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29자)
폐 초소
용병 회사가 우리 사단을 샀다 · 문가온
4월 4일 새벽 다섯 시, 철책 동쪽 끝 이 킬로 지점의 통문 앞에는 서리가 하얗게 앉아 있었다. 국군 열 명이 곡괭이와 지렛대와 마대 자루를 메고 줄을 섰다. 은별이 맨 앞이었고, 재민이 그 앞이었다. 레온이 짠 명단에 재민의 이름은 없었다. 재민은 자기 이름을 볼펜으로 맨 위에 써 넣었고, 에밀리는 그걸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통문 밖 오십 미터, 회사가 들어올 수 있는 맨 끝자리에 접이식 의자 하나와 무전기 세 대와 보온병이 놓여 있었다. 의자에 앉은 사람이 일어서서 재민에게 손을 흔들었다. 서른여섯쯤 된 마른 남자였고, 회색 전투복 소매를 두 번 접어 올렸다.
“반장님! 안녕하세요! 비샬이에요. 비샬 구룽.”
“중사 오재민입니다.”
“네, 반장님.”
“중사입니다.”
“네, 중사 반장님.” 비샬이 환하게 웃었다. 앞니 하나가 금이었다. “저 안산에서 칠 년 일했어요. 도금 공장. 거기는 높은 사람이 다 반장님이에요. 사장님 빼고.”
비샬은 네팔 산골에서 태어나 인도 군대에서 십 년을 복무했고, 그다음 일곱 해를 경기도 안산의 공장에서 보냈다. 비자가 끝나 고향에 돌아갔다가 이 회사의 모집 공고를 보았다. 공고에는 「한국어 가능자 우대」라고 적혀 있었다. 오늘 비샬은 하늘에 띄운 드론으로 초소를 내려다보는 회사 공병 곁에서, 그 공병의 영어를 무전으로 한국어로 옮기는 일을 맡았다.
*
비무장지대 안으로 육백 미터를 들어가자 초소가 나타났다. 오래전에 남북이 합의해 사람을 빼고 비워 둔 감시 초소였다. 삼 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었는데, 이 층 창문은 모래주머니로 막혀 있었고 옥상의 감시탑은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벽에 이끼가 끼어 있었고, 비가 들이친 자리마다 철근이 녹물을 흘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차가운 곰팡이 냄새와 쥐 오줌 냄새가 코를 쳤다. 바닥에는 낙엽과 깨진 형광등 조각이 섞여 있었다.
무전기에서 회사 공병의 영어가 먼저 나오고, 비샬의 한국어가 뒤따랐다.
“반장님, 공병이 말해요. 일 층 동쪽 방부터 부숴요. 벽을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하면 안 돼요. 그러면 위가 떨어져요. 우리 공장에서도 그래요.”
“공장에서 벽을 부숩니까?”
“아뇨. 박스를 쌓아요. 아래에서 빼면 위가 떨어져요. 똑같아요.”
민수가 곡괭이를 내려놓고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비샬 형님, 그 공병한테 물어봐 주십시오. 이거 점심은 몇 시입니까?”
잠깐 영어가 오갔다. 그리고 비샬이 대답했다. “공병이 말해요. 점심은 공정률이 삼십 퍼센트 되면 먹어요.”
“공정률이 뭡니까?”
“얼마나 부쉈는지요.”
“지금 몇 퍼센트입니까?”
“영이에요.”
민수가 곡괭이를 다시 들었다. “점심 굶는 거 확정입니다.”
*
정오, 공정률은 십이 퍼센트였다. 일 층 동쪽 방 두 개의 벽이 허물어졌고, 마대 자루 마흔 개에 부스러기가 담겨 통문 쪽으로 옮겨졌다. 병사들의 손바닥이 곡괭이 자루에 까져 피가 배었다. 그때 재민이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참에서 천장을 보았다. 일 층 가운데 방의 천장에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금이 대각선으로 나 있었다. 금 가장자리에서 회색 가루가 조금씩 떨어졌다. 아침에는 없던 금이었다.
재민은 작업을 멈추게 하고 통문까지 걸어 나왔다.
레온이 거기 와 있었다. 비샬의 접이식 의자 옆에 서서, 에밀리의 태블릿으로 드론 화면을 보고 있었다. 화면 구석에 「공정률 12%」가 떠 있었다.
