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84자)
맹이 저한테 빚졌네요
상단 막내가 무림맹을 샀습니다 · 도경
금씨 상단의 셋째 창고는 운하 쪽으로 난 문을 닫아 두면 한낮에 숨이 막혔다. 지붕까지 쌓인 소금 포대가 습기를 먹고 땀을 흘렸고, 그 땀이 마르면서 포대 겉에 하얀 소금꽃이 피었다가 다시 젖어 돌처럼 굳었다. 금보화는 포대 하나를 주먹으로 쳐 보았다. 소리가 둔했다. 손등이 아팠다.
“이게 소금이에요, 맷돌이에요?”
“소금이다.” 큰오빠 금대성이 문간에서 부채를 부치며 말했다. “세 해 전에는 소금이었고, 지금은 맷돌이다. 그래서 파는 거다.”
대성은 손에 접힌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양주 상회장 노태감의 붉은 인장이 종이 뒤까지 배어 나와 있었다. 보화는 그 붉은 자국을 보자마자 무슨 종이인지 알았다.
“얼마래요?”
“은 이천 냥. 창고 넷, 짐마차 스물, 일꾼 예순, 그리고 금씨라는 이름까지.”
“이름은 왜 사요? 이름은 먹지도 못하는데.”
“이름이 있어야 북쪽 거래처가 노태감한테 넘어가지.” 대성이 부채를 접었다. “보화야. 북쪽 관문 다섯 가운데 셋을 녹림이 쥐었다. 소금 한 수레 넘기려면 통행세를 세 번 낸다. 세 번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어. 아버지 누우신 지 반년이다. 내가 장남이다.”
녹림은 산을 근거로 길을 막고 사는 산적 무리를 강호에서 부르는 말이었다. 보화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숲 냄새를 떠올렸는데, 실제로 녹림이 상단에 남긴 것은 숲 냄새가 아니라 썩은 소금 냄새였다.
“오빠가 장남인 건 알아요. 근데 이천 냥은 아니에요. 창고 땅값만 천육백이에요. 짐마차는 바퀴 갈면 한 대에 삼십 냥은 받고요.”
“그럼 너는 얼마면 파는데?”
“안 팔아요.”
“그러니까 얼마면?”
“안 판다니까요. 값을 물으면 제가 버릇처럼 대답하잖아요. 그거 노리는 거 다 알아요.”
대성은 웃지 않았다. 큰오빠가 웃지 않으면 대개 이미 무언가를 정해 놓은 뒤였다. 보화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흑단 주판을 꺼냈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들고 온 주판이었고, 알 하나하나가 손때로 검게 반들거렸다. 보화가 알을 튕기자 마른 콩 터지는 소리가 창고 안에 퍼졌다.
“오늘 무림맹 양주 분타에서 경매가 있어요.”
“맹채 말이냐?” 대성의 얼굴이 처음으로 구겨졌다. “너 그거 사러 가면 내가 다리를 분지른다.”
“오빠가 분지르면 치료비는 오빠가 내는 거예요.”
*
무림맹은 강호의 큰 문파들이 모여 만든 연맹으로, 북쪽 관문 다섯을 지키는 일을 맡아 왔다. 지키는 데는 돈이 들었고, 맹은 그 돈을 빌렸다. 빌리면서 써 준 차용 증서를 사람들은 맹채라고 불렀다. 담보는 관문 다섯의 통행세였다. 문제는 세 해 전에 관문 셋이 녹림 손에 넘어갔다는 것이었다. 통행세가 맹으로 안 들어오니 맹은 이자를 못 냈고, 이자를 못 내는 증서는 종이였다.
분타 대청은 사람으로 꽉 찼는데 이상하게 조용했다. 맹채를 쥔 채권자들이 앞줄에 앉아 손에 든 증서를 부채처럼 흔들었다. 다들 팔러 온 사람들이었다. 사러 온 사람은 없었다.
경매를 맡은 분타 집사는 머리가 하얀 노인이었고, 목소리만은 젊었다. “맹채 백 장. 장마다 액면 은 백 냥. 오늘 한 장이라도 팔리면 맹이 체면을 조금 덜 구깁니다. 한 장에 열 냥부터 받겠습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매미 소리가 창살을 넘어 들어왔다.
보화는 뒷줄을 돌아보았다. 맨 뒤 기둥 옆에, 다른 사람들이 한 자리씩 비워 둔 걸상에 덩치 큰 사내 하나가 앉아 있었다. 마흔은 넘어 보였고, 검게 탄 목덜미에 칼자국이 사슬처럼 이어져 있었다. 사내는 칼집에서 반쯤 뺀 칼을 무릎에 가로 올려놓고 숫돌 없이 손가락으로 날을 쓸고 있었다. 그리고 앞줄에서 누가 몸을 들썩일 때마다 그 사람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
“저 사람 누구예요?”
