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96자)

다음 사단

용병 회사가 우리 사단을 샀다 · 문가온

4월 30일 아침 아홉 시, 연병장에는 이번에는 안개가 없었다. 지난밤 바람이 산불 연기를 남쪽으로 다 쓸어 갔고, 대신 하늘에 탄 냄새가 엷게 남았다. 깃대 둘에 태극기와 은색 열쇠 깃발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회사 의장대 넷이 깃대 아래에 섰다. 매주 월요일에 하는 국기 강하 연습이었는데, 오늘은 국군 스물여덟이 연병장 가장자리에 줄을 서서 보고 있었다.

의장대가 연습용 사단기를 내렸다. 길게 두 번 접었다. 국군 줄이 숨을 멈췄다. 가로로 세 번 접었다. 학이 바깥에 있었다. 마지막에 술 달린 끝을 안으로 넣었다. 삼각형이 아니었다.

민수가 박수를 쳤다. 재민이 말릴 틈이 없었다. 국군 스물여덟이 따라 쳤고, 의장대 넷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보다가 하나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깃발 수업은 스물다섯 번째 저녁이었다. 국방부 지원비는 이틀 전에 들어왔다. 수업료로 나가던 밥은 그날로 끝났는데, 의장대는 어젯밤에도 창고 앞에 와서 수업을 받고 갔다.

*

열 시, 위병소로 택시 한 대가 들어왔다. 뒷좌석 문이 열리고 두식의 어머니가 먼저 내렸다. 어머니가 트렁크에서 접이식 휠체어를 꺼내 펼쳤고, 두식이 혼자 몸을 옮겨 앉았다. 왼쪽 바짓단이 무릎 아래에서 접혀 핀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두식의 무릎 위에 보온 가방 둘이 얹혀 있었다.

국군 줄이 흐트러졌다. 은별이 깁스 팔을 흔들며 먼저 뛰었고, 민수가 그 뒤를 따랐다. 두식은 몰려든 사람들 사이로 고개를 빼고 누군가를 찾았다.

니코는 의무대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왼쪽 어깨에서 팔까지 붕대를 감았고, 오른손에 진통제 봉지를 쥐고 있었다. 두식의 휠체어가 니코 앞에서 멈췄다. 둘은 서로를 보았다. 한 달 전 밤에 둘 사이에 오간 말은 한국어와 피지어였고, 둘 다 그 말을 모르는 채였다.

두식이 보온 가방 하나를 니코의 무릎에 올려놓았다.

“단무지 뺐습니다. 어머니가 외국 사람은 단무지 싫어한다고 해서.”

비샬이 옆에서 옮겼다. 니코가 가방을 열고 김밥 한 줄을 꺼냈다. 그리고 비샬에게 무언가 말했다. 비샬이 웃음을 참으며 옮겼다.

“니코 형이 말해요. 단무지가 뭔지 모르는데 넣어 달래요. 다음에.”

두식이 웃었다. 웃다가 휠체어 팔걸이를 붙잡았다. 니코는 김밥을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붕대 감은 팔로 두식의 어깨를 끌어안으려다 아파서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도 팔을 풀지 않았다. 두식의 어머니가 그 둘을 보다가 돌아서서 앞치마 끝으로 눈을 눌렀다.

*

열한 시, 진무혁이 연병장 단상에 섰다. 한 달 전 그 자리였고, 같은 점퍼였다. 이번에는 종이를 들고 있었다.

“칠월 일 일부터 철원과 화천과 양구의 전방 사단 셋을 민간에 위탁합니다. 세 사단은 그레이웰 디펜스가 맡습니다. 한여울사단은 남은 계약 기간 동안 발레타가 맡습니다. 위탁법 시행령에 따라 국군 잔류 인원은 사단마다 열 명으로 조정됩니다.”

연병장이 조용했다. 그레이웰은 미국계 민간 군사 회사였고, 백지훈이 말한 그 회사였다. 다치는 사람을 세지 않고 철책 일 킬로당 비용만 세는 회사였다.

“철원 사단은 오늘 오후 두 시에 국군 선발대를 받습니다. 한여울의 국군 잔류 인원 가운데 열 명이 선발대로 갑니다.”

진무혁이 종이를 접었다. 그리고 국군 줄을 처음으로 보았다.

