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18자)

교차 감정

중고 명품 감정사 · 채이안

3월 31일 수요일 오전 여덟 시⁠, 감정실 바닥에서 왁스 냄새가 났다⁠. 어젯밤 청소 업체가 와서 타일을 두 번 닦았고⁠, 감정대 여섯 개의 스탠드 전구도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벽의 상표법 액자까지 누군가 마른 수건으로 문질러 놓았다⁠. 유리가 너무 맑아서 「⁠7년 이하의 징역⁠」이 전보다 크게 보였다⁠.

표소람은 출근하자마자 화장실에서 이십 분을 있다 나왔다⁠. 속눈썹이 길어져 있었다⁠.

“⁠실사단 오는 날이잖아요⁠. 카메라 앞에 서는 날은 풀메이크업이에요⁠. 이건 직업병이에요⁠.⁠”

“⁠카메라 없어⁠.⁠”

“⁠감정대마다 카메라 있잖아요⁠. 위에서 찍는 거⁠. 위에서 찍으면 속눈썹이 제일 잘 나와요⁠.⁠”

수련은 웃지 않고 장갑을 꼈다⁠. 어젯밤 열한 시에 도식에게 문자를 보냈다⁠. 「⁠거래 안 하겠습니다⁠. 2월 8일 건은 제 이름으로 보고해 주세요⁠.⁠」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읽음 표시만 떴다⁠.

엄마에게서는 새벽 여섯 시에 문자가 와 있었다⁠. 「⁠열 개 그대로 있다⁠. 안 팔았다⁠. 걱정 말고 일해⁠」⁠. 엄마는 걱정 말라는 말을 할 때마다 문장 끝에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

열 시⁠, 실사단이 들어왔다⁠. 지난번 심사역 둘에 회계법인 사람 셋이 붙어 다섯이었다⁠. 도식은 오늘 후드를 벗고 흰 셔츠에 재킷을 입었다⁠. 감정실 한가운데에서 손을 펴 보였다⁠.

“⁠이게 리셀원 QC 파이프라인입니다⁠. 고위험 판매자 물량은 외부 전문 감정소가 1차⁠, 내부 선임이 2차⁠. 의견이 다르면 3차까지 갑니다⁠. 트리플 체크죠⁠.⁠”

회계법인의 젊은 사람 하나가 재채기를 했다⁠. 가죽 냄새에 약하다며 마스크를 꺼내 썼다⁠. 소람이 재빨리 물티슈를 내밀었다⁠.

“⁠고객님⁠, 이 물티슈 무향이에요⁠. 지금 이 구성 그대로 드립니다⁠.⁠”

실사단 사이에서 웃음이 났다⁠. 도식도 웃었다⁠. 지난번 통과율을 물었던 심사역이 웃음 끝에 수련을 찾았다⁠.

“⁠지난번에 91이라고 하신 분이시죠⁠? 오늘 교차 감정을 직접 보여 주실 수 있나요⁠? 1차부터 3차까지⁠.⁠”

“⁠2차는 오늘 표소람 감정사가 맡을 예정이었는데요⁠.⁠”

도식이 끼어들었지만 심사역이 고개를 저었다⁠.

“⁠선임분 감정을 보고 싶어서요⁠. 저희가 보는 건 사람이니까요⁠.⁠”

도식은 잠깐 웃음을 멈췄다가 다시 웃었다⁠. 펼친 손바닥이 수련을 가리켰다⁠.

“⁠물론이죠⁠.⁠”

방우경이 5번 감정대에서 도원상사 상자 하나를 들고 왔다⁠. 갈색 루나 30이 나왔다⁠. 실사단이 감정대 둘레로 모였다⁠. 우경은 평소처럼 서두르지 않았다⁠. 냄새⁠, 박음질⁠, 각인⁠, 칩⁠, 실⁠, 무게⁠. 순서마다 실사단에게 짧게 말해 주었다⁠.

“⁠한 인치에 열한 땀⁠. 손바느질⁠, 오른쪽 아래로 비스듬⁠. 각인 깊이 고릅니다⁠. 칩 응답 정상⁠, 파리 제3공방 2025년⁠. 자외선 반응 없음⁠. 840그램⁠.⁠”

우경이 「⁠진품⁠」 도장을 찍었다⁠. 회계법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식이 손뼉을 한 번 쳤다⁠.

수련이 같은 가방을 받았다⁠. 장갑을 고쳐 끼고⁠, 맨 먼저 휴대전화를 안감에 댔다⁠. 「⁠LN30-2503-71946⁠」⁠. 화면을 실사단 쪽으로 돌렸다⁠.

