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166자)

산불

용병 회사가 우리 사단을 샀다 · 문가온

4월 28일 아침 여덟 시, 한여울사단 위병소 앞에 검은 승합차 셋이 줄지어 섰다. 국회 국방위원 둘이 내렸고, 뒤이어 크루거와 진무혁과 백지훈이 내렸다. 방송사 카메라 둘이 그들을 따라 내렸다. 바람이 북서쪽에서 세게 불었다. 열흘째 비가 오지 않았고, 연병장의 흙이 말라서 군화가 지날 때마다 흰 먼지가 일었다.

레온이 위병소 앞에서 의원들을 맞았다. 레온은 오늘 넥타이를 맸다.

“영감들, 먼 길 오셨소.”

나이 많은 쪽 의원이 웃음을 터뜨렸고, 젊은 쪽 의원은 웃어도 되는지 진무혁의 얼굴을 살폈다. 진무혁은 웃지 않았다. 크루거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같이 웃었다.

의원들은 창고 막사를 둘러보았다. 젊은 쪽 의원이 침상 끝에 선 민수에게 물었다.

“병장님, 회사랑 같이 지내 보니 어떻습니까?”

“병장 탁민수. 저희 가동률은 백 퍼센트입니다, 의원님. 이번 분기 경계 공백 시간 영입니다. 회사와 얼라인이 잘되고 있습니다.”

의원이 수첩에 무언가 적었다. 민수 뒤에서 은별이 깁스 팔로 민수 허리를 찔렀다. 재민은 창고 천장을 보았다. 웃으면 안 되는 자리였다.

*

열 시, 철책 동쪽 끝 이 킬로 지점의 통문 앞에 국군 열이 줄을 섰다. 크루거가 정한 열이었다. 은별은 빠졌고 민수가 들었다. 통문 남쪽 오십 미터에 의원들과 카메라가 섰고, 그 옆 천막 아래에 상황실과 이어진 화면이 설치되었다. 재민은 줄 맨 앞에 섰다. 크루거가 정한 열 명 안에 재민의 이름은 없었고, 재민은 이번에도 자기 이름을 맨 위에 써 넣었다.

에밀리가 천막 아래에서 태블릿을 안고 있었다. 재민과 눈이 마주치자 에밀리가 태블릿을 조금 들어 보였다. 재민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이었다.

통문이 열리기 직전, 북쪽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처음에는 비탈 하나의 회색 줄기였다. 북쪽 초소 아래 마른 덤불에서 시작된 연기였고, 북서풍을 받아 남쪽으로 눕더니 순식간에 넓어졌다. 오 분 뒤 연기 밑에서 불이 보였다. 마른 갈대와 지난해의 낙엽이 불을 받아 혀처럼 길게 핥아 내려왔다. 그리고 소리가 났다. 불길 속에서 둔하게 터지는 소리가 하나, 조금 있다 둘, 셋. 비탈의 흙 속에 묻혀 있던 옛 지뢰들이 불에 달궈져 터지는 소리였다.

의원들이 한 걸음씩 물러섰다. 카메라는 물러서지 않았다.

*

열 시 이십 분, 지휘 벙커의 상황판 위에서 붉은 띠가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바람 때문에 불은 오 분에 백 미터씩 내려왔다. 철책을 넘는 데 십오 분, 철책 남쪽 사 킬로 아래의 솔뫼마을까지 한 시간 반. 솔뫼마을에는 비닐하우스 마흔 동과 집 스물두 채가 있었고, 사람이 예순한 명 살았다. 대부분 일흔이 넘었다.

크루거가 영어로 빠르게 말했다. 에밀리가 옮겼다. 상황판 둘레에 의원 둘과 진무혁과 레온과 재민이 서 있었고, 카메라 하나가 벙커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사님 지시예요. 회사 인원은 사단 탄약고와 장비고 방어로 전부 돌리고, 철책 남쪽의 불 저지선과 마을 대피는 국군이 맡는다. 비무장지대와 철책에 붙은 지역은 국군 소관이다.”

“철책을 넘어온 불은 비무장지대 밖입니다.” 재민이 말했다. “협정은 거기까지 안 막습니다. 회사 사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크루거가 대답했다. 에밀리가 옮겼다.

“이사님이 그러세요. 불 앞에 서면 사람이 다친다. 다치면 손실률이 오른다. 오늘은 재계약 검열 날이다.”

재민은 크루거를 보지 않고 의원 둘을 보았다. 그리고 진무혁을 보았다. 진무혁은 상황판의 붉은 띠를 보고 있었다.

