구간에서 잤다. 마구간 쪽에서 철우가 말 등을 빗질하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렸다.
문을 열자 마당 한가운데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는 무림맹의 검은 무복을 입었고, 허리에 찬 장검 칼집 끝이 땅에 닿을락 말락 했다. 키가 보화보다 머리 하나 컸다. 땡볕 아래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얼굴이었다.
“금보화요?”
“네. 아침 드셨어요?”
“무림맹 재무당주 하연이오. 맹채를 무르러 왔소. 산 값에 다섯 냥을 얹어 주겠소. 장당 다섯 냥이 아니라 백 장 통틀어 다섯 냥.”
“그 다섯 냥은 어디 있어요?”
하연의 입이 잠깐 닫혔다. 품에 든 것은 동전 세 닢이었다.
“맹이 나중에 주겠소.”
“맹이 나중에 주는 게 지금 제가 쥔 거예요. 백 장 다요.” 보화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반쪽 주판을 무릎에 올렸다. “당주님, 저는 무를 생각 없어요. 이자를 받으러 갈 생각이었는데 당주님이 와 주셨으니 길값을 아꼈네요.”
“맹은 이자를 못 내오. 방에 다 적어 두었소.”
“못 내시는 건 알아요. 그래서 얼마를 못 내시는지 같이 세 보려고요.” 알이 튀었다. “액면 만 냥에 한 해 이자가 일 할이면 천 냥이에요. 그런데 맹채 뒷면을 보니까 이자를 미루면 미룬 이자에도 이자가 붙는다고 맹이 직접 써 놓으셨어요. 첫해 천 냥, 이듬해에는 천 냥에 백 냥이 붙어서…”
“잠깐.”
“세 해 미루시면 삼천삼백십 냥이에요. 다섯 해면…”
“잠깐이라 했소.” 하연은 왼손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천, 천백, 그다음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하연은 오른손을 마저 펴 들었다가 칼자루를 쥔 것을 깨닫고 도로 내렸다. 마구간에서 빗질 소리가 끊겼다. 철우가 말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다섯 해면 육천백 냥 조금 넘어요. 손가락으로 하시면 발가락까지 쓰셔야 해요.”
하연의 얼굴이 처음으로 붉어졌다. 칼이 칼집에서 세 치쯤 나왔다. 아침 해가 그 세 치에 걸려 마당 벽에 하얀 줄을 그었다. 철우가 마구간에서 나와 두 사람 사이 열 걸음 떨어진 자리에 섰다. 칼은 뽑지 않았다. 손은 칼자루에서 한 뼘 위에 떠 있었다.
“그 숫자를 맹주께서 들으시면 나는 당주 자리를 내놓는다. 너 그거 알고 하는 소리지?”
말투가 바뀌었다. 보화는 그 변화를 들었다. 공문 말투가 무너지면 사람이 나온다.
“알아요. 그래서 돈으로 받을 생각 없어요.”
“그럼 무엇으로?”
“맹채 담보가 관문 다섯 통행세잖아요. 통행세를 받을 권리는 맹이 가진 관문 통행권 패에 붙어 있고요. 이자는 관문으로 받겠습니다. 패 다섯 장 주세요.”
하연은 칼을 도로 넣지도 더 빼지도 않은 채 서 있었다. 매미가 울다 그쳤다.
“그 패는 지금 아무 소용이 없다. 관문 셋은 마흑산이 쥐었고 넷째 철문관은 조정 관군이 들어앉았다. 다섯째 북명관은 맹 안에서도 가 본 자가 없어. 패를 들고 가면 녹림이 웃고 관군이 웃는다.”
“웃으라고 하죠. 웃는 사람은 흥정이 돼요. 안 웃는 사람이 무섭지.”
“맹은 너한테 사람 하나 못 붙여 준다. 맹 무사들 녹봉도 석 달째 밀렸다.”
“사람은 있어요.” 보화가 턱으로 철우를 가리켰다. 철우는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연이 철우를 위아래로 훑었다. 철우의 칼집은 쇠가죽을 여러 겹 덧대어 무거웠고, 칼집 끝이 짐승 이빨처럼 닳아 있었다. 하연의 눈이 그 닳은 자리에 오래 머물렀다.
“칼을 칼집째 쓰는군.”
“예.”
“왜?”
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보화가 대답했다. “베면 치료비가 들어요. 쳐서 눕히면 반값이고요.”
하연이 처음으로 웃었다. 웃는다기보다는 숨이 코로 한 번 빠져나갔다. 칼이 칼집으로 들어갔다.
“조건이 있다.” 하연은 툇마루 맞은편 마구간 기둥에 등을 기댔다.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관문 하나도 못 열면 패 다섯은 맹으로 돌아온다. 맹채 백 장도 함께. 대신 그 사이 맹은 이자를 한 푼도 안 낸다.”
