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54자)

등불 띄우는 밤, 마루 밑 상자

무공 일타 강사 · 여무겸

칠월 보름 새벽⁠, 짐배가 전당강 하구 나루에 닿았다⁠. 강은 여기서 바다를 만나 넓어진다⁠. 건너편 기슭이 물안개에 묻혀 보이지 않았고⁠, 썰물이 빠진 갯벌이 끝없이 누워 있었다⁠. 갯벌 냄새는 학관 거리의 운하 냄새보다 짰고⁠, 짠 냄새 밑에 썩은 갈대 냄새가 깔려 있었다⁠. 학관 거리에 올라간 뒤로 일 년에 한 번 맡을까 말까 한 냄새였는데⁠, 코가 먼저 알아보았다⁠.

선창 끝 돌 위에 무쇠솥이 얹혀 있었다⁠. 솥 밑에 장작불이 타고⁠, 솥 안에서 오리알 수십 개가 굴렀다⁠. 솥 앞에 어머니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소매⁠, 굵은 손목⁠. 쉰일곱 살 뱃사공의 등은 노를 젓는 사람답게 넓었다⁠.

어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나를 보았다⁠. 일어났다⁠. 솥 옆에 세워 둔 노를 쥐었다⁠.

“⁠이 녀석이⁠.⁠”

노가 날아왔다⁠. 나는 소금 자루를 넘어 선창 기둥 뒤로 숨었다⁠. 노가 기둥을 쳤고⁠, 기둥에 붙어 있던 따개비가 우수수 떨어졌다⁠.

“⁠한 해 동안 코빼기도 안 비치더니⁠, 금관 쓰고 오면 내가 반길 줄 알았냐⁠!⁠”

“⁠어머니⁠, 금관은 일할 때만 써요⁠!⁠”

“⁠그럼 지금 일하러 왔냐⁠!⁠”

맞는 말이었다⁠. 노가 한 번 더 왔다⁠. 아람이 소금을 털다 말고 짐배 위에서 얼어붙었다⁠. 화산 장로의 손자는 학관 일타 강사가 어머니에게 노로 쫓기는 장면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어머니가 노를 거두고 아람을 보았다⁠.

“⁠저건 누구냐⁠? 며느리냐⁠?⁠”

“⁠남자예요⁠, 어머니⁠.⁠”

“⁠요즘은 모르지⁠.⁠” 어머니가 노를 기둥에 다시 세웠다⁠. “⁠알은 먹고 가라⁠. 둘 다⁠.⁠”

*

뱃집은 선창에서 열 걸음 떨어진 곳에 말뚝을 박고 올린 나무 집이었다⁠. 밀물이 들면 마루 밑까지 물이 찼다가 빠졌다⁠. 마루 판자는 물을 먹었다 말렸다 해서 회색으로 바래 있었다⁠. 아버지가 앉던 자리 판자만 조금 더 반들거렸다⁠.

아람은 세 번째 오리알을 까다가 손을 멈췄다⁠. 흰자가 손바닥에 닿자마자 김을 냈다⁠. 손이 알보다 뜨거웠다⁠. 어머니가 알 껍질을 줍다가 아람의 손을 보았고⁠, 아무 말 없이 물 바가지를 아람 앞에 놓았다⁠.

“⁠어머니⁠.⁠” 나는 알을 내려놓았다⁠. “⁠마루 밑 상자요⁠.⁠”

어머니가 껍질을 다 주워 솥에 넣었다⁠. 대답이 없었다⁠.

“⁠관아에서 출처를 대라고 해요⁠. 화산 장로가 고발했어요⁠. 제 세 수가 혈교 비급이랑 같다고요⁠. 수강생 하나가 쓰러졌고⁠, 손끝이 뜨거운 애가 열하나예요⁠. 여기 이 애도요⁠.⁠”

“⁠네가 팔아서 그렇게 된 거다⁠.⁠”

어머니가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솥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났다⁠.

