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35자)

쑥뜸 연기

무림 고수들이 내 의원에 외상을 달았다 · 한도윤

발소리의 주인은 열하나였다. 거기에 문짝 위의 두부집 영감까지 열둘이었다. 국숫집 주인, 닭장수 아낙, 무장수, 대장간 아낙과 그 남편, 시약소 줄에서 약사발을 받아 들었던 얼굴들이 소매를 걷은 채 의원 앞에 서 있었다. 손목마다 검은 실이 하나씩, 손가락 한 마디만큼 올라와 있었다.

“소 의원, 이게 뭐요?”

국숫집 주인이 물었다. 초림은 대답 대신 의원 마당을 돌아보았다. 일곱 고수가 잠옷 바람으로 마당에 나와 있었다.

“다 들어오세요. 병상은 하나지만 바닥은 넓어요.”

*

초림은 일곱에게 일을 하나씩 주었다. 외상값이 그 밤에 한꺼번에 나갔다.

쌍둥이 우창과 좌창은 물을 끓였다. 하나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오면 하나가 솥에 붓고, 솥이 끓으면 하나가 들고 오고 하나가 다음 솥을 걸었다. 둘이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고도 손발이 맞아서, 할멈이 그것을 보고 쌍둥이는 몸이 하나에 머리가 둘이라고 했다. 홍련은 부엌에서 겨우살이와 황기를 달였고, 달이는 틈틈이 탕약을 맛보며 불을 줄였다 키웠다 했다. 반장호는 걷지 못하는 사람을 안아 날랐다. 대장간 아낙을 안아 들 때 아낙이 비명을 지르자, 반장호는 닭을 안을 때처럼 숨을 참고 아주 천천히 걸었다.

탁노개는 시약소 앞에 쪼그려 앉아 동냥 그릇을 내밀고 있었다. 누가 드나드는지 보라는 일이었다. 곽진은 의원 문 앞에 섰고, 매청운은 방 안에서 등잔 넷을 들었다. 침 놓는 자리에 그림자가 지지 않게 초림이 움직일 때마다 등잔을 따라 옮기는 일이었다. 화산 장로는 처음에 그 일이 하찮다고 했다가, 반 시진 뒤에는 초림이 손을 뻗기도 전에 그 자리에 빛을 대 놓고 있었다.

백리운은 초림 옆에 앉아 침을 닦았다. 쓴 침을 받아 뜨거운 물에 담그고, 꺼내 무명에 문지르고, 길이 순서대로 다시 침통에 꽂았다. 아무도 가르치지 않았는데 순서가 틀리지 않았다.

“어디서 배우셨어요?”

“보고 배웠소. 아까부터.”

독은 묽었다. 손목 한 자리에 침 셋이면 실이 멈추고, 손가락 끝을 따면 검은 피가 두세 방울 나오다 붉어졌다. 하지만 열둘이었다. 초림은 손목을 잡고, 침을 놓고, 기다리고, 따고, 뽑고, 다음 손목을 잡았다. 방 안에 쑥뜸 연기가 자욱하게 찼다. 할멈이 침 놓은 자리 위에 쑥을 올려 불을 붙이면, 쑥이 타면서 살갗이 따뜻해지고 피가 빨리 돌았다. 연기가 눈에 들어가 다들 눈물을 흘렸다. 곽진은 문 앞에서도 울고 있었다. 쑥 연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정쯤 매청운과 곽진이 한 번 붙었다. 문 앞을 지키던 곽진이 방 안을 들여다보고, 등잔이 의원 손보다 반 박자 늦다고 한마디를 한 것이 시작이었다.

“종남은 등잔도 못 드는 주제에.”

“종남은 등잔을 들 필요가 없소. 눈이 밝으니까.”

“그럼 그 밝은 눈으로 문밖이나 보시오.”

“문밖은 다 보고 있소. 화산 장로 등잔이 또 늦었소.”

초림이 침을 든 채 고개를 돌렸다. 화산과 종남이 한꺼번에 조용해졌다. 등잔이 그 뒤로는 한 번도 늦지 않았다.

닭장수 아낙은 침을 다 맞고 나서도 집에 가지 않았다. 반장호가 안아다 주어야 갈 수 있다고 했다. 반장호가 숨을 참고 아낙을 안아 집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자, 아낙이 다시 의원 문 앞에 서 있었다. 손목이 또 저린다고 했다. 할멈이 그 손목을 한 번 보고 아낙의 엉덩이를 찰싹 때려 돌려보냈다.

“저리는 건 손목이 아니고 다른 데다.”

반장호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끝까지 몰랐다. 그날 밤 개산부가 진 사람을 안아 나른 것은 모두 열한 번이었는데, 그중 셋이 닭장수 아낙이었다.

