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21자)

앉지 못하는 증인

무공 일타 강사 · 여무겸

팔월 열엿새 새벽⁠, 소금 창고에서 월륜산까지는 문짝으로 갔다⁠. 앉을 수 없는 사람을 태울 가마는 없었다⁠. 대석이 뒤를 들고 상목과 국숫집 둘째가 앞을 들었다⁠. 나머지 넷은 문짝 양옆에서 걸으며 내가 떨어지지 않게 장포 자락을 붙잡았다⁠. 성문을 나서 강가 길로 접어들자 지나가던 짐꾼들이 엎드린 사람을 보고 길을 비켰다⁠. 상여인 줄 알았다가 엎드린 사람이 말을 하자 다시 돌아보았다⁠.

“⁠도입 오 분은 웃긴다⁠.⁠” 나는 문짝 위에서 증언 순서를 짰다⁠. “⁠맹주님 앞에서는 어떻게 웃기지⁠?⁠”

“⁠쌤⁠, 증언이에요⁠. 강의 아니에요⁠.⁠” 둘째가 앞에서 말했다⁠.

“⁠증언도 듣는 사람이 귀를 열어야 들어가⁠.⁠”

“⁠쌤 볼기 보여 주면 다 웃어요⁠.⁠”

“⁠그건 마지막 수단이고⁠.⁠”

상목이 문짝을 들다 말고 웃어서 문짝이 기울었다⁠. 나는 굴러떨어질 뻔했다⁠. 강가 길 끝⁠, 월륜산 기슭 나루에 낯익은 배 한 척이 매여 있었다⁠. 뱃전에 노 하나가 기대 있었다⁠. 어머니가 하구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와 있었다⁠. 모레 조수 구경하러 왔다고 뱃사람들에게 말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조수를 평생 보고 산 사람이었다⁠. 구경하러 왔다는 말을 믿는 뱃사람은 없었다⁠.

*

팔월 열엿새 진시⁠, 월륜산 기슭 육화탑 아래 마당에 사람이 들어찼다⁠. 육화탑은 전당강을 내려다보는 여덟 모 탑이다⁠. 강물이 해마다 둑을 넘자 물을 누르려고 세웠다는 탑으로⁠, 층마다 처마 끝에 매단 방울이 강바람에 울었다⁠. 탑 아래 넓은 마당에 천막이 쳐졌고⁠, 천막 가운데 높은 자리에 맹주가 앉았다⁠. 흰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긴 노인이었다⁠. 손에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이 마당에서 제일 무서웠다⁠.

맹주 오른편에 문파 대표들이 앉았다⁠. 무당은 푸른 도포⁠, 아미는 회색 승복⁠, 화산은 검은 장포에 매화 수⁠. 화산 자리에는 새 장로가 앉아 있었다⁠. 무량보다 열 살쯤 어린 사람이었고⁠, 무량이 앉던 자리를 아직 엉덩이가 모르는지 자꾸 고쳐 앉았다⁠. 맹주 왼편에는 학관 조합 자리였다⁠. 갈필수가 놋관을 쓰고 혼자 앉아 있었다⁠. 놋관 끈은 단단히 묶여 있었다⁠.

천막 가운데⁠, 맹주와 마주 보는 자리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의자 등받이에 붙은 종이에 「⁠증인 — 봉천우⁠」⁠. 누가 증인 이름 위에 숯으로 작게 「⁠사파⁠」라고 덧써 놓았다⁠. 숯 글씨가 비뚤었다⁠. 문파 제자 가운데 누가 쓴 글씨였다⁠. 대석이었으면 반듯하게 썼을 것이다⁠.

나는 의자 옆에 섰다⁠.

“⁠증인은 앉으시오⁠.⁠” 맹주가 말했다⁠.

“⁠못 앉습니다⁠.⁠”

천막 안이 술렁였다⁠. 무당 대표가 눈썹을 찌푸렸다⁠.

“⁠사파라서 맹 앞에 앉지 않겠다는 것이오⁠?⁠”

“⁠볼기라서요⁠.⁠”

열흘 전 관아 마당에서 태 서른 대를 맞았다⁠. 상처는 딱지가 앉았지만 의자는 아직 앉을 자리가 아니었다⁠. 아미 대표가 웃음을 참으려고 염주를 세게 쥐었다⁠. 천막 밖 구경꾼 자리에서 대석이 크게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대석은 매 맞은 날 이후로 내 볼기 얘기만 나오면 울었다⁠.