“⁠네 증조할아버지가 혈교 군사들 틈에서 빠져나와 이 강가에 숨은 게 백 년 전이다⁠. 그 뒤로 이 집은 입을 다물고 살았다⁠. 할아버지도 다물었고 네 아버지도 다물었다⁠. 다물어서 살았다⁠. 너는 그걸 책으로 찍어서 팔았다⁠.⁠”

“⁠다물어서 산 게 뭐가 좋았는데요⁠? 나루에서 오리알 팔고⁠, 아버지는 조수에 배 뒤집혀서 돌아가시고⁠. 저는 열일곱에 시험 떨어지고요⁠. 다물고 살아서 우리가 얻은 게 뭐예요⁠?⁠”

“⁠살았잖냐⁠.⁠”

어머니가 처음으로 나를 보았다⁠. 눈이 붉었다⁠.

“⁠너는 살았잖냐⁠. 네 아버지는 그걸 아무한테도 팔지 않았다⁠. 동네 애들한테 노 젓는 걸 가르치면서 그 안에 넣어 줬지⁠, 책으로 만들지 않았다⁠. 너한테도 노를 같이 쥐여 주면서 가르쳤다⁠. 너는 노를 빼고 칼만 가져갔고⁠.⁠”

“⁠노는 시험에 안 나와요⁠.⁠”

“⁠그래서 네 수강생이 쓰러졌냐⁠?⁠”

말이 막혔다⁠. 시험에 안 나오는 것을 빼는 것이 내 일이다⁠. 열네 해 동안 빼고 또 빼서 학관 거리 일등이 됐다⁠. 어머니는 시험에 안 나오는 것 때문에 사람이 쓰러진다고 말하고 있었다⁠.

“⁠상자는 안 된다⁠.⁠” 어머니가 일어났다⁠. “⁠관아에 내 아들 집안을 혈교 집안이라고 대 줄 생각이면⁠, 상자보다 나를 먼저 넘겨라⁠.⁠”

어머니가 노를 들고 선창으로 나갔다⁠. 오늘은 강에 배를 띄우지 않는 날이었다⁠. 어머니는 배를 띄우지 않고 노만 쥐고 선창 끝에 앉아 있었다⁠.

오후에 나루 주막 앞을 지나는데 뱃사람들이 평상에 둘러앉아 있었다⁠. 평상 기둥에 무림맹 방 사본이 붙어 있었다⁠. 육화탑 아래 회의 소식이 하루 만에 강을 타고 내려와 있었다⁠.

“⁠문파 밖에서 무공을 가르쳐도 되느냐고⁠?⁠” 늙은 사공이 담뱃대로 방을 두드렸다⁠. “⁠우리 같은 사람은 문파 안에서 배운 적이 없는데⁠, 그럼 우리가 노 젓다 휘두르는 막대기는 뭐요⁠?⁠”

“⁠그건 무공이 아니고 성질이지⁠.⁠” 옆의 사공이 받았다⁠.

평상이 웃었다⁠. 늙은 사공이 나를 알아보았다⁠.

“⁠어⁠, 봉 사공 아들 아니냐⁠? 항주에서 금관 쓰고 애들 가르친다며⁠. 회의에 너 얘기 나온다더라⁠.⁠”

“⁠제 얘기만 나오는 건 아니에요⁠.⁠”

“⁠팔월 열여드레에 끝난다며⁠? 조수 날이네⁠. 그날 육화탑 밑에 서 있으면 물벼락 맞는다⁠. 문파 어르신들 수염 다 젖겠다⁠.⁠”

평상이 또 웃었다⁠. 나는 웃지 못하고 주막을 지나쳤다⁠.

선창 끝 빈 배에 아람이 앉아 있었다⁠. 노를 쥐고 있었다⁠. 저어 본 적 없는 손이 노를 너무 꽉 쥐어서⁠, 노가 물을 밀지 못하고 물에 박혀 있었다⁠.

“⁠힘 빼⁠.⁠”

“⁠쌤은 뭐든 힘 빼래요⁠.⁠”

“⁠노는 진짜로 힘 빼야 돼⁠. 칼은 힘 빼라고 하고 시험 날 힘 주게 하는 거고⁠.⁠”

아람이 노를 놓았다⁠. 손바닥이 노 자루에 붙었다 떨어지며 작은 소리를 냈다⁠. 아람은 노를 놓은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물을 보았다⁠.

