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501자)
세 배
용병 회사가 우리 사단을 샀다 · 문가온
4월 20일 오전 열 시, 은별이 남쪽 병원에서 돌아왔다. 왼팔에 어깨까지 오는 하얀 깁스를 했고, 깁스 위에 병원 간호사들이 매직으로 적어 준 응원 문구가 빽빽했다. 은별은 위병소에서 내리자마자 창고 막사로 뛰어왔고, 문간에서 정우의 빈 침상을 보고 멈췄다. 빈소는 열흘 전에 치웠다. 침상에는 모포만 개켜져 있었다.
은별은 그 앞에서 오른손만으로 경례를 했다. 그리고 돌아서서 민수를 보았다.
“병장님, 제 깁스에 뭐 좀 써 주십시오. 간호사님들 글씨만 있어서 군대 같지가 않습니다.”
민수는 열사흘 만에 처음으로 길게 웃었다. 민수가 매직을 받아 깁스 팔꿈치 자리에 크게 적었다. 「이 팔은 회사 손실률에 안 들어감」. 은별이 그 글씨를 읽고 민수의 정강이를 찼다. 창고 안의 병사들이 웃었다. 정우가 죽은 뒤 창고에서 한꺼번에 웃음이 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오후에 외박이 나왔다. 회사가 정한 외박이 아니라 재민이 에밀리에게 부탁해서 따낸 외박이었다. 에밀리는 그것을 「국군 인원 정서 안정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올렸고, 레온은 그 이름을 보고 웃지도 않고 서명했다.
*
전곡 읍내는 사단에서 버스로 이십 분이었다. 4월 중순의 읍내는 벚꽃이 다 지고 가로수에 연두색 잎이 막 돋아 있었다. 군인 손님이 줄어서 문을 닫은 가게가 많았다. 피시방 두 곳 가운데 하나가 비었고, 군장점 유리창에는 「임대」가 붙어 있었다. 대신 새로 생긴 가게들이 있었다. 회색 전투복 손님을 받는 영어 간판의 펍 하나, 네팔 음식점 하나, 필리핀 식료품점 하나.
병사들은 피시방으로, 노래방으로, 네팔 음식점으로 흩어졌다. 네팔 음식점 앞에서 비샬이 기다리고 있다가 손을 흔들었다. 오늘 비번이라고 했다. 민수와 은별과 일병 넷이 비샬을 따라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 전에 비샬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이 사람들 우리 반장님 사람들이에요. 매운 거 빼지 마요. 군인이에요.
재민은 혼자 읍내 끝 시장 골목의 국밥집으로 갔다.
*
네팔 음식점 안은 향신료 냄새가 벽지에까지 배어 있었다. 탁자마다 쇠쟁반이 놓였고, 쟁반 위의 작은 그릇 여섯 개에 노랗고 붉고 푸른 것들이 담겨 있었다. 은별은 깁스 때문에 오른손 하나로 밥을 떴다. 비샬이 은별 앞에 숟가락을 하나 더 놓아 주었다.
“네팔에서는 손으로 먹어요. 근데 은별 씨는 손이 하나라서 숟가락 써요. 반칙 아니에요.”
민수가 붉은 그릇 하나를 떠먹고 일 초 뒤에 얼굴이 빨개졌다. 물을 두 컵 마셨고, 세 컵째에 비샬이 웃으며 요구르트를 내밀었다.
“형님, 매운 거 빼지 말라고 내가 그랬잖아요. 군인이라서.”
“군인도 사람입니다.” 민수가 혀를 내밀고 손으로 부채질했다. “군인은 손실률에 안 들어가도 혀는 들어갑니다.”
은별이 웃다가 사레가 들렸다. 비샬이 은별의 등을 두드려 주면서 안산 이야기를 했다. 칠 년 동안 매일 공장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고, 반장님이 김치를 늘 남보다 더 주었다. 비자가 끝나던 날 반장님이 김치 한 통을 싸 주었고, 그 김치를 들고 비행기를 탔다가 공항에서 냄새 때문에 가방을 열어야 했다.
“그 김치 어떻게 됐습니까?” 은별이 물었다.
“네팔 가서 다 먹었어요. 엄마가 처음엔 싫다고 했어요. 지금은 엄마가 김치 담가요.” 비샬이 금니를 보이며 웃었다. “그래서 한국 다시 오고 싶었어요. 김치 원래 맛 먹으려고.”
민수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박자였다. 정우가 죽은 뒤 민수가 박자를 두드린 것은 처음이었다. 은별은 모르는 척 밥을 떴다. 랩은 나오지 않았다. 민수는 박자만 열여섯 번 두드리고 멈췄다.
