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07자)

태 서른 대, 금관을 벗다

무공 일타 강사 · 여무겸

팔월 초사흘 밤부터 사흘 밤⁠, 소금 창고에는 붓 소리만 났다⁠. 나는 소금 자루를 책상 삼아 엎드려 원고를 썼고⁠, 대석은 옆 자루에 엎드려 내 원고를 바른 글씨로 옮겼다⁠. 일곱 명이 번갈아 먹을 갈았다⁠. 국숫집 둘째는 먹을 갈다 졸면 먹물로 소금 자루에 얼굴 도장을 찍었고⁠, 아침마다 소금 자루 하나가 둘째 얼굴로 얼룩졌다⁠.

교재는 팔 수 없었다⁠. 관아가 막은 것은 책을 파는 일이었다⁠. 쓰는 일은 막지 않았다⁠. 나는 팔지 않을 책을 처음으로 썼다⁠.

첫 장은 출처였다⁠. 맨 앞에 두었다⁠. 학관 거리 교재는 출처를 맨 뒤에 작게 쓰거나 쓰지 않는다⁠. 앞에 두면 수강생이 출처부터 읽고 「⁠이거 남의 거네⁠」 하며 책을 덮는다⁠. 이번 책은 덮어도 되는 책이었다⁠.

「⁠세 수 — 기초 자세⁠, 전진 베기⁠, 횡베기 — 는 화산 진대윤이 강남 물가 마을을 위해 엮은 연병보에서 왔다⁠. 마지막 걸음 앞에서 숨을 모으는 자리도 연병보에서 왔다⁠. 모은 숨을 내보내는 노래 「⁠셋에 밀고 둘에 쉬고⁠」는 전당강 하구 봉씨 뱃사공 집안에서 왔다⁠. 나는 이 노래를 알고 뺐다⁠. 이 책은 노래를 다시 넣은 책이다⁠.⁠」

대석이 마지막 줄을 옮겨 적다가 붓을 멈췄다⁠.

“⁠쌤⁠, 이 줄은 빼도 되지 않아요⁠? 알고 뺐다는 줄이요⁠.⁠”

“⁠그 줄 빼면 또 알고 빼는 거야⁠.⁠”

대석이 붓을 다시 들었다⁠. 대석의 글씨로 옮기니 내 잘못도 반듯해 보였다⁠.

부록은 비웠다⁠. 맨 끝에 한 줄만 남겼다⁠. 「⁠봉황 삼보 — 없음⁠. 베낄 사람은 이미 다 베껴 갔다⁠.⁠」 상목이 부록을 읽고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초닷새 밤⁠, 마지막 장을 옮겨 적은 대석이 붓을 씻다 말고 내 앞에 와서 앉았다⁠. 소금 자루가 대석 무게에 푹 꺼졌다⁠.

“⁠쌤⁠, 내일 관아 가지 마요⁠.⁠”

“⁠책 다 썼는데⁠.⁠”

“⁠회의까지 열흘 넘게 남았잖아요⁠. 회의에서 노래가 열 내린다고 하면⁠, 맹에서 세 수를 혈교 칼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럼 쌤은 안 맞아도 되잖아요⁠. 출처는 회의에서 대면 되잖아요⁠.⁠”

대석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기한은 회의 전까지였다⁠. 열흘을 버티면 매를 피할 길이 하나 생길 수도 있었다⁠. 나는 소금 자루에 쓰인 숯 글씨를 보았다⁠.

“⁠대석아⁠, 회의에서 내가 출처를 대면 어떻게 들릴 것 같아⁠?⁠”

“⁠노래로 열 내린다고요⁠.⁠”

“⁠노래로 열 내린다고⁠, 매 피하려는 강사가 말하는 거지⁠.⁠” 나는 개정판을 덮었다⁠. “⁠관아에서 먼저 맞고 가면⁠, 노래로 열 내린다고⁠, 이미 맞은 강사가 말하는 거고⁠. 맹 어르신들은 두 번째 말을 믿어⁠. 일타 강사는 강의 순서를 아는 사람이야⁠. 매가 먼저⁠, 노래가 나중⁠.⁠”

“⁠그건 강의가 아니잖아요⁠.⁠”

“⁠나한테는 다 강의야⁠.⁠”

대석이 한참 나를 보다가 일어났다⁠. 일어나서 붓을 마저 씻었다⁠. 씻는 소리가 평소보다 거칠었다⁠. 상목은 소금 자루 사이에서 자는 척하고 있었다⁠. 상목은 자는 척할 때 숨소리가 너무 고르다⁠.

