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93자) · 기훈 · 구월 보름

첫째 못

빌린 날들의 지도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유곡역 장은 닷새마다 선다. 영남대로가 문경을 지나 상주로 꺾어 내려가는 목이라, 역마 갈아타는 마방 곁으로 장꾼들이 새벽부터 멍석을 편다. 구월 보름 장날, 나는 새벽 첫 닭에 걸음터를 나와 이십 리를 걸어 유곡역에 닿았다. 복남을 따라왔다. 녀석은 초아흐레 해 질 녘 걸음터 마당 한복판에서 「하루만」 하고 간 뒤로, 장날마다 등불을 들고 와서 같은 짓을 했다고 구만득이 말했다.

장터는 해가 뜨기도 전에 사람으로 찼다. 소 장수가 코뚜레를 잡아끄는 소리, 엿장수 가위 소리, 국밥 솥에서 뼈 삶는 냄새, 그 위로 역마들이 여물 씹는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와서 귀가 먹먹했다. 나는 약전골목 어귀 짚신 장수 좌판 뒤에 서서 복남을 지켜봤다.

녀석은 이상하게 장을 봤다. 인삼 좌판 앞에 가더니 값도 안 묻고 한 근을 샀다. 무명 좌판 앞에서는 흥정하는 척 서 있다가 갑자기 뒷걸음질을 쳤는데, 그 순간 뒤에서 황소 한 마리가 고삐를 끊고 무명 좌판을 들이받았다. 필목이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복남은 소 뿔이 스치고 간 자리에서 한 걸음 떨어져, 제 옷자락에 흙 한 점 안 묻힌 채 혀를 찼다.

“거봐, 저 소 뛴다니까. 아무도 내 말을 안 들어.”

장터에는 복남 말고도 기운 장정이 여럿 보였다. 모두 같은 푸른 물을 들인 무명 두건을 썼고, 모두 짐바리 곁에 붙어 있었다. 하나는 오른쪽으로 꽤 기울어 지게 작대기를 두 개 짚었고, 하나는 앞으로 기울어 걸을 때마다 제 발끝을 내려다봤다. 짐꾼 같은데 짐을 지지 않았다. 짐 곁에 서서 장터를 보기만 했다. 걸음터 마당을 도는 사람들과 몸이 똑같이 생겼는데 얼굴이 달랐다. 저 사람들은 삯을 받는 얼굴이었다. 곧 백이 되면 두건을 벗고 걸음터로 들어가 돌게 될 얼굴이기도 했다.

한낮이 되자 동래에서 올라온 상인 하나가 말을 달려와 장터 복판에서 소리쳤다. 왜관에서 인삼 값이 두 배로 뛰었다고. 인삼 좌판 앞에 사람들이 몰렸을 때, 복남은 이미 산 인삼 꾸러미를 등에 지고 역참 객주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여섯 해 전 정월이 생각났다.

*

그해 정월 누이 기순이 상주 시댁에서 하룻밤 자러 왔다. 시집간 지 삼 년 만이었다. 나는 그날 충주로 넘길 짐이 있었다. 누이가 사립문에 들어섰을 때 나는 지게 끈을 매고 있었고, 누이가 부엌에 들어가 떡국을 끓이는 동안 짐을 졌고, 저녁에 돌아와서는 떡국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누웠다. 누이는 내 등 뒤에서 한참 뭐라 말하다가 그쳤다. 내일 아침에는 간다고 했다.

그날 해 질 녘에 나는 돌셋 주막 앞을 지나다 마치석을 만났다. 객주는 내 얼굴을 보더니 누가 왔느냐고 물었다. 누이라고 했다. 내일 간다고 했다. 객주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하루 더 있게 해 주지. 같은 하루를 한 번 더.”

객주는 나를 고갯마루 돌 셋까지 데려다주었다. 가운데 세워 주고, 뭐라고 하면 되는지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 말을 했고, 이튿날 새벽 같은 정월 날 아침에 눈을 떴다. 누이가 사립문에 다시 들어섰다. 이번에는 지게를 안 졌다. 정월 볕은 얇아서 마당 흙이 겨우 녹아 있었고, 누이가 끓인 떡국에는 시댁에서 싸 온 꿩고기 몇 점이 떠 있어 김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누이와 그 마당 볕에 앉아 떡국을 먹었고, 누이가 부엌일을 할 때 아궁이에 불을 땠다. 누이는 이날 많이 웃었다. 누이에게는 첫 번째 날이 없다. 두 번째 날 하나뿐이다. 동생이 짐을 안 지고 마당에 앉아 있던 날.

