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04자)
앞에 서는 사람
용병 회사가 우리 사단을 샀다 · 문가온
4월 5일 밤 열 시 이십 분, 지휘 벙커는 땅 밑 삼 층에 있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가 따뜻해졌고 기계 냄새가 짙어졌다. 벙커 한가운데 커다란 상황판 탁자 위에 철책 이십육 킬로가 초록 선으로 떠 있었고, 동쪽 끝 한 점이 붉게 깜빡였다. 그 둘레에 레온과 에밀리와 마그다와 회사 참모 넷이 서 있었다. 재민이 내려가자 레온이 손짓으로 탁자 앞자리를 비웠다.
“북쪽 초소에서 쏜 거요. 네 발. 경고인지 시험인지는 모르오.” 레온이 붉은 점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다시 쏠 것이오. 대개 그렇소.”
“어떻게 하실 겁니까?”
“소인은 아무것도 못 하오.” 레온이 바로 대답했다. “정전협정이오. 북쪽을 향해 응사할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 군대뿐이오. 소인의 사람이 북쪽으로 한 발이라도 쏘면 그날로 이 계약은 남의 나라 용병이 휴전선에서 전쟁을 일으킨 사건이 되오. 그래서 소인의 사람은 뒤로 물리오. 동쪽 끝 맨 앞 초소 넷에는 그대 사람 스물여덟이 서시오.”
재민은 탁자 위 초록 선을 보았다. 동쪽 끝 초소 넷 사이에 이백 미터쯤 되는 낮은 골짜기가 있었고, 거기 길이 하나 열려 있었다. 철책 순찰차가 다니는 길이었다.
“초소는 서겠습니다. 대신 회사 장갑차 두 대로 저 골짜기 길목을 막아 주십시오. 막기만 하면 됩니다. 쏘지 않아도 됩니다.”
“막는 것도 교전이오.” 레온이 고개를 저었다. “북쪽에서 장갑차를 겨누면 장갑차가 맞소. 맞으면 소인의 사람이 다치오. 다치면 손실률이 오르오. 그리고 북쪽은 회사 장갑차가 앞에 나왔다고 방송할 것이오.”
“그럼 국군이 그 길목에 서야 합니까?”
“그대가 정하시오. 그대 사람이니.”
재민이 탁자 가장자리를 손으로 짚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얘졌다.
“사장님 사람은 그대 사람이 아니고, 제 사람은 제 사람입니까?”
“그렇소.”
“그럼 왜 사장님이 사령관입니까?”
벙커 안이 조용해졌다. 냉각기가 도는 소리만 났다. 레온이 재민을 오래 보았다. 화를 내는 얼굴이 아니었고, 답을 찾는 얼굴도 아니었다.
“소인은 이 사단의 사령관이 아니오. 이 계약의 사령관이오. 그 차이를 그대는 알 것이오.”
그때 마그다가 영어로 레온에게 무언가 물었다. 짧은 질문이었다. 레온이 영어로 짧게 대답했고, 마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밀리가 재민에게 작게 옮겼다.
“마그다 팀장님이 물었어요. 감시조 위치는 팀장이 정하느냐고. 사장님이 당연하다고 했어요.”
마그다는 재민을 한 번 보고, 아무 말 없이 계단으로 올라갔다.
*
밤 열한 시, 골짜기 길목 남쪽 이백 미터에 회사 트럭 한 대가 불을 끄고 섰다. 회사 인원이 물러나 있어야 하는 선의 맨 끝이었다. 짐칸에서 니코가 내렸다. 니코는 상자 셋을 땅에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은박 담요와 손난로와 보온병이 들어 있었다.
국군 병사들이 하나씩 내려와 상자에서 손난로를 집어 갔다. 니코는 한 사람이 올 때마다 손난로를 두 개씩 쥐여 주었다. 일병 하나가 고개를 숙이자 니코가 그 일병의 방탄 헬멧 끈을 고쳐 매 주었다. 끈이 너무 헐거웠다.
재민이 마지막으로 내려왔다. 니코가 자기 머리의 헬멧을 벗었다. 회사 헬멧이었고, 국군 것보다 두껍고 무거웠다. 니코는 그것을 재민에게 내밀었다.
“안 됩니다. 이거 주면 니코가 맨머리입니다.”
니코가 영어로 뭐라고 했다. 재민이 다 알아듣지 못하자 니코는 자기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트럭을 가리키고, 북쪽을 가리켰다. 나는 여기 뒤에 있다. 너는 저기 앞에 간다. 니코는 헬멧을 재민 가슴에 밀어붙이고 손을 놓았다. 재민이 받지 않으면 헬멧이 땅에 떨어질 참이었다.
