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257자)

의원을 파시오

무림 고수들이 내 의원에 외상을 달았다 · 한도윤

아버지가 껍질을 벗기다 만 소나무 통나무는 무사했다. 사내가 도끼를 내리기 전에 초림이 통나무 위에 올라앉았기 때문이었다. 사내는 도끼를 든 채 한참 초림을 내려다보다가 도끼를 땅에 꽂았다. 도끼날이 언 땅에 손바닥 깊이로 들어갔다.

“이건 장작이 아니오?”

“기둥이에요. 아버지가 의방 지으려고 베어 온 거예요.”

“그럼 앉지 마시오. 기둥에 엉덩이 자국 나오.”

초림이 일어나자 사내는 통나무를 한 손으로 들어 처마 밑으로 옮겼다. 다섯 사람이 굴려야 움직이던 나무였다. 그다음 사내는 웃통을 벗은 채로 무릎을 꿇었다. 이 의원에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릎부터 꿇었다.

“반장호요. 강북에서는 개산부라 부르오. 산을 쪼개는 도끼라는 말인데, 실제로 쪼갠 건 바위 몇 개요.”

“어디가 아프세요?”

반장호가 오른쪽 어깨를 돌렸다. 어깨가 반쯤 돌다가 멈췄다.

“삼 년 전 흑사곡 놈이 던진 침 하나가 여기 박혔소. 그놈은 죽고 나는 살았는데, 그 뒤로 도끼를 머리 위까지 못 올리오. 어제 길손들이 묵는 객잔에서 흑사곡 졸개들이 떠드는 걸 들었소. 청하진 계집 의원이 침 세 대로 흑사산을 뺐다고.”

“그런데 왜 장작을 패셨어요?”

“먼저 일을 해 두면 외상을 덜 미안하게 달 수 있지 않겠소.”

초림은 쌓인 장작을 보았다. 의원 장작에 오 할멈네 장작, 거기다 골목 건너 두부집 장작까지 쪼개져 있었다. 두부집 영감이 아침에 일어나면 기절할 것이다.

반장호의 어깨에는 침이 박혔던 자리가 콩알만 한 검은 점으로 남아 있었다. 흑사산이 아니라 그 독을 묽게 바른 침이었고, 삼 년 동안 어깨 힘줄 사이에 엉겨 있었다. 초림은 그 점을 가운데 두고 둘레 세 자리에 침을 놓았다. 회류삼침을 팔이 아니라 어깨 한 자리에 모아 놓은 셈이었다. 검은 점 한가운데를 따자 엿처럼 끈끈한 검은 피가 나왔다. 반장호는 이를 악물고 소리를 내지 않았는데, 대신 그가 움켜쥔 주춧돌 모서리가 손가락 모양으로 부스러졌다.

침을 뽑자 반장호가 팔을 머리 위로 올렸다. 끝까지 올라갔다. 사내는 그 팔을 한참 올린 채로 서 있었다. 등의 칼자국이 등불 빛에 번들거렸다.

“삼 년 만이오.”

“내일까지는 도끼 들지 마세요.”

반장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초림이 눈을 떴을 때, 두부집 장작이 하나 더 쪼개져 있었다.

*

새벽에 온 사람은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다. 초림이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이미 문 앞 계단에 앉아 있었다. 스물여덟쯤 된 검객이었다. 등에 낡은 검 하나, 무릎에 약초 바구니 하나. 바구니에는 눈 속에서 캔 복수초 뿌리와 참나무 겨우살이가 이슬에 젖어 있었다.

“약재가 없다고 들었소.”

“누구신데요?”

“백리운.”

그게 전부였다. 백리운은 바구니를 내려놓고 일어서려다 명치를 손으로 눌렀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천천히 돌아왔다.

“거기도 아프세요?”

“오래된 거요. 침은 다음에.”

“다음이 언젠데요?”

“바구니가 열 개 쌓이면.”

그 말을 하고 백리운은 다시 산으로 갔다. 병상에서 그 대화를 엿듣던 매청운이 이불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가, 백리운의 등을 보고는 이불을 도로 뒤집어썼다. 초림은 그것을 보았지만 묻지 않았다. 오늘 물어볼 일은 그것 말고도 많았다.

*

해가 처마 끝에 걸렸을 때 뒷마당에서 시합이 벌어졌다.

시작은 매청운이었다. 반장호가 장작을 패는 것을 보고 매청운이 한마디를 했다.

“도끼는 나무를 부수고, 검은 나무를 가르오.”