나는 그 두 번째 날에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첫 번째 날 누이 말을 등 뒤로 흘려들은 것은 또렷이 기억한다.

유곡역 장터에서 복남의 등을 보면서 나는 그 셈을 처음으로 반대로 해 봤다. 같은 하루를 한 번 더 사는 것으로 나는 누이 앞에서 좋은 동생이 되었다. 복남은 같은 하루를 한 번 더 살아서 인삼을 먼저 샀다. 같은 셈이다. 쓰는 데가 다를 뿐이다.

*

역참 객주는 동래객주라는 현판을 달고 있었다. 기와를 얹은 집이다. 영남대로에서 기와 얹은 객주는 드물다. 마당에 짐바리가 스무 개 넘게 쌓여 있었고 짐꾼들이 그 사이를 오갔다. 나는 복남을 따라 사랑채 앞까지 갔다가 녀석한테 들켰다.

“아저씨, 걸음터 그 작대기 아저씨 맞지요? 따라온 거 다 알았소. 장터에서 짚신 장수 뒤에 숨는 사람이 어디 있소. 거기 짚신이 다 기울어 보였소.”

복남은 싱글거리며 나를 사랑채로 끌고 들어갔다. 우리 행수 어른이 걸음터 사람을 한번 보고 싶어 했다고. 방문을 열자 먹 냄새와 인삼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 나왔다.

방 안쪽 벽에 지도가 걸려 있었다.

두꺼운 한지 여러 장을 이어 붙여 벽 한 면을 다 덮은 지도였다. 동래에서 한양까지 영남대로가 굵은 먹 선으로 그어져 있고, 역참마다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위에 놋 못이 박혀 있었다. 못은 여섯 개였고, 못과 못 사이에 붉은 명주실이 팽팽히 걸려 있었다. 새재 조령관 자리에 하나, 걸음터 자리에 하나, 그리고 아직 실이 안 걸린 빈 못 넷이 유곡역과 낙동나루와 상주와 대구 자리에 박혀 있었다. 창호지를 거쳐 들어온 한낮 볕이 놋 못 머리를 비추어, 지도 위에 작은 해가 여섯 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지도를 한참 봤다. 여섯 해를 걸은 길이 거기 먹 선 한 줄로 누워 있었다. 문경에서 충주까지, 내가 사천사백팔십 리를 오간 길은 손가락 한 마디 길이였다.

“걸음터가 첫째 못이오.”

지도 앞 서안에 앉아 있던 사내가 말했다. 마흔 후반쯤 됐고, 두루마기 옷고름을 단정하게 맸다. 동래 내상 행수 석태운이라고 했다. 목소리가 낮고 부드러웠다. 기운 데가 조금도 없었다.

“자네가 기훈이군. 마 객주가 자네 얘기를 하더군. 걸음터 사람들을 걸어서 내보낸다고. 둘을 내보냈다지?”

“둘이오.”

“잘했네.”

나는 그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석태운은 서안 위 찻잔을 내 쪽으로 밀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겠지. 숨길 것 없네. 내 사환들이 장날마다 걸음터에 가서 하루를 빌려. 첫 번째 장날 시세를 보고, 두 번째 장날에 사지. 왜관 인삼 값이 뛰는 걸 반나절 먼저 아는 거야. 그 반나절로 동래에서 한양까지 짐이 도네. 영남대로에서 내 짐을 지는 짐꾼이 삼백이야. 그 사람들 겨울 쌀이 여기서 나가.”

“사환들은 기울잖소.”

“기울지. 그래서 삯을 곱으로 주네. 백 날이 되기 전에 바꾸고.”

“바꾼 사람들은 어디 가오?”

석태운이 찻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걸음터에 가지. 마 객주가 먹여 주고. 그 쌀도 내가 대네. 걸음터 서른일곱이 먹는 좁쌀이 전부 내 곳간에서 나가. 자네가 그 사람들을 다 걸어서 내보내면 그 쌀은 어디로 가겠나? 걸어 나간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셈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석태운은 내 얼굴을 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제 아비도 동래에서 한양까지 짐을 진 사람이었다고. 을사년 겨울 새재에 눈이 무릎까지 쌓였을 때 짐바리 주인이 삯을 반으로 깎았고, 아비는 그 반 삯을 받으려고 눈 속에 짐을 지고 넘다가 조령관 아래서 얼어 죽었다고. 행수는 그 얘기를 하면서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해 겨울에 우리 집은 반 삯도 못 받았네. 죽은 사람한테는 삯을 안 주거든. 그래서 나는 짐꾼 삯을 안 깎네. 곱으로 주지. 그 곱을 대려면 반나절 먼저 알아야 해. 그게 내 장사일세.”

