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185자) · 기훈 · 구월 초사흘
스물다섯째 구슬
빌린 날들의 지도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검시는 그날 한낮에 했다. 문경 현아에서 형방이 오작인 하나와 사령 둘을 데리고 올라왔는데, 형방 엄씨는 말에서 내리자마자 물소리가 시끄럽다고 짜증부터 냈다. 경구는 벼랑 아래 너럭바위 위로 옮겨져 거적을 덮고 있었다. 가을볕이 바위를 데워 거적 밑에서 젖은 무명 냄새가 올라왔고, 물보라가 튈 때마다 그 냄새가 차갑게 식었다가 다시 데워졌다.
오작인은 늙은 사내였다. 거적을 걷고 경구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바닥으로 눌러 가며 뼈를 셌다. 목뼈, 갈비 둘, 왼쪽 정강이. 떨어진 사람 몸이다. 그러고는 왼뺨의 멍을 엄지로 눌러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떨어지면서 난 게 아닌데요, 나리. 부은 모양이 둥급니다. 주먹 자리 같습니다.”
“바위에 찧었겠지.”
“바위에 찧으면 긁힙니다. 이건 안 긁혔습니다.”
엄 형방이 부채로 오작인의 어깨를 톡 쳤다. 그만하라는 손짓이었다. 오작인은 입을 다물고 경구의 오른손으로 넘어갔다. 밤새 굳은 주먹이 안 펴졌다. 오작인이 손가락 마디를 하나씩 눌러 젖히는데, 뼈 꺾이는 소리가 날 때마다 바위 뒤에서 경례가 어깨를 움츠렸다. 나는 경례 쪽을 보지 않으려고 물만 봤다.
마지막 손가락이 펴지자 손바닥에서 무언가 굴러 너럭바위 위로 떨어졌다. 노란 호박 구슬이었다. 엄지손톱만 하고, 가운데 끈 구멍이 뚫려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나는 그 구슬을 안다. 지운 날 저녁 돌 셋 앞에서, 풀린 갓끈 끝에 흔들리던 것과 같은 빛깔이었다.
“그건 객주 어른 갓끈 구슬이오.”
말이 먼저 나갔다. 사람들 눈이 한꺼번에 나한테 왔다가 마치석한테 갔다. 마치석은 구경꾼 맨 앞에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는 놀라지도 않고 갓을 벗어 들었다. 그러고는 갓끈을 엄 형방 코앞에 늘어뜨렸다.
“세어 보시오, 나리. 스물넷이오. 장터에서 맞춘 날부터 스물넷이었소.”
엄 형방이 부채 끝으로 구슬을 하나씩 짚었다. 스물넷이 다 있었고 빠진 자리가 없었다. 끈도 새것처럼 반들거렸다.
“호박 구슬 단 갓끈이 새재에 한둘이오? 충주 비단 장수도 달고 다니고 상주 좌수 영감도 달고 다니오.”
구경꾼들 사이에서 웃음이 났다. 마치석이 갓을 도로 쓰며 나를 봤다. 여섯 해 동안 짐삯을 던져 줄 때와 같은 눈이었다.
“기훈이가 어제 많이 놀랐나 보오. 동무가 죽었으니 그럴 만하지.”
“나는 어제…….”
나는 거기서 말이 막혔다. 어제라고 할 날이 없었다. 두 번째 초사흘 한낮에 나는 서 있었고, 첫 번째 초사흘은 나와 저 사람 둘 말고 아무도 모른다. 그 날에 내가 경구를 쳤다. 그걸 빼고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엄 형방은 구슬을 집어 제 도포 소매에 넣었다. 증물로 둔다고 했다. 그러고는 오작인이 불러 주는 대로 적던 시장(屍帳)을 제 손으로 받아 끝줄을 고쳐 썼다. 밤중에 벼랑길을 걷다 헛디딘 실족사, 뺨은 떨어지며 찧음. 오작인은 먹이 마르는 것을 내려다보다가, 아무 말 없이 제 손바닥을 바지춤에 닦았다.
*
마치석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사령들이 경구를 거적째 들것에 올릴 때, 객주가 경례 앞으로 걸어가서 섰다. 경례는 오라비 짚신 한 짝을 두 손에 쥐고 있었다. 한 짝은 물에 떠내려갔다.
“애야, 장사는 내가 치러 주마. 관도 내가 사고.”
경례가 고개를 들었다.
“그 대신 네 오라비가 내 집에 달아 둔 외상이 열두 냥이다. 지게는 내가 거두고, 너는 겨울 동안 우리 부엌에서 일해라. 쌍봉댁한테는 내가 말하마.”