“⁠저 화산 선발 두 번 떨어졌잖아요⁠. 두 번 다 할아버지가 시험관 자리에서 빠졌어요⁠. 손자가 보는 시험에 앉을 수 없다고요⁠. 다른 장로들이 저를 떨어뜨렸어요⁠. 장로 손자가 붙으면 말이 나오니까요⁠.⁠” 아람이 웃었다⁠. 웃는 소리가 짧았다⁠. “⁠할아버지 손자라서 떨어지고⁠, 할아버지 손자라서 학관도 못 다니고⁠. 그래서 어머니 성으로 등록했어요⁠. 쌤 반에서는 선아람이었으니까⁠, 수석도 제 거였어요⁠.⁠”

“⁠지금도 네 거야⁠.⁠”

“⁠환불받았는데요⁠.⁠”

“⁠수석은 환불이 안 돼⁠.⁠”

아람이 나를 보았다⁠. 이번에는 웃는 소리가 조금 길었다⁠.

*

해가 지자 나루 사람들이 하나둘 선창으로 나왔다⁠. 칠월 보름은 중원절이다⁠. 죽은 사람들이 한 해에 한 번 집에 다녀간다는 날로⁠, 강가 사람들은 이날 밤 연꽃 모양 등불을 물에 띄워 돌아가는 길을 밝혀 준다⁠. 아이들이 종이 연꽃 안에 초를 세웠고⁠, 노인들이 등불마다 이름을 불렀다⁠.

어머니도 등불 하나를 들고 갯벌로 내려갔다⁠. 등불에 아버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봉 자 하나 아래⁠, 내가 열다섯 살에 마지막으로 불러 본 이름이었다⁠. 아람이 어머니 뒤를 따라 내려가 등불 밑을 받쳐 주었다⁠. 어머니가 아람을 쳐다보았고⁠, 아람은 등불을 놓지 않았다⁠. 둘이 물가에 쪼그려 앉아 등불을 물에 놓았다⁠. 썰물이 등불을 바다로 끌고 갔다⁠. 강 위에 수백 개의 불이 떠서 천천히 같은 방향으로 흘렀다⁠.

나는 선창에 서서 흘러가는 불들을 보다가⁠, 돌아서서 뱃집으로 들어갔다⁠.

마루 판자 세 번째 장은 못이 빠져 있다⁠. 열다섯 살에 내가 뺀 못이다⁠. 판자를 들어 올리자 마루 밑 축축한 어둠에서 갯벌 냄새가 올라왔다⁠. 말뚝 사이 걸친 대나무 받침 위에 기름 먹인 천으로 싼 상자가 있었다⁠. 상자는 열여섯 해 전보다 작아 보였다⁠. 내가 컸다⁠.

천을 풀었다⁠. 상자 뚜껑에 녹슨 고리 하나⁠. 고리를 젖히자 누렇게 바랜 책이 나왔다⁠. 표지 한가운데 핏빛 인장⁠. 「⁠연병보⁠」⁠. 열다섯 살에 이 책을 열었을 때 나는 그림만 보았다⁠. 막대 그림의 팔과 다리⁠, 발 순서⁠, 마지막 걸음 위에 붉은 점⁠. 글씨는 옛 글씨라 읽지 못했고⁠,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림이면 충분했다⁠. 그림을 몸에 넣는 데 열네 해가 걸렸다⁠.

등잔을 당겨 첫 장을 폈다⁠. 그림 앞에 글이 있었다⁠. 서른한 살 강사의 눈으로 다시 읽으니 옛 글씨도 읽혔다⁠. 학관 거리에서 열네 해 동안 문파 시험 문제를 풀다 보니 옛 글씨가 늘었다⁠.

「⁠연병보 서⁠. 강남 물가 마을은 해마다 수적에게 곡식을 빼앗기고 아들딸을 빼앗긴다⁠. 문파의 칼은 백 년이 걸려 마을을 지키지 못한다⁠. 하여 밭 가는 손에 한 달짜리 칼을 쥐여 준다⁠. 화산 기초 열두 수 가운데 세 수를 뽑았다⁠. 마지막 걸음 앞에서 숨을 모으면 힘이 배가 된다⁠. 모은 숨은 반드시 내보내야 한다⁠. 내보내지 않으면 숨이 몸을 태운다⁠. 내보내는 법은 가르치는 사람이 곁에서 보며 일러 준다⁠. 곁에서 보지 못할 사람에게는 이 책을 주지 말라⁠.⁠」

글 끝에 이름이 있었다⁠.

