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74자)
스물일곱 대
무림 고수들이 내 의원에 외상을 달았다 · 한도윤
첫 대는 반장호의 명치 위, 가슴뼈 끝에 들어갔다. 둘째와 셋째는 갈비뼈 아래 양쪽이었다. 백리운에게 놓았던 자리 그대로였다. 실이 멈추는 데 숨 열 번이 걸렸다. 초림은 열 번을 다 셌고, 열 번째 숨에서 실 끝이 더 오르지 않는 것을 보고 다음 사람에게 갔다.
“등잔 이리.”
“여기 있소.”
“거기 말고 이리요. 그림자 져요.”
화산 제자 진우경이 등잔을 한 뼘 옮겼다. 매청운을 꼭 닮게 콧수염을 다듬은 그 사내였다. 화산에서 매청운의 사질의 제자, 그러니까 매청운을 사숙조라 부르는 자리였다. 진우경이 옮긴 등잔과 종남 제자가 든 등잔이 부딪쳤다. 기름이 한 방울 튀어 진우경의 손등에 떨어졌다.
“종남이 왜 화산 등잔 자리에 등잔을 대오?”
“화산이 왜 종남 장로 쪽으로 빛을 기울이오?”
“그만.”
오 할멈이 쑥 바구니를 들고 둘 사이를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둘의 정강이를 차례로 찼다. 할멈 발길에 무공은 없었지만 정확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정강이를 붙잡았다.
“너희 사숙조들이 지금 침 꽂고 누워 있는데 등잔 싸움을 하냐? 화산 등잔, 종남 등잔이 따로 있어? 기름은 내 거다.”
그 뒤로 등잔은 부딪치지 않았다. 화산 제자 열과 종남 제자 열은 아홉 사람 둘레에 둘씩 붙어 섰다. 한 사람은 등잔을 들고 한 사람은 쑥을 올렸다. 초림이 손을 뻗는 쪽으로 빛이 먼저 갔다.
*
두 번째는 홍련이었다. 강남의 쾌검은 눈을 반쯤 뜨고 있었다.
“의원, 국이 짰소?”
“안 짰어요.”
“그럼 다행이오. 짰으면 억울해서 못 죽소.”
세 번째는 탁노개였다. 늙은 거지는 초림이 저고리를 열자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의원, 살살.”
“살살 놓으면 안 들어가요.”
“그럼 세게 하되 살살 하는 것처럼 보이게.”
“그런 침은 없어요.”
“거지한테는 있어야 하오. 거지는 평생 맞아 봐서 아픈 게 무섭소.”
초림은 침 끝을 살갗에 대고 탁노개의 귀에 대고 말했다.
“지난 장날 국숫집에서 국수 두 그릇 드시고 한 그릇 값만 내신 거 봤어요.”
“그건…….”
탁노개가 입을 벌리는 사이 침 세 대가 들어갔다. 늙은 거지가 눈을 끔벅였다.
“벌써 들어갔소?”
“네.”
“의원, 개방에 들어오시오. 거지 장로 자리 하나 비워 두겠소.”
쌍둥이는 둘이 동시에 침을 맞겠다고 했다. 초림은 한 사람씩 놓았다. 우창에게 세 대를 놓고 좌창에게 갔을 때, 좌창이 형한테 놓은 자리와 한 치도 다르지 않게 놓으라고 했다. 초림은 같은 자리에 놓았다. 둘의 가슴뼈가 거울처럼 같은 자리에 같은 모양으로 나 있었다.
곽진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신 침이 들어갈 때마다 눈을 감은 채 한마디씩 했다.
“종남 장로는…….”
“아프지 않으시죠.”
“그렇소.”
곽진의 눈가로 눈물이 한 줄 흘러 귀로 들어갔다. 곁에 선 종남 제자가 쑥 연기가 진하다며 화로를 한 걸음 멀리 옮겼다. 곽진 쪽 화로에는 아직 쑥을 올리지도 않았다. 제자는 사숙의 체면을 그렇게 지켰다.
묵향은 침이 들어가는 동안 초림을 보았다. 흑사곡 호위의 눈은 초림의 손이 아니라 얼굴을 보고 있었다.
“소곡주가 그렇게 애쓰던 걸 이렇게 보는군요.”
“보셔도 못 하세요.”
“압니다. 손이 다르니까.”