맹주가 손을 들어 천막을 조용히 시켰다⁠.

“⁠서서 하시오⁠. 서서 하는 증언도 증언이오⁠.⁠”

*

회의는 무당 대표가 열었다⁠.

“⁠무공은 사람 곁에서 가르쳐야 하오⁠. 몸을 보고⁠, 숨을 보고⁠, 마음을 보며 가르쳐야 하오⁠. 문파가 백 년을 걸려 가르치는 까닭이오⁠. 학관은 오십 년 전 약정으로 초식만 가르치기로 했소⁠. 약정이 지켜졌다면 이 일은 없었소⁠.⁠”

화산 새 장로가 일어났다⁠. 얼굴이 붉었다⁠.

“⁠화산이 할 말이 없다는 것은 아오⁠. 연병보를 쓴 사람도 화산 사람이고⁠, 감춘 것도 화산이오⁠. 그래도 말하겠소⁠. 대윤 어른도 곁에서 보며 가르쳤소⁠. 곁을 떠난 책이 혈교가 되었소⁠. 학관은 백 명을 앉혀 놓고 가르치오⁠. 백 명 곁에 있을 수 있소⁠?⁠”

맹주가 왼편을 보았다⁠. 갈필수가 일어났다⁠. 놋관 끈을 한 번 더 조였다⁠.

“⁠학관 조합장 갈필수입니다⁠. 조합은 약정을 지키겠습니다⁠. 학관은 초식만 가르치고 숨은 문파에 맡기겠습니다⁠. 다만 맹께 청이 있습니다⁠. 요즘 학관 거리에 뱃노래가 돕니다⁠. 수강생들끼리 부르는 노래라 강사가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 노래가 심법이라면⁠, 맹이 노래를 금해 주십시오⁠. 그래야 거리 마흔 곳이 삽니다⁠.⁠”

천막 안 문파 대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관 조합장이 문파 편에 섰다⁠. 학관 거리에서 학관이 숨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할 사람은 이제 하나도 없었다⁠. 나 하나 남았다⁠. 금관도 학관도 없는 하나였다⁠.

“⁠증인⁠.⁠” 맹주가 나를 보았다⁠. “⁠말하시오⁠.⁠”

“⁠학관이 숨을 가르쳐야 합니다⁠.⁠”

천막이 조용해졌다⁠. 갈필수가 놋관 아래에서 눈을 감았다⁠.

“⁠초식만 가르치고 숨을 빼면⁠, 빼놓은 숨이 수강생 몸 안에서 탑니다⁠. 제가 그렇게 해서 열일곱 명을 약방에 눕혔어요⁠. 약정을 지켜서 눕혔습니다⁠. 약정대로 하면 학관 거리에 앞으로도 열일곱이 계속 나옵니다⁠. 숨을 같이 가르쳐야 합니다⁠. 노래로요⁠.⁠”

*

“⁠봉 강사⁠.⁠”

천막 오른쪽 끝⁠, 증인을 부른 사람 자리에서 무량이 일어났다⁠. 매화 수를 뜯은 장포에 팔짱이었다⁠.

“⁠숨을 가르치려면 곁에서 봐야 하오⁠. 나는 약방에서 열일곱을 보았소⁠. 한 사람에 숨 일곱 번이오⁠. 학관 하나에 백 명이면 칠백 번이오⁠. 학관 마흔 곳이면 이만 팔천 번이오⁠. 매일⁠. 학관 강사 마흔이 그걸 하겠소⁠?⁠”

“⁠못 합니다⁠.⁠”

“⁠그럼 학관이 숨을 가르치면 안 되오⁠.⁠”

“⁠문파는 하십니까⁠?⁠” 나는 의자 등받이를 짚었다⁠. 볼기가 당겼다⁠. “⁠문파는 열 명 곁에서 칠십 번 하십니다⁠. 그리고 아흔 명을 문 앞에서 돌려보내시죠⁠. 해마다 구월 아흐레에 무림문 앞에서 쉰 명이 서면 한 명이 들어갑니다⁠. 돌려보낸 마흔아홉이 어디 가는지 아십니까⁠? 학관 거리에 옵니다⁠. 거기서 숨 멈추는 책을 삽니다⁠. 장로님이 곁에서 볼 수 없는 마흔아홉한테⁠, 노래는 곁에 있어 줍니다⁠.⁠”

