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표시 없는 하루

빌린 날들의 지도 · 백해원

하루를 빌려주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빌려줄 사람과 빌릴 사람이 손을 잡고, 날짜를 말하면 된다.

“9월 4일.”

“9월 4일.”

두 사람이 같은 날짜를 말하면 그날은 옮겨 간다. 값은 기억이다.

빌려준 사람은 그 하루를 살지 않는다. 눈을 뜨면 다음 날이다. 그리고 그 하루에 있었던 일을 모른다. 원래 자기 하루였는데도.

빌린 사람은 하루를 두 번 산다. 나는 하루를 빌려주는 사람들의 지도를 만든다.

누가 누구에게 며칠을 빌려줬는지, 그 하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록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게 된다. 빌려준 사람은 잊었고, 빌린 사람은 말하지 않으니까.

지도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것이 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 새 선이 하나 생겼다.

9월 4일 — 하도경 → 미상

받는 쪽이 미상인 경우는 드물다. 나는 하도경을 찾아갔다. 스물세 살, 학원 강사, 원룸 삼 층.

“9월 4일 빌려주셨죠.”

“네?”

“누구한테요.”

하도경은 문틈으로 나를 봤다.

“무슨 말씀이세요.”

“기억 안 나시죠.”

“...뭐가요.”

이 대화는 매번 같다. 빌려준 사람은 자기가 빌려준 것도 모른다. 그게 값이니까.

“9월 4일에 뭐 하셨어요?”

“9월 4일이면.”

그가 휴대폰을 봤다.

“수요일이네요. 수업했겠죠.”

“확인해 보시겠어요?”

그는 출근 기록을 봤다. 9월 4일 결근.

“어.”

“결근하셨네요.”

“이럴 리가 없는데.”

“통화 기록도 보시겠어요?”

9월 4일 통화 기록은 하나였다. 오전 여섯 시 사십 분, 십일 초. 번호는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이거 누구예요?”

“모르시죠.”

“네.”

나는 수첩을 꺼냈다.

“이 번호, 제가 압니다.”

번호의 주인은 마흔한 살 여자였다. 이름은 서인. 지도에 서른두 번 나온다. 서른두 번 전부 빌리는 쪽이었다.

“서인 씨는 하루를 서른두 번 빌렸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데요.”

“서른두 번 같은 날을 다시 살았다는 뜻입니다.”

하도경은 문을 조금 더 열었다.

“같은 날을요?”

“아니요.”

나는 수첩을 넘겼다.

“서른두 번 다 다른 날입니다. 다만.”

나는 날짜를 짚었다.

“전부 9월 4일입니다. 연도만 다릅니다.”

1994년 9월 4일부터 2025년 9월 4일까지. 서른두 해의 9월 4일. 서인은 매년 그날을 남에게서 빌렸다.

“그 사람 왜 그러는 건데요.”

“모릅니다.”

“물어보면 되잖아요.”

“찾을 수가 없어요.”

나는 수첩을 덮었다.

“빌린 사람은 그 하루를 두 번 삽니다. 그런데 두 번째 하루는 지도에 안 나와요. 어디서 사는지, 무엇을 하는지.”

“그럼 어떻게 아셨어요.”

“빌려준 사람들이 남긴 흔적으로요.”

나는 가방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서른두 장이었다. 전부 결근 기록, 통화 기록, 영수증. 하루가 사라진 사람들이 남긴 자국.

“이걸 서른두 개 모으는 데 십일 년 걸렸습니다.”

“왜 모으세요.”

나는 대답을 조금 늦췄다.

“1994년 9월 4일에 제 어머니가 하루를 빌려줬거든요.”

“그날 저는 여섯 살이었습니다.”

나는 말했다.

“어머니는 그날 없었어요. 눈을 떴는데 다음 날이었대요. 어머니는 그 하루를 평생 못 찾았습니다.”

하도경은 문을 완전히 열었다.

“들어오세요.”

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오늘 9월 4일입니다.”

내가 말했다.

“올해 것도 이미 빌려 갔어요. 도경 씨한테서.”

“그럼 지금.”

“지금 서인 씨는 이 근처에서 오늘을 두 번째로 살고 있습니다.”

나는 계단 쪽을 봤다.

“저는 십일 년 동안 이 시각에 여기 있어 본 적이 없어요.”

계단에서 발소리가 났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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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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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만더2026.05.13· 1

    이 작가님 다른 작품도 찾아 읽는 중입니다.

    • 달밤에책2026.05.14

      이 댓글 보고 다시 읽으러 갑니다.

  • 겨울차2026.05.12· 1

    설정이 과하지 않게 깔려서 편하게 따라갔습니다.

  • 조용한책상2026.05.11· 1

    문장이 짧은데 밀도가 있어요. 계속 읽게 됩니다.

    • 백해원2026.05.12

      같은 출발점 작품들 저도 다 읽었습니다. 정말 다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