「⁠화산 진대윤⁠」

등잔 불이 흔들렸다⁠. 문 밖에서 사람들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름을 한 번 더 읽었다⁠. 화산⁠. 혈교 비급을 쓴 사람이 화산 사람이었다⁠. 백 년 동안 화산 장경각에 사본으로 보관되어 있던 책을⁠, 화산 사람이 썼다⁠. 무량은 연병보를 열 번 읽었다고 했다⁠. 열 번 읽은 사람이 이 이름을 모를 리 없었다⁠. 무량은 관아 대청에서도⁠, 단교 위에서도 이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혈교 비급이라고만 했고⁠, 화산 장경각에 사본이 있다고만 했다⁠.

책장을 더 넘겼다⁠. 세 수의 그림⁠, 붉은 점들⁠. 맨 뒷장 안쪽에 서문과 다른 글씨가 한 줄 있었다⁠. 먹이 바래 거의 보이지 않았다⁠.

「⁠교두는 곁에서 보았다⁠. 교두가 죽고 나는 강으로 왔다⁠. 대길⁠」

증조할아버지의 글씨였다⁠. 곁에서 보던 사람이 죽은 뒤에 증조할아버지는 강으로 왔다⁠. 강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

판자 삐걱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가 문간에 서 있었다⁠. 손에 꺼진 초 한 자루를 들고 있었다⁠. 갯벌 바람이 어머니 뒤에서 들어와 등잔을 눕혔다⁠.

나는 책을 덮지 않았다⁠. 어머니는 오래 서 있었다⁠. 노로 나를 칠 줄 알았는데 어머니는 노를 들고 있지 않았다⁠.

“⁠봤냐⁠.⁠”

“⁠봤어요⁠.⁠”

“⁠그럼 됐다⁠.⁠” 어머니가 꺼진 초를 문간에 내려놓았다⁠. “⁠봤으면 이제 네 일이다⁠. 내 일은 여기까지다⁠.⁠”

어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 솥뚜껑을 열었다⁠. 남은 오리알을 건져 소쿠리에 담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평소보다 컸다⁠.

아람이 어머니 뒤에서 들어왔다⁠. 갯벌 진흙이 무릎까지 묻어 있었다⁠. 아람은 마루에 펼쳐진 책을 보았고⁠, 등잔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람의 눈이 첫 장의 끝으로 내려갔다⁠. 이름에서 멈췄다⁠.

“⁠진대윤⁠.⁠”

아람이 소리 내어 읽었다⁠. 화산 진씨 집안의 손자가 백 년 전 화산 진씨의 이름을 읽었다⁠.

“⁠알아⁠?⁠”

“⁠몰라요⁠.⁠” 아람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다시 저었다⁠. “⁠아니요⁠, 알아요⁠. 이름은 몰라요⁠. 근데 알아요⁠.⁠”

“⁠무슨 소리야⁠?⁠”

“⁠화산 진씨 사당에 위패가 마흔두 개 있어요⁠. 설날마다 절을 해요⁠. 그중에 하나가 뒤집혀 있어요⁠. 이름이 벽을 보고 있어요⁠. 어릴 때 왜 저것만 뒤집혀 있냐고 물었다가 손바닥을 맞았어요⁠. 열 대요⁠. 그 뒤로 아무도 안 물어봤어요⁠.⁠”

아람이 책 위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뜨거운 손가락이었다⁠. 종이가 손가락 끝에서 조금 오그라들었다⁠.

“⁠그 위패 자리가 할아버지 큰할아버지 자리예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형님 자리요⁠.⁠”

“⁠누가 뒤집었는데⁠?⁠”

아람이 나를 보았다⁠. 등잔 불이 아람의 젖은 눈에 두 개로 맺혔다⁠.

“⁠할아버지요⁠. 할아버지가 장로가 되던 해에 뒤집었대요⁠. 손바닥 때린 것도 할아버지예요⁠.⁠”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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