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44자)

압수수색

중고 명품 감정사 · 채이안

4월 22일 목요일 오후 네 시⁠, 청담동 아르벨 매장 정문은 대리석과 유리로만 되어 있었다⁠. 문을 지키는 직원이 흰 장갑 낀 손으로 문을 열어 주었다⁠. 매장 안에서는 조용한 피아노 음악이 흘렀고⁠, 진열대마다 루나 30이 하나씩⁠, 조명 아래 혼자 앉아 있었다⁠. 가방 하나에 진열대 하나였다⁠. 모란 진열장에서 여덟 개가 키를 맞춰 앉아 있던 것과 달랐다⁠.

매장 뒤 사무실은 반대였다⁠. 창이 없는 방에 종이 상자가 천장까지 쌓여 있었고⁠, 상자마다 날짜와 경찰서 이름이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한쪽 벽에 문서 파쇄기만 한 기계가 있었다⁠. 하명진이 기계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가죽 파쇄기예요⁠. 압수된 위조품은 재판이 끝나면 저희가 받아서 여기서 갈아요⁠. 갈아서 태워요⁠. 시중에 다시 나오지 않게⁠.⁠”

“⁠전부요⁠?⁠”

“⁠전부⁠. 손잡이 하나까지⁠.⁠”

명진이 상자 하나를 열었다⁠. 갈색 루나 여섯 개가 비닐에 싸여 들어 있었다⁠. 작년 가을 부산에서 압수한 물건이라고 했다⁠.

“⁠지수련 씨⁠, 본사가 원하는 건 두 가지예요⁠. 리셀원이 가짜에 정품 카드를 붙였다는 증언⁠. 그리고 출처 가게의 물건 전부⁠.⁠”

“⁠출처 가게는 제 어머니예요⁠.⁠”

“⁠알아요⁠.⁠”

명진은 의자에 앉지 않고 상자 옆에 그대로 서서 말했다⁠.

“⁠어머님 가게에서 나간 루나가 스물다섯 개라고 들었어요⁠. 한 개도 빠짐없이 회수해야 해요⁠. 어머님이 판 손님 명단이 필요해요⁠.⁠”

“⁠떡집 아주머니랑 미용실 원장님이에요⁠. 엄마 단골이에요⁠.⁠”

“⁠단골이면 찾기 쉽겠네요⁠.⁠”

수련은 명진의 얼굴을 보았다⁠. 농담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엄마는 몰랐어요⁠. 빚 때문에 위탁을 받았고⁠, 가품인 줄 몰랐어요⁠. 엄마도 속은 사람이에요⁠.⁠”

“⁠법은 알고 팔았는지를 물어요⁠. 저희는 가방이 지금 어디 있는지를 묻고요⁠. 가짜가 한 개라도 밖에 남으면 다음 사람이 또 속아요⁠.⁠”

명진이 휴대전화로 영상 하나를 틀어 수련에게 건넸다⁠. 파리 근교 공방이었다⁠. 흰 머리의 장인이 무릎에 가죽을 대고 송곳으로 구멍을 내고⁠, 바늘 두 개로 한 땀씩 엇갈려 박았다⁠. 한 인치에 열한 땀⁠. 영상이 끝날 때까지 장인은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저 사람이 루나 하나를 다 박는 데 열여덟 시간이 걸려요⁠. 가짜 공장은 같은 시간에 서른 개를 만들고요⁠. 가짜가 팔릴 때마다 저 사람 손이 하는 일의 값이 떨어져요⁠. 저는 저 손을 지키는 사람이에요⁠. 어머님 사정을 봐 드리는 사람이 아니라⁠.⁠”

*

사무실 문이 열리고 매장 직원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팀장님⁠, 죄송한데요⁠. 손님이 루나에 강아지를 넣고 다녀도 되느냐고 물으세요⁠. 강아지가 칩을 씹을까 봐 걱정이시래요⁠.⁠”

명진이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칩은 안감 속에 있어서 강아지가 못 씹는다고 해⁠. 다만 강아지 털은 안감에 들어가면 안 빠진다고도⁠.⁠”

직원이 사라지자 명진이 처음으로 웃었다⁠. 입꼬리만 조금 올라갔다⁠.