재민은 헬멧을 받아 정우에게 씌웠다. 정우가 헬멧 무게에 고개를 한 번 숙였다가 들었다.
“무겁습니다.”
“무거우면 써.”
니코가 엄지를 들었다. 그리고 트럭으로 돌아가며 작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까 공터에서 부르다 끊긴 그 노래였다.
*
밤 열한 시 사십 분, 동쪽 끝 첫째 초소는 콘크리트 벽에 박힌 총알 네 개가 아직 뜨거운 것처럼 보였다. 손가락만 한 구멍 넷이 벽에 나란히 박혀 있었고, 구멍 둘레의 콘크리트가 별 모양으로 금이 가 있었다. 초소 안은 좁았다. 관측창 둘, 의자 셋, 쇠 난로 하나, 그리고 시멘트 가루 냄새. 재민과 정우와 민수와 일병 둘이 거기 있었다. 나머지 스물넷은 다른 초소 셋과 골짜기 길목에 흩어졌다.
민수는 말을 멈추지 못했다.
“중사님, 제가 겁날 때 말 많아지는 거 아십니까? 지금 엄청 많아지고 있습니다. 북쪽 사람들도 지금 저처럼 말 많을까요? 저쪽도 스물두 살이겠죠? 저쪽도 랩 합니까? 저쪽은 랩 하면 잡혀갑니까?”
“민수야.”
“병장 탁민수.”
“말 많아도 돼. 관측창에서 머리만 빼.”
“알겠습니다. 머리 빼고 말만 하겠습니다.”
정우는 손목시계를 보고 있었다. 열한 시 오십구 분이었다. 시계의 초침이 맨 위를 지나자 정우가 작게 말했다.
“자정 지났습니다. 이백육 일.”
“축하한다.” 재민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우가 관측창 옆 벽에 등을 기댔다. “저 전역하면 두식이랑 계란말이 가게 하기로 했습니다. 두식이가 부치고 제가 셉니다. 한 판에 열여섯 개. 이름은 열여섯입니다.”
“가게 이름이 숫자냐?”
“숫자가 외우기 쉽습니다.”
재민의 이어폰에서 진무혁의 목소리가 나왔다. 서울의 국방부 상황실에서 동쪽 끝 초소의 영상을 보고 있었다.
“오 중사. 들리나. 응사는 하지 마. 경고 방송만 해. 지금 판문점을 거쳐 북쪽이랑 통하는 연락선이 살아 있어. 확전되면 계약이고 철책이고 없어. 내 말 알아들었지?”
“알아들었습니다.”
재민은 경고 방송을 했다. 초소 지붕의 확성기가 북쪽 골짜기를 향해 정해진 말을 두 번 되풀이했다. 목소리가 밤 골짜기에 부딪혀 늦게 돌아왔다. 북쪽은 대답하지 않았다.
*
마그다 비슈넵스카는 첫째 초소 뒤 능선의 바위 틈에 엎드려 있었다. 감시조 여섯이 마그다 좌우로 흩어져 있었다. 레온이 정한 회사 인원의 뒷줄보다 사백 미터 앞이었고, 첫째 초소와 골짜기 길목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였다. 감시 위치는 팀장이 정한다. 마그다는 그 말을 들은 대로 했다.
마그다는 북쪽을 쏠 수 없었다. 그건 협정이 막았고, 마그다도 그 선을 넘을 생각은 없었다. 마그다는 스물두 해 동안 남의 나라 전쟁터를 옮겨 다녔고, 선을 넘은 사람들이 그다음 날 어떻게 되는지를 너무 많이 보았다. 그러나 남쪽으로 넘어오는 것을 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국군에게 알려 주는 것은 감시였다.
조준경 안에서 북쪽 비탈의 검은 덩어리 하나가 움직였다. 사람이었다. 둘이었다. 영하에 가까운 공기 속에서 그 둘의 숨이 하얗게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마그다는 번역기를 켜고 무전기에 대고 폴란드어로 말했다. 번역기가 그 말을 한국어로 읽었고, 그 소리가 무전을 타고 첫째 초소로 갔다.
“가운데 상인님, 머리 숙이십시오. 북쪽 열한 시 방향, 사람 둘. 지금.”
*
재민이 “엎드려” 하고 외친 것과 소리가 난 것이 거의 같았다.