“한여울에는 오 중사가 남습니다. 이 사단에 현역 간부가 남아야 이 사단이 국군입니다.”

*

정오, 지휘 천막에서 크루거가 레온과 마주 앉아 있었다. 천막 문이 반쯤 열려 있어서 바깥에 선 재민과 에밀리에게 둘의 얼굴이 보였다. 크루거가 영어로 짧게 말했고, 레온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에밀리가 재민에게 작게 옮겼다.

“사장님이 내일부로 한국 법인 사장에서 물러나세요. 손실률 영점구에 대한 본사 결정이에요. 한여울은 당분간 이사님이 직접 맡으세요.”

레온이 천막에서 나왔다. 손에 든 것은 낡은 더플백 하나뿐이었다. 레온은 재민 앞에 멈췄다.

“들었소?”

“들었습니다.”

“하나 더 있소.” 레온이 더플백을 어깨에 걸었다. “그레이웰이 소인에게 철원 지휘를 맡겼소. 어젯밤에 전화가 왔소. 소인이 숫자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났다 하오.” 레온이 짧게 웃었다. 웃음에 소리가 없었다. “그 회사는 손실률을 우리처럼 세지 않소. 그래서 소인을 원하오. 숫자를 안 세는 회사일수록 숫자를 아는 얼굴이 필요하오.”

“누가 사장님 이름을 그 회사에 줬습니까?”

레온이 연병장 단상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진무혁이 단상에서 내려와 헬기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국장이 그대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오. 소인도 그대에게 말하지 않았소.”

*

오후 한 시, 창고 막사에서 열 명이 짐을 쌌다. 더플백 열 개가 침상 위에 나란히 섰다. 은별은 깁스 때문에 지퍼를 못 올려서 민수가 대신 올려 주었다. 민수는 지퍼를 올리면서 말이 많았다. 철원은 연천보다 춥다. 철원 짬밥은 더 맛없다는 소문이 있다. 철원에는 니코 같은 사람이 없다. 은별이 그 말을 다 듣고 나서 짧게 말했다.

“병장님, 말 많아지셨습니다.”

“겁나서 그래.”

“알고 있습니다.”

재민은 자기 관물대 맨 아래 칸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은색 열쇠가 찍힌 다섯 해 전 봉투였다. 국밥집에서 버리겠다고 말한 지 열흘이 지났는데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재민은 봉투를 들고 창고 뒤 수돗가로 갔다. 진무혁이 담뱃재를 털던 녹물 받이 옆이었다.

재민은 봉투를 반으로 찢고, 다시 반으로 찢었다. 종이가 두꺼워서 손가락 마디에 힘이 들어갔다. 찢은 조각을 쓰레기통에 넣고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씻었다. 오늘은 손톱 밑에 낀 것이 없었다.

창고로 돌아오자 은별이 재민의 더플백을 침상 위에 세워 두고 있었다. 재민은 아직 짐을 싸지 않았다.

“중사님 것도 쌌습니다. 한 손으로.”

“누가 싸라고 했어?”

“아무도 안 했습니다.” 은별이 깁스 팔을 가슴에 붙였다. “그래서 쌌습니다.”

*

오후 한 시 반, 헬기장에 철원행 헬기가 내려앉았다. 동체에 회색 늑대 머리가 그려져 있었다. 그레이웰의 표식이었다. 프로펠러 바람에 헬기장 둘레의 마른 풀이 한꺼번에 눕고 흙먼지가 날렸다.

헬기 앞에 국군 열이 섰다. 진무혁이 아침에 넘긴 종이에 적힌 열 명이었다. 전역 날짜가 가장 늦은 순서였고, 맨 앞에 은별이 있었다. 깁스를 한 왼팔을 가슴에 붙이고, 오른손으로 더플백을 쥐고 있었다.

진무혁이 헬기 옆에 서 있었다. 레온이 그 옆에 더플백을 내려놓았다. 재민이 국군 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국장님.”

“오 중사. 자네는 남아.” 진무혁이 프로펠러 소리보다 크게 말했다. “그레이웰 사단에 현역 간부를 따로 구할 거야. 칠월까지.”

“어디서 구하십니까?”

진무혁은 한 달 전 국장실에서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이 열 명이 내리는 철원 철책에서, 다치는 사람은 아무도 셈하지 않습니다.” 재민이 말했다. 존댓말이 아주 깍듯했다. “국장님 숫자에도, 회사 숫자에도 없습니다. 거기 저 하나는 있어야 합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자네가 떠나면 한여울에 현역 간부가 없어. 법이 그래.”

