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80자) · 기훈 · 구월 스무여드레

없는 날

빌린 날들의 지도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문경 현아 옥은 동헌 뒤 담장 안에 있다. 흙벽에 통나무 창살을 박은 방 둘과, 그 앞에 멍석 두 장 넓이의 마당이 하나다. 마당은 담이 높아서 한낮에만 볕이 반 뼘 들어온다. 그 볕이 들어오는 동안 죄인들이 마당에 나와 몸을 녹인다.

내가 들어간 날 옥에는 먼저 온 사람이 셋 있었다. 소도둑 둘과, 장날 술에 취해 좌수 댁 대문에 오줌을 누었다는 사내 하나. 셋은 볕이 드는 동안 그 좁은 마당을 빙빙 돌았다. 추워서였다. 서리 내리는 아침에는 가만히 서 있으면 발가락이 먼저 언다고 했다.

나는 사흘째 되는 날 그걸 보고 기겁을 했다.

“돌지 마시오. 셋이 한자리를 이레 넘게 돌면 거기가 빌림터가 되오.”

“빌림터가 뭔데?”

소도둑 형제 가운데 형이 물었다. 설명하려다 그만두었다. 대신 셋한테 기운 쪽 먼저 딛기를 가르쳐 주었다. 셋 다 기운 데가 없어서 소용이 없었는데, 술주정뱅이 사내가 그게 재미있다며 혼자 왼발 오른발을 번갈아 가며 연습했다. 그러다 오줌 누던 버릇대로 담벼락 쪽으로 걸어가서 옥사장한테 혼이 났다. 그 뒤로 셋은 도는 대신 담 밑에 나란히 쪼그려 앉아 볕을 쬈다. 소도둑 형이 쪼그린 채 중얼거렸다. 빌림터인지 뭔지 몰라도 저 사람이 앉으래서 앉은 거라고, 발가락 얼면 저 사람 탓이라고.

*

문초는 구월 스무여드레에 동헌 마당에서 열렸다.

현감 조윤겸은 쉰쯤 됐고, 동헌 대청 위 교의에 앉아 있었다. 얼굴이 마르고 눈이 가늘었다. 엄 형방이 대청 아래 서서 고발 내용을 읽었고, 마치석은 고발을 보증한 사람으로 형방 곁에 섰다. 경례는 마당 한쪽에 흰옷을 입고 무릎을 꿇었다. 나는 마당 한가운데 꿇려 앉혀졌다. 무릎 밑에 깐 거적이 서리에 젖어 있었다. 동헌 기와지붕 너머로 주흘산 봉우리가 보였고, 그 위로 늦가을 하늘이 얇게 푸르렀다. 아전들 먹 가는 소리가 대청 끝에서 사각사각 났다.

“네가 도경구를 쳤느냐?”

현감이 물었다. 목소리가 낮고 또렷했다.

“쳤습니다.”

“언제냐?”

“구월 초사흘입니다. 첫 번째 초사흘입니다.”

대청 위에서 현감이 가는 눈을 조금 더 가늘게 떴다.

“말해 보아라. 첫 번째 초사흘이 무엇이냐?”

나는 거기서 한 번 숨을 골랐다. 유곡역 행수의 말이 떠올랐다. 없는 날 얘기가 관아에 들어가면 관아는 빌림터가 무엇인지 묻게 된다고. 그다음엔 누가 빌리는지 묻고, 그다음엔 지도를 보자고 한다고. 그러면 삼백이 겨울을 굶는다고. 나는 그 셈을 알면서 입을 열었다. 입을 안 열면 경구가 죽은 날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나는 다 말했다. 새재 고갯마루 돌 셋. 해 질 녘에 하루만. 같은 날을 한 번 더 사는 것. 첫 번째 날은 빌린 사람만 안다는 것. 죽은 사람은 두 번째 날에 안 깬다는 것. 첫 번째 초사흘 우물가에서 경구가 두 푼 줄었다고 웃은 것. 내가 그 뺨을 친 것. 해 질 녘 돌 셋에서 객주가 내려오던 것. 풀린 갓끈, 손등의 붉은 줄 세 가닥. 두 번째 날 새벽 경구 손에서 나온 호박 구슬. 객주 갓끈의 구슬이 스물넷 다 붙어 있던 것. 그리고 그 까닭. 죽은 사람 손에 쥔 것은 지운 날에서 건너온다는 것.

말하는 동안 아무도 끼어들지 않았다. 마치석은 뒷짐을 지고 서서 웃음을 참는 얼굴을 했다. 다 끝났을 때 대청 위가 한동안 조용했다.

“형방.”