*

일곱 번째 손목을 잡았을 때 초림의 손이 처음으로 미끄러졌다. 무장수의 손목이었다. 침이 들어갈 자리에서 손가락 한 마디 아래로 비껴 났다. 초림은 침을 뽑고 손을 바지에 닦았다. 손바닥에 땀이 찼고, 쑥 연기 냄새가 칠 년 전 그 밤의 냄새와 섞였다.

칠 년 전 그날도 방 안에 쑥 연기가 찼다.

아버지 소문경은 흑사곡 사내 하나를 살려 보냈다. 열흘 뒤 그 사내가 술병을 들고 돌아왔다. 고맙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 사내와 마루에 앉아 차를 마셨다. 열세 살 초림은 부엌에서 찻물을 끓였다. 사내가 돌아가고 나서 반 시진 뒤, 아버지가 찻잔을 떨어뜨렸다.

아버지는 쓰러지지 않았다. 스스로 병상에 누워 초림에게 침통을 들게 했다. 그리고 자기 팔에 침을 놓았다. 어깨, 팔꿈치, 손목. 검은 실이 멈췄다. 그런데 실은 팔로만 오르지 않았다. 찻잔으로 들어간 독이었다. 위장에서 명치로, 명치에서 가슴으로 올랐다.

“네 번째가 있어야 해.”

아버지가 말했다. 목소리가 쉬어서 반은 숨이었다.

“명치. 명치 바로 밑에 한 대. 거기를 막으면 위로 오르는 길이 끊긴다. 그런데 거기는 너무 깊어. 한 치를 더 들어가면 심장이야.”

아버지는 오른손으로 긴 침을 쥐었다. 자기 명치에 침 끝을 대었다. 손이 떨렸다. 독 때문인지, 무서워서인지 초림은 지금도 몰랐다. 침 끝이 살갗을 뚫고 반 치쯤 들어갔다가 멈췄다.

“담아. 아빠가 지금 못 하겠다.”

아버지가 웃었다. 그 웃음이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침을 꽂은 채 새벽까지 숨을 쉬었다. 초림은 그 침을 더 밀어 넣지 못했다. 열세 살 손은 침을 쥐고 있기만 했다.

“의원.”

백리운의 목소리였다. 초림은 고개를 들었다. 무장수가 초림을 보고 있었다. 매청운이 등잔을 초림의 손 가까이로 옮겨 놓았다. 빛이 무장수의 손목 위에 고여 있었다.

초림은 손을 한 번 쥐었다 폈다. 그리고 침을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미끄러지지 않았다.

*

열두 번째 손목에서 검은 피가 붉어졌을 때 창호지가 희게 밝아 왔다. 할멈이 쑥 재를 쓸어 담다가 그대로 벽에 기대 잠들었다. 반장호는 대장간 아낙을 집에 데려다주러 나갔고, 쌍둥이는 솥 옆에서 서로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졸았다.

탁노개가 마당으로 들어왔다. 동냥 그릇에 동전이 세 개 들어 있었다. 밤새 시약소 앞에 앉아 있다가 번 돈이었다.

“밤새 나간 사람은 없고, 들어간 사람이 둘이오. 둘 다 흑사곡 졸개요. 솥에 새 가루를 붓는 걸 봤소.”

초림은 손을 씻었다. 손을 닦던 무명이 쑥 재 때문에 잿빛이 되었다. 그다음 초림은 길을 건넜다.

시약소 문은 열려 있었다. 솥 셋이 다시 걸려 있었고, 김 사이로 감초 냄새가 달게 풍겼다. 연비가 솥 앞에서 국자로 탕약을 젓고 있었다. 초림을 보고도 국자를 멈추지 않았다.

“밤새 바빴겠소.”

“열둘이요.”

“다 살렸소?”

“다 살렸어요.”

“역시.”

연비가 국자를 내려놓았다. 그 얼굴에 웃음이 없었다. 무언가를 확인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어디에 몇 대를 놓았소? 손목이오, 팔꿈치요?”

초림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첫 번째 솥의 손잡이를 잡았다. 무쇠가 손바닥을 데웠다. 초림은 이를 악물고 솥을 엎었다. 탕약이 시약소 바닥에 쏟아져 문턱 밖까지 흘러 나갔다. 김이 초림의 얼굴로 확 올라왔다.

연비의 사내 둘이 초림의 양팔을 잡았다. 초림의 손바닥에서 무쇠에 덴 자리가 화끈거렸다.

“솥 값은 받겠소.”

“그 솥에 흑사산이 들었어요.”

“증거가 있소? 그대 진 사람들은 내 약을 먹고 아팠고, 그대 침을 맞고 나았소. 내 약이 나빴다고 누가 말하오? 그대가?”

“내가.”

