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272자)
아홉 번째 외상
무림 고수들이 내 의원에 외상을 달았다 · 한도윤
백리운의 명치에는 침 세 대가 꽂혀 있었다. 한 대는 명치 바로 위 가슴뼈 끝에, 두 대는 그 양옆 갈비뼈 아래에. 검은 실은 가슴뼈를 타고 한 치쯤 올라간 자리에서 멈춰 있었다. 초림이 밤새 그 실을 지켜보았는데, 실은 올라가지도 내려오지도 않았다.
“멈춘 거지 내려간 게 아니다.”
오 할멈이 병상 머리맡에서 말했다. 할멈은 백리운의 손목을 짚고 있었다. 맥이 가늘고 빨랐다.
“흑사곡 장법은 독을 손바닥으로 밀어 넣는다. 팔로 들어온 독은 손끝으로 빼면 되지만, 명치로 들어온 독은 빠질 데가 없어. 내려보내려면 명치 밑을 막아야 한다.”
“네 번째 자리요.”
“그래.”
“거기 몇 치예요?”
할멈이 대답하지 않았다. 초림도 다시 묻지 않았다. 아버지가 반 치를 넣고 멈춘 그 자리가 몇 치인지, 할멈도 초림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한 치를 더 들어가면 심장이라는 것만 알았다.
“열흘이다. 침 셋으로 버티는 게.”
백리운이 눈을 떴다. 천장을 보고, 자기 가슴에 꽂힌 침을 보았다.
“바구니가 아직 둘밖에 안 쌓였는데.”
“열 개는 나으시고 쌓으세요.”
“외상이 늘었군.”
백리운이 웃으려다 기침을 했다. 그 기침에 침 세 대가 한꺼번에 떨렸다. 초림이 손바닥으로 침들을 덮어 누르자 떨림이 멈췄다. 병상 발치에 서 있던 매청운이 그 손을 오래 보았다.
*
연비는 그 밤 시약소 안쪽 방에서 손목을 보고 있었다.
등잔 아래 장갑을 벗은 왼손이 놓여 있었다. 검은 실은 한 마디 반에서 두 마디로 늘어 있었다. 백리운의 명치를 칠 때 몸 안에 쌓아 둔 기운인 내력을 썼고, 내력을 쓰면 몸에 쌓인 독이 그만큼 움직였다. 흑사곡에서 독을 오래 다룬 사람은 모두 그랬다. 실이 목에 닿으면 끝이었다. 연비의 숙부가 마흔에, 연비의 어머니가 서른여섯에 그렇게 갔다. 곡주인 아버지는 그것을 독 만지는 집의 팔자라 불렀다. 연비는 그 말이 싫었다.
“소곡주.”
문간에 묵향이 서 있었다. 연비가 일곱 살 때부터 곁을 지킨 호위였다. 마흔다섯 먹은 여자였고, 왼쪽 귀가 반쯤 잘려 있었다. 연비를 노린 칼을 대신 받은 자리였다.
“곡주께서 전갈을 보내셨습니다. 보름 안에 침법을 가져오지 못하면 직접 오시겠답니다.”
“알고 있다.”
“진 사람들 탕약에 가루를 탄 건 곡주 뜻입니까, 소곡주 뜻입니까?”
연비는 장갑을 다시 꼈다.
“그 의원이 몇 대를 어디에 놓는지 보려면 아픈 사람이 많아야 했다.”
“두부집 영감은 일흔둘입니다. 침 놓는 손이 하나만 늦었으면 죽었습니다.”
“안 늦었다.”
“그건 소곡주가 아니라 그 의원 손이 한 일입니다.”
연비가 고개를 들었다. 묵향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이십 년 동안 그 눈이 연비 앞에서 내려가지 않은 적은 처음이었다.
“나가 있어라.”
묵향이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평소보다 작았다.
*
이튿날 아침 청하진 광장에 칼 찬 사람이 스물 들어왔다. 열은 흰 도포에 매화 무늬 칼집을 찼고, 열은 회색 도포에 검은 칼집을 찼다. 탁노개가 개방 거지들을 시켜 화산과 종남에 장로들 소식을 전한 지 나흘 만이었다. 두 무리는 광장 양쪽 끝에서 들어와 한가운데서 마주쳤다.
국숫집 주인이 그릇부터 치웠다.
“종남 놈들이 왜 여기 있소?”
화산 제자들 맨 앞의 사내가 말했다. 스물대여섯쯤 되어 보였고 콧수염이 매청운을 꼭 닮게 다듬어져 있었다.
“우리 장로를 모시러 왔소. 화산 놈들은 왜 왔소?”
