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65자) · 단이 · 구월 스무날

엿 사 오마

빌린 날들의 지도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걸음터 마당에 처음으로 사람이 앉은 것은 구월 스무날 밤이었다.

그 전 닷새 동안 나는 걸음터에서 잤다. 낮에는 오른쪽으로 기운 사람들 곁에서 기운 쪽 먼저 딛기를 보였고, 저녁이면 곰보 할멈과 명칠을 데리고 쌍봉댁 주막까지 걸어가 짚신 삼는 일과 장작 패는 일을 얻어 주었다. 쌍봉댁은 둘을 보자마자 명칠이 도끼를 드는 각도부터 고쳐 주었다. 앞으로 기운 사람이 도끼를 들면 제 발등을 찍는다고. 주모는 그런 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제 서방이 그렇게 발가락 둘을 잃었다고 했다. 가슴이 두 번 들썩였다. 웃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낮에 걷는 법을 보여 주는 건 쉬웠다. 어려운 건 밤이었다. 걸어 나갈 수는 있어도 몸이 가벼워지지 않으면 다시 기운다. 가벼워지려면 말해야 한다. 그런데 걸음터 사람들은 말하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이렇게 합시다. 셋이 앉소. 하나가 말하고 둘이 듣소. 돌지 말고 앉아서.”

“왜 셋이오? 들어 줄 사람은 하나면 된다며.”

단이가 물었다. 나는 대답을 준비해 두었다.

“하나는 말하는 사람을 보고, 하나는 딴 데를 보시오. 둘 다 쳐다보면 입이 안 떨어지오. 내가 그랬소.”

단이가 웃었다. 그 웃음에 마당 가장자리 사람 몇이 걸음을 늦췄다.

*

처음 이틀은 아무것도 안 됐다. 멍석 셋을 깔고 관솔불을 가운데 세웠더니, 도는 사람들 가운데 일곱이 흐름에서 빠져나와 앉았다. 앉자마자 넘어질 듯해서 서로 등을 댔다. 등을 대고 앉으니 멍석 위에 기운 사람 셋이 삼발이처럼 버티고 앉은 꼴이 됐다. 그 모양에 구경하던 아이 하나가 킥킥 웃었다가 제 어미한테 등짝을 맞았다.

그런데 입을 열면 다들 같은 말만 했다.

“급해서 빌렸소.”

“뭐가 급했소?”

“그냥 급했소.”

그러면 안 준다. 까닭 대신 둘러대는 말은 안 쳐 준다. 하루는 앞니 빠진 영감이 호랑이 얘기를 했다. 지운 날에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 맨손으로 쫓았다고 했다. 다 듣고 나서 단이가 물었다.

“그래서 줄었소?”

“아니.”

“그럼 호랑이가 거짓말이네. 호랑이한테 사과하시오.”

영감은 사과는 안 하고 호랑이가 먼저 덤볐다고 우겼다. 단이가 그럼 호랑이 앞에서 그 말을 해 보라고 했다. 둘레에 앉은 사람들 어깨가 들썩였다. 기운 사람들이 웃으니 다들 기운 쪽으로 쏠려서 멍석 셋이 한쪽으로 밀려났다.

웃음이 나니까 몇 사람이 더 앉았다. 그래도 준 사람은 없었다.

*

사흘째 낮에 마치석이 나귀를 타고 한 번 들렀다. 멍석 셋을 보더니 아무 말도 안 하고 구만득만 불러 한참 뭐라 했다. 구만득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자꾸 우리 쪽을 흘끔거렸다. 객주는 떠나면서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았는데, 그 눈이 도는 사람 머릿수를 세는 눈이었다. 나는 그 눈을 안다. 여섯 해 동안 내 짐바리 수를 세던 눈이다.

스무날 밤에는 단이가 멍석 가운데 앉았다.

나는 단이 맞은편에 앉았고, 곰보 할멈이 옆에 앉아 관솔불을 봤다. 할멈이 딴 데를 보는 사람이다. 멍석 둘레에 걸음터 사람 스물 남짓이 둘러앉았고, 그 뒤로 아직 도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둥둥 마당을 울렸다. 관솔불에서 송진이 끓어 탁탁 튀었고, 그 불빛이 단이 얼굴 오른쪽만 비췄다. 기운 쪽이다. 왼쪽 얼굴은 어둠에 묻혀 있었다.

“일곱 해 전 유월이오. 우리 옥이가 다섯 살이었소.”

단이는 그렇게 시작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은 낮았다.