보화 곁에 선 철우는 대답 대신 아주 조금 고개를 끄덕였다. 철우는 아버지가 거둔 호위 무사로, 여덟 해 동안 보화 곁에 서 있으면서 하루에 열 마디를 넘긴 날이 손에 꼽혔다. 대신 철우가 끄덕이는 깊이로 보화는 많은 것을 알았다. 지금 끄덕임은 아주 얕고 길었다.
앞줄 채권자 하나가 속삭였다. “녹림 총채주 마흑산이야. 관문 셋 쥔 놈. 저놈이 와 있는데 누가 사겠어? 사는 순간 그 얼굴 외워서 산길에서 만나자는 거지.”
“열 냥에 없습니까?” 집사가 물었다. “여덟 냥.”
조용했다.
“다섯 냥.”
보화가 손을 들었다.
대청 안의 머리가 일제히 돌아갔다. 뒷줄 마흑산의 손가락이 칼날 위에서 멈췄다.
“다섯 냥에 한 장 받겠습니다, 아가씨?”
“아니요. 세 냥에 백 장 다요.”
집사가 입을 벌렸다. “값을… 내리시는 겁니까? 경매에서?”
“아무도 안 사잖아요. 다섯 냥에 아무도 안 사는 물건은 다섯 냥짜리가 아니에요. 세 냥이면 제가 오늘 다 치워 드릴게요. 맹은 체면을 백 장어치 덜 구기시고요.”
앞줄 채권자들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누군가 “세 냥이라도 받는 게 어디냐”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백 냥짜리를 세 냥에?” 하고 울상을 지었다. 울상을 지은 사람이 제일 먼저 증서를 내밀었다.
그때 뒷줄에서 걸상이 밀리는 소리가 났다.
마흑산은 서두르지 않고 걸어왔다. 걸을 때마다 마룻바닥이 한 번씩 낮게 울었고, 사람들이 무릎을 접어 길을 내주었다. 땀과 가죽과 말똥이 섞인 냄새가 먼저 왔다. 마흑산은 보화의 탁자 앞에 서더니 칼을 내리꽂았다.
칼은 탁자 위에 놓인 흑단 주판의 한가운데를 지나 나무판에 손가락 두 마디 깊이로 박혔다. 주판이 둘로 갈라졌다. 알들이 튀어 바닥을 굴렀고, 대청 구석까지 또르르 굴러간 알 하나가 기둥에 부딪혀 멈췄다.
철우의 손이 칼자루로 갔다. 보화가 철우의 소매를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보화는 그 손을 놓지 않고 말했다.
“총채주님이세요?”
“그래.” 목소리가 낮고 느렸다. “녹림에서는 흥정할 때 칼을 먼저 올려놓는다. 아가씨는 무엇을 올려놓나?”
“주판이요. 방금 반으로 줄었지만요.”
“그 맹채는 휴지다. 관문은 내 손에 있다. 맹은 관문을 못 찾는다. 그러니까 그 종이로 아가씨가 받을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럼 총채주님은 휴지 사는 걸 왜 막으세요?”
마흑산의 눈썹이 한 치쯤 올라갔다. 보화는 그 한 치를 보았다. 값을 깎는 상대가 한 치 물러설 때와 똑같은 높이였다.
“휴지면 제가 사도 아무 일 없잖아요. 막으러 오셨으면 휴지가 아닌 거고요. 총채주님이 오늘 여기 앉아 계신 것 자체가 이 종이 값을 올려 주셨어요. 고맙습니다.”
대청 어딘가에서 누군가 숨을 너무 크게 들이켰다가 기침을 했다.
마흑산은 칼을 뽑지 않았다. 대신 박힌 칼자루에 손을 얹고 보화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눈길이 보화 뒤에 선 철우에게로 옮겨 갔고, 거기서 오래 머물렀다. 철우는 고개를 숙이지도 들지도 않았다. 보화는 철우의 소매 속에서 팔뚝 힘줄이 한 번 굵어졌다가 풀리는 것을 손끝으로 느꼈다.
“사 봐라.” 마흑산이 말했다. “사고 나서 관문으로 와라. 관문 앞에서는 주판 반쪽으로는 모자랄 거다.”
“그럼 통행세는 얼마예요?”
“뭐?”