“국장님. 국군 스물아홉 가운데 지금 설 수 있는 사람은 스물일곱입니다. 철책 저지선에 스물일곱을 세우면 마을에 갈 사람이 없습니다. 마을 예순한 명은 누가 업습니까?”

진무혁이 입을 열지 않았다. 나이 많은 쪽 의원이 진무혁을 보았다.

재민이 에밀리를 돌아보았다.

“지금 켜십시오.”

에밀리가 태블릿을 상황판 옆 화면에 연결했다. 크루거가 영어로 무언가 말하며 손을 뻗었고, 에밀리가 그 손을 피해 한 걸음 옆으로 섰다. 화면에 표가 떴다. 「국군 잔류 인원 · 위탁 후 이십팔 일 · 회사 기준 손실률 10.0%」.

“회사가 세는 방법대로 국군을 세었습니다.” 에밀리가 한국말로, 그리고 영어로 같은 말을 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부상 둘, 사망 하나. 계약 기준의 열두 배예요.”

벙커 안이 조용해졌다. 계단 위의 카메라가 붉은 불을 켠 채 그 화면을 찍고 있었다.

*

레온은 그 화면을 보았다.

화면의 숫자는 레온이 아는 숫자였다. 레온이 매일 아침 보는 표와 모양이 같았고, 글씨체도 같았으며, 소수점 아래 자리까지 똑같이 맞춰져 있었다. 에밀리가 회사의 틀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다른 것은 맨 위 제목 한 줄과 숫자 하나뿐이었다.

레온은 칠레 남쪽 바다의 바위를 떠올렸다. 그날 밤 장군의 셈은 맞았다. 헬기를 띄웠으면 둘을 더 잃었다는 것을 레온은 서른 해 동안 의심하지 않았다. 장군은 넷을 잃었고, 둘을 아꼈다. 그 둘 가운데 하나가 레온이었다. 레온은 그 셈 덕에 살았고, 그래서 서른 해 동안 그 셈을 미워하는 법을 몰랐다.

화면 앞에서 재민이 레온을 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청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날 밤 바위 위에서 소대원들이 은별을 보던 얼굴이었다.

레온이 에밀리에게 옮기라고 손짓하고, 크루거에게 영어로 말했다. 에밀리가 옮겼다.

“계약서 제사 조. 사단의 작전 지휘는 한국 법인 사장이 갖는다. 본사 이사의 지시는 권고다. 소인이 사령관이오.” 레온이 무전기를 들었다. “라투 분대, 구룽 분대, 비슈넵스카 감시조. 솔뫼마을로. 마을 사람 전원을 업어 내시오. 나머지 공병은 철책 남쪽 저지선으로. 국군 옆에 서시오. 앞에 서도 되오.”

크루거가 레온의 팔을 잡았다. 레온이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크루거가 손을 놓았다.

“레온, 숫자가 무너집니다.” 크루거의 영어를 에밀리가 옮겼다.

“소인의 숫자요. 소인이 무너뜨리오.”

*

열한 시 사십 분, 불이 철책을 넘었다. 철책 남쪽 비탈의 소나무 숲에 불이 붙자 불길이 나무 꼭대기까지 한꺼번에 뛰어올랐다. 송진 타는 냄새가 매캐하게 코를 찔렀고, 연기가 해를 가려 한낮이 저녁처럼 누레졌다. 국군 스물일곱과 회사 공병 백여 명이 철책 남쪽에 불이 건너오지 못하게 땅을 긁어 둔 방화선에 나란히 섰다. 갈퀴로 낙엽을 긁어내고, 등짐 펌프로 물을 뿌리고, 마른 덤불을 베어 냈다. 재민 옆에서 회사 공병 하나가 헐떡이며 무언가 영어로 말했다. 재민은 못 알아들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공병도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갈퀴를 다시 들었다.

솔뫼마을에서는 니코가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한국말을 몰라서 문이 열리면 연기 쪽을 가리키고 자기 등을 가리켰다. 첫 집의 할아버지가 니코를 보고 문을 다시 닫으려 했다. 비샬이 뒤에서 소리쳤다.

“할아버지, 불이에요! 빨리빨리 가요! 이 사람 착해요! 우리 반장님 친구예요!”

