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79자)

3월 15일

중고 명품 감정사 · 채이안

5월 12일 수요일 오후 두 시⁠, 경찰서 3층 지능범죄수사팀 조사실에는 창이 없었다⁠. 형광등 하나가 낮게 웅웅거렸고⁠, 책상 위에는 컴퓨터와 종이컵 두 개⁠, 그리고 부엌 저울이 있었다⁠. 탁경춘은 수련에게 커피를 건네기 전에 종이컵을 저울에 올렸다⁠.

“⁠이백십이 그램⁠. 자판기가 오늘은 많이 줬네유⁠.⁠”

“⁠커피도 재세요⁠?⁠”

“⁠버릇이유⁠. 가짜 가방 사건 맡고부터 뭐든 재 봐유⁠. 집사람이 나를 재 보라고 하데유⁠. 사람도 가짜 있다고⁠.⁠”

수련은 종이컵을 받았다⁠. 뜨거웠다⁠. 손바닥 안에서 커피 표면이 조금 떨렸다⁠.

경춘이 모니터를 수련 쪽으로 돌렸다⁠. 리셀원 1층 출입 기록이었다⁠. 「⁠3월 15일 15⁠:31 방문객 — 곽미순 — 방문 대상⁠: 4층 감정실 지수련⁠」⁠.

“⁠어머님이 3월 15일 오후에 회사에 오셨쥬⁠? 무슨 일로 오셨대유⁠?⁠”

수련은 종이컵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대답은 두 개가 있었다⁠. 반찬 주러 왔다⁠. 사실이었다⁠. 보자기로 싼 갓김치 통을 받았고⁠, 감정실 사람들이 나눠 먹었다⁠. 소람이 칠 분의 일을 따지며 비명을 질렀다⁠. 반찬 이야기만 해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갓김치를 가져왔어요⁠.⁠”

“⁠그류⁠.⁠”

경춘이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경춘은 다음 말을 재촉하지 않았다⁠. 저울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고 숫자가 멈추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리고 쇼핑백을 하나 들고 왔어요⁠. 가방 하나만 봐 달라고 했어요⁠.⁠”

경춘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가방이유⁠?⁠”

“⁠모르겠어요⁠. 안 열어 봤어요⁠. 오늘 이백 개라고⁠, 3층 일반 접수에 넣으라고 했어요⁠. 이 주 걸린다고⁠.⁠”

“⁠봐 달라고 하실 때 뭐라고 하셨슈⁠? 진짜인지 봐 달라⁠, 가짜인지 봐 달라⁠?⁠”

수련은 3월 15일의 유리문을 떠올렸다⁠. 이거 하나만 봐 주믄 안 되까⁠. 쇼핑백 손잡이를 쥔 하얀 손가락 마디⁠. 니 일하는 데 엄마가 끼어들면 안 되제⁠.

“⁠그냥 봐 달라고 했어요⁠. 걱정하는 얼굴이었어요⁠.⁠”

“⁠걱정하는 얼굴⁠.⁠”

경춘이 낱말을 천천히 받아 적었다⁠. 볼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형광등 소리보다 컸다⁠.

“⁠감정사님⁠, 이게 무슨 뜻인지 아셔유⁠? 어머님은 3월 16일 밤에 따님한테 듣고 처음 아셨다고 진술하셨슈⁠. 근디 그 전날 가방을 들고 감정사 딸한테 왔으믄⁠, 그 전부터 의심이 있으셨던 거유⁠. 의심하면서 판 건⁠, 법에서는 알고 판 걸로 볼 수 있슈⁠. 미필적 고의라고 해유⁠. 가짜일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 그냥 판 거⁠.⁠”

“⁠알아요⁠.⁠”

“⁠아시면서 말씀하신 거유⁠?⁠”

“⁠경위님이 물으셨잖아요⁠.⁠”

경춘이 볼펜을 내려놓았다⁠. 한동안 수련을 보았다⁠. 저울을 보던 눈과 같은 눈이었다⁠.

