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105자) · 초하루가 달라졌다
거두는 아이는 예순둘
벨라른 · 문가온
초하루가 달라졌다.
전에는 초하루에 거뒀다.
지금은 초하루에 부른다.
아침에 종이 울리면 학년마다 줄을 선다.
거두는 아이만 손을 내민다.
거두는 아이가 학교에 예순둘 있다. 전에는 전교가 다 거두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세어 보니 예순둘이다. 나머지 백구십은 안 거둔다.
안 거두는 아이한테서 여섯 해 동안 빼낸 것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그때 알았다.
제 것을 뺀 것이다.
백 년 동안 이 학교는 안 거두는 아이한테서 그 아이 제 것을 빼 왔다.
그것이 등에 들어갔다.
나는 그 말을 적어 두고 싶었다.
적을 수가 없었다. 글로 적으면 숫자가 된다. 숫자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소리로 만들었다.
한 줄짜리다.
「거둔 것이 이만이고 남은 것이 예순여덟」
이것을 이백오십둘이 외웠다.
외우게 한 까닭이 있다.
잊으면 또 백 년이 간다.
교장이 그것을 듣고 물었다.
“…왜 아이들한테 외우게 하느냐?”
나는 말했다.
“어른은 잊어요.”
교장이 웃었다.
웃다가 그쳤다.
“…나를 두고 하는 말이냐?”
나는 말했다.
“아니에요.”
“…”
“저를 두고 하는 말이에요.”
교장이 물었다.
“…네가 몇인데 벌써 잊을 것을 걱정하느냐?”
나는 말했다.
“저는 열여섯이에요.”
“…”
“백 년 뒤에 없어요.”
교장이 그 자리에 섰다.
나는 말했다.
“그런데 이 학교는 백 년 뒤에도 있잖아요.”
교장이 말했다.
“있겠지.”
나는 말했다.
“그러면 백 년 뒤에도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
“지금 1학년이 백 년 뒤에는 없지만, 그 애가 가르친 애는 있어요.”
교장이 오래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래서 이백오십둘이냐.”
나는 말했다.
“예.”
교장이 말했다.
“…스물여섯 해 동안 나는 이 학교를 혼자 지키는 줄 알았다.”
그러니 지하 사백열둘 가운데 얼마가 남의 것이고 얼마가 제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알고 사흘 앓았다.
앓는 동안 나는 셈만 했다.
백 년 치 왼쪽이 이만 하고 몇천이다.
오른쪽이 그 절반이다.
등은 사백열둘이고 사람으로 치면 예순여덟이다.
예순여덟은 이만의 절반이 아니다. 절반의 절반의 절반의 절반쯤이다.
나는 그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야 했다.
나흗날에 일어나서 세리안 선생한테 갔다.
“선생님.”
“…누워 있어야지.”
나는 물었다.
“빼낼 때 어떻게 하세요?”
선생이 물었다.
“…무슨 말이냐?”
나는 말했다.
“손목을 잡으시잖아요. 그다음에요.”
선생이 말했다.
“손으로 받는다.”
“…받으시면요?”
선생이 말했다.
“등에 담는다.”
나는 물었다.
“받은 걸 다 담으세요?”
선생이 그 물음에 손을 멈췄다.
“…다 담지.”
나는 물었다.
“어떻게 아세요?”
선생이 대답을 못 했다.
나는 말했다.
“선생님, 손에 얼마가 들어왔는지 아세요?”
선생이 말했다.
“…모른다.”
“…”
“손이 따뜻해지고, 등에 손을 대면 식는다. 그게 다다.”
나는 물었다.
“식으면 다 나간 거예요?”
선생이 오래 아무 말도 안 했다.
“…모른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물었다.
“선생님.”
“…왜?”
“선생님 안에 뭐가 있어요?”
선생이 그 물음에 아무 대답도 안 했다.
한참 있다가 제 손을 봤다.
스물여덟 해 동안 아이들 손목을 잡아 온 손이다. 손가락 안쪽에 굳은살이 있다. 손목을 잡을 때 엄지로 누르는 자리에 생긴 굳은살이다.