시약소 문간에 오 할멈이 서 있었다. 잠에서 막 깬 얼굴이었고, 머리에 쑥 재가 묻어 있었다. 할멈은 신발도 벗지 않고 들어와 바닥에 흘러 있는 탕약에 손가락을 찍어 혀에 대었다. 잠깐 눈을 감았다.

“감초 넷, 대추 셋, 당귀 둘. 그리고 흑사산 한 꼬집을 소금처럼 나눠 탔다. 가루가 고와서 혀 끝에서 쓴맛이 늦게 온다. 이렇게 곱게 빻는 법은 내가 흑사곡에 남기고 나왔다.”

할멈이 손가락을 치마에 닦았다. 시약소 문밖에 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국숫집 주인, 닭장수 아낙, 아직 손목에 침 자국이 남은 사람들이었다.

“이 약 만든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내가 대답해 주마. 내 솜씨를 배운 흑사곡 아이다. 네 집 아이지, 소곡주.”

연비의 얼굴이 처음으로 굳었다.

“사람을 놓아라.”

그 말은 연비가 하지 않았다. 문간에 백리운이 서 있었다. 검은 그대로 물독에 두고 온 빈손이었다. 연비의 사내 하나가 초림의 팔을 놓고 칼을 뽑았다. 칼이 칼집을 반쯤 빠져나왔을 때 백리운의 손날이 사내의 손목을 쳤고, 칼이 바닥에 흘린 탕약 위로 떨어졌다.

다음 순간 연비가 움직였다. 초림은 연비가 움직이는 것을 처음 보았다. 신발에 진흙이 묻지 않는 걸음은 바닥에 흘린 탕약 위에서도 미끄러지지 않았다. 연비의 왼손바닥이 백리운의 명치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백리운이 무릎을 꿇었다. 입가로 피가 한 줄 흘렀다. 육 년 전 장을 맞은 바로 그 자리였다.

“그 자리에 오래된 상처가 있군. 우리 곡 장법이 남긴 것이지.”

연비가 손을 털었다. 그 손목 안쪽, 장갑이 반쯤 걷힌 자리에 머리카락 같은 검은 실이 한 마디 반으로 늘어나 있었다. 연비는 장갑을 다시 끌어내렸다.

“소 의원. 명치는 어떻게 푸시오? 한번 보여 주시오.”

초림은 무릎 꿇은 백리운 옆에 앉아 그의 저고리 앞섶을 열었다. 명치 한가운데에 손바닥 모양의 붉은 자국이 떠올라 있었고, 자국 가운데에서 검은 실 하나가 가슴뼈를 타고 위로 한 치쯤 올라가 있었다. 흑사곡의 장법은 손바닥으로 독을 밀어 넣는 무공이었다.

“보고 싶으면 줄 서세요.”

“줄?”

“아픈 사람 뒤에요. 소곡주 손목도 아프잖아요.”

연비가 장갑 낀 왼손을 오른손으로 덮었다. 사내들이 그 손을 보았다. 연비는 사내들을 보지 않았다.

반장호가 시약소 문으로 들어왔다. 대장간 아낙을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었다. 반장호는 아무 말 없이 백리운을 등에 업었다. 초림은 덴 손을 감싸 쥐고 그 뒤를 따랐다. 연비의 사내들은 길을 막지 않았다. 문밖에 진 사람이 서른을 넘게 모여 있었다.

길을 건너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국숫집 주인이 손에 든 빈 약사발을 시약소 문간에 내려놓았다. 던진 것이 아니라 내려놓았다. 닭장수 아낙이 그 위에 제 사발을 포갰다. 무장수, 대장간 아낙, 두부집 영감이 차례로 사발을 포갰다. 시약소 문간에 빈 사발이 탑처럼 쌓였다. 사발 바닥에 남은 탕약이 한 방울씩 떨어져 문턱을 적셨다.

맹덕수가 뒤늦게 잠옷 바람으로 뛰어왔다. 사발 탑을 보고, 길 건너 의원으로 들어가는 반장호의 등을 보고, 그 등에 업힌 백리운의 늘어진 팔을 보았다. 진장은 손을 비비지 않았다. 대신 시약소 간판을 한참 올려다보았다.

의원 병상에는 매청운이 누워 있었다. 반장호가 백리운을 업고 들어오는 것을 보자, 매청운이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중환자라던 화산 장로가 병상을 비운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눕혀라.”

반장호가 백리운을 병상에 눕혔다. 매청운은 병상 옆에 서서 백리운의 가슴에 오른 검은 실을 내려다보았다. 육 년 전 이 아이를 산문 밖으로 내보낸 회의에서 맨 먼저 입을 연 사람이 지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의원. 이건 몇 대요?”

초림은 침통을 열었다. 회류삼침으로 막을 수 있는 길은 셋이었다. 명치에서 위로 오르는 길은 넷째였다. 아버지가 반 치를 넣고 멈춘 그 자리였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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