“⁠이 번호⁠, 지난주에 가품으로 신고된 루나와 같은 번호입니다⁠. 칩은 가방 하나에 번호 하나예요⁠.⁠”

“⁠본사 칩 오류 사례가 해외에 보고된 적이 있습니다⁠.⁠”

우경이 곧바로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고르게 흘렀다⁠.

“⁠칩만으로 가품을 판정하면 진품을 떨어뜨릴 수 있어요⁠. 저희는 칩 하나로 판정하지 않습니다⁠.⁠”

“⁠저도 칩 하나로 하지 않아요⁠.⁠”

수련은 루나의 입구를 벌리고 바닥 모서리 접힌 자리에 손가락을 넣었다⁠. 땀 사이를 손톱으로 조금 벌리자 스탠드 불빛 아래 투명한 막이 비쳤다⁠.

“⁠여기 접착제가 있어요⁠. 아르벨은 루나 안감을 바느질로만 붙여요⁠. 공방 자랑이에요⁠. 냄새를 맡아 보시면 아세요⁠.⁠”

심사역 하나가 머뭇거리다 고개를 숙였다⁠. 코를 대고 한참 있다가 얼굴을 들었다⁠.

“⁠…⁠…가방 냄새가 나는데요⁠.⁠”

“⁠조금 더 아래요⁠.⁠”

“⁠조금 더 아래도 가방 냄새요⁠.⁠”

마스크를 쓴 회계법인 사람이 웃음을 참다 기침을 했다⁠. 우경이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

“⁠도원상사 창고가 새 건물입니다⁠. 벽지와 바닥재 접착제 냄새가 가죽에 배요⁠. 제가 창고에 직접 가서 맡았습니다⁠. 땀 사이의 막은 보관 중에 생기는 가죽 기름일 수도 있고요⁠.⁠”

“⁠기름은 손톱으로 밀면 밀려요⁠. 이건 굳어 있어요⁠.⁠”

“⁠그러면 성분 분석을 맡기시죠⁠. 분석 결과로 판정하면 됩니다⁠. 냄새가 아니라⁠.⁠”

우경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실사단이 우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수련에게도 보였다⁠. 수련은 「⁠가품⁠」 도장을 집어 감정표에 찍었다⁠. 1차 진품⁠, 2차 가품⁠. 화면에 노란 글씨가 떴다⁠. 「⁠판정 불일치 — 3차 판정자 지정⁠」⁠.

*

“⁠3차는 감정실 실장이 봅니다⁠. 실장 자리가 지금 비어 있어서 대행을 지정하겠습니다⁠.⁠”

도식이 실사단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소람을 불렀다⁠.

“⁠표소람 감정사⁠.⁠”

소람의 속눈썹이 두 번 깜박였다⁠. 소람이 감정대 앞에 앉았다⁠. 화면에는 버튼 셋이 있었다⁠. 「⁠진품⁠」 「⁠가품⁠」 「⁠감정 불가⁠」⁠. 소람이 루나를 들고 냄새를 맡았다⁠. 오래 맡았다⁠. 칩을 읽고⁠, 화면을 보고⁠, 우경을 보고⁠, 도식을 보고⁠, 마지막으로 수련을 보았다⁠. 수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소람의 장갑 낀 손가락이 버튼 위에서 멈춰 있는 것을 보았다⁠. 가운데 버튼에 가장 가까운 손가락이었다⁠.

소람이 오른쪽 끝을 눌렀다⁠. 「⁠감정 불가⁠」⁠.

“⁠판단할 근거가 모자랍니다⁠. 판매자에게 돌려보내겠습니다⁠.⁠”

목소리가 홈쇼핑 마감 멘트처럼 매끄러웠다⁠. 도식이 곧바로 실사단에게 웃어 보였다⁠.

“⁠보셨죠⁠? 의견이 다르면 팔지 않습니다⁠. 저희는 보수적으로 갑니다⁠. 고객 신뢰가 먼저니까요⁠.⁠”

심사역이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수련은 감정표의 「⁠가품⁠」 도장 자국 위에 「⁠감정 불가⁠」 처리 도장이 덧찍히는 것을 보았다⁠. 가방은 판매자에게 돌아갈 것이었다⁠. 도원상사로⁠. 경고 없이⁠. 다음 주에 다른 이름표를 달고 다시 들어올 수 있었다⁠.

실사단이 엘리베이터로 떠난 뒤⁠, 방우경이 수련의 감정대로 왔다⁠. 가운 주머니에서 작은 지퍼 봉투를 꺼내 감정대 위에 올렸다⁠. 봉투 안에 손톱만 한 가죽 조각이 들어 있었다⁠.

