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169자)

저 영감보다 먼저

무림 고수들이 내 의원에 외상을 달았다 · 한도윤

문을 열자 노인 하나가 초림의 발목을 붙잡았다. 회색 도포 자락이 이슬에 젖어 무겁게 처져 있었고, 오른쪽 바짓가랑이가 무릎 위까지 찢겨 있었다. 찢긴 자리 밑으로 검은 실이 허벅지를 타고 사타구니 가까이까지 올라와 있었다.

“종남파 장로 곽진이오. 저 영감보다 먼저 봐 주시오.”

“저 영감은 어젯밤에 다 봤어요.”

곽진이 고개를 들어 방 안을 보았다. 하나뿐인 병상에 매청운이 솜이불을 턱까지 끌어 올린 채 누워 있었다. 매청운이 한쪽 눈만 떴다.

“왔나?”

“먼저 왔군.”

“먼저 맞았으니 먼저 왔지.”

“먼저 맞은 게 자랑이오?”

종남산에 터를 둔 검 문파 종남파와 화산파는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백 년째 서로를 못 견뎌 하는 사이였다. 장날 화산 제자와 종남 제자가 같은 국숫집에 들어가면 국숫집 주인이 그릇을 먼저 치웠다. 초림은 그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들었지만, 두 문파의 장로가 다 죽어 가면서 그 짓을 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병상 비키시오. 나는 다리요. 다리가 먼저 썩소.”

“나는 팔이었소. 팔이 심장에 더 가깝소.”

“이제 다 나았다며.”

“중환자는 원래 다 나은 것처럼 보이오.”

초림은 둘 사이에 침통을 쾅 내려놓았다.

“두 분 다 조용히 하시면 둘 다 살아요. 한 분이라도 더 떠들면 그분은 마지막에 봐요.”

두 장로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매청운은 이불을 머리까지 덮었고, 곽진은 바닥에 누워 두 손을 배 위에 모았다. 오 할멈이 벽 너머에서 큰 소리로 웃었다.

*

곽진의 독은 매청운보다 하루 늦게 맞은 것이라 더 얕았다. 초림은 이번에는 허벅지 안쪽, 무릎 뒤 오금, 발목 안쪽 복사뼈 위에 차례로 침을 놓았다. 길목이 바뀌어도 원리는 같았다. 심장으로 가는 길을 막고, 막힌 길을 하나씩 아래로 옮겨 가며 독을 발끝으로 몰았다. 엄지발가락 끝에서 검은 피가 나오기 시작하자 곽진이 천장을 향해 신음을 뱉었다.

“아프오?”

“종남 장로는 아프지 않소.”

“그럼 왜 우세요?”

“눈에 쑥 연기가 들어갔소.”

쑥뜸은 피우지도 않았다. 초림은 그 말을 그냥 두었다. 발끝으로 몰려 나오는 피가 붉어질 때까지 곽진의 발목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는데, 손바닥에 닿는 노인의 살갗이 처음에는 얼음처럼 차다가 차츰 사람 온도로 돌아왔다.

침을 다 뽑고 나서 곽진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매청운이 했던 것과 똑같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목숨 하나 신세 졌소. 다만 지금은 돈이 없소.”

병상의 이불이 들썩였다. 매청운이 웃고 있었다.

“종남은 왜 돈이 없어요?”

“종남의 재물은 문파의 우두머리인 장문인이 쥐고 있소. 장문인은 내 사제요. 그리고 나를 싫어하오.”

“왜 싫어하는데요?”

“어릴 때 그놈 밥에 모래를 넣었소.”

“몇 살 때요?”

“마흔.”

오 할멈이 벽 너머에서 한 번 더 웃었다. 이번에는 무언가를 떨어뜨리는 소리까지 났다.

초림은 무릎을 꿇은 곽진과 이불 속의 매청운을 번갈아 보았다. 어젯밤 문 앞에서 은자 쉰 냥을 내밀던 손이 떠올랐다. 그 돈이면 주춧돌 스무 개 위에 기둥 몇 개는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돈을 받았다면 지금 이 병상에는 아무도 누워 있지 않았을 것이다.

“돈은 됐어요.”

두 장로의 얼굴이 동시에 밝아졌다.

“대신 일로 갚으세요.”

두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화산 장로님은 어젯밤 부수신 문짝 고치시고요. 종남 장로님은 물 길어 오세요. 물독이 여섯 개예요.”

“노부가 문짝을?”

“화산 장로가 물을?”