“⁠매장에서는 저런 질문이 하루에 열 번이에요⁠. 진짜 가방 가진 사람들의 걱정이죠⁠.⁠”

수련도 따라 웃을 뻔했다⁠. 대신 물었다⁠.

“⁠본사 칩 조회 결과는요⁠? LN30-2503-71946⁠. 감사위원회가 요청한 번호요⁠.⁠”

명진의 웃음이 사라졌다⁠.

“⁠등록된 번호예요⁠. 다른 제품으로⁠.⁠”

“⁠어느 제품이요⁠? 누가 샀어요⁠?⁠”

“⁠그건 수사 자료라서요⁠.⁠”

명진이 상자 뚜껑을 덮었다⁠. 덮는 손이 평소보다 빨랐다⁠. 수련은 빨라진 손을 보았다⁠. 가방이 거짓말할 때 박음질이 서두르는 자리처럼⁠, 사람도 말이 서두르는 자리가 있었다⁠.

“⁠하나만 여쭤볼게요⁠. 그 번호가 붙은 진짜 루나⁠, 지금 누가 들고 다녀요⁠?⁠”

명진은 대답 대신 명함을 하나 더 꺼냈다⁠. 뒷면에 손글씨로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증언할 마음이 생기면 이 번호로 하세요⁠. 제 휴대전화예요⁠. 다음 주 화요일 이후에는⁠, 지수련 씨가 고를 수 있는 것이 줄어들 거예요⁠.⁠”

*

4월 27일 화요일 오전 아홉 시 십 분⁠, 수련은 집에서 업무 정지 14일째 아침을 먹고 있었다⁠. 깻잎 한 장을 밥에 얹었을 때 전화가 두 통 연달아 왔다⁠.

첫 번째는 소람이었다⁠. 소람은 숨을 쉬지 않고 말했다⁠.

“⁠선배⁠, 경찰 왔어요⁠. 감정실에⁠. 대표실에도⁠. 압수수색이래요⁠. 우경 소장님 서랍에서 카드 묶음 꺼내 가요⁠. 저 지금 화장실에서 전화해요⁠. 속눈썹 붙이다가⁠.⁠”

두 번째는 엄마였다⁠. 엄마는 말을 하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진열장 열쇠 좀 주셔유⁠.⁠」

수련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압구정과 모란⁠, 두 곳이 같은 시각에 열리고 있었다⁠. 감정실에는 소람과 우경이 있었고⁠, 모란에는 엄마 혼자 있었다⁠. 수련은 휴대전화와 장갑만 챙겨 택시를 불렀다⁠. 택시 기사에게 모란역이라고 말하고 나서야 확대경을 두고 온 것을 알았다⁠. 확대경은 소람의 서랍 안에 열쇠로 잠겨 있었다⁠.

*

열 시 반⁠, 미순빈티지 문 앞에 노란 상자가 쌓여 있었다⁠. 「⁠압수물⁠」⁠. 가게 안에 사복 경찰 둘과 아르벨 측 직원 하나⁠, 그리고 진열장 앞에 키가 작고 배가 조금 나온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진열장 위에 부엌 저울을 올려놓고 갈색 루나 하나를 저울에 얹고 있었다⁠.

“⁠840⁠. 딱 맞네유⁠. 이것도 가짜래유⁠?⁠”

“⁠가짜예요⁠.⁠”

수련이 문간에서 대답하자 남자가 돌아보았다⁠. 남자의 목에 걸린 신분증에 「⁠경위 탁경춘⁠」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류⁠? 누구셔유⁠?⁠”

“⁠이 가게 딸이에요⁠. 리셀원 감정사고요⁠.⁠”

“⁠아이고⁠, 그 감정사님⁠. 메일 보내신 분⁠. 아르벨 쪽에서 얘기 들었슈⁠.⁠”

경춘이 저울에서 가방을 내리며 수련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엄마는 계산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앞치마도 벗지 못하고 두 손을 무릎 사이에 넣고 있었다⁠. 수련을 보자 엄마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사장님⁠, 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하셔유⁠.⁠”

경춘이 엄마에게 말했다⁠. 목소리가 느렸다⁠.

