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03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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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 회사가 우리 사단을 샀다 · 문가온
4월 3일 아침 여덟 시 사십 분, 서울 용산의 국방부 청사 로비는 바닥이 너무 반짝여서 군화 소리가 두 번씩 울렸다. 재민은 세 해 만에 정복을 꺼내 입었다. 어깨가 끼었고, 단추 하나가 숨 쉴 때마다 배를 눌렀다. 연천에서 첫차를 타고 오는 동안 창밖으로 논이 아파트로, 아파트가 더 높은 아파트로 바뀌었다.
로비에서 홍보 담당 사무관 백지훈이 재민을 맞았다. 서른둘이었고, 넥타이를 반쯤 풀고 있었으며, 손에 코팅한 카드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중사님, 시간이 없어서 바로 말씀드릴게요. 기자 질문은 하나만 받습니다. 현장에서 회사와의 협력이 어땠느냐는 질문이에요. 답은 여기 있어요.”
카드에는 두 줄이 인쇄되어 있었다. 「회사와 긴밀히 협업해 귀순자를 안전하게 유도했습니다. 국군과 기업이 함께 지키는 철책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협업이 뭡니까?”
“같이 일했다는 거죠.”
“같이 안 했습니다. 회사는 통문 밖에 있었습니다.”
백지훈이 카드를 한 번 보고, 재민을 한 번 보았다. “그럼 ‘협업’ 빼고 ‘긴밀히’만 살릴까요?”
“긴밀히 뭘 합니까?”
“……일단 표정만 맞춰 보죠. 담담하게요. 결의 반, 슬픔 반.”
재민은 엘리베이터 거울을 보았다. 결의도 슬픔도 아니고, 단추가 배를 눌러서 숨을 참는 얼굴이 거기 있었다.
*
국장실은 십이 층이었다. 창밖으로 한강이 보였고, 책상 위에는 서류가 높이 쌓인 대신 화면 세 개가 켜져 있었다. 벽에 사진 한 장이 걸려 있었다. 오래된 필름 사진이었고, 얼룩무늬도 아닌 옛 전투복을 입은 젊은 소대원 스물 남짓이 눈 덮인 철책 앞에 서 있었다. 맨 앞 가운데의 마른 소위가 누구인지 재민은 금방 알아보았다.
“앉아.” 진무혁이 말했다. “커피?”
“괜찮습니다.”
진무혁은 가운데 화면을 재민 쪽으로 돌렸다. 꺾은선 하나가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입영 대상 스무 살 남성 · 예상」.
“십 년 전의 절반이 안 돼. 내후년이면 더 내려가. 전방 사단 열 곳 가운데 넷은 지금도 정원의 육 할이 안 차. 자네 사단은 사 할이었어. 회사가 안 들어갔으면 올여름에 동쪽 철책 이십육 킬로를 해체했을 거야. 해체가 뭔지 알지? 철책을 걷는 게 아니야. 철책을 그냥 두고 사람이 떠나는 거야.”
“압니다.”
“그럼 자네 서른이 왜 거기 있는지도 알 거야.” 진무혁은 화면을 끄지 않았다. “위탁법에는 현역 국군이 남아서 지휘를 확인하고 비무장지대를 드나들고 북쪽으로 응사하게 돼 있어. 그 서른이 빠지면 그 사단은 국군이 아니라 회사 경비대가 돼. 그날로 국회가 계약을 뒤집고, 회사는 짐을 싸고, 철책은 비어. 서른이 천이백을 붙들고 있어.”
“그 서른을 회사가 지뢰밭에 세웁니다.”
“회사는 회사 셈을 하는 거야. 그렇게 짠 건 나고.” 진무혁은 그걸 숨기지 않았다. “손실률에 국군을 넣으면 회사가 국군을 뒤로 뺄 거라고 생각하지? 그럼 회사는 계약 단가를 올려. 지금 단가가 국회를 겨우 넘었어. 한 푼만 올라가도 안 넘어가. 나는 국군 서른을 셈에서 빼고 철책 이십육 킬로를 샀어.”
재민은 벽의 사진을 다시 보았다. 소위의 얼굴이 젊었다. 웃지 않고 있었다.
“오 중사.” 진무혁이 목소리를 조금 바꿨다. “자네는 할 만큼 했어. 다음 달 일 일 자로 상사 진급이 돼. 이 층 위탁관리과에 자리가 하나 있어. 관사도 서울로 나와. 연천에는 내가 다른 간부를 구해서 보낼게. 자네 같은 사람이 현장을 아는 얼굴로 여기 있어야 다음 사단 계약을 제대로 짜.”