할아버지가 니코 등에 업혔다. 니코는 할아버지를 업고 마을 어귀의 회사 트럭까지 오백 미터를 뛰었다. 다시 돌아왔다. 다시 업었다. 마그다는 마을 뒷산 능선에 올라 불이 어디로 내려오는지를 번역기로 비샬에게 알렸고, 번역기는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마그다는 오늘 짧은 말만 골라 썼다. 왼쪽. 빨리. 지금.

열두 시 오십 분, 바람이 바뀌었다. 불길 한 줄기가 마을 북쪽 비닐하우스로 꺾여 들었다. 비닐이 녹는 냄새가 지독했다. 마지막 집에 할머니 한 사람이 남아 있었다. 가지 않겠다고 했다. 염소 두 마리를 두고 갈 수 없다고 했다. 니코가 할머니를 업었고, 비샬이 염소 두 마리의 줄을 잡았다. 염소가 버텼다. 비샬이 염소를 하나씩 겨드랑이에 끼었다.

니코가 마을 어귀에 거의 다 왔을 때 불붙은 비닐하우스 뼈대 하나가 바람에 꺾여 니코 쪽으로 넘어졌다. 니코는 할머니를 업은 채 몸을 돌려 등으로 받았다. 할머니는 다치지 않았다. 니코의 왼쪽 어깨와 팔에서 전투복이 녹아 살에 붙었다.

*

오후 세 시, 불은 솔뫼마을 직전의 개울에서 멈췄다. 바람이 다시 북쪽으로 돌았고, 회사 헬기 둘이 개울물을 퍼다 부었다. 마을 사람 예순한 명은 전원 사단 연병장의 천막으로 옮겨졌다. 염소 두 마리도 같이 왔다. 비닐하우스 열넷이 탔고, 집은 하나도 타지 않았다.

회사 인원 열한 명이 다쳤다. 화상 일곱, 연기 흡입 셋, 발목 골절 하나. 니코가 가장 심했다. 의무대 침상에 엎드린 니코의 왼쪽 어깨에 젖은 거즈가 덮여 있었다. 니코는 그 상태에서 재민을 보더니 오른손 엄지를 들었다. 손바닥이 그을려 까맸다.

“불라.” 니코가 말했다.

“불 끄고 와서 불라라고 하면 어떡해.” 민수가 말했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이제 진짜 불 났다는 말로 들립니다.”

저녁 여섯 시, 지휘 벙커의 큰 화면에 회사의 분기 표가 떠 있었다. 「계약 인력 손실률 0.9%」. 영점팔을 넘은 숫자는 붉은색이었다. 크루거가 그 화면 앞에서 레온에게 무언가 짧게 말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레온은 따라가지 않았다. 의원 둘은 저녁 여섯 시 반 승합차로 서울에 돌아갔다. 나이 많은 쪽 의원이 떠나기 전에 재민의 손을 오래 잡았다. 젊은 쪽 의원은 수첩의 한 쪽을 찢어 버렸다. 아침에 민수의 말을 적었던 쪽이었다.

*

밤 아홉 시, 재민이 의무대 앞 계단에 앉아 있을 때 백지훈이 다가왔다. 넥타이를 아예 풀어 주머니에 넣었고, 셔츠에서 연기 냄새가 났다. 백지훈은 재민 옆에 앉아 한참 말이 없다가, 연병장 천막 쪽에서 염소가 우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국장님이 방금 다른 회사에 전화하셨어요. 삼십 분 통화하셨어요.”

“어디입니까?”

“발레타보다 단가가 이십 퍼센트 싼 데요. 미국계예요. 손실률을 계약 지표로 안 쓰는 회사예요.” 백지훈이 무릎 사이로 손을 모았다. “그 회사는 다치는 사람을 아예 안 세요. 대신 철책 일 킬로당 비용만 세요. 국장님이 아까 그 회사 사람한테 그러셨어요. 오늘 같은 날이 다시 오면 안 된다고.”

의무대 문이 열리고 레온이 나왔다. 넥타이는 어디 갔는지 없었고, 셔츠 소매에 니코의 피와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레온은 계단 아래에서 재민과 백지훈을 내려다보았다. 둘의 얼굴을 보고, 무슨 말이 오갔는지 알아챈 얼굴이었다.

“들었소?” 레온이 물었다.

“들었습니다.”

레온이 계단 맨 아래 칸에 앉았다. 쉰두 살의 무릎이 소리를 냈다. 셋은 한동안 연병장 천막의 불빛을 보았다. 천막 안에서 솔뫼마을 할머니가 니코의 이름을 물어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덩치 큰 외국 사람, 이름이 뭐야? 에밀리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니코요, 할머니. 니코 라투.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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