“자네한테 청이 하나 있네. 그 기운 쪽 먼저 딛는 법, 내 짐꾼들한테 가르쳐 주게. 한 사람이 한 짐 더 지면 삼백이 삼백 짐을 더 져. 삯은 넉넉히 치지. 경구라는 사람 외상 열두 냥도 내가 마 객주한테 갚아 주고. 그 누이가 겨울에 돌셋 부엌에 안 들어가도 되게.”

석태운은 경례 얘기까지 알고 있었다. 나는 찻잔을 쥐었다. 찻물이 기운 쪽으로 쏠려 잔 가장자리까지 올라왔다.

“초사흘에 경구가 죽었소. 조곡관 벼랑에서.”

“들었네. 안된 일이야.”

“그날 객주 어른도 돌 셋에서 빌렸소. 나도 빌렸소. 나는 해 질 녘에 객주 손등에서 손톱자국을 봤소.”

석태운의 얼굴이 처음으로 잠깐 굳었다. 곧 풀렸다.

“자네, 그 말을 관아에서 해 봤나? 없는 날 얘기를?”

“못 했소.”

“하지 말게. 없는 날 얘기가 관아에 들어가면, 관아는 빌림터가 무엇인지 묻게 되네. 그다음엔 누가 빌리는지 묻고. 그다음엔 이 지도를 보자고 하겠지. 그러면 삼백이 겨울을 굶어.”

“그럼 경구는요?”

“나는 사람 죽이는 장사는 안 하네. 마 객주가 무슨 짓을 했든 그건 그 사람 일이야. 그런데 그 사람 일을 캐다가 내 일까지 무너지게 두지는 않을 걸세.”

석태운은 찻잔을 비우고 일어서서 지도 앞으로 갔다. 손가락으로 빈 못 하나를 짚었다. 유곡역 자리였다.

“청을 거절해도 좋네. 그런데 알아 두게. 셋만 돌면 빌림터가 서네. 걸음터가 아니어도 돼. 품 사서 돌리면 되지. 자네가 걸음터를 비우면, 나는 여기 새 못을 박네.”

*

나는 청을 받지 않았다. 객주 마당을 나설 때 복남이 짐바리 사이로 쫓아 나왔다. 녀석은 인삼 꾸러미를 아직도 등에 진 채였다.

“아저씨, 우리 행수 어른한테 그렇게 말하는 사람 처음 봤소. 다리 떨리는 거 보였소. 왼쪽으로 떨렸소.”

“너는 몇 푼이냐?”

“서른둘. 아직 멀었소. 백 되기 전에 바꿔 준다니까. 삯이 곱이오, 곱. 우리 어매가 그 곱으로 올겨울 솜이불을 두 채나 샀소. 한 채는 나 덮으라고 한쪽만 두껍게 누볐소.”

복남은 싱글거리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그런데 아저씨, 아까 초사흘 얘기 말이오. 아저씨도 그날 산 사람이오? 첫 번째 날을?”

“너도냐?”

녀석이 입을 다물었다. 눈이 한 번 사랑채 쪽으로 갔다. 그러고는 인삼 꾸러미를 추스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나 그날 서찰 들고 새재 넘었는데……. 아니오, 아무것도 아니오. 행수 어른이 부르오.”

부르는 소리는 없었다. 복남은 짐바리 사이로 사라졌다.

돌아오는 이십 리 동안 나는 행수의 청을 몇 번이고 다시 씹었다. 열두 냥이면 경례가 겨울 동안 돌셋 부엌에 안 들어간다. 삼백이 한 짐씩 더 지면 삼백 집 아궁이에 불이 한 번 더 들어간다. 받으면 되는 청이었다. 그런데 그 청을 받으면 나는 걸음터에서 둘을 내보낸 발로, 삯 받는 두건들을 하루 더 걷게 하는 셈이 된다. 걷게 해서 더 빌리게 하는 셈이 된다. 그 셈이 객주가 여섯 해 전 정월에 내 어깨를 두드린 것과 어디가 다른지, 나는 영강 나루에 닿을 때까지 찾지 못했다. 나는 동래객주 대문 앞에 서서, 녀석이 두고 간 말끝을 한참 쥐고 있었다. 영남대로 쪽에서 파발 말 한 필이 방울을 울리며 지나갔다. 방울 소리가 상주 쪽으로 멀어질 때까지 나는 거기 서 있었다.

4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