“우리도 우리 장로를 모시러 왔소.”
“그럼 따로 모셔 가시오. 같은 길로 오지 말고.”
“길은 하나뿐이오.”
양쪽에서 칼집이 동시에 들렸다. 광장 좌판 상인들이 반쯤 편 좌판을 그대로 둔 채 뒤로 물러났다. 초림은 의원 문 앞에서 그 광경을 보다가, 덴 손바닥을 감싼 무명을 한 번 조이고 광장으로 걸어 나갔다.
초림은 두 무리 사이에 섰다. 화산 칼집과 종남 칼집 사이가 세 걸음이었는데, 초림이 그 가운데 서자 양쪽이 반 걸음씩 물러났다.
“장로님들 모시러 오셨어요?”
“그렇소. 의원이 누구시오?”
“두 분 장로 목숨 살린 사람이요. 그리고 의원 안에 환자가 있어요. 여기서 칼 뽑으시면 그 소리가 병상까지 들려요.”
“그대가 우리 장로를 붙잡아 두고 있다고 들었소. 장작을 패게 하고 물을 긷게 한다고.”
화산 콧수염의 목소리에 노기가 섞였다. 그 순간 의원 쪽에서 쓱쓱 하는 소리가 났다. 스무 명의 눈이 동시에 그쪽으로 돌아갔다.
매청운이 의원 앞마당을 빗자루로 쓸고 있었다. 화산파 장로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낙엽 하나 남김없이, 마당 구석구석을. 곽진은 그 옆에서 물지게를 지고 우물로 가는 중이었다. 종남 제자들이 입을 벌렸다. 화산 제자들도 입을 벌렸다. 콧수염 사내의 콧수염이 떨렸다.
“사, 사숙조님?”
스승의 스승 항렬 어른을 부르는 말이었다. 진우경의 목소리가 그 말 위에서 뒤집혔다.
매청운이 빗자루를 든 채 돌아보았다.
“왔느냐? 마침 잘 왔다. 저 뒤에 장작 패다 만 게 있다.”
“사숙조님, 산으로 돌아가셔야지요. 장문인께서…….”
“외상이 남았다.”
“외상이요?”
“목숨값을 돈 대신 일로 갚는 중이다. 화산이 외상을 떼먹었다는 소리를 들을 테냐?”
곽진이 물지게를 내려놓고 종남 제자들 쪽으로 왔다. 종남 제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너희도 들었지. 종남도 외상이 남았다.”
“얼마나 남으셨습니까?”
곽진이 초림을 보았다. 초림은 덴 손을 감싼 채 대답했다.
“제 아버지가 못 지은 의방 기둥이 설 때까지요.”
양쪽 제자들이 의원 뒤 빈터를 보았다. 눈이 녹은 자리에 주춧돌 스무 개가 두 줄로 드러나 있었다. 그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사숙조님이 산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기둥이 몇 개나 서겠소?”
화산 콧수염이 비웃듯 말했다. 매청운이 빗자루를 콧수염 사내에게 내밀었다.
“네가 쓸면 하나 더 선다.”
그날 오후 화산 제자 열과 종남 제자 열은 의원 뒤 빈터에서 언 땅을 팠다. 주춧돌 주변 흙을 고르는 일이었다. 두 무리는 빈터를 반으로 갈라 각자 제 쪽만 팠고, 경계선에서 삽이 부딪칠 때마다 칼을 뽑을 뻔했다. 그때마다 반장호가 도끼 자루로 땅을 한 번 짚었다. 그러면 양쪽 다 조용히 삽을 들었다.
저녁에 홍련이 스무 그릇 국수를 말았다. 화산 제자들은 매화 무늬 그릇을 달라고 했고 종남 제자들은 검은 그릇을 달라고 했는데, 의원에 있는 그릇은 전부 두부집 영감이 준 흰 사발이었다. 홍련은 국자로 솥을 한 번 치고 말했다.
“국수에 문파 있는 거 봤어?”
스무 사람이 흰 사발을 받아 들었다. 국수가 다 비었을 때 화산 콧수염이 종남 제자에게 소금을 건넸다. 건네고 나서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얼굴이 붉어졌다.
*
병상 곁에서 매청운이 초림을 불렀다. 백리운은 잠들어 있었다. 침 세 대가 숨결 따라 오르내렸다.
“의원. 노부의 내력을 이 아이 명치에 넣으면 어떻소?”
“독이 같이 밀려 올라가요. 장로님 내력이 세면 셀수록요.”
“그럼 노부에게 그 침 놓는 법을 가르쳐 주시오. 의원 손이 둘뿐인데 아픈 사람은 자꾸 느오.”