“가운데 방 천장에 금이 갔습니다.” 재민이 말했다. “아침에는 없었습니다. 동쪽 벽을 헐면서 하중이 옮겨 간 겁니다. 받침목을 세울 때까지 작업을 멈추겠습니다.”
“금 간 지붕은 원래 헐 지붕이오.” 레온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밑에서 사람이 일합니다.”
레온이 태블릿을 에밀리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재민을 정면으로 보았다.
“그대에게 숫자를 하나 알려 주겠소. 이 초소를 이 달 말까지 못 헐면, 본사는 이 달 지급분에서 사 퍼센트를 깎소. 그 돈은 소인의 사람 마흔 명의 한 달 월급이오. 그 마흔 명 가운데 라투가 있소. 라투는 피지에 딸이 둘 있소. 여덟 살, 열한 살. 그 둘의 학비가 그 사 퍼센트 안에 들어 있소.”
“그럼 니코를 들여보내십시오. 니코는 지붕을 받칠 줄 압니다.”
“협정이 막소.” 레온의 목소리는 높아지지 않았다. “그대도 알고 소인도 아오. 소인의 사람은 이 선을 못 넘소. 그대 사람만 넘소. 그대 사람이 손실률에 안 들어가서가 아니오. 그대 사람만 넘을 수 있어서요. 그건 소인이 정한 게 아니오.”
“그럼 시간을 주십시오. 받침목 세울 시간입니다. 한 시간입니다.”
“그대가 서울에 다녀온 하루가 이미 늦었소.”
둘 사이에 바람이 불었다. 통문의 쇠사슬이 철책에 부딪혀 짧게 울었다. 비샬이 의자에서 일어섰다가 다시 앉았다. 에밀리는 태블릿을 끄지 않고 둘을 번갈아 보았다.
“이십 분.” 레온이 말했다. “그 안에 받침목을 세우시오. 이십 분이 지나면 소인은 본사에 국군의 작업 거부라고 보고하오. 그대는 거부를 한 적이 없으니 그대가 거짓말쟁이가 되는 거요. 원하지 않으면 이십 분 안에 하시오.”
*
재민은 뛰어서 초소로 돌아갔다. 병사 아홉이 무너진 벽에서 나온 각목과 녹슨 쇠파이프를 모았다. 각목은 대부분 썩어 있었고, 쓸 만한 것은 셋이었다. 재민이 첫째 각목을 천장 금 바로 옆에 세우고 망치로 쐐기를 박았다. 둘째를 세울 때 정우가 각목을 붙잡았다.
은별은 가운데 방 안쪽 구석에 있었다. 셋째 각목을 받칠 벽돌을 찾느라 무너진 침상 밑을 뒤지고 있었다. 녹슨 쇠 침상 다섯 개가 벽을 따라 놓여 있었는데, 은별은 넷째 침상 밑에 손을 넣었다가 손을 멈췄다.
“중사님.”
“빨리.”
“여기 쥐구멍 있습니다.” 은별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아버지가 그랬습니다. 넷째 침상 밑에 쥐구멍이 있어서 밤마다 건빵을 하나씩 넣어 줬다고. 쥐 이름이 상병이었다고. 이 초소였습니다.”
재민은 은별을 보았다. 은별은 쥐구멍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웃고 있었다. 웃는 얼굴로 손등을 눈가에 한 번 가져갔다.
“건빵 있냐?” 재민이 물었다.
은별이 주머니를 뒤졌다. 건빵 대신 회사 매점의 단백질 바 반쪽이 나왔다. 은별은 그것을 쥐구멍 앞에 놓았다.
“상병님, 이거 회사 겁니다. 맛없어도 드십시오.”
그때 천장이 소리를 냈다.
*
통문 밖에서 비샬은 드론 화면을 보고 있었다. 초소 지붕 한가운데가 아주 천천히 꺼졌다. 흙먼지가 이 층 창의 모래주머니 틈으로 뿜어져 나왔고, 일 초 뒤에 낮고 무거운 소리가 땅을 타고 비샬의 의자까지 왔다.
무전기에서 민수가 소리를 질렀다. 한국말이었고, 너무 빨라서 비샬도 반밖에 못 알아들었다. 은별. 깔렸다. 팔.