콘크리트가 맞는 소리는 쇠망치로 벽을 치는 소리 같았다. 연달아 여러 번이었다. 관측창 테두리에서 시멘트 조각이 튀었고, 쇠 난로가 맞아 둔하게 울렸다. 재민은 민수의 목덜미를 잡아 바닥에 눌렀다. 일병 둘은 이미 엎드려 있었다.
정우는 관측창 옆 벽에 기댄 채로 있었다. 벽에 등을 대고 있으면 안전하다고 다들 배웠다. 그런데 정우 쪽 관측창의 덮개 경첩이 낡아서 덮개가 반쯤만 내려와 있었다. 재민이 정우를 향해 손을 뻗었을 때, 정우가 옆으로 천천히 무너졌다. 무너지면서 정우는 손목시계를 찬 손으로 바닥을 짚으려 했고, 짚지 못했다.
재민이 정우를 끌어당겼다. 정우의 목 옆에서 뜨거운 것이 흘렀다. 재민은 두 손으로 그 자리를 눌렀다. 눌러도 손가락 사이로 나왔다. 정우의 눈이 재민을 보았다. 무언가 말하려고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의무 헬기.” 재민이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자기 목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첫째 초소, 한 명, 목. 지금.”
에밀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헬기 뜨는 데 십이 분이에요. 착륙장까지 오 분.”
이어폰에서 진무혁이 말했다. “오 중사. 응사하지 마. 방송 다시 해. 지금 연락선으로 항의하고 있어.”
재민은 정우의 목을 누른 채 이어폰을 귀에서 뺐다. 이어폰이 피 묻은 바닥에 떨어졌다. 재민은 무전기를 들었다.
“한여울 국군 잔류 인원 전원. 중사 오재민. 북쪽 열한 시 방향, 응사.”
첫째 초소와 둘째 초소와 골짜기 길목에서 국군 병사들이 북쪽으로 쏘았다. 이 사단에서 북쪽으로 쏠 수 있는 사람은 그들뿐이었다. 사격은 길지 않았다. 북쪽 비탈의 두 사람이 비탈 뒤로 사라졌고, 그 뒤로 북쪽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날아오지 않았다. 능선에서 마그다가 무전으로 말했다. 번역기가 읽었다.
“두 사람, 물러갔습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재민은 정우를 안고 있었다. 정우의 손목시계 초침이 돌고 있었다. 정우는 더 이상 시계를 보지 않았다.
*
헬기는 십칠 분 뒤에 왔다. 정우는 그보다 먼저 숨을 멈추었다. 민수가 정우의 다른 쪽 손을 쥐고 있었다. 민수는 그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겁날 때 말이 많아진다는 사람이 그 십칠 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새벽 다섯 시, 착륙장 옆 의무대 앞 시멘트 바닥에 국군 스물여덟이 줄을 섰다. 정우는 흰 천에 덮여 회사 헬기에 실렸다. 레온이 헬기 옆에 서 있었다. 밤새 벙커에서 내려오지 않은 얼굴이었다. 니코와 비샬과 마그다가 국군 줄 맨 끝에 섰고, 그 뒤에 에밀리가 섰다. 마그다는 번역기를 차지 않고 있었다.
헬기 문이 닫히기 직전, 재민이 앞으로 나가 정우의 손목에서 시계를 풀었다. 초침이 아직 돌고 있었다. 재민은 시계를 주먹에 쥐고 줄로 돌아왔다.
니코가 낮은 목소리로 어젯밤의 노래를 불렀다. 같은 줄이 돌아오는 그 노래였다. 국군 줄에서 누군가 그 줄을 따라 불렀고, 누군가 울었으며, 프로펠러 소리가 그 둘을 다 덮었다.
*
아침 일곱 시 반, 동쪽 하늘에서 다른 헬기 한 대가 내려왔다. 동체에 은색 열쇠가 그려져 있었다. 헬기에서 키가 크고 마른 남자 하나가 내렸다. 마흔다섯쯤이었고, 바람에 머리카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게 젤을 발랐으며, 회색 정장 위에 회사 점퍼를 입었다. 남자는 레온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에밀리가 재민 옆에서 아주 작게 말했다. “몰타 본사 운영이사, 다니엘 크루거예요. 원래 다음 주에 오기로 했어요.”
크루거가 레온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영어였고, 크고 또렷한 목소리였다. 재민은 그 문장을 다 알아들었다. 영어를 몰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문장이었다.
“첫 주, 손실 영. 축하합니다, 레온.”
레온은 그 손을 잡은 채 대답하지 않았다. 크루거의 어깨 너머로, 레온이 의무대 앞에 선 국군 스물여덟을 보았다. 재민은 정우의 시계를 쥔 주먹을 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