*
국밥집은 열한 해 전과 똑같았다. 가마솥 둘이 문 옆에서 끓었고, 미닫이문 유리에 김이 서려 있었다. 안에는 탁자 여섯 개, 벽에 「순대국 · 내장국 · 머리국밥」 차림표, 그리고 할머니 하나. 할머니는 일흔여덟이었고, 이 자리에서 마흔 해 넘게 국밥을 팔았다.
“오 하사 왔네.”
“중사입니다, 할머니.”
“나한텐 하사야. 열아홉에 와서 국밥 앞에 놓고 울던 하사.” 할머니가 국자를 들고 말했다. “내장 많이?”
“네.”
열아홉 살 첫 외박 날이었다. 재민은 이 탁자에서 국밥을 앞에 놓고 울었다. 왜 울었는지는 지금도 몰랐다. 할머니는 그날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공깃밥 하나를 더 놓고 갔다. 그날 이후로 재민은 외박 때마다 이 탁자에 앉았다.
다섯 해 전 봄에도 이 탁자였다.
그날 재민의 동기 일곱이 이 국밥집에 모였다. 일곱 모두 하사이거나 중사였고, 일곱 모두 그 주에 전역 신청서를 냈다. 해외 위탁 시범 사업에 들어가는 민간 군사 회사 몇 곳이 한국 부사관을 뽑고 있었다. 월급이 세 배였다. 동기 하나가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재민아, 너만 남으면 너 혼자 다 해야 돼. 그 말이 맞았다. 다른 동기는 봉투 하나를 탁자에 놓았다. 너한테도 왔다며, 왜 안 열어 봐?
봉투에는 발레타 리스크 그룹의 은색 열쇠가 찍혀 있었다. 재민은 그 봉투를 그날 열었고, 읽었고, 접었고, 그 뒤로 다섯 해 동안 관물대 맨 아래 칸에 넣어 두었다. 버리지도, 답하지도 않았다.
“그거 아직 있소?”
재민이 고개를 들었다. 미닫이문이 열려 있었고, 레온이 문간에서 털모자를 벗고 있었다.
*
레온은 재민 맞은편에 앉아 할머니에게 순대국을 시켰다. 할머니는 레온의 귀와 수염을 한 번 보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순대국이 나오자 레온은 국물을 먼저 한 숟갈 떠먹고, 깍두기를 하나 집어 먹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이 깍두기, 소인이 사겠소.” 레온이 할머니를 돌아보았다. “한 항아리.”
“안 팔아.”
“두 항아리 값을 내겠소.”
“안 판다니까. 먹고 싶으면 와서 먹어.”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협상에 진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좋은 조건을 받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재민을 보았다.
“그 제안서. 다섯 해 전 한국 부사관 채용을 소인이 맡았소. 그때 이 사단의 부사관 마흔 명에게 보냈고, 서른아홉이 답했소. 답하지 않은 한 명의 이름을 소인은 기억하오. 그 봉투 맨 아래에 서명한 것이 소인이오.”
재민의 숟가락이 국밥 위에서 멈췄다.
“그래서 이 사단을 사셨습니까?”
“아니오. 이 사단은 국방부가 판 것이고, 회사가 산 것이오. 소인은 그 계약에 붙어 온 사람이오.” 레온은 점퍼 안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새 봉투였다. 은색 열쇠가 찍혀 있었다. “다시 내겠소. 이번에는 세 배에 하나를 더 붙였소. 발레타 한국 법인 국군 연락 이사. 다음 분기 네 사단의 국군 마흔을 어디에 세울지, 그 자리를 그대가 정하오.”
재민은 봉투를 열지 않았다.
“제가 정하면 마흔을 다 뒤로 빼겠습니다.”
“그럴 수 있소. 그 자리에 앉으면 그대가 셈하는 쪽이오. 소인이 그날 바위에서 내려와 그쪽으로 간 것처럼.” 레온이 깍두기를 하나 더 먹었다. “다만 그대가 그 의자에 앉는 날, 한여울사단에 현역 간부가 없어지오.”
“압니다.”
“크루거 이사도 아오. 그래서 이사는 그대가 오기를 바라오. 현역 간부가 한 사단에도 없으면, 국방부는 시행령을 한 번 더 고칠 이유가 생기오. 간부 없이 병사만 남겨도 된다고. 그다음엔 병사 열도 셋으로. 이사는 그 길을 보고 있소.”
재민은 레온을 보았다. 레온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왜 그걸 저한테 말씀하십니까?”
“소인은 거짓말을 안 하오. 제안이 진짜라는 것도 사실이고, 그 제안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사실이오. 둘 다 말해야 소인이 거짓말을 안 한 것이오.” 레온은 국물을 마저 떠먹었다. “소인은 그대가 거절하기를 바라고 왔소. 그런데 제안은 진짜요. 그대가 받으면 소인은 약속을 지키오.”