“부수신 분이 고치는 거고요, 물은 다리 나으신 분이 길어요. 걸어야 독 남은 게 빠져요.”

마지막 말은 반만 거짓말이었다. 걸으면 피가 돌아서 좋은 것은 맞았다. 독은 이미 다 빠졌다.

*

그 시각 청하진 장터는 장날도 아닌데 수레로 붐볐다. 약재상 세 집이 모두 덧문을 반만 열어 놓고 있었고, 덧문 사이로 검은 옷 사내들이 자루를 날랐다. 자루마다 당귀와 감초와 백출 냄새가 새어 나왔다. 수레 앞에서 진장 맹덕수가 손을 비비고 있었다. 진장은 청하진을 맡아 장세를 걷고 다툼을 말리는 어른이었는데, 배가 둥글어서 손을 비비면 손이 배 위에서 미끄러졌다.

초림은 물지게를 진 곽진을 우물가에 세워 두고 장터로 뛰었다. 오 할멈의 약방 앞에 연비가 서 있었다. 오늘도 신발에는 진흙이 없었다.

“할머니, 팔지 마세요.”

“안 판다. 안 판다니까 이 계집이 값을 두 배로 부르는구나.”

연비가 초림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아침은 드셨소? 나는 진에 있는 약재를 거의 다 샀소. 이 집만 남았소.”

“이 집은 안 팔아요.”

“세 배.”

오 할멈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가 닫혔다. 맹덕수가 끼어들었다.

“할멈, 세 배면 올해 장사 다 한 거요. 소곡주께서 장세도 미리 내 주셨고…….”

“진장님.”

초림이 맹덕수를 보았다. 맹덕수가 손 비비던 것을 멈췄다.

“진에 약재가 하나도 없으면, 다음 달에 진장님 허리 도지면 뭘로 고쳐요?”

“그거야 소 의원이 침으로…….”

“침만 놓으면 사흘이요. 약을 같이 써야 하루고요.”

맹덕수가 허리를 슬쩍 짚었다. 지난가을 맹덕수는 장세 상자를 들다가 허리를 삐끗해 소씨 의원 병상에 이틀 누워 있었다.

연비가 초림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연비의 눈 밑이 조금 어두웠다. 밤을 새운 얼굴이었다.

“소 의원. 셈을 해 봅시다. 흑사산을 맞은 늙은이 둘이 당신 집에 있소. 우리 곡은 그 둘을 찾으러 계속 올 것이오. 우리가 오면 화산과 종남도 제 장로를 찾으러 올 것이오. 이 작은 진에 칼 찬 사람이 넘쳐 나겠지. 진장, 그러면 장이 서겠소?”

맹덕수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러니 쉬운 길을 드리겠소. 늙은이 둘을 내놓으시오. 아니면 그 침을 놓는 법을 우리에게 파시오. 값은 당신이 부르시오.”

“침 놓는 법은 손에 있어요. 손은 안 팔아요.”

“그럼 손 주인이 버티는 데까지 버텨 보시오. 약재 없이.”

연비가 돌아서 수레 쪽으로 갔다. 오 할멈이 연비의 등에 대고 무어라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초림은 할멈이 그렇게 말을 삼키는 것을 처음 보았다.

연비의 수레가 장터를 빠져나가자 오 할멈은 약방 덧문을 닫고 초림을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약방 안은 감초 단내와 계피 매운내가 겹겹이 배어 있어서, 들어서기만 해도 혀끝이 달았다. 할멈은 약장 맨 아래 서랍을 통째로 빼냈다. 서랍이 빠진 자리 안쪽 벽에 항아리 하나가 묻혀 있었다.

“당귀하고 황기다. 열흘 치는 된다. 네 의원에 갖다 놔라.”

“세 배라던데요?”

“세 배 받고 팔면, 다음 달에 그 계집이 독 맞은 사람을 우리 진에 또 떨궈 놓을 때 나는 뭘로 살리니?”

할멈이 항아리를 초림의 품에 안겼다. 항아리가 생각보다 무거워서 초림의 팔이 한 번 휘청했다.

“할머니, 아까 그 사람한테 뭐라고 하려고 했어요?”

“욕.”

“무슨 욕이요?”

“늙은이 욕은 젊은 사람이 들으면 귀가 썩는다. 가서 겨우살이나 따 와라. 그 계집이 산에 난 것까지 사지는 못한다.”

할멈은 그 말을 하고 등을 돌려 약장 서랍을 도로 끼웠다. 서랍이 한 번에 들어가지 않아 할멈은 그것을 세 번 밀었다.