“다른 간부는 어디서 구하십니까?”
진무혁이 대답하지 않았다.
“동기들이 다 회사로 갔습니다. 다섯 해 전에 일곱이 한 달에 갔습니다. 남은 간부는 저 하나입니다. 국장님이 구하실 데가 없습니다.” 재민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존댓말이 더 깍듯해졌을 뿐이었다. “제가 서울로 오면, 서른은 누가 봅니까?”
“회사가 봐. 회사는 잘 봐. 숫자로.”
“숫자에 안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진무혁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아홉 시 사십 분이었다.
“진급은 그대로 둘게. 자리도 비워 둘게. 오늘은 카드대로만 해. 그거면 돼.”
*
브리핑실은 생각보다 작았다. 기자 서른 명쯤이 접이식 의자에 앉았고, 뒷줄에 카메라 다섯 대가 삼각대 위에 서 있었다. 조명이 뜨거웠다. 재민은 단상 오른쪽 뒤, 태극기 옆에 섰다. 정복 단추가 조명 열에 조금 더 조이는 것 같았다.
진무혁이 말했다. 위탁 첫날 밤, 비무장지대에서 귀순하려던 북쪽 병사 한 명을 국군 잔류 인원과 회사가 함께 안전하게 유도했다. 국군 장병 한 명이 부상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국가와 기업이 함께 지키는 철책이 첫날 그 가능성을 보였다. 진무혁의 말은 막힘이 없었고, 문장 사이의 쉼이 정확했다.
질문 시간에 앞줄의 기자 하나가 손을 들었다. 미리 정해 둔 사람이었다.
“현장에 계셨던 중사님께 여쭙겠습니다. 회사와의 협력은 어땠습니까?”
재민은 한 걸음 나와 마이크 앞에 섰다. 카드를 보았다.
“회사와 긴밀히…….” 재민이 멈췄다. 조명 때문에 기자들 얼굴이 하얗게 보였다. “회사 분대장 한 명이 명령을 어기고 비무장지대에 뛰어 들어와서 다친 병사를 안고 나왔습니다. 그건 긴밀했습니다.”
몇 사람이 웃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다친 병사는 상병 마두식입니다. 스물한 살입니다. 왼쪽 무릎 아래를 잃었습니다. 회사 계약의 손실률에는 마 상병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회사 숫자는 영입니다. 저희 숫자는 하나입니다.”
브리핑실이 조용해졌다. 그다음에 의자 끄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 기자들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진무혁이 마이크를 당겼다. 얼굴은 그대로였다.
“국군 장병의 희생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집니다. 마 상병의 치료와 보상은 국방부가 직접 챙기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복도에서 진무혁은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재민이 반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백지훈은 그보다 더 뒤에서 전화를 받으며 따라왔다.
“자네 오늘 마 상병 이름을 전국에 알렸어.” 진무혁이 앞을 보며 말했다. “점심 전에 마 상병 어머니 가게 앞에 기자들이 갈 거야. 저녁에는 병원 앞에 가고. 그건 생각했나?”
재민이 걸음을 멈췄다.
진무혁이 그제야 돌아보았다. “나도 그 사람을 지키고 싶었어. 카드가 그래서 두 줄이었어. 자네는 자네 방식으로 지켰고, 나는 이제 내 방식으로 수습할 거야. 둘 중 어느 게 마 상병한테 나은지는 모르겠다.”
진무혁은 엘리베이터에 탔다. 문이 닫히기 전에 백지훈이 따라 들어가려다 멈추고, 재민 옆에 남았다. 문이 닫히자 백지훈이 넥타이를 끝까지 풀었다.
“카드 망하셨네요.” 백지훈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뇨. 저 그 카드 어젯밤 열한 시에 썼어요. 쓰면서 이거 누가 읽으면 좀 웃기겠다 했어요.” 백지훈이 코팅한 카드를 재민 손에서 가져갔다. “국장님이 원래 저런 분은 아니에요. 저 사진 보셨죠? 그거 매일 닦으세요.”
*
국방부 일 층 로비 한가운데에는 사람 키만 한 홍보 입간판이 서 있었다. 「국가와 기업이 함께 지키는 철책」이라는 글씨 아래에서 레온이 은색 열쇠 배지를 달고 웃고 있었고, 그 옆에서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은 젊은 모델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었다. 레온의 웃음은 사진관에서 억지로 짜낸 웃음이었다. 한여울에서 재민이 본 레온은 한 번도 그렇게 웃지 않았다.