“외상 없어요. 오라비는 밥을 쌍봉댁에서만 먹었어요.”
“술은 우리 집에서 먹었지.”
나는 들것 곁에서 한 발 나섰다. 기운 쪽으로 나서서 하마터면 들것을 칠 뻔했다.
“경구는 술을 안 먹소. 여섯 해를 같이 다녔소.”
“그럼 자네가 갚겠나? 열두 냥이면 무명 짐 여든 짐이야. 사천 리쯤 되겠군.”
마치석이 웃었다. 사천이라는 말을 할 때 그 입꼬리가 또 올라갔다. 그는 나를 보고 있었지만 말은 사람들 들으라고 하고 있었다.
“갚겠소.”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마치석도 잠깐 멈칫했다. 그러다 어깨를 으쓱하고 돌아섰다.
“짐 져서? 그럼 또 여섯 해 걸어 보게.”
경례는 들것을 따라 내려가다가 한 번 나를 돌아봤다. 고맙다는 얼굴은 아니었다. 이 사람이 왜 갑자기 이러나 하는 얼굴이었다.
사람들이 다 내려간 뒤에도 나는 너럭바위 곁에 남아 있었다. 경구가 누웠던 자리에 물기가 사람 모양으로 남아 볕에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셈을 했다. 짐삯 말고 다른 것을 세어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지운 날에 죽은 사람은 새벽으로 안 돌아간다. 죽은 몸은 죽은 자리에, 죽은 모양 그대로 넘어온다. 뺨의 멍도 넘어왔다. 그러면 손에 쥔 것도 넘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객주는 산 사람이라 새벽으로 돌아갔고, 새벽의 객주 갓끈에는 구슬이 스물넷 다 붙어 있다. 경구 손에서 나온 구슬은 스물다섯째다. 지운 날에서 건너온 구슬이다. 세상에 같은 구슬이 둘 있다.
나는 그걸 알았고, 아는 것이 아무 쓸모가 없었다. 형방 앞에서 이 셈을 말하면, 형방은 나를 동무 잃고 실성한 짐꾼으로 볼 것이다. 두 번째 날만 산 사람들한테 첫 번째 날은 없는 날이다. 없는 날에 건너온 구슬이라는 말은, 없는 말이다.
그리고 객주는 내가 안다는 것을 안다. 이번에는 주먹 쓰지 말라고 귀에 대고 속삭인 사람이다.
*
그날 밤 초상은 쌍봉댁 뒷방에서 치렀다. 관은 쌍봉댁이 제 돈으로 샀다. 마치석이 사 주겠다는 것을 주모가 부엌칼을 든 채 문간에서 돌려보냈다. 그 칼로 파를 썰던 참이었다고 나중에 말했지만, 문간에 선 주모의 가슴이 두 번 들썩이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파 얘기를 믿지 않았다.
경례는 관 머리맡에 앉아 밤새 향을 갈았다. 조문 온 짐꾼들이 한마디씩 건넬 때마다 고개만 숙였고, 누가 손에 엽전을 쥐여 주면 그걸 관 옆 소반에 가지런히 쌓았다. 쌓는 손이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아서 더 보기 힘들었다. 짐꾼 하나가 경구는 착했다고 했을 때, 경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착하긴요. 제 누이 떡값을 떼먹은 사람이에요. 스무 냥이나.”
그 말에 방 안이 웃음 반 울음 반으로 흔들렸다. 경례는 웃지 않았다.
이경쯤 걸음터에서 여자가 하나 왔다. 단이였다.
단이는 문턱을 넘을 때 오른쪽 문설주를 붙잡고 들어왔다. 오른쪽으로 스물여덟 푼 기울었다고 경구가 말한 사람이다. 걸음터에서 여기까지 이십 리 넘는 길을 밤에 걸어왔다고 했다.
“오른쪽으로 걸어오느라 길이 두 배였소. 경구 이 인간은 죽어서도 사람을 부려 먹어.”
단이는 관 앞에 절을 두 번 하고 향을 꽂더니, 향불에 대고 한참 욕을 했다. 먼저 가서 좋으냐, 두 푼 줄었다고 자랑하더니 그게 다냐, 걸음터 사람들 데리고 나간다더니 누가 데리고 나가냐. 욕이 길어지면서 목소리가 가라앉았고, 마지막에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나는 방구석에 기대 앉아 그 소리를 들었다.
