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542자)
사장 겸 사령관
용병 회사가 우리 사단을 샀다 · 문가온
2034년 4월 1일 아침 아홉 시, 경기 연천의 한여울사단 연병장에는 임진강에서 올라온 안개가 무릎 높이로 깔려 있었다. 밤새 녹은 땅이 군화 밑에서 질척거렸고, 연병장 둘레의 철쭉은 아직 봉오리였다. 단상 위 깃대 두 개 가운데 하나에는 태극기가 걸렸고, 다른 하나에는 짙은 남색 바탕에 은색 열쇠가 그려진 깃발이 걸렸다.
은색 열쇠는 발레타 리스크 그룹의 표식이었다. 지중해 섬나라 몰타에 서류상 본사를 둔 민간 군사 회사, 그러니까 돈을 받고 군대 일을 대신 해 주는 회사였다. 오늘부터 이 사단의 경계와 작전과 밥과 빨래를 그 회사가 맡았다.
연병장에는 회색 전투복을 입은 계약 인력 천이백 명이 열을 맞춰 서 있었다. 피부색이 여럿이었고 키 차이가 한 뼘씩 났으며, 줄 맨 뒤에서는 누군가 껌을 씹고 있었다. 그 천이백 명의 오른쪽 끝, 배수로 바로 옆 진흙이 제일 깊은 자리에 얼룩무늬 전투복 서른한 벌이 따로 서 있었다. 국군 병사 서른과 중사 오재민이었다.
재민은 서른 살이었다. 열아홉에 부사관으로 들어와 열한 해를 이 사단에서 보냈고, 지난달 마지막 소대장이 전역한 뒤로는 사단에 남은 유일한 현역 간부였다. 입영할 스무 살이 해마다 줄어 막사가 하나씩 비었는데, 비는 속도가 채우는 속도를 넘어선 지 세 해째였다. 국방부는 그것을 「병력 절벽」이라고 불렀다. 재민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빈 침상 위에 개켜진 채 먼지가 앉은 모포를 떠올렸다.
“중사님.” 바로 뒤에서 병장 탁민수가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 “저 사람들 월급이 우리 열두 배랍니다. 취사장 아줌마가 그랬습니다.”
“취사장 아줌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취사장도 오늘부터 회사 겁니다. 아줌마도 회사 사람입니다.”
“그럼 아줌마 월급도 열두 배냐?”
민수가 잠깐 생각했다. “그건 못 물어봤습니다. 다음에 물어보겠습니다.”
“묻지 마.”
*
단상에 국방부 전력위탁국장 진무혁이 올라섰다. 쉰넷이었고, 회색 양복 위에 국방부 마크가 박힌 점퍼를 입었으며, 마이크 앞에서 종이를 펴지 않았다. 다 외워 온 사람이었다.
“스무 살이 줄어드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철책이 비는 나라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부터 한여울사단은 국가와 기업이 함께 지킵니다.”
박수가 났다. 천이백 명 가운데 한국말을 알아들은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앞줄의 누군가가 치기 시작하자 나머지가 따라 쳤다. 박수 소리가 안개 속에서 둔하게 퍼졌다.
순서는 사단기 반납이었다. 회사 의장대 둘이 깃대에서 붉은 사단기를 내렸다. 둘 다 키가 컸고 손이 빨랐는데, 깃발을 삼각형으로 접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 군대에서 국기를 접는 방식이었다. 삼각형이 세 번 접히자 사단 마크의 학이 목만 남고 몸통이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재민은 줄에서 나갔다.
진흙에 군화가 빠지는 소리가 두 번 났다. 단상 아래까지 걸어간 재민이 의장대 앞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의장대 하나가 단상의 진무혁을 보았고, 진무혁은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재민은 접힌 깃발을 다시 펼쳤다. 사흘 전 비에 젖었다 마른 천에서 곰팡이 냄새가 조금 났다. 깃발을 길게 두 번 접고, 학이 바깥에 오도록 가로로 세 번 접어, 마지막에 술이 달린 끝을 안으로 넣었다. 열한 해 동안 사단기를 접는 걸 여섯 번 보았고, 두 번은 직접 접었다. 다 접은 깃발을 상자에 넣을 때 뒤에서 군화 서른 켤레가 한꺼번에 진흙을 차는 소리가 났다. 병사 서른이 경례하고 있었다.
회색 줄 맨 앞에서 덩치가 유난히 큰 사람 하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들을 보다가, 조금 늦게 오른손을 이마에 붙였다. 그 사람 뒤로 몇이 따라 했다. 경례가 군데군데 이빨 빠진 것처럼 번졌다.
재민이 줄로 돌아오자 민수가 속삭였다. “저 큰 사람, 손바닥이 거꾸로였습니다.”
“알아.”