*

해가 중천에 왔을 때 초림은 빈 바구니 셋을 들고 화산 북쪽 기슭을 올랐다. 뒤에 매청운과 곽진이 따라왔다. 매청운은 고친 문짝이 한쪽으로 기울었다는 이유로 한 번 더 일을 받았고, 곽진은 물독 여섯 개를 다 채운 상으로 이 일을 받았다. 둘 다 그것이 상인지 벌인지 따지느라 처음 반 시진을 썼다.

“이월에 산에서 뭘 캐오?”

“겨우살이요. 참나무 높은 가지에 붙어서 겨울에도 푸른 풀이에요. 달여 먹으면 피가 맑아지고 기운이 돌아와요.”

“높은 가지라.”

두 장로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눈 덮인 참나무 숲 위쪽, 맨 꼭대기 가지마다 둥지 같은 푸른 덩어리가 걸려 있었다.

다음 순간 두 사람이 사라졌다. 초림이 눈을 깜박이는 사이 매청운은 왼쪽 참나무 꼭대기에, 곽진은 오른쪽 참나무 꼭대기에 서 있었다. 몸을 가볍게 해 높이 뛰어오르는 경공이라는 것을, 초림은 이야기로만 들었지 눈으로 본 적은 없었다. 그 첫 경공이 겨우살이를 먼저 따려는 노인 둘의 다툼이었다.

“화산 매화검은 가지를 베지 않고 꽃만 떨어뜨리오!”

매청운의 소매가 한 번 움직이자 겨우살이 세 덩어리가 눈 위로 떨어졌다. 가지는 하나도 흔들리지 않았다.

“종남은 나무를 다치지 않고 뿌리째 거두오!”

곽진은 손으로 겨우살이를 통째 뜯어 초림의 바구니에 정확히 던져 넣었다. 다섯 덩어리였다.

“다섯은 반칙이오!”

“세는 건 의원이 하시오!”

초림은 바구니 셋이 다 찰 때까지 아무것도 세지 않았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두 장로는 누가 많이 땄는지를 두고 끝까지 싸웠고, 초림이 결국 둘 다 똑같다고 말하자 둘 다 동시에 화를 냈다.

해 질 무렵 눈 밭 가장자리에서 초림은 잠깐 발을 멈췄다. 칠 년 전 아버지가 발가락 두 개를 얼려 가며 이 산에서 캐 온 것도 겨우살이였다. 그때 아버지는 흑사곡 사람에게 놓을 약을 지으려 했다. 독을 만드는 집의 사람이 제 독에 맞아 의원 문을 두드렸고, 아버지는 그 사람을 살렸고, 살아난 그 사람이 열흘 뒤 다시 와서 아버지의 찻잔에 흑사산을 넣었다. 오 할멈이 해 준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왜 그랬는지는 할멈도 몰랐다.

“의원.”

곽진이 뒤에서 불렀다. 겨우살이 바구니 두 개를 혼자 지고 있었다.

“우리를 죽이려던 놈들이 또 오면 어쩌시오?”

“오면 문 앞에서 막아야죠.”

“의원이?”

“제 집 문이니까요.”

곽진은 한동안 말없이 걷다가, 매청운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말했다.

“종남 장로가 문 앞에 서 드리리다. 외상값 대신.”

앞서 걷던 매청운이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다 들리오. 화산 장로는 문 안쪽에 서겠소.”

*

의원에 닿았을 때는 사방이 어두웠다. 뒷마당에서 쿵,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장작 패는 소리였다. 그런데 한 번 날 때마다 땅이 울렸다.

초림은 바구니를 내려놓고 뒷마당으로 돌아갔다. 등불 하나가 주춧돌 위에 놓여 있었고, 그 옆에 사내 하나가 웃통을 벗고 서 있었다. 키가 문틀보다 컸고, 등에는 오래된 칼자국이 강줄기처럼 나 있었다. 사내 발밑에는 쪼갠 장작이 초림의 허리만큼 쌓여 있었다. 오 할멈의 장작까지 다 쪼갠 모양이었다.

사내가 도끼를 들어 올렸다. 도끼날 아래 놓인 것은 장작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기둥으로 쓰겠다며 껍질을 벗기다 만 소나무 통나무였다.

“그건 쪼개면 안 돼요!”

사내가 도끼를 든 채 돌아보았다. 그리고 몹시 공손하게 말했다.

“외상하러 왔소.”

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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