“한여울은 이틀에 한 번 오겠습니다. 철원에서 차로 한 시간 반입니다.”

“그런 근무는 법에 없어.”

“없으니 막을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레온이 고개를 들었다. 한 달 전 지휘 천막에서 자기가 한 말이었다. 레온의 입꼬리 한쪽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진무혁이 재민을 보았다. 프로펠러 바람에 진무혁의 흰 머리칼이 흐트러졌다. 진무혁은 모자를 손으로 눌렀다.

“한여울에 남는 열아홉은 누가 봐? 크루거가 사장이야. 내일부터.”

재민이 돌아섰다. 헬기장 가장자리에 국군 열여덟이 서 있었다. 그 맨 앞에 민수가 있었다.

“병장 탁민수.”

“병장 탁민수!”

“내가 없는 날은 네가 맨 앞이다. 열아홉 전부 네 뒤에 세워. 두식이까지. 네가 먼저 서.”

민수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겁나면 말이 많아지는 사람이 이번에는 말을 고르는 데 오래 걸렸다.

“중사님, 그럼 저 이제 가운데 상인입니까?”

“병장이야.”

“알겠습니다. 병장인데 가운데 서겠습니다.” 민수가 침을 삼켰다. “맨 앞에.”

민수 옆에 에밀리와 비샬과 마그다가 서 있었다. 에밀리가 태블릿을 들어 보였다. 표가 떠 있었다. 이번에는 제목이 「국군 잔류 인원 · 한여울 열아홉」이었다. 비샬이 금니를 보이며 소리쳤다. 반장님, 여기는 우리가 해요. 빨리빨리. 마그다는 번역기를 켜지 않고 재민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

재민이 다시 헬기 쪽으로 돌아섰다. 진무혁이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비켜서지 않았고, 막아서지도 않았다.

“국장님 방 사진 속 소위님도 그 사 킬로를 맨 앞에서 걸으셨습니까?”

진무혁의 얼굴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진무혁은 대답 대신 헬기 문 쪽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길이 열렸다.

“이틀에 한 번이야.” 진무혁이 말했다. “하루라도 빠지면 그날로 불러들인다.”

재민이 헬기에 올랐다. 은별이 깁스 팔로 버티며 뒤따라 올랐고, 나머지 아홉이 줄줄이 올랐다. 레온이 맨 마지막에 더플백을 던져 넣고 올랐다. 문 옆 좌석에 앉은 레온이 재민을 보았다.

“그대가 오리라고 생각하고 자리를 하나 더 받아 두었소. 회사에는 열하나라고 적어 냈소.”

“열하나는 셈에 들어갑니까?”

“그레이웰은 안 세오.” 레온이 안전띠를 매며 말했다. “소인이 세오. 하나도 빼지 않고.”

헬기가 떠올랐다. 창밖으로 연병장이 작아졌다. 깃대 두 개와 창고 막사 지붕과 의무대 앞 벤치가 보였다. 벤치 앞에서 니코가 붕대 감은 팔 대신 성한 팔로 경례를 하고 있었고, 그 옆 휠체어에서 두식이 같은 경례를 하고 있었다. 헬기장 가장자리에서는 민수가 열여덟 맨 앞에 서서 고개를 들고 있었다.

헬기가 동쪽으로 기울었다. 은별이 창에 얼굴을 붙였다. 철원 쪽 산등성이 너머로 처음 보는 철책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 철책 아래 헬기장에서 회색 전투복을 입은 사람들이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은별이 재민을 돌아보았다.

“중사님, 철원은 연천보다 춥습니까?”

“더 추워.”

“그럼 됩니다.” 은별이 깁스 팔을 가슴에 붙였다. “제가 먼저 내리겠습니다.”

“아니.” 재민이 안전띠를 풀었다. “내가 먼저 내린다.”

헬기가 내려앉았다. 문이 열렸고, 찬바람이 먼저 들어왔다. 헬기장 맨 앞에 낯선 얼굴 하나가 서 있었다. 그레이웰의 회색 점퍼를 입고, 팔짱을 낀 채, 국군 열하나를 하나씩 세어 보지도 않고 바라보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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