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243자)

그 자리에 있어

용병 회사가 우리 사단을 샀다 · 문가온

4월 1일 밤 열한 시 이십 분, 재민은 철책에 얼굴을 붙이고 갈대밭을 보았다. 흰 천을 쥔 사람은 백 미터 밖에서 무릎을 꿇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손전등을 비추자 그 사람이 눈을 감았는데, 얼굴이 젖어 있었고 입술이 검었다. 북쪽 비탈에서 내려온 개울을 건너온 것 같았다.

재민은 손나팔을 만들었다.

“그 자리에 있어! 한 발도 움직이지 마!”

“알갔시요!”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근데 다리가 안 움직입네다!”

“그럼 됐어! 그대로 있어!”

뒤에서 민수가 작게 말했다. “중사님, 지금 말이 통했습니다.”

“조용히 해.”

재민은 무전기를 들었다. 귀순하려는 사람이 비무장지대 안에 있다, 위치는 동쪽 끝 이 킬로 지점 북쪽 백 미터, 혼자이고 무기는 안 보인다. 귀순 유도는 국군 소관이었다. 계약서에 그렇게 적혀 있었고, 재민도 그걸 알았다. 재민이 무전으로 청한 것은 두 가지였다. 통문 열쇠, 그리고 사고가 나면 바로 달려가는 회사 신속대응조의 들것과 의무병.

통문은 철책에 난 쇠문이었다. 순찰과 수색 때만 여는 문이라 열쇠는 상황실에 있었다.

에밀리가 대답하기까지 사십 초가 걸렸다.

“중사님, 열쇠는 사장님이 직접 가지고 가신대요. 그런데 신속대응조는…….” 에밀리가 말을 골랐다. “비무장지대 안으로 회사 인원이 들어가면 정전협정 위반이고 계약 위반이에요. 통문 바깥 오십 미터까지만 가능해요. 죄송해요. 이건 제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에요.”

*

십이 분 뒤 철책 남쪽 비포장길로 차 한 대가 불을 끄고 올라왔다. 운전석에서 니코가 내렸고, 조수석에서 레온이 내렸다. 레온은 방탄복 위에 낡은 야전 점퍼를 걸쳤고, 손에 열쇠 꾸러미를 쥐고 있었다. 쇠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밤공기에 또렷했다.

레온은 통문 앞에서 철책 너머를 한참 보았다. 갈대밭의 그 사람은 이제 앞으로 고꾸라져 손을 짚고 있었다.

“저 사람, 십오 분이면 정신을 잃소.” 레온이 말했다. “물에 젖은 채 영상 2도면 그렇소. 소인도 남쪽 바다에서 한 번 보았소.”

“열쇠 주십시오.”

레온은 열쇠를 바로 내밀지 않았다. 열쇠 꾸러미를 든 손을 허리 높이에 둔 채 재민을 보았다.

“문을 열면 그 너머는 전부 그대의 일이오. 소인의 사람은 한 걸음도 들이지 않소. 그대가 다쳐도, 그대 병사가 다쳐도 소인은 이 선에서 보기만 하오. 알고 여시오.”

“알고 엽니다.”

“하나 더.” 레온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대가 저 안에서 죽으면 이 사단의 현역 간부가 없어지오. 현역 간부가 없으면 위탁법상 사단이 국군이 아니게 되오. 그러면 소인의 계약도 그날로 서류가 달라지오. 그러니 소인은 그대가 들어가는 것이 싫소. 그대를 위해서가 아니오.”

“솔직하십니다.”

“소인은 거짓말을 안 하오. 그게 소인이 파는 물건이오.”

레온이 열쇠를 건넸다. 재민은 열쇠를 받아 들고 돌아섰다.

“두식이.”

“상병 마두식.”

“같이 간다. 넌 업는 거만 해. 내 발자국 밖으로 한 뼘도 나가지 마.”

두식은 키가 백팔십오에 몸무게가 구십이 넘었고, 입대 전에는 부천에서 어머니의 분식집 튀김 솥을 지켰다. 두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가 한 발 나섰다가 재민의 눈을 보고 도로 물러섰다.