현감이 불렀다.

“그 구슬, 증물로 두었다 했지? 가져오너라.”

엄 형방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소매를 한 번 만지더니, 형방청에 두었다며 아전 하나를 보내려 했다. 현감이 손을 들어 막았다.

“소매에 있지 않으냐? 아까부터 네가 그 소매를 자꾸 만지더구나.”

형방이 소매에서 구슬을 꺼냈다. 아전이 받아 대청 위로 올렸다. 현감은 구슬을 손바닥에 굴려 보고, 마치석을 불러 갓을 벗게 했다. 갓끈 구슬과 손바닥 구슬을 나란히 놓고 한참 들여다봤다.

“같은 장인이 깎은 것이구나. 결이 같다.”

“장터에서 흔한 것이오, 사또.”

“그래, 흔하겠지.”

현감은 구슬을 제 소매에 넣었다. 그러고는 나를 내려다봤다.

“내 너에게 한 가지만 묻겠다. 네 말이 참이면, 네 주먹은 없는 날의 것이다. 없는 날의 주먹으로 나는 너를 벌할 수 없다. 네 말이 거짓이면, 그 멍은 누구의 것이냐? 오작인은 떨어져서 난 멍이 아니라 했다. 그러면 너를 벌해야 하지. 너는 어느 쪽이냐?”

“참입니다.”

“그러면 객주는?”

현감은 마치석 쪽으로 눈을 돌렸다.

“네 말이 참이면 객주도 없는 날에 무슨 짓을 했다. 그런데 없는 날로 사람을 벌하면, 누구든 없는 날을 지어내 남을 모함할 수 있다. 오늘 네가 객주를 없는 날로 걸면, 내일은 객주가 너를 없는 날로 걸 것이다. 나는 그런 고을을 다스릴 수 없다.”

마치석이 허리를 굽혔다.

“사또 말씀이 지당하오.”

“객주는 입 다물라. 너를 편드는 말이 아니다.”

현감은 교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렸다. 그러고는 마치석을 똑바로 내려다봤다.

“객주, 초사흘 해 질 녘에 어디 있었느냐?”

“주막 마루에 있었소. 주모도 짐꾼도 다 봤소.”

“첫 번째 초사흘에는?”

마치석이 웃었다. 이번에는 입꼬리만이 아니라 눈까지 웃었다.

“사또, 그런 날은 없소.”

“없는 날에 어디 있었는지 묻는 것이 아니다. 네가 그런 날이 있는 줄 아느냐고 묻는 것이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마치석의 웃음이 얼굴에 붙은 채로 굳었다. 없다고 하면, 돌 셋도 빌림터도 모르는 사람이 된다. 스무 해 동안 백 명 넘게 가르친 사람이 모른다고 해야 한다. 안다고 하면, 없는 날에 제가 어디 있었는지 대야 한다. 객주는 한참 만에 허리를 한 번 더 굽혔다.

“새재에 떠도는 말은 들었소. 믿지는 않소.”

현감은 대꾸하지 않고 아전에게 무언가를 적게 했다.

*

그날 저녁 경례가 옥 창살 앞에 왔다. 옥사장한테 떡 한 소쿠리를 쥐여 주고 들어왔다고 했다. 경례는 그 떡 말고 한 소쿠리를 더 들고 있었고, 거기서 쑥떡 하나를 꺼내 창살 사이로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옆구리에 끼고 온 것을 창살에 기대 세웠다. 내 지게 작대기였다.

“이거 두고 갔잖아요.”

“이제 안 짚어도 된다.”

“그래도 갖고 있어요. 여섯 해 짚던 거잖아요.”

경례가 창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옥 마당에 들어온 저녁 빛이 그 애 흰 치마 끝에서 식어 가고 있었다. 나는 쑥떡을 쥔 채 한참 있다가, 마방에서 단이한테도 하지 않은 얘기를 했다. 첫 번째 초사흘 우물가에서 경구가 한 말. 너도 가서 말해. 백열둘이면 한 달이면 반은 준다.

“오라비가 그 말을 하고 웃었다. 두 푼 가벼운 얼굴로. 나는 그 얼굴이 싫어서 쳤다.”

경례는 오래 말이 없었다. 쑥떡 소쿠리를 무릎에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소쿠리 테를 문질렀다. 그러다 물었다.

“오라비가 마지막에 아저씨한테 한 말이, 가서 말하라는 거였어요?”

“그랬다.”

“그럼 아저씨는 지금 그 말대로 한 거네요.”

경례는 그 말을 하고 일어섰다. 치마를 털고 돌아서다가, 창살 너머로 나를 한 번 더 봤다.