“⁠노래는 사람이 아니오⁠.⁠” 무량이 팔짱을 조였다⁠. “⁠노래를 틀리게 부르면 누가 고치오⁠?⁠”

“⁠옆 사람이요⁠.⁠” 나는 바로 대답했다⁠. 일타 강사는 질문에 바로 답하는 사람이다⁠. 오늘은 답이 있었다⁠. “⁠노래는 옆 사람한테 들립니다⁠. 숨은 안 들리지만 노래는 들려요⁠. 옆 사람 박자가 틀리면 내 귀가 먼저 압니다⁠. 장로님 손바닥이 할 일을⁠, 백 명의 귀가 나눠서 합니다⁠.⁠”

무량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을 짚었다⁠. 무량은 늘 그렇게 했다⁠.

“⁠그대는 그 노래를 알고 뺐소⁠.⁠”

“⁠알고 뺐습니다⁠.⁠”

“⁠다음에 또 팔기 좋게 빼지 않는다는 걸 누가 아오⁠?⁠”

천막 안의 눈이 다 나를 보았다⁠. 맹주의 빈손이 무릎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이 물음에 답이 없었다⁠. 답할 수 있는 것은 강사의 말이었고⁠, 강사의 말은 이미 한 번 노래를 뺐다⁠.

“⁠모릅니다⁠.⁠” 내가 말했다⁠. “⁠그래서 장로님 같은 분이 뒤에 서 계셔야 합니다⁠.⁠”

“⁠나는 이제 장로가 아니오⁠.⁠”

“⁠그러니까요⁠. 장로님 아닌 분이 시간이 제일 많으시잖아요⁠.⁠”

천막 뒤쪽에서 아미 대표가 결국 염주를 떨어뜨렸다⁠. 구슬 몇 알이 마당으로 굴러갔다⁠. 무량은 웃지 않았고⁠, 팔짱도 풀지 않았다⁠.

무량의 눈썹이 움직였다⁠. 천막 밖에서 콧노래가 났다⁠. 처음에는 하나였다가 금세 여럿이 되었다⁠. 구경꾼 자리에 앉은 학관 거리 수험생들이 입을 다물고 흥얼거리고 있었다⁠. 셋에 밀고⁠, 둘에 쉬고⁠. 방울이 강바람에 울었고⁠, 콧노래가 방울 소리 사이를 채웠다⁠. 화산 새 장로가 구경꾼 자리를 돌아보았다가 얼굴을 찌푸렸고⁠, 무당 대표는 눈을 감고 박자를 들었다⁠.

갈필수가 일어나 소리쳤다⁠.

“⁠맹주님⁠, 보십시오⁠! 이렇게 돕니다⁠! 이게 금해야 할 노래입니다⁠!⁠”

“⁠조합장⁠.⁠” 맹주가 갈필수를 보지 않고 말했다⁠. “⁠저 아이들 손바닥이 지금 어디 있소⁠?⁠”

갈필수가 구경꾼 자리를 보았다⁠. 흥얼거리는 수험생들의 손바닥은 무릎 위에 펴져 있었다⁠. 돌에 대고 있는 손은 없었다⁠. 갈필수가 앉았다⁠. 놋관 끈을 만지작거렸다⁠.

맹주가 잠시 쉬자고 했다⁠. 천막 뒤 소나무 그늘에서 갈필수가 나를 따라왔다⁠. 탑 처마 방울 소리가 머리 위에서 났다⁠.

