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222자) · 기훈 · 시월 초이레

쌀 한 되

빌린 날들의 지도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보방으로 풀려난 뒤 여드레 동안 나는 문경 고을 안을 걸었다. 고을 밖으로는 못 나가니, 안에서라도 걸었다. 단이가 따라왔다. 찾을 사람이 있었다. 첫 번째 초사흘을 산 둘째 사람, 복남. 유곡역 동래객주에 가 보았지만 녀석은 없었다. 사랑채 앞을 지키던 두건 쓴 장정이, 복남이라는 사환은 동래로 내려갔다고만 했다. 그 장정의 눈이 창고 쪽으로 한 번 갔다가 돌아왔다. 객주 마당 뒤편에 흙벽 창고가 셋 있었는데, 가운데 창고 문에만 새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놋쇠가 아직 누렇게 번쩍였다. 나는 그 앞으로 가 보려다 장정 둘이 앞을 막아서는 바람에 돌아섰다. 보방 죄인이 남의 창고 앞에서 멱살을 잡히면 그날로 옥에 도로 들어간다. 단이가 장정 하나의 발등을 밟고 모르고 그랬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녀석을 찾으면서, 걸어 나간 사람들이 있는 마을을 하나씩 돌았다. 여섯 해 동안 문경을 지나다닌 길은 새재 넘는 큰길 하나였다. 그 큰길에서 한 발만 옆으로 빠지면 이렇게 많은 골짜기가 있는 줄 몰랐다. 짐을 지면 옆을 안 본다.

*

첫날 들른 마성 골짜기 마을에서 나는 처음 보는 것을 봤다. 동구 느티나무 아래 멍석 한 장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셋이 앉아 있었다. 하나가 말하고 둘이 들었다. 하나는 딴 데를 보고 있었다. 걸음터에서 나간 일곱 가운데 하나인 쉰 넘은 아낙이 제 고향에 돌아와 편 멍석이었다. 아낙은 우리를 보자 멍석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스무날 전까지 오른쪽으로 마흔 몇 푼 기울어 마당을 돌던 사람이다. 지금은 열 몇 푼이라 했다. 걸음터에서 여기까지 삼십 리를 걸어 사립문에 들어섰을 때, 제 영감이 마루에서 담뱃대를 떨어뜨리고 한참을 말도 못 했다고. 사 년 만에 제 발로 들어온 마누라가 반듯해서 누군지 못 알아봤다고. 아낙은 그 얘기를 하며 영감 흉내를 냈다. 담뱃대를 떨어뜨리는 손짓까지.

말하는 사람은 기운 데가 없는 열두 살 사내아이였다. 빌린 날도 없는 아이가 무엇을 말하나 싶어 가까이 가 보니, 아이는 지난 설에 제 할미 곶감을 몰래 여섯 개 빼먹고 누이한테 뒤집어씌운 얘기를 하고 있었다. 듣던 누이가 벌떡 일어나 아이 귀를 잡아당겼다. 아이는 귀를 잡힌 채로 끝까지 말했다. 그러고는 몸이 가벼워졌다고 우겼다.

“원래 안 기울었잖아, 이 녀석아.”

“그래도 가벼워. 누나는 모르잖아.”

단이가 느티나무 둥치를 붙잡고 허리가 꺾어지게 웃었다. 빌린 날이 없어도 사람은 말하면 가벼워진다. 셈에는 안 잡혀도.

그 마을에서 멍석은 사흘 새 둘로 늘어 있었다. 다음 날 들른 가은 마을에 하나, 그다음 날 호계 장터 뒤에 하나. 넷이었다. 멍석 위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은 대개 시시했다. 시시해서 오래 들을 수 있었다.

*

닷새째에 견탄 나루에 닿았다. 영강이 한 번 크게 여울져 흐르는 자리다. 물살이 바위를 치는 소리가 개 짖는 소리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데, 가을 물이 줄어 소리가 낮았다. 나루 모래톱에 사람들이 돌고 있었다.

여섯이었다. 기운 데 없는 사내들이 모래톱 한가운데 말뚝 하나를 박아 놓고 그 둘레를 빙빙 돌았다. 느릿느릿, 짐 없는 걸음으로. 말뚝 꼭대기에 붉은 명주실 한 가닥이 매여 바람에 나부꼈다. 모래 위에 발자국이 둥근 고랑을 파 놓았는데 제법 깊었다. 이레는 넘게 돈 고랑이었다. 강바람에 모래가 날려 도는 사람들 종아리에 따갑게 부딪혔고, 물비린내와 사람 땀내와 나루터 주막에서 굽는 민물고기 냄새가 모래톱 위에서 한데 뒤섞였다.