*

팔월 초엿새 진시⁠, 항주부 관아 대청⁠. 나는 대석이 옮겨 쓴 개정판 한 권을 들고 계단을 올랐다⁠. 부르지 않았는데 온 피고발인을 보고 문지기 포졸이 창을 반쯤 들었다가 내렸다⁠.

추관은 아침 국을 먹다 말고 나왔다⁠. 입가에 국물이 묻어 있었다⁠. 파리채 대신 숟가락을 쥐고 나왔다가 아전이 파리채를 쥐여 주었다⁠.

“⁠봉 강사가 제 발로 왔소⁠? 회의 전까지라 했으니 기한 안이긴 하오만⁠.⁠”

“⁠출처를 대러 왔습니다⁠.⁠”

대청 아래 왼편에 무량이 서 있었다⁠. 관아가 고발인을 불렀다⁠. 장로가 아닌 무량은 매화 수를 뜯은 검은 장포에 팔짱을 끼고 있었다⁠. 장로 자리를 내놓아도 팔짱은 내놓지 않았다⁠.

추관이 개정판 첫 장을 읽었다⁠. 글씨가 반듯해서 빨리 읽혔다⁠. 다 읽고 한 번 더 읽고⁠, 무량을 보고⁠, 나를 보았다⁠.

“⁠알고 뺐다고 썼구려⁠.⁠”

“⁠네⁠.⁠”

“⁠관아에서 이렇게 쓰고 들어오는 사람은 처음 보오⁠. 다들 모르고 그랬다고 쓰오⁠.⁠”

“⁠모르고 그랬으면 이 책을 안 썼을 겁니다⁠.⁠”

추관이 책을 덮었다⁠. 숟가락이 아직 소매 안에 있었는지 덮는 손에서 쇠 소리가 났다⁠.

“⁠그럼 금령이오⁠. 혈교의 술을 익히고 퍼뜨린 자는 볼기에 태 서른 대⁠. 가르친 곳은 문을 닫소⁠. 봉천우 무공반의 문을 닫으시오⁠.⁠”

“⁠나리⁠,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제 수강생들 원서는요⁠?⁠”

“⁠그건 무림맹의 일이오⁠. 관아는 강사를 벌하지⁠, 수강생을 벌하지 않소⁠.⁠”

“⁠그럼 화산은요⁠?⁠”

대청이 조용해졌다⁠. 무량이 팔짱을 조였다⁠.

“⁠연병보를 쓴 건 화산 진대윤입니다⁠. 혈교의 술을 처음 퍼뜨린 사람이 화산 사람이에요⁠. 금령대로라면 화산도 문을 닫아야 합니다⁠.⁠”

추관이 파리채로 이마를 긁었다⁠. 무공을 모르는 관리가 무공보다 어려운 것을 만난 얼굴이었다⁠.

“⁠백 년 전 사람은 내가 볼기를 칠 수가 없소⁠.⁠”

“⁠백 년 전 사람 책을 백 년 동안 장경각에 둔 사람들은요⁠?⁠”

“⁠봉 강사⁠.⁠” 무량이 입을 열었다⁠. “⁠화산은 이미 대가를 치르고 있소⁠. 장문께서 사당 위패를 바로 돌리라 하셨고⁠, 장경각 사본은 회의에 내놓기로 했소⁠. 강호 사람들이 화산을 혈교 집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소⁠. 학관 거리 전단 덕분이오⁠.⁠”

“⁠그건 갈필수 조합장 덕분이죠⁠.⁠”

“⁠그대가 고발당한 덕분이고⁠.⁠” 무량이 추관을 보았다⁠. “⁠나리⁠, 금령대로 하시오⁠. 다만 하나는 내가 말해 두겠소⁠. 이 노래가 열을 내린다는 것은 내가 하방가 약방에서 열일곱 명을 두고 보았소⁠. 그건 회의에서 말하겠소⁠.⁠”

추관이 나를 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할 수 없는 말을 고개로 했다⁠.