선생이 그 굳은살을 문질렀다.
“…루아야.”
“예.”
“나는 이십팔 년 동안 하루도 이 일을 쉰 적이 없다.”
“…”
“그리고 이십팔 년 동안 한 번도 내 손이 무엇을 하는지 안 물었다.”
교장이 와서 말했다.
“…루아야.”
“예.”
“백 년이다.”
나는 하린한테 갔다.
“아주머니, 세리안 선생님한테서 거둬 보실 수 있어요?”
하린이 말했다.
“…열 발 안에 오면 저절로 거둬진다.”
나는 말했다.
“그럼 오시라고 할게요.”
세리안 선생이 내려왔다.
내려와서 하린 앞에 앉았다.
둘이 아무 말도 안 했다.
한나절 앉아 있었다.
한나절 뒤에 하린이 말했다.
“…왔다.”
나는 물었다.
“…얼마나요?”
하린이 말했다.
“모르겠다.”
“…”
“그런데 이건 한 사람 것이 아니다.”
나는 그 자리에 섰다.
하린이 말했다.
“여럿 것이 섞여 있다.”
세리안 선생이 물었다.
“…내 안에 여럿이 있었느냐?”
하린이 말했다.
“있다.”
선생이 제 손을 봤다.
“…이십팔 년 동안.”
하린이 말했다.
“이십팔 년 동안.”
선생이 아무 말도 안 했다.
한참 있다가 물었다.
“…내가 훔친 것이냐?”
하린이 말했다.
“몰랐으면 훔친 것이 아니다.”
“…”
“나도 삼십 년 동안 몰랐다.”
선생이 말했다.
“…나는 알았어야 했다.”
하린이 말했다.
“무엇으로 아느냐?”
“…”
“손이 따뜻해졌다가 식는 것으로 아느냐?”
선생이 대답을 못 했다.
하린이 말했다.
“세리안아.”
“…왜?”
하린이 말했다.
“나는 삼십 년 동안 네가 미웠다.”
선생이 고개를 들었다.
하린이 말했다.
“너는 나가서 선생이 됐고 나는 벽 안에 있었다.”
“…”
“오늘 네 안에서 받아 보니 알겠다.”
하린이 제 손을 무릎에 놓았다.
“너도 벽 안에 있었다.”
“…”
“네 벽이 나보다 얇았을 뿐이다.”
“…예.”
“백 년 동안 아무도 안 물었다.”
나는 말했다.
“물으면 어떻게 됐어요?”
교장이 말했다.
“학교가 없어졌겠지.”
나는 물었다.
“없어지면 안 돼요?”
교장이 오래 아무 말도 안 했다.
“…거두는 아이가 예순둘이다.”
“…예.”
“학교가 없어지면 그 예순둘이 도시로 간다.”
“…”
“가면 그 옆 사람들이 잃는다.”
나는 말했다.
“…그럼 학교는 있어야 해요.”
교장이 말했다.
“있어야 한다.”
“…”
“다만 백구십한테서 안 빼면 된다.”
그해부터 초하루가 이렇게 됐다.
거두는 예순둘이 손을 내민다.
선생이 빼낸다.
빼낸 것을 등에 담는다.
담은 등을 그날 밤에 우리가 듣는다.
들으면 누구 것인지 안다. 아직 따뜻하니까 또렷하다.
또렷할 때 들으면 가락이 안 밴다.
그 자리에서 벗길 것이 없다.
이튿날 우리가 도시로 나간다.
나가서 부른다.
그 사람이 나오면 준다.
한 달이면 예순둘 가운데 사오십이 나간다.
못 나간 것만 위층에 걸린다.
한 해에 백쯤 걸린다.
나는 그것이 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안 는다.
걸린 것 가운데 이듬해에 나가는 것이 있다.
주인이 그해에 도시로 오기도 하고 아이가 자라서 알아듣기도 한다.
한 해에 백이 걸리고 여든이 나간다.
스물이 남는다.
열 해면 이백이다.
나는 그 셈을 하고 교장한테 말했다.
“열 해면 이백이 남아요.”
교장이 물었다.
“지하에 얼마나 남았느냐?”