“⁠우리 집사람 가방도 가짜라고 말해 준 사람이 있었슈⁠. 집사람 친구였는디⁠, 그 뒤로 둘이 안 만나유⁠. 말 안 해 줬으믄 지금도 만났을 거유⁠. 나는 그 친구가 고마운디⁠, 집사람은 아니래유⁠.⁠”

경춘이 종이 한 장을 수련 앞으로 밀었다⁠. 진술 내용을 확인하고 서명하는 칸이 있었다⁠. 수련은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으로 펜을 들었다⁠. 제 이름을 쓰는 손이 감정표에 도장을 찍을 때보다 무거웠다⁠.

*

조사실을 나와 복도 끝 계단으로 가는데⁠, 맞은편 조사실 문이 열렸다⁠. 도진구가 양복 입은 변호사와 함께 나왔다⁠. 오늘은 코트 대신 짙은 남색 재킷이었다⁠. 진구는 수련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웃음은 그대로였다⁠.

“⁠따님⁠. 오늘 어머님 일로 오셨죠⁠?⁠”

“⁠네⁠.⁠”

“⁠들었습니다⁠. 어머님이 3월 15일 전부터 의심하셨다고요⁠. 따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서요⁠.⁠”

수련은 대답하지 않았다⁠. 진구가 변호사에게 먼저 내려가 있으라고 손짓하고⁠,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고맙습니다⁠. 진심으로요⁠. 어머님이 알고 파셨으면⁠, 저는 위탁만 한 사람입니다⁠. 저는 리셀원 카드를 믿었고⁠, 카드는 따님 회사가 찍었으니까요⁠.⁠”

“⁠카드는 대표님 창고에서 나왔어요⁠. 오백 장⁠.⁠”

“⁠바른감정이 맡긴 겁니다⁠. 처남이 정리를 못 하는 사람이라서요⁠. 그건 처남이 경찰한테 설명할 일이고요⁠.⁠”

진구가 재킷 단추를 채웠다⁠. 단추 하나를 채우는 데도 서두르지 않았다⁠.

“⁠따님은 가방에 정직하시죠⁠. 저는 그게 늘 고마웠습니다⁠. 정직한 사람은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있거든요⁠.⁠”

진구가 계단을 내려갔다⁠. 감정표에는 처남의 도장이⁠, 확인서에는 엄마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진구 자신의 도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수련은 계단 난간을 잡고 진구의 구두 소리가 한 층씩 멀어지는 것을 들었다⁠.

*

네 시⁠, 경찰서 뒤 주차장에 엄마가 서 있었다⁠. 엄마도 오늘 피의자 조사였다⁠. 수련보다 한 시간 늦게 시작해서 방금 끝났다고 했다⁠. 꽃무늬 블라우스 위에 회색 카디건을 걸쳤고⁠, 손에는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있었다⁠. 봉지 안에서 반찬통 모서리가 비쳤다⁠.

“⁠형사 양반이 그러드라⁠. 니가 3월 15일 얘기를 했다고⁠.⁠”

“⁠응⁠.⁠”

“⁠나한테 한 번도 안 물어보고⁠.⁠”

“⁠엄마가 말 안 했잖아⁠.⁠”

엄마가 비닐봉지를 다른 손으로 옮겨 쥐었다⁠. 주차장 바닥에 그림자 둘이 길게 누워 있었다⁠. 엄마의 그림자가 수련의 그림자보다 조금 작았다⁠.

“⁠그래⁠. 나 의심했다⁠.⁠”

엄마가 먼저 말했다⁠.

“⁠세 번째로 들어온 물건부터⁠. 작년 십이월⁠. 진구 사장이 열 개를 갖고 왔는디⁠, 열 개 다 상자며 먼지 주머니며 영수증까지 새것처럼 갖춰져 있드라⁠. 그게 너무 반듯했어⁠. 이십 년 장사하믄 물건이 너무 반듯할 때 무서운 거 알어⁠. 사람도 그렇고⁠.⁠”

“⁠그럼 왜 계속 팔았어⁠.⁠”

“⁠이자가 다달이 나가니께⁠. 그라고 진구 사장이 니 회사에서 진품 카드 받은 사진을 보여 주니께⁠. 니 회사가 진짜라고 했는디 엄마가 뭐라고 가짜라 하겄냐⁠.⁠”

수련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 엄마가 비닐봉지를 들어 보였다⁠.