*
다음은 레온 바스케스였다. 발레타 리스크 그룹 한국 법인의 사장이면서, 계약서에 따라 한여울사단의 사령관을 겸하는 사람이었다. 쉰둘이었고, 볕에 탄 얼굴에 흰 수염이 짧았으며, 왼쪽 귀가 반쯤 없었다. 레온은 마이크를 잡고 한국말로 말했다.
“소인, 레온 바스케스라 하옵니다. 오늘부터 이 사단의 사장이자 사령관이옵니다. 그대들의 노고를 소인이 잘 알고 있사옵니다.”
국군 쪽 줄이 한꺼번에 굳었다. 웃으면 안 되는 자리에서 웃음을 참는 서른 사람의 어깨가 동시에 떨렸다. 민수가 숨을 참다가 코로 짧은 소리를 냈고, 그 뒤에서 상병 마두식이 민수 허리를 꼬집었다.
“사극으로 배웠나 봅니다.” 일병 권은별이 앞을 보면서 말했다.
“그대들이라고 했어.” 상병 이정우가 말했다. 정우는 전역까지 이백십 일이 남았고, 아침마다 그 숫자를 하나씩 줄여 말하는 사람이었다. “이백십 일 남았는데 그대가 됐어.”
레온은 영어로 몇 마디를 더 했고, 단상 옆에서 운영실장 에밀리 차가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서른넷의 재미교포였고, 태블릿을 가슴에 안고 있었다.
“네, 그럼 국군 분들 계신 쪽으로 조금만 얼라인해서 말씀드릴게요. 이번 분기 저희 핵심 지표, 그러니까 KPI는 세 개예요. 손실률, 경계 공백 시간, 비용 대비 가동률. 이 세 개가 다음 분기 재계약을 결정해요.”
민수가 손을 들었다. 재민이 말릴 틈이 없었다.
“병장 탁민수. 질문 있습니다. 얼라인이 뭡니까? 좌로 나란히 말입니까?”
“아, 맞춘다, 정렬한다, 그런 뜻이에요.”
“그럼 가동률은 뭡니까? 저희가 기계입니까?”
에밀리가 잠깐 웃음을 참았다. “사람이 일하는 시간 비율이에요. 기계는 아니세요.”
“알겠습니다. 기계 아닙니다.” 민수가 손을 내렸다. 재민은 민수 뒤통수를 보지 않았다. 보면 웃을 것 같았다.
*
열한 시, 연병장 옆 지휘 천막 안은 난로 기름 냄새와 새 장비 비닐 냄새가 섞여 있었다. 에밀리가 재민에게 태블릿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국군 잔류 인원의 첫 달 배치가 떠 있었다.
국군 서른의 자리는 둘이었다. 철책 동쪽 끝 사 킬로 구간의 밤 순찰,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 비무장지대 안 수색. 휴전선 남북으로 이 킬로씩, 군대를 들이지 않기로 하고 비워 둔 땅이 비무장지대였다. 한국전쟁을 멈춘 정전협정이 그 땅에 누가 들어갈 수 있는지를 정해 두었다. 동쪽 끝 사 킬로는 이번 봄에 언 땅이 녹으면서 북쪽 비탈의 옛 지뢰가 떠내려왔다는 신고가 세 번 들어온 구간이었다.
재민은 배치표를 두 번 읽었다. 그리고 천막 안쪽 탁자로 갔다. 레온과 진무혁이 커피를 들고 서 있었다.
“중사 오재민입니다. 배치표 여쭙겠습니다.”
“말씀하시오.” 레온이 말했다.
“동쪽 끝 사 킬로는 회사 인원이 쉰 명 넘게 들어가야 하는 구간입니다. 그걸 서른으로 돌리면 한 사람이 백삼십 미터를 맡습니다. 그리고 그 구간은 지뢰가 떠내려온 데입니다. 왜 국군입니까?”
레온은 커피를 내려놓았다. 대답이 빨랐다.
“그대 사람은 손실률에 들어가지 않소. 소인의 사람이 다치면 숫자가 오르고, 영점팔 퍼센트를 넘으면 회사가 계약을 잃소. 그대 사람이 다치면 국가가 책임지오. 그렇게 적힌 계약서는 소인이 쓰지 않았소.” 레온이 진무혁 쪽으로 턱을 아주 조금 들었다. “저분이 쓰셨소.”
진무혁은 그 말을 듣고도 얼굴을 바꾸지 않았다.
“오 중사. 비무장지대는 정전협정상 회사 사람이 못 들어가. 북쪽으로 먼저 총을 쏘는 것도 못 하고. 그걸 할 수 있는 건 현역 국군뿐이야. 자네 서른이 남아 있어서 이 사단이 아직 대한민국 군대야.”
“그건 수색 얘기입니다. 동쪽 끝 철책은 비무장지대 밖입니다.”