반장호는 대꾸하지 않고 통나무 하나를 매청운 앞에 세웠다. 매청운이 천으로 감싼 검을 풀었다. 매화 무늬가 새겨진 칼집이었다. 곽진이 물독 옆에 앉아 심판을 자청했다.

“장작 열 개요. 결이 고르게 갈라진 쪽이 이기오.”

매청운의 검이 칼집에서 반만 나왔다가 들어갔다. 통나무가 소리 없이 여덟 쪽으로 벌어졌다. 쪽마다 단면이 거울처럼 매끈했다.

반장호는 도끼를 한 번 내리찍었다. 통나무가 열두 쪽으로 터졌고, 열두 쪽 가운데 하나가 날아가 오 할멈네 울타리를 뚫었다.

“결이 고르지 않소.”

곽진이 말했다.

“수가 많소.”

반장호가 말했다.

다음 통나무에서 매청운은 열여섯 쪽을 냈고, 반장호는 울타리 두 칸을 더 날렸다. 세 번째 통나무에서 매청운이 체면을 걸고 검을 끝까지 뽑았는데, 검기가 장작을 지나 오 할멈의 빨랫줄을 끊었다. 할멈의 속곳 다섯 벌이 마당 진흙 위에 차례로 떨어졌다.

벽 너머가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이 시합에서 나온 어떤 소리보다 컸다.

오 할멈이 빗자루를 들고 나왔을 때, 화산 장로와 강북의 개산부는 동시에 장작을 내려놓고 동시에 사라졌다. 곽진만 물독 옆에 남았다. 심판은 도망가면 안 된다는 것이 곽진의 생각이었다. 그날 저녁 곽진은 할멈의 울타리를 혼자 다시 세웠다.

*

매청운이 다시 나타난 곳은 의원 앞 냇가였다. 초림이 겨우살이를 씻으러 나갔을 때, 화산 장로는 냇가 바위에 쪼그려 앉아 있었고 그 맞은편 바위에 백리운이 두 번째 약초 바구니를 내려놓고 있었다. 둘 사이에 녹은 눈물이 소리를 내며 흘렀다. 냇물 폭은 두 걸음이었는데, 두 사람은 그것을 강처럼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아직 그 검을 차고 다니느냐?”

매청운이 먼저 말했다.

“버릴 데가 없었습니다.”

“화산에서 내쫓긴 놈이 화산 검을 차면, 남들이 화산이 내쫓은 놈인 줄 다 안다.”

“그래서 찹니다.”

백리운이 바구니를 들고 일어섰다. 초림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만 한 번 숙이고 의원 쪽으로 걸어갔다. 바구니에서 복수초 뿌리의 흙내가 났다.

초림은 겨우살이 바구니를 냇물에 담그고 매청운 옆에 앉았다. 손이 시려서 금방 빨개졌다.

“제자셨어요?”

“제자가 아니오.”

“그럼 뭔데요?”

“제자였던 놈이오.”

매청운은 수염을 한 번 쓸었다. 그 손이 수염 끝에서 오래 멈췄다.

“육 년 전에 같은 스승 밑에서 그놈보다 먼저 배운 사형 하나가 흑사곡 놈들 손에 죽었소. 그놈은 문파의 허락도 없이 혼자 흑사곡에 쳐들어갔다가 명치에 흑사곡 고수의 손바닥 장을 맞고 돌아왔소. 사형을 위해 칼을 뺀 놈을 화산은 내쫓았지. 문파 일을 혼자 정했다고. 그때 장로 회의에서 내쫓자고 맨 먼저 말한 사람이 나요.”

냇물이 바위를 타고 넘으며 하얗게 부서졌다. 초림은 손을 물에서 꺼내 치마에 닦았다.

“명치는 제가 볼게요.”

“바구니가 열 개 쌓이면 보라 했지 않소.”

“바구니 열 개 쌓이기 전에 그분이 먼저 쓰러질 거예요. 숨 쉴 때마다 왼쪽 어깨가 같이 올라가요.”

매청운은 대답 대신 일어나서 초림이 씻던 겨우살이 바구니를 들었다. 일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든 것은 처음이었다.

*

연비는 그날 해 질 녘에 왔다. 이번에는 맹덕수가 앞장서 있었고, 연비의 사내들이 붉은 끈으로 묶은 상자 하나를 들고 있었다. 곽진이 문 앞에 섰다. 산에서 한 말을 지키는 중이었다. 매청운은 문 안쪽에 섰다. 그것도 말을 지키는 중이었다.

맹덕수가 헛기침을 했다.

“소 의원, 소곡주께서 좋은 말씀을 가져오셨네.”