초림은 매청운을 보았다. 화산 장로의 손등에 침 자국 세 개가 아직 남아 있었다.
“가르쳐 드리면 그 침으로 흑사곡 치러 가실 거잖아요.”
매청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으로 대답했다. 화산 장로는 수염을 한 번 쓸고 백리운의 이불 끝을 여며 주었다. 육 년 전 그 아이를 내쫓은 손이었고, 지금 이불을 여미는 손이었다.
*
연비는 해가 진 뒤에 의원 문 앞에 왔다. 이번에는 사내들 없이 혼자였고, 뒤에 묵향만 한 걸음 떨어져 서 있었다.
곽진이 문 앞에 섰고, 화산 콧수염과 종남 제자 몇이 마당에 섰다. 초림이 그 사이로 나왔다.
“흥정을 하러 왔소.”
“의원은 안 팔아요.”
“의원 말고. 그 검객 명치 말이오.”
연비가 소매에서 접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번에는 집 그림이 아니었다. 사람 몸통 그림이었다. 명치 밑에 붉은 점이 하나 찍혀 있었고, 그 옆에 숫자 하나가 적혀 있었다.
“흑사곡 장법의 독이 어디서 멈추고 어디로 빠지는지, 몇 치를 들어가야 하는지 우리 곡은 안다. 우리가 넣은 독이니까. 이 그림을 주겠소. 대신 회류삼침을 내게 가르치시오. 손목 셋, 팔꿈치 셋, 어깨 셋. 그것만.”
초림은 종이를 보았다. 붉은 점 옆의 숫자는 접힌 자리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반 치를 넣고 멈춘 자리, 거기서 몇 치를 더 가야 하는지가 그 접힌 자리 밑에 있었다.
“소곡주가 회류삼침을 배우면 뭘 하실 건데요?”
“우리 독을 우리가 풀 것이오.”
“그다음에는요?”
연비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마음 놓고 더 놓으시겠죠. 풀 줄 아니까. 진 사람들 탕약에도, 화산 장로 팔에도, 종남 장로 다리에도.”
“그대가 안 가르치면 저 검객이 열흘 뒤에 죽소.”
“알아요.”
“알면서 거절하오?”
“네.”
초림의 목소리가 떨렸다. 연비는 그것을 들었다. 마당에 선 사람들도 다 들었다. 병상에서 백리운이 기침을 했다.
연비가 종이를 도로 접었다. 그리고 등 뒤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
“묵향, 가자.”
묵향은 움직이지 않았다.
연비가 돌아보았다. 묵향은 연비를 보고 있지 않았다. 의원 문 안쪽을 보고 있었다. 병상에 누운 백리운의 가슴에서 침 세 대가 숨결 따라 떨리는 것을.
“소곡주. 소인은 이십 년 동안 소곡주가 독을 다루는 걸 봤습니다. 그 독이 사람을 어디로 데려가는지도 봤습니다. 이 집은 사람을 도로 데려오는 집입니다.”
묵향이 한 걸음 걸었다. 의원 문턱 쪽이었다. 연비의 손이 소매 안에서 움직였다가 멈췄다.
묵향은 문턱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왼쪽 소매를 걷었다.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검은 실이 세 마디나 올라와 있었다. 이십 년을 흑사곡 독 곁에서 산 몸이었다.
“의원. 돈은 없습니다. 외상하겠습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곽진이 묵향과 연비 사이로 한 걸음 들어섰다. 화산 콧수염도 들어섰다. 처음으로 화산과 종남이 같은 쪽에 섰다.
울타리 너머에서 탁노개가 동냥 그릇을 두드렸다.
“거지 하나, 화산 하나, 종남 하나, 도끼 하나, 강남 칼 하나, 창 둘, 쫓겨난 검 하나. 그리고 흑사곡 하나. 이 집 밥솥이 이제 남아나겠소?”
부엌에서 홍련이 국자로 솥을 한 번 더 쳤다. 대답이었다.
연비는 오래 묵향의 등을 보았다. 귀가 반쯤 잘린 쪽이 연비 쪽을 향해 있었다.
“소 의원은 오늘 내 사람을 하나 데려갔소.”
연비가 초림을 보았다. 목소리가 낮았다.
“나도 그대 것을 하나 가져가겠소. 그대 집 우물 물맛이 좋다고, 진 사람들이 그러더군.”
연비가 돌아섰다. 진흙 묻지 않은 신발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초림은 마당 한쪽의 우물을 보았다. 우물 두레박 줄이 바람에 흔들려 돌 테두리를 두 번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