진무혁이 컵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그 구간에서 사고가 나면 회사 숫자가 무너지고, 회사 숫자가 무너지면 계약이 무너져. 계약이 무너지면 철책 이십육 킬로가 통째로 비어. 자네 서른이 사 킬로를 맡아서 이십육 킬로가 사는 거야.”
“숫자는 국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재민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그 사 킬로를 걷는 사람이 스무 살이라는 것도 맞습니다.”
천막 안이 조용해졌다. 난로 위 주전자가 끓기 시작하는 소리가 났다. 에밀리가 태블릿을 가슴에 다시 안았다.
레온이 먼저 입을 열었다. “구간은 못 바꾸오. 바꾸면 소인의 사람 쉰이 그 자리로 가야 하오. 다른 걸 청하시오.”
재민은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순찰 순서는 제가 정합니다. 맨 앞은 제가 섭니다. 매일 밤.”
“그건 계약서에 없소.” 레온이 잠깐 재민을 보았다. 회색과 갈색이 섞인 눈이었다. “없으니 막을 이유도 없소. 그리하시오.”
천막을 나설 때 재민의 등 뒤에서 레온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까 깃발. 접는 법이 우리와 달랐소. 소인의 의장대에 가르쳐 주시오. 수업료는 내겠소.”
재민은 돌아보지 않고 경례만 했다.
*
국군 서른의 막사는 회사가 새로 고친 생활관이 아니라 연병장 끝의 옛 보급 창고였다. 난방기 둘에 침상 서른하나였고, 벽에 붙은 「정리정돈」 네 글자 가운데 「돈」이 반쯤 벗겨져 있었다. 저녁 여섯 시, 두식이 전투식량 봉지를 뜯어 물을 붓다가 창고 문을 보았다.
문간에 그 덩치 큰 사람이 서 있었다. 연병장에서 손바닥을 거꾸로 하고 경례한 사람이었다. 키가 문틀에 닿았고, 품에 종이 상자 하나를 안고 있었다.
“불라!” 그 사람이 크게 말했다.
“불 났답니다!” 민수가 소리쳤다.
은별이 소화기를 들었고, 정우가 침상에서 굴러떨어졌으며, 두식은 끓는 물 봉지를 든 채 창고를 한 바퀴 돌았다. 덩치 큰 사람이 두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웃음소리가 창고 지붕에 울렸다.
“노, 노. 불라. 헬로. 피지.” 그는 자기 가슴을 쳤다. “니코. 니코 라투.”
니코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에서 왔다. 피지 말로 「불라」는 안녕이었다.
니코가 내려놓은 상자에는 회사 매점의 단백질 바가 가득 들어 있었다. 니코는 상자를 가리키고, 연병장 쪽을 가리키고, 자기 이마에 손바닥을 거꾸로 붙였다. 그리고 엄지를 들었다.
“아까 경례 고맙다는 겁니다.” 은별이 말했다.
“거꾸로 한 거 미안하다는 거 아니야?” 민수가 물었다.
“둘 다일 겁니다.”
재민이 손바닥을 아래로 돌려 다시 이마에 붙여 보였다. 니코가 따라 했다. 이번에는 맞았다.
*
밤 열한 시, 철책 동쪽 끝 사 킬로의 들머리는 영상 2도였다. 녹은 흙에서 쇠 냄새와 썩은 풀 냄새가 올라왔다. 재민이 맨 앞에 섰고, 그 뒤에 은별, 그 뒤에 정우와 민수가 섰다. 철책 위로 이십 미터마다 감시 카메라가 달린 기둥이 서 있었고, 기둥마다 작은 붉은 불이 켜져 있었다. 회사 상황실 화면으로 이어진다는 불이었다.
이 킬로쯤 걸었을 때 그 불들이 꺼졌다.
앞에서부터 뒤로, 하나씩. 이십 미터마다 붉은 점이 사라졌고, 마지막 하나가 꺼지자 철책은 그냥 어둠 속의 쇠 그물이 되었다. 무전기에서 에밀리의 목소리가 나왔다. 미안해하는 목소리였다.
“중사님, 그 구간은 국군 소관이라 저희 상황실 운영비에서 빠졌어요. 열한 시부터 꺼지게 돼 있었대요. 저도 방금 알았어요.”
은별이 재민의 등에 거의 닿을 만큼 다가와 섰다. 숨이 하얗게 나왔다가 흩어졌다.
“중사님.”
“뭐?”
“저기요.”
철책 너머, 비무장지대 쪽으로 백 미터쯤 떨어진 마른 갈대 사이에서 흰 천 한 장이 흔들렸다. 천을 쥔 손이 보였고, 그 손 아래로 사람 하나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 왔고, 그 바람에 목소리 하나가 실려 왔다.
“쏘지 마시라요. 내래, 넘어가갔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