욕을 다 하고 단이가 내 옆으로 와 앉았다. 둘 다 기운 사람이라 나란히 앉으니 서로 등을 돌린 꼴이 됐다.
“댁이 기훈이오? 경구가 댁 얘기를 많이 했소. 백열둘짜리 동무가 있는데 입을 안 연다고.”
“백열셋이오. 어제 하나 더 빌렸소.”
“뭘 무르려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이가 코로 숨을 내쉬었다.
“경구가 그저께 걸음터에서 그랬소. 객주가 조곡관에서 보자고 했다고. 따질 게 있다고. 무슨 일인지는 안 말했소. 그 인간은 좋은 일은 떠벌리고 무서운 일은 입을 다물어.”
*
나는 그날 밤 두 번 말하려고 했다.
처음에는 마방에 나가 소한테 말했다. 사람 앞에서는 입이 안 떨어져서였다. 누렁소가 여물을 씹다가 나를 한 번 보고, 다시 씹었다. 나는 첫 번째 초사흘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한테 말했다. 우물가, 주먹, 돌 셋, 풀린 갓끈, 손등의 붉은 줄 세 가닥. 다 말하고 나서 몸을 짚어 봤다. 그대로 백열셋이었다.
뒤에서 단이가 웃었다. 마방 기둥에 기대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모른다.
“소는 안 쳐 주오. 들어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니까. 경구가 그 얘기도 안 했소?”
“했소. 안 믿었소.”
“그럼 이제 믿고 나한테 하시오. 소보다는 내가 잘 들어.”
단이는 여물통 옆 짚단 위에 걸터앉았다. 관솔불이 마방 기둥에 걸려 그을음을 올렸고, 소 콧김이 불빛 속에서 하얗게 피었다가 흩어졌다. 짚 냄새와 쇠똥 냄새와 송진 타는 냄새가 한데 엉겨 코가 매웠다. 나는 여물통 모서리를 쥐고 섰다. 손바닥에 나무 결이 박혔다.
“나는 경구를 쳤소.”
단이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계속했다. 지운 날 우물가에서 경구가 두 푼 줄었다고 웃었고, 걸어서는 안 갚아진다고 했고, 내 백 날의 까닭을 말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쳤다. 그 애가 조곡관으로 올라가는 걸 보고만 있었다. 해 질 녘 돌 셋에서 객주가 내려왔다. 갓끈이 풀려 있었고 손등에 손톱자국이 있었다. 객주는 나한테 무를 게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을 지웠다. 경구 뺨을 친 게 싫어서.
말이 끝났을 때 목이 말라 있었다. 단이는 짚단 위에서 한참 앉아 있었다. 그러다 제 가슴께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이제 그 날이 내 안에도 있소. 무겁구먼.”
단이는 한참 제 가슴께를 문지르다가, 손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봤다.
“객주도 그날 돌 셋에서 빌렸다는 거요? 그럼 그 첫날을 아는 사람이 이 세상에 둘이오. 댁하고 객주하고.”
“이제 셋이오. 댁도 들었으니.”
“나는 들은 거고, 댁하고 객주는 산 거지. 관아에서 그걸 같다고 쳐 주겠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단이가 짚단에서 일어나며 치마를 털었다. 오른쪽으로 기운 사람이 일어설 때는 왼손으로 무릎을 짚고 한 번에 밀어 올려야 한다. 단이는 그걸 소리 하나 없이 했다.
“하나 더. 댁이 친 건 댁이 친 거요. 그건 내가 안 덮어 주오.”
그날 밤 헛간에 누웠을 때, 왼쪽 옆구리에서 무언가가 한 줌 빠져나갔다. 짐 한 짐을 내려놓은 것과 달랐다. 짐은 내려놓으면 어깨가 가벼운데, 이건 숨이 가벼웠다. 백열둘이 되었다. 여섯 해 동안 사천사백팔십 리를 걸어서 못 뺀 한 푼을, 마방에서 한 식경 말해서 뺐다.
*
이튿날 아침 나는 쌍봉댁 평상에 앉았다. 경례가 국밥을 내왔다.
경례는 사발을 상 한가운데에 놓았다. 내가 기운 쪽으로 반 뼘 당겨 놓지 않았다. 눈이 부어 있었고, 나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 부엌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에서 앞치마 끈이 풀려 흔들렸다.
어젯밤 마방 뒤 부엌 봉당에서 누가 물동이를 내려놓는 소리가 났었다. 나는 그때 소가 움직인 줄 알았다.
나는 숟가락을 들고 상 밖으로 나가는 제 손을 한참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