연비가 상자를 열게 했다. 은자가 가득 들어 있었다. 위에는 접힌 종이가 한 장 놓여 있었다. 연비는 그 종이를 펼쳐 초림 쪽으로 돌렸다. 먹으로 그린 집 그림이었다. 기와지붕에 기둥 스물, 칸마다 병상, 뒤쪽에 약재 창고.

초림은 그 그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칠 년 전 아버지가 술에 취한 밤마다 손가락으로 마루에 그리던 집이 거기 있었다.

“은자 백 냥이오. 의원 땅과 뒤의 빈터를 사겠소. 그리고 이 의방은 내가 지어 주겠소. 병상 스무 개, 약재 창고 하나. 소 의원은 그 의방의 의원으로 남으시오. 다만 간판은 흑사곡 것으로 걸겠소.”

“흑사곡이 의방을 왜 지어요?”

“우리 독을 우리가 풀면, 독을 산 사람도 우리를 찾고 독을 맞은 사람도 우리를 찾소. 장사가 두 배요.”

연비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초림은 그것이 더 싫었다.

“진장님은요?”

맹덕수가 손을 비볐다.

“소곡주께서 의방을 지으면 진에 사람이 몰리네. 장세가 오르고, 칼 찬 사람들도 흑사곡이 다 다스려 준다 하시고…….”

“그 칼 찬 사람들이 왜 오는데요? 흑사곡이 독을 놔서 오잖아요.”

맹덕수가 입을 다물었다. 대답이 없다는 것이 진장의 얼굴에 다 쓰여 있었다.

“의원을 파시오, 소 의원.”

연비가 그림을 초림 앞으로 한 뼘 더 밀었다. 곽진이 그 그림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진흙 묻은 발이었다.

“미안하오. 의원이 대답하기 전에 바람에 날아갈 것 같아서.”

“종남 장로께서 흑사곡 일에 발을 들이시겠소?”

“발은 이미 들였소. 그대 사람들이 내 허벅지에 독을 놓았으니.”

연비가 곽진을 보지 않고 초림을 보았다. 초림은 곽진의 발밑에서 반쯤 접힌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기둥 스물이 진흙에 가려 열넷만 보였다.

“안 팔아요. 의방은 제가 지어요.”

“무엇으로? 외상으로?”

연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방 안의 매청운과 처마 밑의 반장호와 문 앞의 곽진이 동시에 헛기침을 했다. 연비는 그 세 사람을 차례로 보더니 다시 담담한 목소리로 돌아왔다.

“좋소. 그럼 한 가지만 묻겠소. 소 의원, 그대 옆집 약방 할멈의 이름을 아시오?”

“오 할머니요.”

“오금례. 이십 년 전 흑사곡 약방에서 흑사산을 달이던 사람이오. 우리 곡에서 처음으로 그 독을 가루로 만든 손이 저 할멈 손이오.”

맹덕수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진장의 등 뒤로 구경하던 두부집 영감과 대장간 아낙이 소리 없이 흩어졌다. 오 할멈은 제 집 문간에 서 있었다. 손에 아직 빨래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진장. 흑사곡을 나온 사람을 숨겨 둔 의원이오. 진 사람들이 이 집에서 약을 받아 먹겠소?”

연비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돌아섰다. 은자 상자와 그림은 그대로 두고 갔다. 곽진이 발을 들자 그림이 바람에 뒤집혔다.

*

밤에 초림은 약방 문을 두드렸다. 할멈은 불도 켜지 않고 약장 앞에 앉아 있었다. 감초 냄새 대신 오래 끓인 탕약의 쓴내가 났다.

“할머니가 만드셨어요?”

“흑사산?”

할멈이 웃었다. 소리만 웃음이었다.

“처음 가루로 빻은 건 내 손이 맞다. 열아홉 살이었지. 곡주가 상을 줬다. 은비녀 하나.”

“그래서 나오셨어요?”

“그 비녀 받은 날 밤에 곡 아래 마을에서 아이 하나가 죽었다. 내가 빻은 가루로.”

초림은 대답하지 못했다. 할멈이 무릎 위에서 손을 폈다. 손바닥이 거칠고 손톱 밑이 검었다. 평생 약초를 만진 손이었다.

“네 아버지한테 회류삼침을 가르친 게 나다. 침은 네 아버지가 놓고, 독이 어느 길로 오르는지는 내가 알려 줬지. 그 독을 만든 사람이 길을 아니까.”

“그럼 아버지 찻잔에 넣은 독도…….”

“그날 그 독도.”

할멈이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눈만 젖어 있었다.

“네 아버지를 죽인 독, 내가 만든 거다.”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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