나는 말했다.
“쉰여섯이요.”
교장이 말했다.
“백 년 치가 쉰여섯이다.”
“…”
“앞으로 열 해에 이백이면 늘어나는구나.”
나는 그 뒤에 선생 열둘을 다 하린 앞에 앉혔다.
한 사람에 한나절씩이다.
열둘이면 엿새다.
엿새 동안 하린이 거뒀다.
거두고 나서 하린이 말했다.
“…많다.”
나는 물었다.
“얼마나요?”
하린이 말했다.
“내가 삼십 년 동안 등한테서 거둔 것보다 많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았다.
선생 열둘 안에 있던 것이 등 사백보다 많다.
그러면 백 년 동안 절반이 어디로 갔는지가 나온다.
빼내는 손에 남았다.
선생이 바뀌면 그 선생과 같이 갔다.
죽으면 같이 갔다.
나는 그것을 교장한테 말했다.
교장이 그 말을 듣고 오래 앉아 있었다.
“…나도 열두 해 뺐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교장이 말했다.
“교장이 되기 전에 열두 해 뺐다.”
교장이 일어섰다.
“…나도 앉겠다.”
교장이 지하로 내려갔다.
한나절 앉아 있었다.
올라와서 말했다.
“…가벼워졌다.”
나는 물었다.
“…어떠세요?”
교장이 말했다.
“모르겠다.”
“…”
“다만 하나는 알겠다.”
교장이 제 손을 봤다.
“나는 스물여섯 해 동안 이 학교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몰랐다.”
“…”
“빼내는 곳인 줄 알았는데 옮기는 곳이었다.”
나는 물었다.
“…어디로 옮겨요?”
교장이 말했다.
“절반은 등으로 옮기고 절반은 선생한테로 옮긴다.”
“…”
“백 년 동안 그랬다.”
교장이 창가에 섰다.
“백 년 동안 이 학교를 거쳐 간 선생이 몇인지 아느냐?”
나는 말했다.
“모릅니다.”
교장이 말했다.
“백스물넷이다. 장부 뒤에 적혀 있다.”
“…”
“그 가운데 아흔이 죽었다.”
나는 그 수를 들었다.
아흔 사람이 제 안에 남의 절반을 넣은 채로 죽었다.
그것은 못 돌려받는다.
교장이 말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은 늦은 것이다.”
“…”
“늦었는데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나는 말했다.
“…예.”
교장이 물었다.
“왜 늘겠느냐?”
나는 그 셈을 사흘 했다.
사흘째에 알았다.
전에는 백 년 동안 안 나갔다. 아무도 안 불렀으니까.
지금은 부른다.
부르니까 나간다.
나가는데도 남는 것은, 부르는 사람이 아홉뿐이라서다.
아홉이 한 해에 부를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
나는 교장한테 말했다.
“부르는 사람을 늘려야 해요.”
교장이 물었다.
“빈 아이가 아홉뿐이다.”
나는 말했다.
“아홉이 아니어도 돼요.”
교장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말했다.
“3학년 둘이 저를 따라 불렀어요. 둘은 안 들려요.”
“…”
“안 들려도 따라 부를 수 있어요.”
교장이 물었다.
“듣는 것은 누가 하느냐?”
나는 말했다.
“듣는 건 아홉이 하고 부르는 건 다 같이 하면 돼요.”
교장이 그 자리에 앉았다.
나는 말했다.
“전교가 이백오십둘이에요.”
“…”
“이백오십둘이 부르면 한 해에 다 나가요.”
교장이 물었다.
“그걸 어떻게 다 외우느냐?”
나는 말했다.
“한 사람이 다 안 외워도 돼요.”
“…”
“한 사람이 하나씩 맡으면 돼요.”
교장이 그 말을 오래 들었다.
“…하나씩이면 이백오십둘이다.”
나는 말했다.
“한 해에 백이 걸려요. 이백오십둘이면 남아요.”
교장이 물었다.
“남으면 어찌하느냐?”
나는 말했다.
“두 사람이 하나를 맡으면 돼요.”
“…”
“하나가 잊어도 하나가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