“소금 한 수레에 얼마 받으세요? 지금 물어 두면 나중에 안 놀라잖아요. 제가 깎을 거라서요.”
마흑산이 처음으로 웃었다. 웃음은 짧았고, 소리가 없었고, 탁자에 박힌 칼보다 더 무서웠다. 그는 칼을 뽑아 칼집에 꽂더니 대답 없이 대청을 나갔다. 마흑산이 나간 문으로 매미 소리가 다시 쏟아져 들어왔다.
집사가 떨리는 손으로 붓을 들었다. “세… 세 냥에 백 장. 은 삼백 냥입니다.”
“이백칠십 냥이요.”
“아가씨, 방금…”
“칼 맞을 뻔한 값으로 삼십 냥 빼 주세요. 제 주판값도 있고요.”
집사가 앞줄을 보았다. 채권자들은 한 사람도 반대하지 않았다. 다들 마흑산이 앉았던 걸상을 보며 빨리 증서를 넘기고 싶어 했다.
보화는 품에서 은표 한 묶음을 꺼냈다. 은표는 환전소에 은을 맡기고 받는 종이 증서로, 양주에서는 은덩이보다 은표가 더 잘 돌았다. 묶음을 싼 붉은 끈에는 작게 수놓은 원앙 한 쌍이 있었다. 어머니가 딸 혼수로 떼어 두었다가 끝내 직접 건네지 못한 돈이었다. 보화는 끈을 풀면서 원앙 쪽을 보지 않았다.
*
해가 운하 서쪽으로 넘어갈 무렵 보화와 철우는 분타 앞 돌계단에 앉아 있었다. 보화 무릎 위에는 반쪽 주판과, 철우가 대청 바닥을 기어 다니며 주워 온 알 서른한 개가 놓여 있었다. 알은 서른다섯 개였다. 넷은 끝내 못 찾았다.
“넷은 마흑산이 물어 줘야겠어요.”
“예.”
“예가 뭐예요? 같이 받으러 가자는 거예요, 그냥 대답한 거예요?”
철우는 대답 대신 품에서 알 하나를 더 꺼내 보화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기둥 밑에서 굴러다니던 그 알이었다. 서른둘.
보화는 반쪽 주판에 알을 하나씩 다시 끼웠다. 갈라진 자리의 나무 결이 손가락에 걸렸다. 반쪽이라도 열 자리까지는 셀 수 있었고, 보화가 세어야 할 숫자는 아직 열 자리를 넘지 않았다.
“아까 마흑산이 오빠를 왜 그렇게 봤어요?”
철우의 턱이 아주 조금 굳었다. 이번에는 끄덕이지도 않았다. 보화는 더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도 흥정이었다. 지금 물으면 철우는 입을 닫을 것이고, 나중에 물으면 무엇이든 하나는 내놓을 것이었다.
계단 아래로 금씨 상단의 짐꾼 둘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한 사람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아가씨, 큰도련님이 창고 문을 다 잠그셨습니다. 아가씨 방 열쇠도 거두어 가셨어요. 맹채 들고 들어오면 들이지 말라고요.”
“방 열쇠는 제 거예요.”
“열쇠 값은 상단이 냈답니다.”
“그럼 자물쇠는 제가 샀으니까 반반이네요.” 보화는 일어나 치맛자락의 먼지를 털었다. “오늘은 철우 오빠 방에서 잘게요.”
철우가 처음으로 보화를 돌아보았다. 눈이 커져 있었다.
“오빠는 마구간에서 자고요.”
철우의 눈이 원래 크기로 돌아갔다.
그때 분타 문이 열리고 젊은 문지기가 커다란 종이 한 장과 풀 그릇을 들고 나왔다. 문지기는 분타 벽에 풀을 바르고 종이를 붙인 뒤,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 도망치듯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저녁 바람에 젖은 종이 귀퉁이가 펄럭였다.
보화는 계단을 올라가 방을 읽었다. 무림맹 재무당의 이름으로 붙은 방이었다. 이번 달 보름에 내야 할 맹채 이자를 맹의 사정으로 내지 못한다고, 기일을 정하지 않고 미룬다고 적혀 있었다. 끝에는 맹주의 인장 대신 재무당주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보화는 방 앞에서 반쪽 주판을 튕겼다. 백 장, 액면 은 만 냥, 연 이자 일 할. 알 다섯 개가 위로 올라갔다.
“철우 오빠.”
“예.”
“이자를 못 낸대요. 백 장 다 제 건데.” 보화가 방의 인장 자리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풀이 아직 덜 말라 손끝에 붉은 인주가 묻었다.
“그럼 맹이 저한테 빚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