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267자)

장 보는 법

무림 고수들이 내 의원에 외상을 달았다 · 한도윤

오 할멈은 그 밤 보따리를 쌌다. 초림이 아침에 약방 문을 열었을 때, 약장 서랍은 전부 비어 있었고 보따리 셋이 문간에 묶여 있었다. 할멈은 그 옆에 앉아 짚신 끈을 매고 있었다. 매듭이 자꾸 풀렸다. 손이 떨려서였다.

“어디 가세요?”

“흑사곡 년이 옆집에 살면 네 의원에 누가 오겠니?”

초림은 대답하지 않고 보따리 하나를 풀었다. 감초, 계피, 말린 대추, 할멈이 칠 년 동안 진 사람들 허리에 붙여 준 고약 단지. 초림은 그것을 하나씩 약장 서랍에 도로 넣었다.

“뭐 하는 거냐?”

“할머니가 가시면, 흑사산이 어느 길로 오르는지는 누가 알려 줘요?”

“네가 다 안다.”

“팔하고 다리는 알아요. 어깨에 박힌 건 어제 처음 봤고요. 그다음은 몰라요. 위장으로 들어가는 건 어떻게 해요? 명치로 들어가는 건요?”

할멈의 손이 짚신 끈 위에서 멈췄다.

“아버지 찻잔에 독을 넣은 건 할머니가 아니에요. 할머니는 그 독이 어디로 가는지 아버지한테 알려 준 사람이에요. 저한테도 알려 주세요. 그게 할머니 외상이에요.”

할멈은 한참 짚신만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끈을 풀고 짚신을 벗었다. 그리고 초림이 넣은 서랍을 하나씩 다시 빼서, 감초는 감초 칸에, 계피는 계피 칸에 제대로 넣었다. 초림이 넣은 자리는 전부 틀렸다.

*

청하진의 장날은 닷새마다 왔다. 그 아침이면 광장 돌바닥에 좌판이 서른 개쯤 깔렸고, 국숫집 솥에서 멸치 국물 냄새가 올라왔고, 대장간 앞에는 낫을 벼리러 온 사람들이 줄을 섰다. 그런데 오 할멈의 옛일이 진에 퍼진 뒤 처음 맞은 장날, 광장에 깔린 좌판은 넷이었다.

넷 가운데 하나는 국숫집이었고, 국숫집 주인은 솥에 불도 넣지 않은 채 광장 가장자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가장자리 처마 밑에 칼 찬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초림은 그 줄을 세어 보지 않아도 알았다. 일곱이었다.

매청운과 곽진과 반장호와 백리운. 거기에 사흘 사이 셋이 더 왔다. 하나는 누더기를 겹겹이 걸친 늙은 거지 탁노개였다. 천하의 거지들이 모여 소식을 주고받는 문파 개방의 장로라고 했고, 흑사곡이 진 어귀 우물에 독을 풀려는 것을 막다가 손등에 독침을 맞았다고 했다. 또 하나는 마흔 줄의 여검객 홍련이었다. 강남에서 빠른 칼로 이름을 날린 쾌검이었는데, 위장에 흑사곡 독이 묵어서 밥을 먹으면 토했다. 마지막은 우창과 좌창이라는 쌍둥이 창수였다. 둘 다 서른이 넘었고, 둘 다 같은 날 같은 흑사곡 졸개한테 같은 허벅지를 찔렸다.

일곱 다 외상이었다. 탁노개는 거지가 돈이 있으면 거지가 아니라고 했고, 홍련은 돈은 있는데 강남의 돈 맡아 주는 전장에 맡겨 두었다고 했고, 쌍둥이는 돈은 형이 가지고 있다고 서로를 가리켰다.

“이러니 장이 서겠소?”

맹덕수가 광장 한가운데서 초림을 불러 세웠다. 진장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떨리지 않았다. 등 뒤에 진 사람 여남은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칼 찬 고수가 일곱이오. 그중 하나는 강북 뒷골목 도끼잡이고, 하나는 화산에서 쫓겨난 놈이고, 의원 옆집 할멈은 흑사곡 독을 만들던 사람이오. 장사꾼들이 무서워서 좌판을 안 펴오. 소 의원, 둘 중 하나를 하시오. 고수들을 진 밖으로 내보내든지, 할멈을 내보내든지.”

“할머니는 칠 년 동안 진장님 허리에 붙인 고약을 공짜로 만드셨어요.”

“그건 고마운 일이고.”

“고수 분들은 지난 사흘 동안 진 장작을 다 패 놨고요.”

“그것도 고마운 일이오. 그런데 무서운 건 무서운 거요.”

