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160자)

네 번째 침

무림 고수들이 내 의원에 외상을 달았다 · 한도윤

“거짓말이면요?”

초림이 침을 쥔 채 물었다. 눈은 매청운의 명치에서 떼지 않았다. 침은 반 치 깊이에 서 있었다.

“거짓이면 화산 장로가 죽소.”

연비가 문간에서 대답했다. 진우경이 등잔을 내려놓고 일어서려 하자, 연비가 왼손 장갑을 벗어 앞으로 내밀었다. 손목 안쪽의 검은 실이 등잔 빛에 드러났다. 두 마디였다.

“거짓이면 이 손목을 자르시오. 화산 제자가.”

“왜 알려 주는 거예요?”

“그 침이 듣는 걸 내 눈으로 봐야 하오. 나도 언젠가 거기를 맞아야 하니까.”

방 안이 조용해졌다. 오 할멈이 연비의 손목을 보았다. 할멈의 입술이 무언가를 말하려다 다물렸다. 이십 년 전 그 곡에서 할멈이 빻은 가루가 지금 그 손목을 타고 오르고 있었다.

“담아.”

할멈이 말했다.

“한 치 두 푼이면 맞다. 흑사곡 사람이 아니면 그 깊이는 모른다. 네 아버지도 나도 몰랐다. 우리는 늘 밖에서 독을 봤으니까.”

초림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쑥 연기가 목구멍을 긁었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로 침을 반 바퀴 돌리며 밀었다.

여섯 푼. 일곱 푼. 매청운의 배가 크게 떨렸다. 화산 장로가 이를 악물었다. 수염 끝에서 땀이 떨어졌다.

아홉 푼. 한 치. 진우경이 숨을 멈췄다.

한 치 한 푼.

침 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젖은 종이 같은 것이었다. 손가락 끝으로 그것이 올라왔다. 얇고 질기고, 아주 조금 미는 힘에 맞서 버티는 것. 초림은 거기서 멈췄다. 할멈이 말한 대로, 뚫지 않았다.

매청운의 명치 위로 오르던 검은 실이 떨렸다. 그리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머리카락 한 올씩, 가슴뼈에서 명치로, 명치에서 배로. 초림은 실 끝이 배꼽 가까이까지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할멈이 매청운의 발을 걷고 엄지발가락 끝을 땄다. 검은 피가 나왔다. 대야에 떨어지는 소리가 방 안에서 가장 컸다.

진우경이 등잔을 든 채 주저앉았다.

“됐소?”

“됐어요.”

초림이 말했다. 그 말이 자기 입에서 나오는 것을 초림은 남의 목소리처럼 들었다. 침을 쥐었던 손가락이 펴지지 않았다. 할멈이 그 손가락을 하나씩 펴 주었다.

연비는 문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장갑을 벗은 손이 그대로 앞으로 나와 있었다. 그 손이 아주 조금 떨렸다. 연비는 그것을 알아채고 손을 도로 거두었다.

*

여덟이 남아 있었다.

초림은 홍련에게 갔다. 그다음 반장호, 탁노개. 한 사람에 들어가는 침은 한 대였지만, 한 치 두 푼을 밀어 넣는 데는 숨 쉰 번이 걸렸다. 사람마다 막이 걸리는 깊이가 한두 푼씩 달랐다. 반장호는 한 치 세 푼에서 걸렸다. 몸이 두꺼웠다. 탁노개는 한 치에서 걸렸다. 평생 굶은 몸이었다.

“의원, 거지가 얇아서 다행이오.”

탁노개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엄지발가락 끝에서 검은 피가 나왔다.

“이번엔 살살 했소?”

“세게 했어요. 살살 하는 것처럼 보이게.”

“그런 침은 없다더니.”

“방금 생겼어요.”

쌍둥이는 둘이 똑같이 한 치 두 푼에서 걸렸다. 초림은 그것을 말해 주지 않았다. 말해 주면 둘이 또 누가 먼저 걸렸는지 싸울 것이었다. 곽진은 침이 막에 닿을 때 처음으로 신음을 냈다. 그리고 곧바로 말했다.

“방금 그건 종남 장로가 아니라 곽진 개인이 낸 소리요.”

묵향은 침이 들어가는 동안 연비를 보았다. 문간의 연비도 묵향을 보았다. 두 사람 사이로 초림의 손이 오갔다. 묵향의 막은 한 치 두 푼보다 반 푼 얕았다. 이십 년 동안 독 곁에서 몸이 그만큼 상해 있었다.