마마가 돌았다. 옥이가 앓기 시작한 첫날 저녁에 단이는 옥이를 이웃에 맡기고 고갯마루 돌 셋까지 삼십 리를 뛰어 올라가 하루를 빌렸다. 그 첫날에 쓴 약이 안 들었으니, 같은 날을 다시 살면서 다른 약을 쓰려고. 두 번째 날에는 읍내 의원 대신 산 너머 침쟁이를 불렀다. 안 들었다.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단이는 해 질 녘마다 돌 셋에 올라갔다. 나흘 동안 날마다 한 번씩, 네 번을 빌렸다. 의원을 바꾸고 약을 바꾸고 무당을 불러 굿을 했다. 굿을 한 날 옥이는 징 소리가 무섭다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고, 그다음 날을 다시 살 때 단이는 무당을 부르지 않았다. 나흘째 저녁 상주에서 모셔 온 의원이 옥이 손을 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 낫는다고.

“나는 그날 알았소. 안 낫는다는 걸. 그런데 그날 저녁에도 돌 셋에 올라갔소.”

단이 목소리가 거기서 한 번 끊겼다. 할멈이 관솔불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손을 뻗어 단이 무릎을 짚었다.

“그다음 사흘을 나는 스물네 번 살았소. 같은 날을 여러 번씩. 옥이는 그걸 모르오. 옥이한테는 하루씩밖에 없소. 아침에 눈 뜨면 목이 마르다고 하고, 낮에 열이 오르면 엄마 손이 차서 좋다고 하고, 저녁 되면 내일 장에 가느냐고 묻소. 가면 엿 사 오라고. 스물네 번, 그 애는 똑같이 목이 마르고 똑같이 열이 오르고 똑같이 엿을 사 오라고 했소. 나는 스물네 번, 사 오마 했소.”

마당이 조용해졌다. 뒤에서 돌던 발소리가 하나둘 멈추고 있었다.

“그 스물네 날이 옥이한테는 하루 더 앓은 날이오. 나는 그 애를 살리려고 빌린 게 아니오. 보내기 싫어서 빌렸소. 그 애가 하루 더 아파도, 내가 하루 더 보려고.”

단이는 거기서 말을 멈췄다. 울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멍석 짚을 한 가닥 뽑아 손가락에 감았다가, 풀었다가, 다시 감았다. 멀리 영강 쪽에서 소쩍새가 한 번 울고 그쳤다.

나는 그 얘기를 다 듣고 나서 가슴 한가운데가 묵직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방에서 단이가 제 가슴께를 문지르던 게 무엇이었는지 그제야 알았다. 들은 사람 안에는 그 날이 생긴다. 나는 이제 옥이가 엿을 사 오라고 한 그 저녁들을 안다. 옥이 얼굴은 모르는데, 그 애 목소리가 어떤 높이로 끝나는지는 안다. 들은 게 아니라 산 것처럼. 단이가 스물네 번 산 날이 이제 내 안에서도 한 번씩 저문다.

그날 밤 단이는 멍석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몸이 너무 가벼워져서 오른쪽으로 버티던 힘이 갈 데가 없었다. 할멈과 내가 양쪽에서 부축해 방에 눕혔다. 이튿날 아침 단이는 사립문 기둥을 짚지 않고 마당에 나왔다. 스물여덟에서 넷이 남았다. 스물넷이 한꺼번에 나갔다. 살리려고 빌린 넷과, 보내기 싫어서 빌린 스물. 까닭 둘을 참으로 말하고서였다.

“넷은 뭐요?”

내가 물었다. 단이가 제 발끝을 내려다봤다.

“스물넷 가운데 셋은 보내기 싫어서가 아니었소. 자는 얼굴 보려고 빌렸소. 그 애 말고 나를 위해서. 그건 까닭이 다르니 따로 말해야 하나 보오. 그리고 하나는 마지막 날 거요. 그건 아직 못 하겠소.”

단이는 그 말을 하고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 기운 쪽 먼저 딛기를 할 필요도 없었다. 넷이면 남 눈에도 안 보인다. 단이는 도는 사람들 흐름 곁을 천천히 걸었다. 따라 돌지 않았다. 흐름 속에서 누가 단이를 알아보고 걸음을 멈췄고, 그 뒤 사람이 부딪혔고, 그 뒤 사람이 또 부딪혀서, 서른 명 넘는 흐름이 처음으로 한꺼번에 멈췄다.

*

단이가 말한 이튿날 저녁, 구만득이 머슴 둘을 데리고 멍석을 걷으러 왔다.

“객주 어른 분부요. 마당에 앉지 말라 하셨소. 앉으면 마당이 식는다고.”