맹덕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국숫집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고, 대장간 아낙도 고개를 끄덕였다. 처마 밑에서 반장호가 도끼 자루로 땅을 짚고 서 있었는데, 그 자루가 땅을 짚는 소리만으로도 앞줄 사람들이 움찔했다.

초림은 처마 밑의 일곱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맹덕수를 보았다.

“한 시진만 주세요. 그래도 장이 안 서면 제가 고수 분들 데리고 산으로 들어갈게요.”

“한 시진?”

“두 시간이요. 국수 삶는 물이 끓는 데 반 시진, 국수 다 팔리는 데 반 시진, 그다음 한 시진이요.”

“그건 두 시진 아니오?”

“장이 서면 그렇게 되는 거죠.”

맹덕수가 손을 비비며 무어라 계산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초림은 일곱을 의원 마당에 세웠다. 그리고 빈 물독 하나를 가운데에 놓았다.

“칼 넣으세요.”

일곱이 동시에 초림을 보았다.

“장 보러 가는데 칼은 왜 차요? 국수를 베어 먹을 거예요?”

“검객이 검을 놓으면…….”

홍련이 말을 꺼내자 곽진이 말을 받았다.

“놓으면 검객이 아니오.”

“놓으면 손님이에요.”

초림이 말했다. 한참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움직인 사람은 반장호였다. 도끼를 물독에 거꾸로 꽂았다. 그다음 탁노개가 지팡이를 꽂았는데, 그 지팡이 안에 칼이 들어 있다는 것을 초림은 그때 알았다. 쌍둥이가 창 두 자루를 꽂으려다 물독이 작아서 창을 벽에 기대 놓았다. 곽진과 홍련이 그다음이었다. 매청운은 끝까지 버티다가, 백리운이 아무 말 없이 등에서 검을 풀어 꽂는 것을 보고 제 검을 그 옆에 꽂았다. 매화 칼집과 낡은 칼집이 물독 안에서 서로 부딪쳤다.

“둘째. 값 깎지 마세요.”

“그건 못 하오.”

매청운이 곧바로 말했다.

“화산은 청빈하잖아요. 청빈하면 깎아야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못 하오.”

“깎지 마세요. 대신 무거운 건 들어 주세요. 그게 덤이에요.”

“셋째. 인사하세요. 먼저요. 고개는 이만큼.”

초림이 허리를 반만 숙였다. 일곱이 따라 했다. 천하 고수 일곱이 의원 마당에서 동시에 허리를 숙이는 모습을 오 할멈이 약방 문간에서 보았다. 할멈은 그 모습을 보고 나서 사흘 만에 처음으로 웃었다.

*

장은 생각보다 빨리 섰다.

먼저 두부집 영감이 좌판을 폈다. 두부집 장작을 다 패 준 사람이 반장호였는데, 반장호가 두부 한 모를 사면서 허리를 반만 숙이고 “맛있게 먹겠소” 하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영감은 그 거구가 두부 한 모를 두 손으로 받쳐 드는 것을 보고 겁을 먹은 게 아니라 웃음을 참았다.

그다음은 닭장수였다. 반장호가 산 닭이 반장호 품에서 퍼덕이다가 사내의 수염을 쪼았다. 개산부는 닭을 놓치지도 않고 쥐어 잡지도 않고, 그 닭이 지칠 때까지 품에 안고 서 있었다. 닭장수 아낙이 배를 잡고 웃었다.

쌍둥이는 국숫집 긴 의자를 하나씩 들고 와서 광장 한가운데에 놓았다. 국숫집 주인이 솥에 불을 넣었다. 홍련은 국수를 한 그릇 먹고, 처음으로 토하지 않았다. 초림이 이틀 전에 위장 위아래로 놓은 침 덕분이었는데, 홍련은 국숫집 주인 손맛 덕분이라고 말해서 주인이 국수를 한 그릇 더 말아 주었다.

문제는 매청운이었다.

“이 무가 한 개에 세 문이오?”

“세 문입니다요.”

“어제는 두 문 반이었소.”

“어제는 장이 안 섰습죠.”

“그러니 두 문 반이오.”

“장로님.”

초림이 매청운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매청운은 콧김을 한 번 내쉬고, 세 문을 다 내고, 무장수의 무 자루 전체를 어깨에 메고 무장수 집까지 날라 주었다. 무장수 집은 진 반대편 언덕 위에 있었다. 매청운은 돌아와서 땀을 닦으며 말했다.

“덤이 세 문보다 비싸오.”