“서리 전이면 석 달 남짓이네요. 석 달 이자 이백오십 냥을 그냥 접으라는 거고요.”
“그래.”
“관문 하나 열면요?”
“연 관문 통행세의 절반은 너, 절반은 맹. 맹채 원금은 그 절반으로 갚아 나간다.”
“칠 대 삼이요. 제가 칠.”
“육 대 사.”
“칠 대 삼. 관문 여는 데 드는 칼은 제 쪽 칼이고, 맹은 패 한 장 써 주시는 게 다예요.”
“그 패 한 장이 맹의 이름이다.”
“이름은 먹지도 못한다고 어제 우리 오빠한테 말했다가 집에서 쫓겨났어요. 그러니까 이름값은 제가 잘 알아요. 육 대 사로 하죠. 대신 제가 연 관문 이름은 제가 붙여요.”
하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관문에 이름을 왜 새로 붙여?”
“안 붙여요. 그냥 그 말 하나 받아 두면 나중에 뭐든 붙일 수 있잖아요.”
하연은 한참 보화를 보다가, 끝내 이 흥정에서 무엇을 졌는지 알아내지 못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연이 품에서 꺼낸 것은 돈이 아니라 검은 쇠붙이 다섯 장이었다. 손바닥만 한 쇠판에 관문 이름이 하나씩 새겨져 있었다. 청석, 흑풍, 낙안, 철문, 북명. 오래 품고 다녔는지 쇠가 사람 몸 온도로 미지근했다.
“맹주 몰래 경매를 연 것도 나고, 이 패를 내주는 것도 나다. 일이 틀어지면 내 목이 먼저 간다.”
“그럼 당주님 목값까지 셈에 넣을게요.”
“넣지 마라. 비싸다.”
*
하연이 대문을 나서기도 전에 대문이 먼저 열렸다. 금대성이 짐꾼 넷을 거느리고 들어왔다. 대성은 하연의 검은 무복을 보고 멈칫했다가, 보화 무릎 위에 쌓인 쇠패를 보고 얼굴빛이 바뀌었다.
“그게 뭐냐?”
“관문 통행권 패요. 이자로 받았어요.”
“이자로.” 대성이 그 말을 되씹었다. “혼숫돈 이백칠십 냥으로 쇳조각 다섯 개를 샀다는 거냐? 어머니가 너 시집갈 때 쓰라고 남긴 돈으로?”
마당이 조용해졌다. 짐꾼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 쳤다. 철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시집갈 데가 없어요, 오빠. 상단이 망하면 금씨 막내는 노태감 상회 아래서 소금 포대 세는 일꾼이 돼요. 그 돈은 제가 시집 대신 쓴 거예요.”
“너는 늘 그렇게 말을 비틀지.” 대성의 목소리가 떨렸다. 화가 나서 떨리는 건지 다른 무엇 때문에 떨리는 건지 보화는 가늠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아시면…”
“아버지는 아세요. 어젯밤에 말씀드렸어요. 손가락 하나 움직이셨어요.”
“그건 아무 뜻도 없는 거다.”
“그럼 오빠가 들어가서 여쭤 보세요. 저는 손가락 하나에 맹채 백 장 걸었어요.”
대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보화를 지나쳐 하연에게 고개를 숙였다. “당주님, 저희 막내가 무례했습니다. 상단의 뜻이 아닙니다. 상단 일은 제가 정합니다.”
하연은 대성과 보화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아무 편도 들지 않고 대문을 나갔다. 나가면서 한마디만 했다. “패는 사람 손에 준 것이지 상단에 준 것이 아니오.”
대성의 어깨가 굳었다.
보화는 대성이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대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보화는 툇마루에서 일어나 대문 기둥에 손을 짚고 골목을 내다보았다.
골목 끝 그늘에 가마 한 채가 서 있었다. 검은 옻칠에 금박 학이 날고 있었고, 가마꾼 넷은 해가 뜬 지 한참인데도 어깨에 땀 한 줄 없었다. 양주에서 그런 가마를 타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가마 창의 발이 걷히고 하얀 수염 한 자락이 보였다. 노태감이 대성에게 손짓했다.
대성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가마에 올랐다.
보화의 손 안에서 쇠패 다섯 장이 서로 부딪쳐 짤그랑 소리를 냈다. 철우가 어느새 곁에 와 있었다.
“철우 오빠.”
“예.”
“청석관까지 며칠이에요?”
“나흘.”
처음으로 두 글자였다. 보화는 그 두 글자를 반쪽 주판 위에 놓듯 마음속에 놓았다. 나흘이면 소금 한 수레가 상하지 않고 갈 수 있는 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