비샬은 안산의 도금 공장에서 지게차가 쓰러져 동료 하나가 깔린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날 반장님은 소리를 질렀고, 사장님은 보험 회사에 전화를 걸었으며, 비샬은 공구실에서 차량용 잭을 들고 뛰었다. 그 동료는 다리를 건졌다. 비샬은 지금 자기 의자 옆에 세워 둔 트럭을 보았다. 트럭 짐칸에 잭이 있었다.
레온은 차에 오르다 말고 돌아서 있었다. 비샬과 눈이 마주쳤다. 레온은 고개를 젓지도 끄덕이지도 않았다.
비샬은 잭을 꺼내 품에 안고 통문을 지났다.
*
은별의 왼팔이 내려앉은 천장 조각 밑에 있었다. 콘크리트 판의 한쪽 끝이 넷째 침상의 쇠틀에 걸려 있어서 은별을 다 누르지는 않았고, 팔꿈치 아래만 깔려 있었다. 은별은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이를 꽉 물고 숨을 짧게 쉬었다. 콘크리트 가루가 은별의 속눈썹에 하얗게 앉아 있었다.
재민과 정우와 민수가 판 끝을 들어 올렸지만 손가락 두 마디도 안 올라갔다. 그때 비샬이 문간으로 들어왔다. 숨이 차서 말을 못 하고, 잭만 내밀었다.
“어디서…….”
“트럭이요. 반장님, 비켜요.”
비샬은 잭을 침상 쇠틀 옆 바닥에 놓고, 판 아래 틈에 머리를 대 각도를 보았다. 손잡이를 돌리는 소리가 좁은 방에 끽끽 울렸다. 판이 한 마디 올라갔고, 두 마디 올라갔다. 재민이 은별의 겨드랑이를 잡고 뒤로 끌었다. 은별의 팔이 판 밑에서 빠져나왔다. 팔꿈치 아래가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은별이 그 팔을 보고, 비샬을 보았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우리 공장에서 맨날 해요.” 비샬이 숨을 몰아쉬며 금니를 보였다. “박스 쌓을 때.”
*
오후 다섯 시, 은별은 회사 헬기에 실려 남쪽 병원으로 갔다. 공정률은 십이 퍼센트에서 멈췄다. 통문 앞에서 레온은 비샬에게 영어로 짧게 말했고, 비샬은 고개를 숙였다. 재민은 이번에도 「벌금」이라는 단어를 알아들었다. 레온은 그다음 재민에게 한국말로 말했다.
“둘째요. 이틀에 소인의 사람 둘이 선을 넘었소. 본사가 그것을 보고 있소.” 레온은 잠깐 초소 쪽을 돌아보았다. 흙먼지가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그대의 일병은 다치지 않을 수도 있었소. 그대가 서울에 안 갔으면, 혹은 이십 분을 안 받았으면, 혹은 소인이 명단을 다르게 짰으면. 어느 쪽인지 소인은 모르겠소.”
재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레온도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
밤 아홉 시, 창고 막사의 난방기 둘이 동시에 꺼졌다. 형광등도 반만 남고 꺼졌다. 병사들이 침상에서 일어나 서로를 보았다. 밖의 기온은 영상 1도였다.
재민의 전화에 에밀리의 문자가 와 있었다. 국방부가 이 달 국군 잔류 인원 지원비를 아직 안 보냈어요. 본사에서 오늘 저녁 비용 절감 지시가 왔고, 지원비 미입금 인원의 난방과 식사를 일시 중단하래요. 이건 사장님 지시가 아니라 본사 지시예요. 근데 사장님이 막지도 않으셨어요. 죄송해요.
재민은 창고를 나와 연병장을 가로질렀다. 회사 식당은 불이 환했다. 창문 너머로 고기 굽는 연기가 보였고, 문틈으로 버터 냄새가 흘러나왔다. 식당 문 앞, 형광등 바로 밑에 레온이 서 있었다. 저녁을 먹으러 온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를 기다리던 사람처럼, 문을 등지고 서 있었다.
“그대가 올 줄 알았소.” 레온이 말했다. “돈을 안 낸 손님에게 밥을 줄 수는 없소. 그건 회사 규칙이오. 그리고 소인은 회사요.”
재민 뒤로 군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았다. 창고에서 병사 스물여덟이 모포를 어깨에 두른 채 따라 나와 있었다. 맨 앞에서 민수가 이를 딱딱 부딪히며 말했다.
“중사님, 저희 배고픈 거 가동률에 들어갑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