탁노개는 끝까지 장 보는 법을 못 배웠다. 좌판 앞에 설 때마다 손바닥을 내밀었다. 사십 년 동안 그 손이 해 온 일이었다. 그러다 세 번째 좌판에서 탁노개는 손바닥 대신 귀를 내밀었다. 좌판 아낙들의 수다를 듣고, 진 사람 누구 집 소가 새끼를 뱄는지, 누구 집 아들이 군대에 끌려갔다가 돌아오는지, 다 듣고 와서 초림에게 전했다.

“진 사람들 걱정이 뭔지 아시오? 칼 찬 사람이 아니오. 칼 찬 사람이 떠나면 흑사곡 졸개들만 남는 거, 그게 걱정이오.”

해가 머리 위에 왔을 때 광장 좌판은 스물을 넘었다. 맹덕수가 손을 비비며 초림 옆으로 왔다. 진장은 한참 아무 말을 안 하다가, 국숫집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 국수를 먹는 쌍둥이를 보며 겨우 입을 열었다.

“장세는 그래도 칼잡이 몫까지 받겠소.”

“칼은 물독에 있는데요?”

맹덕수가 대답하지 못하고 국수를 시키러 갔다.

*

의원으로 돌아왔을 때, 맞은편 빈집에 새 간판이 걸려 있었다. 「흑사곡 시약소」. 시약소는 돈 없는 사람에게 공짜로 약을 나눠 주는 곳이었다. 문 앞에 탕약 솥이 셋 걸렸고, 솥에서 감초와 대추 냄새가 달큼하게 퍼졌다. 줄이 길었다. 아침에 국수를 먹던 사람들이 그 줄에 서 있었다.

연비가 시약소 문 앞에 서 있었다. 초림은 의원 문 앞에 섰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보았다. 길 폭은 일곱 걸음이었다.

“이웃이 되었소.”

“이 집은 주인이 따로 있어요.”

“어제 샀소. 은자 열 냥에. 주인은 기뻐하며 떠났소.”

연비가 줄 맨 앞의 노인에게 약사발을 건넸다. 두부집 영감이었다. 영감은 초림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였다.

“영감님, 허리는 저한테 오세요. 그 약은 허리 약이 아니에요.”

“공짜라서 그러오, 소 의원. 늙은이가 공짜 앞에서 고개를 어떻게 돌리오.”

영감은 약사발을 들고 줄에서 빠져나갔다. 연비가 길 건너 초림에게 말했다.

“소 의원의 고수들은 오늘 장을 열어 주었소. 장한 일이오. 그런데 진 사람들 손에 남은 것은 무 한 개요. 우리는 약을 주오. 사람들이 어느 쪽 문으로 들어가는지 보시오.”

“그 약 안에 뭐가 들었어요?”

“감초, 대추, 당귀. 그대 진에서 내가 사들인 것들이오.”

“그것만요?”

연비가 웃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초림은 길을 건너려 했다. 그 순간 초림의 등 뒤에서 누가 어깨를 잡았다. 백리운이었다. 물독에서 검을 꺼내 오지 않은 빈손이었다.

“지금 건너면 저 사람들이 의원을 칩니다. 줄 선 사람들이 다 보는 데서.”

초림은 길 건너 줄을 보았다. 국숫집 주인, 닭장수 아낙, 대장간 아낙. 그 사람들 손에 약사발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초림은 건너지 않았다. 건너지 않는 데 쓴 힘이 아침에 일곱 고수에게 칼을 내려놓게 한 힘보다 컸다.

*

그날 밤 의원 문이 다시 넘어왔다. 매청운이 고친 문짝은 사흘을 못 갔다.

문짝 위에 두부집 영감이 엎어져 있었다. 영감의 손목 안쪽에 검은 실이 하나, 아주 가늘게, 손가락 한 마디만큼 올라와 있었다.

“공짜였는데…….”

영감이 웃으려다 기침을 했다. 초림은 침통을 열었다. 뚜껑 안쪽의 여섯 글자가 등잔불에 비쳤다.

초림은 영감의 소매를 걷으며 벽을 두 번 쳤다. 이번에는 할멈이 부엌칼 대신 숯 화로를 들고 왔다. 들어오자마자 영감의 손목을 들여다보고, 코를 대고 냄새를 맡고, 혀를 찼다.

“묽게 탔다. 하루에 한 마디씩 오르게. 열흘이면 목이다.”

“왜 묽게 타요?”

“네가 푸는 걸 보려고.”

할멈은 그 말을 하고 길 건너 시약소 쪽을 보았다. 시약소 창에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그 뒤로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이 아니었다.

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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