모래톱 위 나룻집 툇마루에 푸른 두건을 쓴 사내 하나가 앉아 있었다. 곁에 쌀자루가 쌓여 있었다. 유곡역 동래객주에서 본 얼굴이었다. 석태운 상단의 차인 변가라고 했다.

“품 파는 사람들이오. 하루 쌀 한 되.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돌면 되오. 우리 행수 어른이 여기 새 못을 박으셨소.”

“저 사람들은 알고 도오? 여기가 빌림터가 되는 걸?”

“알든 모르든 쌀은 한 되요.”

나는 모래톱으로 내려갔다. 도는 사람들 앞에 섰다. 걸음이 멈추었다. 여섯 가운데 맨 앞의 사내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나를 봤다.

“비키시오. 멈추면 품삯이 깎이오.”

“여기서 해 질 녘에 누가 하루만 하면, 그 사람은 한 푼 기울어요. 그 사람들이 기울면 여기가 또 하나의 걸음터가 되오.”

“그게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오? 우리는 안 빌리오. 돌기만 하오.”

“돌아서 빌림터를 만들어 주는 거요.”

사내가 웃었다. 이가 누랬다.

“댁이 쌀을 주겠소? 올가을 우리 동네 논이 물에 잠겨서 한 톨도 못 거뒀소. 하루 한 되면 여섯 식구가 산다오. 댁이 쌀 한 되를 주면 나는 오늘 안 돌겠소. 내일은?”

나는 대답 대신 모래톱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말뚝을 잡았다. 두 손으로 잡고 흔들었다. 모래에 깊이 박혀 있었다. 몇 번을 흔들자 조금씩 들렸다. 도는 사람들이 멈춰 서서 나를 봤다. 변 차인이 툇마루에서 일어섰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말뚝이 모래에서 빠져나오며 쑥 소리를 냈다. 나는 그걸 강물에 던졌다. 붉은 실이 물 위에서 한 번 뒤집히더니 여울에 휩쓸려 사라졌다.

변 차인이 느긋하게 모래톱으로 내려왔다.

“말뚝은 표시요. 없어도 되오. 셋 넘게 한자리를 돌면 거기가 빌림터라며? 말뚝이 만드는 게 아니오. 발이 만드는 거지. 댁이 그 얘길 제일 잘 알 텐데.”

변 차인이 도는 사람들한테 손짓을 했다. 여섯이 다시 걸었다. 말뚝이 있던 구멍 둘레를, 아까와 똑같이. 나는 그 둥근 고랑 한가운데 서 있었다. 여섯이 내 둘레를 돌았다. 그렇게 서 있으니 내가 말뚝이었다.

단이가 모래톱 끝에서 소리쳤다.

“기훈이, 거기 계속 서 있으면 해 질 녘에 누가 댁 머리에 대고 하루만 하겠소. 나오시오.”

도는 사람 하나가 킥 웃었다. 나는 고랑 밖으로 걸어 나왔다. 유곡역 사랑채에서 행수가 한 말이 그대로 모래톱에 서 있었다. 걸음터를 비우면 새 못을 박는다고. 셋만 돌면 서니까. 나는 걸음터에서 서른 명 가까이를 걸려 내보냈고, 행수는 그 사이 여기 말뚝 하나와 쌀 한 되로 여섯을 돌렸다. 여섯은 기운 데도 없고, 걸어 나갈 까닭도 없고, 말할 것도 없었다.

변 차인이 툇마루에서 내려왔다.

“행수 어른이 전하라 하셨소. 걸음터는 이제 고맙다고. 거기 서른일곱을 먹이는 쌀보다, 여기 여섯한테 주는 쌀이 싸다오. 유곡역 장터에 하나, 상주 장터에 하나, 낙동나루에 하나. 여기까지 넷이오. 행수 어른 방 지도에 빈 못이 이제 없소. 실이 다 걸렸소. 새 못을 사러 사람을 동래에 보내셨소.”

단이가 뒤에서 모래를 한 움큼 쥐었다가 도로 놓았다. 던질 데가 없었다.

*

그날 밤 우리는 나루터 사공 집에서 잤다. 사공은 예순 넘은 영감이었고, 오른쪽으로 크게 기울어 삿대를 왼손으로만 짚었다. 나루를 건네준 뒤에 우리 둘을 보더니 그냥 보내지 않았다. 댁들도 그 병이구먼, 하고.

저녁상을 물린 뒤 사공이 먼저 물었다. 걸음터에서 말해서 곧아진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이 이 나루까지 왔다고. 진짜냐고. 단이가 사공 앞에 앉았고, 나는 딴 데를 봤다. 관솔 대신 나룻집 등잔 하나가 기름을 빨며 가늘게 탔다.