“⁠그리고⁠.⁠” 추관이 파리채로 개정판을 두드렸다⁠. “⁠창고에서 뱃노래 부르는 것까지 내가 막을 수는 없소⁠. 금령에는 노래가 없소⁠.⁠”

*

관아 마당에 긴 의자가 놓였다⁠. 포졸 둘이 매를 들고 양옆에 섰다⁠. 대청 문 밖과 담장 위로 사람들이 모였다⁠. 어머니회⁠, 학관 거리 강사들⁠, 국숫집 사람들⁠. 자리 장사꾼은 오늘 자리를 팔지 않았다⁠. 담장 위에 그냥 앉아 있었다⁠.

“⁠관은 벗으시오⁠.⁠” 포졸이 말했다⁠.

나는 금관을 벗었다⁠. 열네 해 동안 학관 거리에서 금관은 일등 강사만 썼다⁠. 누가 정한 법은 없었다⁠. 갈필수가 은관을 쓰고 나온 날부터 그렇게 됐고⁠, 나는 은관이 나온 날부터 하루도 빼지 않고 썼다⁠. 손에 들어 보니 생각보다 가벼웠다⁠. 상투를 묶은 끈이 풀려 머리카락 몇 가닥이 이마로 내려왔다⁠.

금관을 받을 사람을 찾았다⁠. 포졸은 매를 들고 있었고⁠, 대석은 담장 아래에서 벌써 울고 있었다⁠. 대청 계단 아래에 무량이 서 있었다⁠. 나는 무량에게 걸어가 금관을 내밀었다⁠.

“⁠잠깐 들고 계셔 주시겠습니까⁠? 장로님 팔짱 안이 제일 안전해서요⁠.⁠”

무량이 금관을 보았다⁠. 팔짱을 풀었다⁠. 금관을 받아 들고⁠, 도로 팔짱을 꼈다⁠. 검은 장포 팔짱 사이에 금관이 끼었다⁠. 담장 위에서 누가 웃음을 참다가 실패했다⁠. 무량은 웃음소리 난 담장을 돌아보지 않았다⁠. 금관을 낀 팔짱을 풀지 않은 채 매를 든 포졸 둘을 보았다⁠. 매가 금령에 적힌 굵기인지 보는 눈이었다⁠. 포졸 하나가 매를 슬그머니 다른 것으로 바꿔 쥐었다⁠.

긴 의자에 엎드렸다⁠. 돌바닥에서 찬 기운이 올라왔고⁠, 의자 나뭇결이 뺨에 닿았다⁠. 첫 매가 떨어졌다⁠. 볼기에서 시작한 열이 등을 타고 정수리까지 올라왔다⁠. 숨이 멎으려 했다⁠. 마지막 걸음 직전처럼 몸이 숨을 붙잡으려 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코로 흥얼거렸다⁠. 음⁠, 음음⁠, 으음⁠. 셋에 밀고⁠, 둘에 쉬고⁠. 두 번째 매가 쉬고오 자리에 떨어졌다⁠. 숨이 코로 빠져나가는 동안 매가 지나갔다⁠. 아팠다⁠. 아픈 것이 몸 안에 갇히지 않고 숨을 따라 나갔다⁠.

“⁠하나⁠, 둘⁠.⁠” 포졸이 셌다⁠.

“⁠셋에 밀고⁠.⁠” 담장 밖에서 누가 따라 불렀다⁠. 상목의 목소리였다⁠. 일곱 명의 콧노래가 담장 너머에서 들어왔다⁠. 포졸이 세는 숫자와 콧노래가 엇갈렸다⁠. 엇갈린 박자 사이로 매가 떨어졌다⁠.

열다섯 번째 즈음 대석의 울음이 콧노래보다 커졌다⁠. 스무 번째에 어머니회 어머니 하나가 “⁠그만 좀 우세요⁠, 조교님⁠!⁠” 하고 소리쳤다⁠. 스물다섯 번째에 나는 세기를 그만두었다⁠. 숫자는 포졸이 셌고⁠, 나는 노래만 불렀다⁠.