“⁠나는 몰랐다니께요⁠. 진구 사장이 진짜라고 했고⁠, 리셀원 카드 붙은 것도 있다고 했고⁠.⁠”

“⁠그류⁠. 근디 사장님⁠, 천이백짜리를 미용실 원장님한테 팔백에 파셨대유⁠. 진짜라고 믿으셨으믄 사백을 왜 깎아 주셨대유⁠?⁠”

“⁠단골이니께⁠.⁠”

“⁠단골한테 사백⁠.⁠”

경춘이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적는 손이 느렸다⁠. 엄마의 얼굴이 빨개졌다⁠.

“⁠형사 양반⁠, 나 이십 년 장사했어⁠. 단골한테 사백 깎아 준 게 죄여⁠?⁠”

“⁠죄는 아니쥬⁠. 근디 알았는지 몰랐는지 볼 때는 봐야쥬⁠.⁠”

경춘이 고개를 돌려 진열장 아래 칸을 가리켰다⁠.

“⁠감정사님⁠, 여기서 가짜를 짚어 주실 수 있어유⁠? 아르벨 직원분은 루나만 아셔서⁠, 다른 상표는 저희가 모르겄슈⁠.⁠”

수련은 진열장 앞으로 갔다⁠. 장갑을 꼈다⁠. 엄마의 시선이 등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진열장 안에는 루나 열다섯 개 말고도 엄마가 이십 년 동안 모아 온 가방들이 있었다⁠. 오델라 숄더백 둘⁠, 이름 없는 빈티지 가죽 가방 몇 개⁠, 수련이 고등학생 때 엄마가 처음 들여놓았던 갈색 서류 가방 하나⁠. 수련은 한 개씩 꺼내 냄새를 맡았다⁠. 오델라 하나에서 새 운동화 가게 냄새가 났다⁠.

“⁠이거요⁠.⁠”

경춘이 받았다⁠. 엄마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건 진구 사장 것 아니여⁠. 그건 내가 작년에 동대문에서 직접 떼 온 거여⁠.⁠”

“⁠엄마⁠, 가짜야⁠.⁠”

“⁠니는 누구 편이여⁠.⁠”

엄마의 목소리가 가게 안을 울렸다⁠. 사복 경찰 둘이 손을 멈췄다⁠. 아르벨 직원은 루나를 비닐에 넣다 말고 고개를 숙였다⁠. 경춘만 아무렇지 않게 오델라를 저울에 올렸다⁠.

“⁠편 얘기가 아니라 가방 얘기유⁠, 사장님⁠.⁠”

“⁠형사 양반은 가만있어⁠.⁠”

엄마가 수련 앞으로 다가왔다⁠. 꽃무늬 블라우스 단추 하나가 엇갈려 채워져 있었다⁠. 아침에 경찰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급하게 입은 옷이었다⁠.

“⁠니가 메일 보냈다며⁠. 니가 회사에 다 말했다며⁠. 니 엄마 이름을 니 손으로⁠.⁠”

“⁠엄마 이름을 쓴 건 진구 사장이야⁠. 매입 확인서에⁠.⁠”

“⁠도장 찍은 건 나여⁠.⁠”

“⁠그러니까⁠.⁠”

수련은 말을 멈췄다⁠. 그러니까 다음에 올 말이 엄마를 더 다치게 할 것이었다⁠. 엄마도 다음 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계산대로 돌아가 깻잎 통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열었다 닫았다⁠.

계단에서 발소리가 올라왔다⁠. 떡집 아주머니가 갈색 루나를 가슴에 안고 문간에 나타났다⁠. 밀가루가 묻은 앞치마 차림이었다⁠.

“⁠미순아⁠, 경찰 왔다믄서⁠? 시장에 다 났어⁠. 이거 내야 된다며⁠?⁠”

“⁠언니⁠, 내지 마⁠.⁠”

엄마가 말렸지만 아주머니는 가방을 경춘 앞에 내밀었다⁠.