그날 저녁 마당을 도는 사람은 열일곱이었다. 스무 명 가까이가 멍석에 앉거나 방에 들어가 있었다. 구만득은 그걸 세어 보려다 또 틀렸고, 틀린 셈으로 머슴들한테 멍석을 걷으라고 손짓했다. 머슴 하나가 곰보 할멈이 깔고 앉은 멍석 끝을 잡아당겼다. 할멈이 옆으로 쓰러졌다.

단이가 일어섰다. 기둥을 안 짚고 일어섰다. 그러고는 가마솥 곁에 세워 둔 죽 젓는 나무 주걱을 들고 구만득 앞으로 걸어갔다. 오른쪽으로 네 푼밖에 안 기운 걸음이라, 구만득이 알아보는 데 한참 걸렸다.

“단이 아주머니? 아니, 왜 그렇게 곧으시오?”

“만득아, 너 셈 좀 해 보자. 앉아 있으면 마당이 식는다며. 식으면 누가 손해냐?”

“그야 객주 어른이…….”

“객주 어른이 손해면 나는 이득이지. 여기 앉은 스물이 다 이득이고. 너는?”

구만득이 장대를 쥐고 눈을 굴렸다.

“나는 객주 어른한테 죽을 먹소.”

“그럼 너만 손해네. 그럼 너만 돌아.”

단이가 주걱으로 마당을 가리켰다. 멍석에 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번졌다. 구만득은 얼굴이 벌게졌다가, 장대를 흙에 꽂고 버텼다.

“객주 어른이 그러셨소. 앉히는 놈은 벼랑에…….”

그는 말을 삼켰다. 그러나 삼킨 말이 마당에 떨어졌다. 멍석 위의 스물이 한꺼번에 조용해졌다. 벼랑이라는 말이 걸음터에서 무슨 뜻인지, 초사흘 뒤로는 다 알았다.

단이가 주걱을 내렸다. 그리고 구만득 코앞에서, 아주 낮게 말했다.

“그 말, 네가 방금 한 거다. 여기 스물이 들었다.”

구만득은 장대를 뽑아 들고 머슴들을 데리고 사립문 밖으로 나갔다. 나가면서 한 번도 뒤를 안 돌아봤다. 멍석은 걷히지 않았다.

*

그 밤 사립문을 제 발로 걸어 나간 사람이 일곱이다. 앞서 나간 둘까지 아홉. 일곱은 그날 밤 멍석에서 저마다 하나씩을 말했다. 큰 얘기는 없었다. 제사 날짜를 잊어서 다시 산 날, 며느리한테 소리 지른 날을 무른 날, 그런 것들이다. 한 푼, 두 푼씩 줄었고, 그 한두 푼 덕에 기운 쪽 먼저 딛기가 먹혔다. 일곱은 새벽 첫 닭에 사립문을 나섰다. 제 고향 마을이 있는 쪽으로 저마다 흩어졌다. 오른쪽으로 기운 사람 둘은 서로 어깨를 걸고 나갔는데, 둘이 같은 쪽으로 기울어서 어깨를 걸자 더 기울었다. 둘은 사립문 밖에서 욕을 하며 서로 반대쪽으로 자리를 바꿨다.

일곱 가운데 막내는 열다섯 먹은 계집아이였다. 오른쪽으로 서른 몇 푼 기운 아이인데, 걸음터에 들어온 지 두 해라고 했다. 제 어미가 장에 간 날을 여러 번 다시 살았다고만 하고 그 까닭은 끝내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 푼밖에 안 줄었다. 그래도 아이는 나갔다. 사립문 밖 개울 징검돌 앞에서 한참 서 있다가, 오른발을 먼저 딛고 첫 돌을 건넜다. 둘째 돌에서 휘청했다. 셋째 돌에서 다시 섰다. 개울 건너 언덕에서 아이는 이쪽을 돌아보고 손을 한 번 크게 흔들었다. 흔드는 팔도 오른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나는 사립문 기둥 곁에 서서 그 뒷모습들을 셌다. 셈을 하는 게 오랜만에 싫지 않았다. 짐삯을 셀 때는 늘 모자랐다. 이 셈은 셀수록 늘었다.

기둥 그늘에서 누가 헛기침을 했다. 복남이었다. 등불도 없이 와서 언제부터 거기 서 있었는지 모른다.

“다 들었소. 그 아주머니 얘기.”

녀석의 얼굴이 새벽빛에 허옇게 떠 있었다. 늘 싱글거리던 입이 다물려 있었다.

“아저씨, 말하면 정말 주오?”

“참이면 준다.”

“나도 말할 게 하나 있소. 초사흘 거.”

복남이 사립문 너머 새재 쪽을 봤다.

“그런데 그걸 말하면 우리 행수 어른이 나를 버릴 거고, 객주 어른은 나를 죽일 거요.”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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