“나 아저씨 안 용서해요. 그런데 관아에 온 건 잘했다고 생각해요.”

경례가 가고 나서 나는 옥방 흙벽에 등을 대고 앉아 동헌에서 한 말을 되짚었다. 돌 셋과 빌림터와 걸음터 마당. 이제 그 말이 관아 아전의 먹으로 종이에 올라갔다. 종이는 걸음을 모른다. 그런데 사람보다 멀리 간다. 유곡역 동래객주 사랑채의 지도와, 거기 박힌 놋 못 여섯과, 푸른 두건을 쓴 짐꾼들이 떠올랐다. 영남대로에서 행수의 짐을 지는 삼백이 떠올랐다. 그 가운데 누군가는 올겨울 쌀독이 빌 것이다. 내 입 때문에. 경구가 죽은 날을 세우려고 한 말이, 얼굴도 모르는 짐꾼 집 아궁이를 식힐 것이다. 나는 그걸 알고 말했다.

그날 밤 옥방에 누워, 나는 가슴 한가운데가 조금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셈으로 치면 한 푼도 안 됐다. 그래도 가벼웠다.

*

시월 초이틀 아침, 옥사장이 옥 문을 열며 투덜거렸다.

“바깥이 왜 이리 시끄러워. 병신들이 떼로 몰려왔네.”

동헌 앞마당으로 끌려 나가니 대문 밖 길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걸음터 사람들이었고, 세어 보니 스물하나였다. 오른쪽으로 기운 사람, 왼쪽으로 기운 사람, 앞으로 기운 사람이 한 줄로 서 있었다. 누구도 돌고 있지 않았다. 새벽 첫 닭에 걸음터를 나서 이십 리를 제 발로 걸어왔다고 했다. 기운 쪽 먼저 딛기로. 곰보 할멈이 맨 앞에 있었고, 그 곁에 단이가 있었다. 할멈은 길바닥에 서서 발을 동동 굴렀다. 걸어온 발이 아파서가 아니라, 가만히 서 있는 게 아직 서툴러서였다.

스물하나는 내가 옥에 있는 동안 늘어난 수였다. 아홉이 걸어 나간 뒤, 단이가 밤마다 멍석을 폈다고 했다. 구만득은 멍석을 걷으러 왔다가 단이가 주걱을 드는 것만 보고 돌아갔고, 그다음 날은 오지도 않았다. 열이틀 동안 열둘이 더 말했고 열둘이 더 걸어 나갔다. 걸어 나간 사람들 가운데 몇은 고향으로 가지 않고 걸음터 바깥 빈 초가에 들어앉았다. 마당 안에 돌던 사람이 이제 열여섯이라고 했다.

단이가 대문 앞에서 소리를 높였다.

“사또, 우리가 그 사람 말을 들었소. 걸음터 마당에서, 멍석에 앉아서. 그 사람이 뭘 지웠고 왜 지웠는지, 우리가 다 들었소. 그 사람 말이 참이라서 우리가 이만큼 곧아졌소. 거짓말로는 안 곧아지오.”

대청 위에서 현감이 대문 밖을 오래 내다봤다. 스물하나의 기운 몸이 아침 햇살을 받아 동헌 마당에 비스듬한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그 그림자들이 하나같이 대문 안쪽을 향해 누워 있었다.

현감은 나를 보방으로 풀었다. 문경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조건이었다. 고발은 증좌 부족으로 물렸다. 마치석은 형방 곁에서 한 마디도 안 했다. 대신 현감이 아전을 불러 무언가를 받아 적게 하는 것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아전이 적는 것은 감영에 올리는 첩정이었다. 새재 고갯마루와 문경 걸음터에 사람이 날을 빌리는 자리가 있다는 것.

옥 문을 나설 때 현감이 나를 불러 세웠다. 대청 끝에 혼자 서서 목소리를 낮췄다.

“그대가 말한 첫 번째 초사흘을, 그대와 객주 말고 산 사람이 또 있소?”

“있을지도 모르오.”

“데려오시오. 하나로는 안 되오. 서로 모르는 둘이 같은 것을 말하면, 그때는 내가 듣겠소.”

현아 대문을 나서자 마치석이 나귀 고삐를 쥐고 길가에 서 있었다. 걸음터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는 것을 한 걸음 떨어져 보고 있다가, 내가 곁을 지날 때 나귀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또가 감영에 첩정을 올리더군. 자네 입으로 걸음터를 관아에 바친 셈이야. 행수가 좋아하겠어.”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왼발, 무릎, 허리, 목. 등 뒤에서 객주가 혀를 찼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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