*
아홉 번째는 매청운이었다. 화산 장로의 실이 가장 높이 올라와 있었다. 국을 마지막까지 서서 버틴 몸이었고, 버티는 동안 내력을 써서 독을 눌렀고, 눌린 독이 그만큼 깊이 들어갔다. 초림이 세 대를 놓았을 때 실은 멈췄지만, 다른 여덟보다 숨 다섯 번이 더 걸렸다.
매청운의 셋째 대가 들어가 아홉 사람 몸에 꽂힌 침이 스물일곱 대가 된 것은 자시, 한밤중이었다. 백리운의 가슴에는 이틀 전 놓은 세 대가 아직 그대로 있었다. 초림은 일어서다가 휘청했다. 진우경이 등잔을 내려놓고 초림의 팔을 붙잡았다.
“의원, 좀 앉으시오.”
“앉으면 못 일어나요.”
할멈이 대접 하나를 내밀었다. 미지근한 꿀물이었다. 초림은 그것을 한 번에 마셨다. 꿀 단맛 밑에 쑥 연기가 섞여 있었다. 방 안의 모든 것에 쑥 냄새가 배어 있었다.
방 안에는 아홉 사람이 누워 있었다. 병상 하나, 바닥에 여덟. 아홉 사람의 가슴에서 침 스물일곱 대가 숨결 따라 오르내렸다. 등잔 스무 개가 그 침 끝마다 작은 빛을 하나씩 매달아 놓았다. 초림은 그 빛을 보다가 두 손을 무릎 사이에 넣었다. 손이 떨렸다. 손가락 끝이 부어서 침을 쥔 자국이 빨갛게 남아 있었다.
“얼마나 버티오?”
진우경이 물었다.
“해 뜰 때까지요. 세 대로는 멈추기만 해요.”
“해 뜨면?”
“다시 올라요.”
진우경이 초림 옆에 쪼그려 앉았다. 등잔 빛 아래로 사내의 콧수염이 떨렸다.
“우리 사숙조님은 제자들 앞에서는 한 번도 앓는 소리를 안 하셨소. 감기에 걸려도 기침을 참으셨소. 그런데 이 집에서는 중환자라고 하신다며?”
“하루에 다섯 번쯤요.”
진우경은 웃지도 울지도 않는 얼굴로 매청운을 보았다.
*
진우경은 등잔을 들고 병상 곁으로 갔다. 병상에는 매청운이 아니라 백리운이 누워 있었다. 매청운은 병상 바로 아래 바닥에 깔린 이불 위에 있었다. 화산 장로가 병상을 그 아이에게 내준 것을 진우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들어서 안 그것을 아직 믿지 못하고 있었다.
육 년 전 진우경은 열아홉 살이었다. 산문 앞 돌계단에서 백리운이 검을 반납하던 날, 진우경은 계단 맨 아래에서 그것을 보았다. 백리운은 화산에서 가장 빠른 검이었고, 진우경에게 처음 검 쥐는 법을 가르친 사형이었다. 장로 회의는 백리운의 검을 받지 않았다. 내쫓긴 사람이 화산 검을 들고 산을 내려가게 하는 것이 벌이었다. 그 회의에서 맨 먼저 말한 사람이 매청운이었다는 것을 진우경은 그때부터 알고 있었다.
백리운의 가슴에 침 세 대가 꽂혀 있었다. 명치에서 오른 실은 한 치 자리에서 그대로였다. 백리운이 눈을 떴다. 진우경을 알아보는 데 숨 두 번이 걸렸다.
“우경이냐?”
“사형.”
“콧수염은 왜 그 모양이냐?”
“사숙조님 닮으려고요.”
“그만둬라. 닮으면 안 되는 데부터 닮는다.”
백리운이 웃었다. 웃으면서 바닥의 매청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매청운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수염 끝이 움찔했다. 진우경은 등잔을 두 사람 사이에 놓았다. 빛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
축시, 새벽 한 시가 넘었을 때 홍련의 실이 움직였다. 아주 조금, 머리카락 굵기만큼 위로. 할멈이 그것을 보고 초림의 어깨를 짚었다. 이어서 반장호의 실이, 탁노개의 실이 움직였다. 세 대가 붙잡고 있던 길목 위로 독이 비집고 오르기 시작했다.
“해 뜰 때까지라며!”
종남 제자 하나가 소리쳤다.
“독이 국에 들어간 거라 위장에 남은 게 계속 올라와요.”
초림은 침통을 열었다. 마흔두 대 가운데 스물일곱 대가 아홉 사람 몸에 꽂혀 있었다. 남은 열다섯 대 가운데 명치에 쓸 만한 것은 셋뿐이었다. 가장 길고 가는 침들이었다. 아버지가 명치에 쓰려고 따로 두었던 것이었다.