“⁠그래서 한 개는 내 돈 주고 샀어⁠. 위탁 말고⁠. 진구 사장한테 천백 주고⁠. 니 시집갈 때 줄라고 부은 적금 깼다⁠.⁠”

“⁠엄마⁠.⁠”

“⁠내 돈 주고 산 거 하나는 진짜겄지 했어⁠. 그걸 니한테 보여 주고 진짜라 하믄⁠, 나머지도 믿을라고⁠. 가짜라 하믄 그만둘라고⁠. 그래서 갖고 갔어⁠. 니 회사에⁠. 갓김치랑⁠.⁠”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가 다시 내려갔다⁠.

“⁠니가 안 봤잖여⁠.⁠”

수련은 주차장 바닥을 보았다⁠. 3월 15일 오후⁠, 수련은 아르벨 루나 하나에 확대경을 대고 있었다⁠. 도원상사가 보낸 루나였다⁠. 엄마가 품에 안고 있던 쇼핑백 속에도 루나가 하나 들어 있었을 것이었다⁠. 같은 날 같은 층에서⁠, 수련은 남의 루나를 보고 엄마의 루나를 3층으로 내려보냈다⁠.

“⁠미안해⁠.⁠”

“⁠미안하라고 한 말 아니여⁠.⁠”

엄마가 비닐봉지를 수련 손에 쥐여 주었다⁠. 깻잎이었다⁠.

“⁠하나 더 있어⁠. 이건 안 할라고 했는디⁠, 형사 양반이 빚 얘기를 자꾸 물어서 다 말했어⁠. 니도 들어야제⁠.⁠”

엄마가 카디건 앞섶을 여몄다⁠.

“⁠칠천⁠. 가게 보증금 아니여⁠. 니 학교 돈이여⁠.⁠”

수련의 손에서 비닐봉지가 흔들렸다⁠.

“⁠2016년에 니가 이탈리아 가죽 학교 붙었다고 했제⁠. 학비랑 방값이랑⁠, 이 년⁠. 은행은 장사하는 과부한테 그 돈을 안 빌려주드라⁠. 진구 사장이 시장 사람들한테 돈 놓는 사람이었어⁠. 그때는 이자가 지금보다 셌어⁠. 법이 바뀌어서 20퍼센트로 내려간 거여⁠. 그 사람이 그거 자랑하는 거⁠, 니도 들었제⁠.⁠”

“⁠장학금이라고 했잖아⁠.⁠”

“⁠장학금도 쪼금 있었어⁠. 쪼금⁠.⁠”

엄마가 웃었다⁠. 웃음 끝이 떨렸다⁠.

“⁠니가 피렌체에서 보낸 사진 있잖여⁠. 할아버지 장인 옆에서 가죽 꿰매는 거⁠. 그거 계산대 유리 밑에 지금도 있어⁠. 손님들한테 다 보여 줬어⁠. 우리 딸이 이탈리아에서 가방 공부한다고⁠. 그 사진값이 칠천이었어⁠. 비싼 사진이제⁠.⁠”

수련은 비닐봉지를 쥔 채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딸을 보지 않고 주차장 출구 쪽 신호등을 보고 있었다⁠.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었다⁠.

“⁠엄마는 왜 말 안 했어⁠.⁠”

“⁠니가 바빴잖여⁠.⁠”

엄마가 신호등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몇 걸음 가다 돌아보았다⁠.

“⁠니 이름 안 나오게 하라고 했제⁠. 이사회 날⁠. 니가 니 입으로 엄마 이름을 냈으니께⁠, 엄마도 엄마 입으로 니 학교 돈을 냈어⁠. 이제 비겼다⁠.⁠”

“⁠그게 어떻게 비긴 거야⁠?⁠”

“⁠엄마가 비겼다믄 비긴 거여⁠.⁠”

엄마가 초록불을 건넜다⁠. 횡단보도 끝에서 버스 정류장 쪽으로 꺾어 들었다⁠. 꽃무늬가 사람들 사이로 들어갔다가 다시 보였다가 사라졌다⁠. 수련은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깻잎 냄새가 봉지 매듭 사이로 새어 나왔다⁠.