사공은 아흔을 빌렸다고 했다. 스무 해 동안. 강 건너는 날 바람이 세면 빌렸다. 하루 미루면 바람이 잔다고. 첫 번째 날 센 바람에 배를 띄우지 않고, 두 번째 날에도 띄우지 않았다. 그 아흔 날 동안 사공은 아무도 태우지 않았다.

“바람이 세서 빌렸소. 그게 까닭이오.”

말을 다 했는데 사공은 그대로였다. 등잔불이 한 번 흔들렸다. 단이가 사공 무릎을 톡톡 쳤다.

“바람 말고. 바람 센 날 영감님이 배를 안 띄운 까닭.”

사공은 오래 있었다. 등잔 심지가 타들어 가며 지직 소리를 냈다. 방 안에는 젖은 그물 냄새가 배어 있었다. 벽에 걸린 그물에서 물기가 다 마르지 않아, 등잔 열기를 받은 쪽만 비릿하게 데워졌다. 사공 집 부엌에서 그 집 며느리가 설거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기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가 멎었다. 며느리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사공이 제 손을 내려다봤다. 삿대 쥐던 굳은살이 누렇게 박인 손이었다.

“서른 몇 해 전에, 우리 아이 둘을 태우고 건너다 뒤집혔소. 바람 센 날이었소. 하나만 건졌소.”

사공은 말을 멈췄다가, 한 마디를 더 했다.

“무섭소.”

그 한 마디에 사공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오른쪽으로 기운 몸이 등잔 쪽으로 한 뼘쯤 돌아왔다. 부엌 쪽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며느리가 행주를 떨어뜨렸다. 건진 하나가 그 집 아들이었고, 며느리는 그 아들의 아내였다. 서른 몇 해 동안 그 집에서 그 얘기를 입에 올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이튿날 며느리가 나루터에서 우리한테 말했다.

이튿날 아침 사공은 마흔이 줄었다고 했다. 바람 때문이라고 둘러댄 날들이 사실은 전부 같은 까닭이었다고. 사공은 삿대를 오른손으로 바꿔 쥐고, 서른 몇 해 만에 처음으로 바람 부는 강에 배를 띄웠다. 손님은 우리 둘이었다.

나는 그날 밤 사공 집 봉당에서 단이한테 하나를 더 말했다. 내 백 날 가운데 아직 까닭이 안 떠오르는 날들. 그 날들에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나는데 왜 했는지가 끝내 안 떠오른다고. 그게 여섯 해 동안 제일 무서웠다고. 단이는 한참 듣다가 말했다.

“그럼 그걸 말한 거요. 모르겠다는 것도 참이면 말이오.”

그날 밤 아홉이 줄어 예순넷이 되었다.

봉당 밖에서 강물 소리가 밤새 낮게 이어졌다. 누워서 셈을 해 봤다. 걸음터에서 제 발로 걸어 나간 사람이 스물여섯. 멍석이 선 마을이 넷. 행수가 품을 사서 돌리는 모래톱과 장터가 넷, 걸음터와 새재 돌 셋까지 치면 여섯. 내가 한 사람을 걸려 내보내는 동안 행수는 쌀 한 되로 한 사람을 돌렸다. 걸음이 쌀을 못 이겼다. 그리고 내 셈이 늘수록 행수의 셈도 늘었다. 걸어 나간 사람들이 편 멍석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는 자리는 돌기 쉽다. 갚는 법이 퍼지면 빌리는 법도 같이 퍼졌다. 나는 강물 소리를 들으며 그 셈을 끝까지 따라가 보았다. 끝이 없었다.

*

배가 건너편 모래톱에 닿았을 때, 사공이 삿대를 거두며 말했다.

“댁들이 찾는 녀석 말이오. 붉은 실 등불 들고 장날마다 건너던 사환. 보름 전부터 안 보이오. 그런데 사흘 전 밤에 유곡역 쪽에서 건너온 짐꾼 하나가 그러더군. 동래객주 뒤 창고에 누굴 가둬 놨다고. 밥은 넣어 주는데 문은 안 열어 준다고. 창고 안에서 누가 밤새 떠든다고. 입이 쉬지를 않는다고.”

단이가 나를 봤다. 나는 유곡역 쪽 하늘을 봤다. 해가 산등성이 위에 한 뼘 남아 있었다. 견탄 나루 모래톱에서는 여섯이 아직 돌고 있었다. 저녁 해가 그 여섯의 그림자를 모래 위에 길게 늘여, 말뚝 둘레를 한 바퀴씩 쓸고 지나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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