백리운이 마지막이었다. 흑사곡 장법으로 들어온 독은 국으로 들어온 독보다 깊었고, 백리운의 명치에는 육 년 전 상처까지 겹쳐 있었다. 막이 한 치 네 푼에서야 걸렸다. 아버지가 심장이라고 한 한 치 반까지 한 푼이 남아 있었다. 초림의 손이 그 깊이에서 한 번 떨렸다. 백리운이 눈을 뜨고 초림을 보았다.

“바구니 여덟 개 남았소.”

“알아요.”

“그러니 떨지 마시오. 바구니 쌓을 사람이 없어지오.”

침이 막에 닿았다. 실이 내려갔다. 창호지가 희게 밝아 왔다.

*

해 뜰 때 연비는 나무 상자를 들고 마당에 서 있었다. 약속대로였다. 밤새 문간에 서 있던 그대로의 옷이었고, 신발의 진흙이 말라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마당에 아홉 사람이 앉아 있었다. 누운 사람이 아니라 앉은 사람이었다. 반장호는 닭장수 아낙이 담 너머로 건넨 달걀을 깨고 있었고, 쌍둥이는 서로의 엄지발가락 침 자국을 비교하고 있었다.

“상자는 도로 가져가세요.”

초림이 말했다. 손가락에 무명을 감고 있었다.

“가져가겠소. 대신 하나만 청하겠소.”

연비가 왼손 장갑을 벗었다. 손목의 두 마디.

“나도 줄을 섰소. 아홉 다음이오. 지금 놓아 주시오.”

마당이 굳었다. 진우경이 일어섰고, 종남 제자들이 일어섰다. 아홉 사람 가운데 아직 앉아 있는 사람은 묵향 하나였다.

초림은 연비의 손목을 보았다. 실은 두 마디였다. 팔꿈치까지도 멀었다. 회류삼침 세 대면 손목에서 내려보낼 수 있었다. 세 대를 놓는 동안 연비는 침이 어디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제 살갗으로 느낄 것이었다. 흑사곡 사람의 몸이 그 길을 외울 것이었다.

“급한 사람부터예요.”

“나는 급하지 않소?”

“두 마디잖아요. 오늘 밤 아홉이 다 그 손에 쓰러졌어요. 그 아홉이 다 일어나고 나서 소곡주 차례예요. 목까지 오면 오세요. 그때는 놓아 드릴게요.”

“목까지 오면 늦소.”

“한 치 두 푼은 늦지 않아요. 소곡주가 가르쳐 줬잖아요.”

연비가 초림을 보았다. 화가 난 얼굴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다시 셈하는 얼굴이었다. 연비는 장갑을 다시 끼었다.

“그대는 오늘 내 아홉 알을 쓸모없게 만들었소. 내 호위를 데려갔고, 내 깊이를 가져갔소. 그리고 내 손목은 안 놓겠다는군.”

“네.”

“내일 곡주가 오시오. 내 아버지는 흥정을 하지 않소.”

연비가 돌아섰다. 마당을 나가기 전에 묵향 앞에서 멈췄다. 묵향은 앉은 채로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비가 묵향의 반쯤 잘린 귀를 한 번 보고 길을 건넜다.

*

점심나절 의원 마당에서 회의가 열렸다. 화산 쪽에 매청운과 진우경과 제자 아홉이 앉았고, 종남 쪽에 곽진과 제자 열이 앉았다. 두 무리 사이에 주춧돌이 하나 놓였다. 그 돌 위에 초림이 앉았다. 앉을 데가 거기밖에 없었다.

“흑사곡을 치겠소.”

매청운이 말했다. 곽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산과 종남이 같은 말에 같이 고개를 끄덕인 것이 백 년 만이라고, 탁노개가 울타리 너머에서 거지들에게 소리쳤다. 거지들은 그 소식을 해 지기 전에 화산 아래 다섯 마을에 퍼뜨렸는데, 마을을 하나 건널 때마다 이야기가 조금씩 불어서 다섯째 마을에서는 화산 장로와 종남 장로가 청하진 의원 앞에서 의형제를 맺고 국수를 백 그릇 돌린 것이 되어 있었다.

“이 진 우물에 독을 풀었소. 다음엔 화산 아래 마을 우물이고, 그다음엔 종남 아래 마을 우물이오. 흑사곡은 독을 팔아 먹고사는 곳이오. 독이 풀리는 걸 알면 독을 더 세게 만들 것이오. 그 전에 쳐야 하오.”