“⁠서른⁠.⁠”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대석이 담장을 넘어 들어와 나를 안아 올렸다⁠. 대석의 장포 앞섶이 눈물로 젖어 있었다⁠.

무량이 계단 아래에서 금관을 든 채 서 있었다⁠. 서른 대가 떨어지는 동안 무량은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

대석은 관아 문짝을 빌려 나를 엎드려 눕혔다⁠. 상목과 국숫집 둘째가 문짝 앞을 들었고⁠, 대석이 뒤를 들었다⁠. 칠월에 상목을 눕혀 하방가로 뛰던 문짝과 같은 모양의 문짝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누워 있었다⁠.

관아에서 소금 창고까지 가려면 학관 거리를 지나야 했다⁠. 문짝이 무림문 앞을 지나 학관 거리로 들어서자⁠, 처음에는 국숫집 이층 창문에서 소리가 났다⁠.

“⁠음⁠, 음음⁠, 으음⁠.⁠”

콧노래였다⁠. 셋에 밀고 둘에 쉬고⁠. 국숫집 이층은 하숙방이었다⁠. 하숙하는 수험생들이 창틀에 걸터앉아 입을 다물고 흥얼거리고 있었다⁠. 손바닥을 창틀 돌에 대지 않고 무릎 위에 펴 놓고 있었다⁠.

붓 가게 이층 학관에서도 났다⁠. 노송 학관 창문에서도 났다⁠. 학관 마흔 곳 가운데 절반쯤의 창문에서 같은 박자가 새어 나왔다⁠. 단교에서 손을 든 열한 명⁠, 약방에서 열이 내린 열일곱 명⁠, 소금 창고 일곱 명이 사흘 동안 친구들에게⁠, 하숙방 옆방에⁠, 갈필수 학관 밀짚모자들에게 노래를 옮겨 놓았다⁠. 강사들은 노래를 가르치지 않았다⁠. 학관 약정은 강사를 막았다⁠. 수강생들끼리 부르는 노래는 약정에 없었다⁠.

갈필수 학관 둘째 관 창문에서도 콧노래가 났다⁠. 내가 이백 냥에 판 건물이었다⁠. 창문 안에서 갈필수 학관 수강생들이 입을 다물고 흥얼거리며 전진 베기를 하고 있었다⁠. 갈필수가 놋관을 쓰고 건물 앞에 서서 창문을 올려다보다가⁠, 문짝에 엎드린 나를 보고 달려왔다⁠.

“⁠봉 강사⁠! 퍼뜨리지 말라고 했잖소⁠!⁠”

“⁠제가 안 퍼뜨렸어요⁠.⁠” 나는 문짝에 뺨을 댄 채 말했다⁠. “⁠저는 엎드려 있었어요⁠.⁠”

“⁠지부 서기가 이 소리를 들으면 거리가 닫히오⁠!⁠”

“⁠그럼 조합장님 학관 창문부터 닫으세요⁠.⁠”

갈필수가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창문 안의 수강생들이 갈필수를 내려다보며 콧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갈필수는 창문을 닫으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창가에서 손바닥을 돌에 대고 있던 얼굴들이었다⁠. 이제 손바닥은 무릎 위에 있었다⁠. 갈필수의 놋관 끈이 턱 밑에서 천천히 풀렸고⁠, 갈필수는 다시 묶지 않았다⁠.

문짝이 운하 다리에 닿았을 때 다리 건너편에 무량이 서 있었다⁠. 팔짱 사이에 금관이 그대로 끼어 있었다⁠. 관아에서 소금 창고까지⁠, 무량은 우리보다 먼저 와 있었다⁠.

“⁠봉 강사⁠.⁠”

“⁠엎드려서 인사드려 죄송합니다⁠.⁠”

무량이 팔짱을 풀고 금관을 문짝 위⁠, 내 머리맡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소매에서 나무패 하나를 꺼내 금관 옆에 놓았다⁠. 패에 붉은 먹으로 글씨가 있었다⁠.

「⁠무림맹 육화탑 회의 증인 — 봉천우⁠. 부른 사람⁠, 진무량⁠」

“⁠팔월 열엿새요⁠.⁠” 무량이 말했다⁠. “⁠엎드려서라도 오시오⁠.⁠”

11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태 서른 대, 금관을 벗다 · 무공 일타 강사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