*

통문이 열리는 소리는 생각보다 작았다. 녹슨 경첩이 한 번 끽 하고 울었고, 그다음은 녹은 흙에 군화가 빠지는 소리뿐이었다. 재민은 손전등을 발밑에만 비추고 걸었다. 땅은 질었고, 한 발 디딜 때마다 차가운 물이 군화 목까지 배어 올라왔다. 갈대 사이로 썩은 풀과 쇠 녹 냄새가 함께 났다. 지난겨울 얼었다가 녹으면서 비탈의 흙이 통째로 흘러내린 자리였고, 그 흙 안에 무엇이 같이 흘러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재민은 오래된 수레바퀴 자국이 남은 단단한 쪽을 골라 디뎠다. 한 걸음, 멈춤, 한 걸음. 두식은 재민의 발자국 안에 자기 발을 정확히 넣었다. 두식의 큰 군화가 재민의 발자국을 덮을 때마다 진흙이 한 번씩 밀려 나왔다.

갈대밭의 사람은 스물넷쯤 되어 보였다. 누런 솜옷이 물을 먹어 검었고, 발에는 신발 대신 비닐을 칭칭 감고 있었다. 재민이 다가가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남조선 군대 맞습네까?”

“맞아.”

“아까 철책 위 불이 다 꺼지길래, 내래 들킨 줄 알고…….”

“그거 회사가 끈 거야.”

“회사요?”

“나중에 얘기해. 이름.”

“한광일입네다.”

두식이 광일을 업었다. 광일은 업히자마자 두식의 목을 끌어안고 몸을 떨었다.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재민에게까지 들렸다. 재민은 돌아서서 왔던 발자국을 손전등으로 짚었다. 통문까지 팔십 미터였다. 통문 앞에서 레온과 니코와 병사 셋이 손전등 불빛 안에 작게 서 있었다.

사십 미터쯤 왔을 때였다.

두식의 왼발이 물 먹은 흙에서 미끄러졌다. 업힌 사람 무게가 한쪽으로 쏠렸고, 두식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을 한 뼘 옆으로 디뎠다. 재민이 돌아보며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 땅이 아래에서 위로 쳤다.

소리보다 먼저 몸이 들렸다. 귀가 먹먹해졌고, 흙과 물과 갈대 부스러기가 얼굴을 때렸다. 재민은 엉덩방아를 찧었고, 입 안에 흙이 들어왔다. 화약 냄새가 그다음에 왔다. 귀 안에서는 길고 높은 소리만 울렸다.

두식이 모로 누워 있었다. 광일은 두식 등에서 굴러 진흙에 엎어져 있었다. 손전등 불빛 안에서 두식의 왼쪽 군화가 보이지 않았다. 무릎 아래 바짓단이 찢어져 검게 젖어 있었다.

두식이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입을 벌린 채 숨만 크게 들이쉬었다. 재민은 두식의 허벅지를 두 손으로 눌렀다. 따뜻한 것이 손가락 사이로 밀려 나왔다. 재민은 허리띠를 풀었다.

*

니코는 통문 앞에서 그 불빛을 보았다.

땅이 솟은 자리에서 흙기둥이 손전등 빛을 받아 잠깐 하얗게 섰다가 무너졌다. 뒤늦게 터지는 소리가 니코의 가슴을 쳤다. 국군 병사 셋이 동시에 철책을 붙잡았고, 한 사람은 이름을 불렀다. 두식, 두식. 니코는 그 이름을 오늘 저녁 창고에서 들었다. 끓는 물 봉지를 들고 창고를 한 바퀴 돈 사람이었다.

“스테이.” 레온이 니코를 보지 않고 말했다. “라투, 스테이.”

니코는 고향 섬에서 열네 살 때 형을 바다에 잃었다. 그날 니코는 바위 위에서 어른들이 「기다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고, 기다렸다. 형은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그 뒤로 니코는 누가 물에 빠진 걸 보면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갔다. 그 버릇 때문에 럭비 경기에서 두 번 퇴장을 당했고, 이 회사에서 한 번 경고를 받았다.

니코는 손전등을 이빨로 물었다. 그리고 통문을 지나 재민과 두식이 낸 발자국 위로 뛰었다.

등 뒤에서 레온이 한 번 더 무언가 말했다. 니코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발자국 안만 보았다. 큰 발자국 안에 작은 발자국이 있었고, 니코의 발은 그 둘보다 컸다. 니코는 발끝으로만 디뎠다.

*

니코가 두식을 안아 올렸다. 업지 않고 아이를 안듯이 앞으로 안았다. 두식이 니코의 얼굴을 보고 한국말로 뭐라고 했고, 니코는 피지어로 뭐라고 대답했다. 둘 다 서로의 말을 몰랐지만 두식이 한 번 웃었다. 재민은 광일을 업었다. 광일은 아까보다 가벼웠고, 아까보다 덜 떨었다. 그게 더 나빴다.