국밥집 안이 조용했다. 가마솥 뚜껑이 김에 들려서 덜그럭거렸다. 할머니가 행주로 탁자를 닦는 척하며 둘 사이를 지나갔다.
재민은 봉투를 레온 쪽으로 밀었다.
“다섯 해 전 봉투는 버리겠습니다. 이건 안 받겠습니다.”
“그럼 칠월에 그대는 열 명만 데리고 있게 되오. 열아홉은 다른 사단으로 가오. 그대가 못 보는 곳으로.”
“그 열아홉 데리고 있을 방법을 찾겠습니다. 사장님 방법 말고.”
레온은 봉투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지갑을 꺼내 국밥 두 그릇 값을 탁자 위에 놓았다. 할머니가 와서 돈을 세더니 한 그릇 값을 레온 앞으로 도로 밀었다.
“오 하사 건 내가 내.”
“왜 그러십니까?”
“열아홉 때부터 내가 냈어. 저 사람이 뭔데 내.”
레온은 그 돈을 받아 들고 할머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사극에서 배운 대로 깊이 숙였다. 할머니가 혀를 찼다.
*
국밥집을 나와 정류장으로 걷다가 재민은 문 닫은 군장점 앞에서 섰다. 유리창의 「임대」 종이가 햇볕에 바래 있었고, 유리 안쪽으로 빈 진열대가 보였다. 열한 해 전 재민은 이 가게에서 처음으로 하사 계급장을 샀다. 주인 아저씨가 계급장을 전투모에 직접 박아 주면서 말했다. 하사는 맨 앞에 서는 계급이야. 소대장은 지도를 보고, 하사는 땅을 봐.
진열대 뒤편 벽에 그 아저씨가 붙여 두었던 손글씨 종이 하나가 아직 남아 있었다. 「외상 사절 — 단, 전역 날은 공짜」.
재민은 유리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았다. 그 뒤로 레온이 국밥집 골목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털모자를 다시 쓰면서, 손등으로 입가의 깍두기 국물을 닦으면서. 레온은 재민을 보고도 부르지 않았고, 다른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
해 질 녘 버스 정류장에는 국군 병사 스물여덟이 모였다. 깁스를 한 은별이 비샬에게서 받은 네팔 과자를 깁스 안에 끼워 들고 있었다. 민수의 입가에 매운 양념이 묻어 있었다. 정류장 지붕 밑 벤치에 에밀리가 앉아 있었다. 회사 차를 두고 버스를 타러 온 것처럼 보였다. 에밀리는 재민이 다가오자 일어나서 태블릿을 내밀었다.
화면에 표 하나가 떠 있었다. 회사의 손실률 표와 모양이 똑같았다. 맨 위 제목만 달랐다. 「국군 잔류 인원 · 위탁 후 20일」.
“제가 혼자 만들었어요. 회사 기준을 그대로 써서 세어 봤어요. 다친 사람 둘, 죽은 사람 하나. 서른 명 가운데 셋. 십 퍼센트예요.” 에밀리가 화면을 넘겼다. “계약 기준은 영점팔이에요. 회사 기준으로 세면 이 사단은 첫 달에 이미 열두 배를 넘어서 재계약 탈락이에요.”
재민은 화면을 오래 보았다. 숫자 셋이 작게 있었다.
“이걸 왜 만들었습니까?”
“숫자가 거짓말을 안 하는 회사에 다니고 싶어서요.” 에밀리가 짧게 웃었다. 웃음이 오래가지 않았다. “근데 숫자가 거짓말을 안 해도, 숫자를 어디까지 세는지는 사람이 정하더라고요.”
에밀리가 화면을 한 번 더 넘겼다. 이번에는 일정표였다.
“사월 이십팔 일, 재계약 검열이에요. 국회에서 국방을 맡는 위원회 의원 둘, 크루거 이사님, 진 국장님이 와요. 오전에 비무장지대 수색 시범이 있어요. 방송 카메라가 와요. 시범의 맨 앞줄이 국군 열이에요. 사장님이 아니라 이사님이 정했어요.”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왔다. 문이 열리고 히터 바람이 먼저 나왔다. 병사들이 하나씩 올라탔다. 은별이 깁스 팔로 손잡이를 잡으려다 민수에게 등을 떠밀려 올라갔다.
에밀리가 태블릿을 가슴에 안았다. 첫날 단상에서 그랬던 것처럼.
“중사님, 저 이거 들고 국회에 갈까요? 아니면 이십팔 일에 그분들 앞에서 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