“⁠봉 강사⁠, 이기면 안 되오⁠.⁠”

“⁠제가 이기는 게 뭔데요⁠?⁠”

“⁠학관이 숨을 가르치게 되는 거요⁠. 그럼 지부가 학관마다 숨 가르치는 허가를 따로 내겠지⁠. 허가 받으려면 문파 사람을 데려와 앉혀야 할 거고⁠. 문파 사람 품삯을 학관 거리가 어떻게 대오⁠? 반은 문을 닫소⁠.⁠” 갈필수가 놋관을 벗어 손에 들었다⁠. 이마에 끈 자국이 붉게 패어 있었다⁠. “⁠봉 강사가 지면 노래만 금지되오⁠. 거리는 그대로요⁠.⁠”

“⁠그대로면 조합장님 학관 애들 손은 다시 창가 돌 위로 가요⁠.⁠”

갈필수가 놋관을 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합장님네 애들 요새 콧노래 부르죠⁠? 둘째 관 창문에서 들었어요⁠.⁠”

“⁠부르오⁠.⁠” 갈필수가 놋관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막지 않았소⁠. 막으려고 창문을 열었다가⁠, 애들 손이 무릎 위에 있는 걸 보고 그냥 닫았소⁠. 창문 말고 내 입을⁠.⁠”

“⁠그럼 조합장님도 이기면 안 되겠네요⁠.⁠”

“⁠그래서 맹 앞에서 금해 달라고 했소⁠. 내가 금해 달라고 하고⁠, 맹이 안 금하면⁠, 나는 거리에 할 말이 있소⁠. 맹이 안 금했다고⁠.⁠” 갈필수가 놋관을 다시 썼다⁠. 끈을 묶는 손이 느렸다⁠. “⁠나는 남이 낸 걸 먼저 파는 사람이오⁠. 남이 정한 걸 먼저 따르는 사람이기도 하고⁠.⁠”

방울이 울었다⁠. 갈필수가 먼저 천막으로 돌아갔다⁠. 놋관 끈이 턱 밑에서 반쯤 풀린 채였다⁠.

*

해가 탑 꼭대기를 넘어갈 무렵⁠, 맹주가 손을 들었다⁠.

“⁠말로는 끝이 나지 않겠소⁠. 몸으로 보겠소⁠.⁠”

맹주가 천막 밖 전당강을 가리켰다⁠. 강물이 탑 아래 둑을 따라 누워 있었다⁠.

“⁠모레 팔월 열여드레는 조수 날이오⁠. 바다에서 물벽이 거꾸로 올라오는 날이오⁠. 그날 육화탑 아래 강둑에서 대련을 하겠소⁠. 한쪽은 노래로 세 수를 익힌 학관생⁠, 한쪽은 문파 기초를 익힌 제자⁠. 세 수만 쓰시오⁠. 조수가 강둑 표지석에 닿을 때까지 숨이 버티면⁠, 노래에 효험이 있다고 보겠소⁠. 버티지 못하면 노래는 금하오⁠.⁠”

천막이 웅성거렸다⁠. 맹주가 문파 대표석을 보았다⁠.

“⁠문파에서 누가 나오겠소⁠?⁠”

화산 새 장로가 일어났다⁠. 무량을 한 번 보고⁠, 맹주를 보았다⁠.

“⁠화산이 내보내겠습니다⁠. 화산 기초를 열다섯 해 익혔고⁠, 학관 세 수를 석 달 익힌 아이입니다⁠. 둘 다 배운 아이가 둘 다 보여 줄 수 있습니다⁠.⁠”

화산 자리 뒤에서 한 사람이 일어났다⁠. 소매를 두 번 접어 올린 팔이었다⁠.

“⁠진아람입니다⁠.⁠”

무량의 팔짱이 풀렸다⁠. 풀렸다가⁠, 다시 끼지 못했다⁠. 무량은 손자가 화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몰랐던 얼굴이었다⁠. 아람은 할아버지를 보지 않았다⁠. 나를 보았다⁠.

“⁠학관에서는 누가 나오겠소⁠?⁠” 맹주가 물었다⁠.

갈필수가 놋관을 숙였다⁠. 학관 조합장은 학관을 내보내지 않았다⁠. 천막 안에서 학관을 위해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증인 하나였다⁠. 증인은 서 있었다⁠.

나는 구경꾼 자리를 보았다⁠. 맨 앞 줄에 일곱이 있었다⁠. 일곱 가운데 하나가 손을 들고 있었다⁠. 물집이 굳은살이 된 손바닥이었다⁠.

“⁠노상목입니다⁠.⁠” 상목이 일어났다⁠. “⁠사수생입니다⁠. 원서 못 낸 반입니다⁠.⁠”

1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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