“⁠가짜믄 가짜제⁠. 우리 미순이가 날 속였겄어⁠? 저 사장 놈이 속였제⁠. 형사 양반⁠, 이거 내믄 영수증 끊어 줘요⁠?⁠”

“⁠압수 목록 드려유⁠. 임의 제출이라 안 내셔도 되는디⁠, 내 주시믄 고맙쥬⁠.⁠”

“⁠가방 값은 누가 물어 줘⁠?⁠”

“⁠그건 재판 끝나고 민사로 하셔야 해유⁠.⁠”

“⁠민사가 뭐여⁠, 떡이여⁠?⁠”

아주머니가 가방을 내려놓고 엄마의 등을 한 번 쓸었다⁠. 엄마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주머니가 계단을 내려가며 시장 사람들에게 하는 목소리가 위까지 올라왔다⁠. 「⁠미순이는 몰랐대⁠. 저 도원상사 놈이 다 한 거래⁠.⁠」 소문은 엄마의 편이었다⁠. 압수 목록은 아니었다⁠.

경춘이 노란 상자를 들고 나가며 수련에게 눈짓을 했다⁠. 밖으로 나오라는 뜻이었다⁠. 문을 나서기 전에 경춘이 한마디를 보탰다⁠. “⁠감정사님이 이사회에 들고 가셨다는 두 개도 내 주셔야 해유⁠. 오늘 저녁에 들르겄슈⁠.⁠”

*

상가 계단참에서 경춘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가⁠, 금연 표시를 보고 도로 집어넣었다⁠. 1층 순댓국집 솥에서 김이 올라왔다⁠.

“⁠감정사님⁠, 어머님 너무 미워하지 마셔유⁠. 우리 집사람도 내가 딸 결혼식 때 사 준 가방이 가짜였는디⁠, 가짜라고 말한 사람을 지금도 미워해유⁠. 나를 미워해야 맞는디⁠.⁠”

“⁠경위님이 사 주신 거예요⁠?⁠”

“⁠남대문에서 진짜라길래⁠. 그 뒤로 내가 가방 사건만 맡아유⁠. 원한이 있어서⁠.⁠”

경춘이 웃다가⁠, 서류철에서 종이 두 장을 꺼냈다⁠. 첫 장은 사진이었다⁠. 도원상사 창고 선반에 홀로그램 카드 묶음이 벽돌처럼 쌓여 있었다⁠. 카드마다 「⁠리셀원 정품 인증⁠」⁠, 감정사 번호 칸에 「⁠BR-01⁠」⁠.

“⁠오늘 아침 도원상사 창고에서 나온 거유⁠. 오백 장쯤⁠. 가방에 붙이기 전인 카드유⁠. 리셀원 감정실 서랍에서 나온 것도 같은 번호고⁠.⁠”

“⁠바른감정 카드요⁠.⁠”

“⁠예⁠. 근디 이게 왜 판매자 창고에 있냐⁠, 그게 문제쥬⁠.⁠”

경춘이 두 번째 종이를 넘겼다⁠. 리셀원과 바른감정의 외주 계약서 마지막 장이었다⁠. 대표 서명란에 엄도식의 서명이 있었다⁠. 서명 옆 여백에 볼펜으로 쓴 메모가 붙어 있었다⁠. 계약을 검토한 법무 담당자의 글씨였다⁠. 「⁠바른감정 방우경 소장 — 도원상사 도진구 대표의 처남⁠. 이해관계 있음⁠. 계약 진행 여부 대표 판단 요망⁠」⁠. 메모 아래에 다른 볼펜으로 한 줄이 더 있었다⁠.

「⁠승인⁠. 결과만 맞으면 됨⁠. — 엄⁠」

수련은 종이를 받아 들고 메모를 두 번 읽었다⁠. 결과만 맞으면 됨⁠. 3월 22일⁠, 우경은 루나 하나를 칠 분 만에 끝냈다⁠. 순서가 정확했고⁠, 손이 빨랐고⁠, 진심이었다⁠. 우경의 매형이 우경의 감정대에 가방을 올리고⁠, 카드를 창고로 가져갔다⁠. 도식은 처음부터 알고 서명했다⁠.

계단 위에서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엄마가 노란 상자를 든 경찰 뒤에 서 있었다⁠. 엄마는 계단참의 딸을 내려다보았고⁠, 딸이 손에 든 종이를 보았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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