재민은 입간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사진이 좌우로 뒤집혀 있었다. 모델은 왼손으로 경례하고 있었고, 명찰이 오른쪽 가슴에 붙어 있었다.
“이거 거꾸로입니다.”
로비를 지나던 청소 노동자 한 사람이 입간판을 보고, 재민을 보았다. “그거 지난주부터 그랬어요. 아무도 몰라요. 군인 아저씨가 처음이에요.”
재민은 입간판 뒤로 돌아가 보았다. 판지 뒷면에 테이프로 붙인 납품 딱지가 있었다. 「제작 · 발레타 리스크 그룹 홍보팀」. 재민은 모델의 왼손을 손가락으로 한 번 짚어 보았다. 손끝에 매끈한 코팅이 닿았다. 청소 노동자가 웃었다. 재민도 그날 처음으로 조금 웃었다.
*
오후 네 시, 성남의 군 병원 앞 인도에 기자 여섯이 서 있었다. 그 앞에서 앞치마를 두른 쉰 살쯤 된 여자가 커다란 보온 가방 두 개를 양손에 들고 길을 막고 있었다. 두식과 눈매가 똑같았다.
“우리 애 자요. 사진 찍을 거면 나를 찍어요. 나 오늘 아침에 김밥 백 줄 말았어요. 그거 찍어요.”
재민이 다가가자 두식의 어머니가 재민의 정복 명찰을 보았다. 재민은 경례할지 고개를 숙일지 정하지 못하고 둘 다 반쯤 했다. 어머니가 보온 가방 하나를 재민 가슴에 안겼다. 무겁고 따뜻했으며, 참기름 냄새가 지퍼 틈으로 새어 나왔다.
“서른두 줄이에요. 서른은 애들 거, 하나는 중사님 거.”
“하나는 누구 겁니까?”
“우리 애를 안아서 나왔다는 그 외국 사람.” 어머니가 손등으로 코를 한 번 훔쳤다. “우리 애가 아침에 그랬어요. 엄마, 그 사람 팔이 엄마 튀김 솥보다 뜨거웠어. 그 사람한테 주세요. 단무지 빼고. 외국 사람들 단무지 싫어한대.”
병실에서 두식은 깨어 있었다. 왼쪽 무릎 아래가 이불 밑에서 짧게 끝나 있었다. 두식은 그쪽을 보지 않고 재민을 보았다.
“정우가 계란말이 몇 개 넣었습니까?”
“열여섯.”
“안 탔습니까?”
“은별이가 세고 정우가 부쳤어. 안 탔어.”
두식이 천장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됐습니다.”
재민은 병실에서 오 분을 더 앉아 있었다. 두식은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이불 끝의 실밥 하나를 계속 말았다 폈다.
*
저녁 일곱 시 반, 연천으로 돌아온 재민이 위병소를 지나자 연병장 끝 가로등 밑에 레온이 서 있었다. 혼자였고, 야전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재민의 품에 안긴 보온 가방을 보고 레온이 코를 한 번 킁 했다.
“참기름이오? 소인이 사극에서 그 냄새를 상상만 했소.”
“한 줄은 니코 라투 겁니다.”
“전하겠소.” 레온이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손에 접힌 종이가 있었다. “텔레비전 잘 보았소. 그대가 말한 숫자는 다 맞소. 그래서 본사가 오늘 오후에 전화를 세 번 했소.”
“그래서 뭘 하셨습니까?”
“그대가 서울에 있는 동안 소인이 일을 하나 정했소.” 레온이 종이를 폈다. “비무장지대 안 동쪽에 오래전에 비운 감시 초소가 하나 있소. 계약서에는 이 달 말까지 그것을 헐게 돼 있소. 헐면 회사가 받는 돈이 있고, 못 헐면 깎이는 돈이 있소. 비무장지대 안이라 소인의 사람은 못 들어가오. 내일 새벽 다섯 시에 그대 병사 열이 들어가오.”
재민은 보온 가방을 내려놓지 않았다.
“명단은 누가 짰습니까?”
“소인이 짰소. 몸무게가 가벼운 순서로.” 레온은 그 말을 하고 잠깐 입을 다물었다. “무너진 콘크리트 위를 걸어야 하오. 가벼운 사람이 덜 빠지오. 권은별 일병이 맨 위요.”
창고 막사 쪽에서 누군가 재민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중사님 오셨다. 김밥 냄새다. 창고 문이 열리고 불빛이 연병장 진흙 위로 길게 쏟아졌다. 그 불빛 끝에 은별이 맨발로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