“그러니 회류삼침을 가르쳐 주시오.”

곽진이 이어 말했다.

“화산과 종남 제자 마흔이 흑사곡에 들어가면, 독을 맞는 놈이 반은 나올 거요. 그 자리에서 침 세 대를 놓을 줄 알면 반이 산다. 네 번째는 바라지 않소. 세 대만.”

초림은 주춧돌 위에서 두 장로를 보았다. 밤새 자기 손 밑에서 숨을 쉬던 사람들이었다.

“가르쳐 드리면 칼 들고 가시는 거죠.”

“그렇소.”

“흑사곡에도 사람이 있어요. 독 안 만드는 사람도요. 밥 하는 사람, 빨래 하는 사람. 할머니도 거기 있었어요.”

“알고 있소.”

“제 침으로 사람 살려서, 그 사람이 칼 들고 사람 죽이러 가요.”

매청운이 수염을 쓸었다.

“의원. 침을 안 가르치면 우리는 그래도 가오. 그러면 독 맞은 제자 스물이 길에서 죽소. 의원은 그걸 막을 수 있는 손이오. 칼을 막을 수는 없어도.”

초림은 대답하지 않았다. 매청운의 말은 맞았다. 맞아서 싫었다. 할멈이 약방 문간에서 그 말을 듣고 있었다. 할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흑사곡을 나온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그 자리에는 없었다.

초림이 주춧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주춧돌 스무 개, 그 위의 빈 하늘.

“가르쳐 드릴게요. 세 대만요.”

두 장로의 어깨가 동시에 내려갔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의방 기둥이 서기 전에는 아무 데도 못 가세요. 화산도, 종남도.”

“기둥이 몇 개요?”

“스무 개요.”

진우경이 입을 벌렸다. 종남 제자 하나가 손가락을 꼽았다.

“외상이잖아요. 기둥 서는 거 보고 가세요. 목숨값이에요.”

매청운이 웃었다. 처음 문짝을 부수고 들어온 밤 이후로 화산 장로가 그렇게 크게 웃은 것은 처음이었다. 곽진은 웃지 않았다. 대신 일어나서 처마 밑의 소나무 통나무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아버지가 껍질을 벗기다 만 그 통나무였다.

“이것부터 세웁시다.”

*

그날 밤 묵향이 초림을 찾아왔다. 초림은 반장호의 몸에 매청운이 놓는 침을 지켜보다가 나왔다. 화산 장로는 세 번째 자리를 두 번 틀렸고, 반장호는 두 번 다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았다.

묵향은 우물가에 서 있었다. 맷돌을 치운 뚜껑 위에 손을 얹고 있었다.

“곡주 이야기를 해 드려야겠습니다.”

“소곡주 아버지요?”

“예. 연무혈. 흑사곡을 서른 해 동안 다스린 사람입니다.”

묵향이 뚜껑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소곡주가 일곱 살 때, 곡주는 소곡주 손에 처음으로 독 가루를 쥐여 줬습니다. 소곡주가 그걸 쥐고 울자 곡주는 다 울 때까지 손을 펴지 못하게 했습니다. 소인이 그 손을 펴 준 게 그날 밤이었습니다. 그 뒤로 소곡주는 울지 않았습니다. 대신 신발에 흙을 묻히지 않는 걸음을 배웠지요. 곡주 앞에서는 발소리도 흠이 되니까요.”

“소곡주는 의원 땅을 원했습니다. 의방을 지어 간판을 걸고 장사를 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리고 자기 손목이 낫기를 원했습니다. 곡주는 다릅니다. 곡주는 땅도 의방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럼 뭘 원하는데요?”

묵향이 초림의 손을 보았다. 무명을 감은 손가락, 침 쥔 자국이 빨갛게 부은 자리.

“이 손입니다. 흑사곡 독을 푸는 손이 세상에 하나 있으면, 흑사곡 독은 값이 떨어집니다. 손이 곡 안에 있으면 값이 오르고요. 곡주는 그 손을 곡으로 데려가거나, 아니면 세상에서 없앨 겁니다.”

뒤뜰에서 곽진이 통나무를 굴리는 소리가 났다. 소나무 껍질이 마저 벗겨지는 소리, 반장호가 끌로 기둥 끝을 다듬는 소리. 초림은 그 소리 쪽을 한 번 보았다.

“내일 온다고요?”

“내일 옵니다.”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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