“의원.”
매청운의 목소리였다. 화산 장로는 눈을 뜨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는데, 그 땀에서 쇠 비린내가 났다.
“네 번째 자리가 있다 했소?”
“명치 바로 밑이에요. 그런데 한 번도 놓아 본 적이 없어요.”
“그럼 노부에게 먼저 놓으시오.”
방 안의 등잔 스무 개가 한꺼번에 흔들렸다.
“사숙조님!”
진우경이 일어섰다. 그리고 매청운이 누운 이불 앞을 몸으로 막아섰다. 등잔을 내려놓은 손이 허리로 갔다. 칼은 물독에 있었다. 진우경은 빈손으로 초림과 매청운 사이에 섰다.
“의원, 한 번도 놓아 본 적 없다고 했소? 사숙조님 몸에 시험을 하겠다는 거요?”
“시험 아니에요.”
“그럼 뭐요? 그대 아버지가 그 자리에 놓다가 죽었다고 들었소. 한 치를 더 들어가면 심장이라며!”
“그러니까 반 치까지는 알아요. 아버지가 거기까지 갔어요.”
“나머지는?”
초림은 대답하지 못했다. 진우경의 어깨가 떨렸다. 그 뒤에서 종남 제자들이 일어섰다. 종남 제자들은 곽진 쪽으로 가서 섰다. 그 뜻이 무엇인지 방 안의 모두가 알았다.
“우경아.”
매청운이 불렀다. 진우경이 돌아보지 않았다.
“비켜라.”
“못 비킵니다.”
“노부가 화산 장로다. 비켜라.”
“사숙조님이 돌아가시면 화산은 장로를 하나 잃습니다. 그런데 이 의원이 실패하면, 이 의원은 다음 사람한테 침을 못 놓습니다. 손이 떨려서요. 그러면 다른 여덟도 죽습니다.”
진우경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초림은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손을 무릎 사이에서 꺼내지 못했다.
매청운이 팔꿈치로 바닥을 짚고 몸을 반쯤 일으켰다. 명치 위의 침 세 대가 떨렸다. 초림이 손을 뻗기 전에 진우경이 먼저 무릎을 꿇고 매청운의 등을 받쳤다.
“그러니까 노부가 먼저다.”
매청운이 진우경의 귀에 대고 말했다. 방 안의 모두에게 들렸다.
“의원이 노부를 놓쳐도, 노부는 화산 장로라서 화산이 뭐라 할 것이다. 의원 손 탓이 아니라 노부가 늙어서라고. 그러니 의원 손은 안 떨린다. 다른 여덟한테는 그 손이 그대로 간다. 노부가 먼저 맞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진우경이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사숙조의 등을 받친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고는 천천히 이불 옆으로 비켜났다. 비켜나면서 바닥에 내려놓은 등잔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그 빛을 매청운의 명치 위에 댔다.
*
초림은 남은 세 대 가운데 하나를 골랐다. 가장 가는 것이었다. 화로 불에 끝을 한 번 지나가게 하고, 매청운의 명치 바로 밑, 가슴뼈가 끝나고 배가 시작되는 오목한 자리에 침 끝을 대었다.
“할머니.”
“손으로 안다. 침 끝이 막에 닿으면 손에 걸리는 게 온다. 젖은 종이 같은 게. 거기서 멈춰. 그걸 뚫으면 안 된다.”
“아버지는요?”
“네 아버지는 그걸 독에 취한 손으로 찾으려 했다.”
침이 들어갔다. 한 푼, 두 푼. 매청운의 배가 떨렸다. 다섯 푼, 반 치.
초림의 손이 멈췄다.
멈추려고 멈춘 것이 아니었다. 손가락이 더 밀지 않았다. 열세 살의 손이 침을 쥐고만 있던 그 밤처럼, 스무 살의 손이 그 자리에서 똑같이 굳었다. 침 끝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젖은 종이 같은 것도, 다른 무엇도.
“담아.”
할멈이 불렀다. 초림은 대답하지 못했다. 등잔 스무 개가 숨을 죽였다.
그때 문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한 치 두 푼이오.”
연비가 문간에 서 있었다. 해 뜰 때 오겠다던 사람이 자시를 넘긴 새벽에, 진흙 묻은 신발을 신고 서 있었다. 연비의 신발에 진흙이 묻은 것은 처음이었다.
“반 치에서 일곱 푼을 더 가시오. 거기서 막이 걸리오. 그대 아버지가 몰랐던 깊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