*

밤 아홉 시⁠, 수련은 버스 맨 뒷자리에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뉴스 화면이 떠 있었다⁠. 「⁠특허청·경찰⁠, 중고 명품 플랫폼 위조품 합동 점검⁠… 국회선 “⁠중개 플랫폼에 차단 책임⁠” 상표법 개정 논의⁠」⁠. 기사 사진 속에 리셀원 건물이 흐리게 찍혀 있었다⁠. 댓글 하나가 맨 위에 있었다⁠. 「⁠감정사 번호까지 찍어 놓고 가짜 팔았으면 감정사부터 잡아야지⁠」⁠. 공감이 이백 개였다⁠.

알림이 떴다⁠. 「⁠감정실 (⁠7⁠)⁠」⁠. 소람이었다⁠. 소람은 해고된 지 아흐레가 지나도록 단톡방에서 아무도 내보내지 않았다⁠.

「⁠선배 저 아직 여기 있어요ㅋㅋ 아무도 안 내보내요⁠. 감정실 사람들 정 많아요⁠」

「⁠근데 선배 급한 거⁠. 3층 보관함 B-17이요⁠. 동료가 오늘 장기 보관품 정리하다 찾았대요⁠. 접수자 이름이 ‘⁠곽미순⁠’이 아니라 ‘⁠감정사 지수련 모친⁠’으로 돼 있어서 이름으로 검색하면 안 나왔대요ㅋㅋ 어머님이 접수증에 그렇게 쓰셨대요⁠」

「⁠접수일 3월 15일 오후 세 시 오십이 분⁠. 아르벨 루나 30 갈색⁠. 감정 대기 58일째⁠」

수련은 화면을 보다가 웃음이 터졌다⁠. 버스 앞자리 학생이 돌아볼 만큼 크게 나왔다⁠. 웃다가 목이 막혔다⁠. 감정사 지수련 모친⁠. 엄마는 접수증에 제 이름 대신 딸의 직함을 썼다⁠.

다음 말풍선이 떴다⁠.

「⁠근데 대표님이 장기 보관품 금요일까지 전부 반송하래요⁠. 반송 주소가 모란 가게라서⁠, 가게 문 닫혀 있으면 그대로 반송 창고로 간대요⁠. 반송 창고 가면 찾기 힘들어요⁠」

수련은 버스 벨을 눌렀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인도에 서자마자 탁경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세 번 가고 경춘이 받았다⁠. 텔레비전 소리가 났다⁠.

“⁠경위님⁠, 그 가방 있어요⁠. 엄마가 3월 15일에 맡긴 가방⁠. 리셀원 3층 보관함 B-17이요⁠. 금요일에 반송돼요⁠.⁠”

“⁠그류⁠?⁠”

경춘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빨라졌다⁠.

“⁠압수 영장 받으려면 며칠 걸리는디⁠. 마침 잘됐슈⁠. 아르벨 쪽에서 리셀원 감정실에서 공개 감정을 하자고 했슈⁠. 경찰⁠, 아르벨⁠, 리셀원 이사회 다 모여서 압수품 다시 보는 거⁠. 20일 목요일⁠. 그 가방도 목록에 넣겄슈⁠. 오늘 밤에 리셀원에 보존 요청 공문 보내유⁠. 금요일 반송은 못 할 거유⁠.⁠”

“⁠고맙습니다⁠.⁠”

“⁠고맙긴유⁠. 근디 감정사님⁠, 그날 감정은 누가 해유⁠? 감정사님은 업무 정지라면서유⁠.⁠”

수련은 대답하지 못했다⁠. 경춘이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아르벨 팀장님이 감정사님을 콕 집어서 부르던디⁠. 이사회도 동의했대유⁠. 공개 감정은 사람들 앞에서 하는 거라⁠, 이해충돌은 사람들이 보면 된대유⁠.⁠”

전화가 끊겼다⁠. 수련은 휴대전화를 쥔 채 인도에 서 있었다⁠. 알림이 하나 더 왔다⁠. 방우경이었다⁠. 「⁠본사 동료가 번호를 찾았습니다⁠. 20일 아침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숫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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