통문을 다시 지날 때 레온이 문 옆에 서 있었다. 레온은 한 걸음도 들어오지 않았고,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니코가 지나가자 레온이 영어로 짧게 말했다. 재민은 그 가운데 「벌금」이라는 단어 하나를 알아들었다.

니코가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두식을 안은 채였다.

*

새벽 한 시, 사단 의무대 복도는 소독약 냄새가 짙었다. 회사 헬기가 두식을 싣고 남쪽으로 떠난 뒤였다. 헬기에 오르기 직전, 들것에 묶인 두식이 재민의 소매를 붙잡았다.

“중사님. 내일 아침 계란말이 당번 저입니다.”

“알아.”

“은별이 시키지 마십시오. 걔는 다 태웁니다. 민수 병장님은 소금을 안 넣습니다.” 두식이 숨을 한 번 골랐다. 진통제가 돌기 시작한 눈이었다. “정우 시키십시오. 정우는 전역 날짜 세는 것처럼 계란도 잘 셉니다. 한 판에 열여섯 개 넣으면 됩니다. 열여섯 개입니다.”

“열여섯.”

“어머니가 그렇게 하셨습니다.”

들것이 헬기 안으로 들어갔다. 프로펠러 바람에 의무대 앞 마른 흙이 한꺼번에 날렸고, 재민은 눈을 감지 않았다.

*

광일은 의무대 침상에 앉아 모포 두 장을 둘러쓰고 있었다. 손에 뜨거운 보리차 컵을 쥐었는데, 손이 아직 떨려서 차가 조금씩 넘쳤다. 침상 옆 의자에 민수가 앉아 있었다. 정보 쪽 사람들이 오기 전까지 지키라는 명령이었다.

“담배 있습네까?” 광일이 물었다.

“있긴 한데, 여기 매점이 회사 거라 카드를 긁어야 합니다.”

“남조선은 군대도 돈 내고 담배 피웁네까?”

“오늘부터 그렇게 됐습니다.” 민수가 진지하게 말했다. “어제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문이 열리고 레온이 들어왔다. 레온은 점퍼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광일에게 내밀었다. 광일이 레온의 반쯤 없는 귀와 흰 수염을 번갈아 보았다.

“그대, 먼 길 오셨소. 몸을 녹이시오.”

광일이 담배를 받아 들고 민수를 돌아보았다. “이 양반은 어느 시대 사람입네까?”

“사장님입니다. 사령관이기도 합니다.”

“사장이 사령관이면, 장군이 장사꾼입네까?”

민수가 대답하려다 레온의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레온은 웃지 않았다. 대신 재민을 보았다.

“라투의 벌금은 소인이 내겠소. 대신 오늘 일은 회사 보고서에 「위탁 첫날 귀순 유도 지원」으로 올라가오. 회사 사람이 다친 것은 없소. 손실률 영이오.”

“두식이는 거기 안 들어갑니까?”

“들어가지 않소. 소인이 넣고 싶어도 칸이 없소.” 레온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가 의무대라는 걸 깨닫고 도로 집어넣었다. “칸을 만든 분께 여쭈시오. 곧 전화가 올 것이오.”

*

아침 일곱 시, 재민은 창고 막사 앞 수돗가에서 손을 씻었다. 손톱 밑에 낀 것이 잘 빠지지 않았다. 물이 차가워서 손가락이 아팠다. 창고 안에서는 정우가 계란 열여섯 개를 깨는 소리가 하나씩 났다. 은별이 옆에서 세고 있었다. 열둘, 열셋.

주머니에서 전화가 울렸다. 국방부 번호였다.

“오 중사. 진무혁이야.” 목소리가 밤새 안 잔 사람 같지 않게 맑았다. “어젯밤 일 들었어. 수고했어. 마 상병은 무릎 아래를 잃었다지. 안타까운 일이야.”

재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계속 흘렀다.

“내일 오전 열 시,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발표한다. 위탁 첫날, 국군과 회사가 함께 귀순자를 구했다. 자네가 내 뒤에 서 줘. 정복 입고.”

“국장님.”

“응.”

“두식이 다리는 함께 잃은 겁니까?”

전화 너머가 삼 초쯤 조용했다. 그리고 진무혁이 말했다.

“그 얘기는 내 방에서 하자. 아홉 시까지 와.”

전화가 끊겼다. 창고 안에서 계란말이 냄새가 났다. 타는 냄새는 아니었다.

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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