“⁠아까 루나 바닥 모서리에서 떨어진 겁니다⁠. 돌려보내기 전에 주웠어요⁠.⁠”

“⁠왜 저한테 주세요⁠?⁠”

“⁠성분 분석 맡겨 보시라고요⁠. 진심입니다⁠. 제가 틀렸으면 저도 알아야 하니까요⁠.⁠”

수련은 봉투를 들어 불빛에 비춰 보았다⁠. 가죽 뒷면에 투명한 막이 아주 얇게 묻어 있었다⁠.

“⁠소장님은 진품이라고 찍으셨잖아요⁠.⁠”

“⁠제가 본 것으로는 진품입니다⁠. 그래서 찍었고요⁠. 지 선임님이 본 것이 따로 있다면⁠, 그걸 숫자로 만들어 오세요⁠. 그러면 제가 도장을 고치겠습니다⁠.⁠”

우경은 고개를 한 번 숙이고 5번 감정대로 돌아갔다⁠. 남은 상자를 열었고⁠, 다시 냄새부터 맡았다⁠. 수련은 지퍼 봉투를 조끼 안주머니에 넣었다⁠. 손이 아는 사람이 손이 아는 사람에게 건넨 물건이었다⁠.

*

점심시간⁠, 비상계단에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수련아⁠, 화내지 말고 들어⁠.⁠”

수련은 이미 화가 나 있었다⁠. 엄마가 화내지 말라고 먼저 말하는 날에는 늘 화낼 일이 있었다⁠.

“⁠미용실 원장이 와서 루나 갈색 하나 달라길래⁠.⁠”

“⁠팔았어⁠?⁠”

“⁠이자가 25일이었잖여⁠. 이번 달 이자를 못 냈어⁠. 진구 사장이 오늘까지 안 내믄 가게 보증금에 가압류를 한다고 하드라⁠. 가압류가 뭔지 알제⁠? 보증금을 못 빼는 거여⁠. 가게를 접어도 돈을 못 받는 거여⁠.⁠”

“⁠엄마⁠, 그거 가짜야⁠.⁠”

“⁠원장은 진짜인 줄 알어⁠. 원장이 행복하더라⁠. 거울 보고 한 바퀴 돌았어⁠.⁠”

“⁠엄마⁠.⁠”

“⁠알어⁠, 나도 알어⁠. 근디 수련아⁠, 나는 오늘 이자를 내야 혀⁠. 니가 가짜라고 해도 이자는 진짜여⁠.⁠”

수련은 계단 난간을 쥐었다⁠. 쇠가 차가웠다⁠. 할 말이 많았는데 입에서는 하나만 나왔다⁠.

“⁠얼마 받았어⁠?⁠”

“⁠팔백⁠.⁠”

“⁠천이백짜리를⁠?⁠”

“⁠원장이 단골이잖여⁠. 근디 원장이 그러드라⁠. 압구정 리셀원 카드 붙은 거면 더 좋겄다고⁠. 니 회사 카드가 동네에서 그렇게 유명하대⁠. 그 카드 붙은 가방은 진짜 중의 진짜라고⁠.⁠”

수련은 눈을 감았다⁠. 홀로그램이 반짝이는 카드 묶음이 5번 감정대 서랍 안에 있었다⁠. 「⁠BR-01⁠」이 미리 찍힌 카드였다⁠.

엄마가 웃었고⁠, 수련은 웃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엄마 목소리 뒤로 계산대 서랍 여닫는 소리가 들렸던 것을 떠올렸다⁠. 엄마는 돈을 받으면 서랍을 두 번 열어 다시 확인했다⁠.

*

여섯 시⁠, 실사단이 돌아간 감정실에서 소람이 속눈썹을 떼고 있었다⁠. 손거울을 보며 한쪽씩⁠, 아주 천천히 떼었다⁠.

“⁠선배⁠, 화났죠⁠?⁠”

“⁠아니⁠.⁠”

“⁠화났네요⁠. 선배는 화나면 ‘⁠아니⁠’를 짧게 해요⁠.⁠”

소람이 떼어 낸 속눈썹을 휴지 위에 나란히 올려놓았다⁠.

“⁠어제 대표님이 불렀어요⁠. 3차 맡게 될 거라고⁠. 이번 달 실사 끝나면 정규직 전환 심사가 있대요⁠. 저 계약이 5월에 끝나요⁠. 선배는 정규직이잖아요⁠.⁠”

“⁠그래서 감정 불가를 눌렀어⁠?⁠”

“⁠가품을 누르면 대표님이 실사단 앞에서 틀린 사람이 돼요⁠. 진품을 누르면 선배가 틀린 사람이 되고요⁠. 저는 아무도 틀리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가방은 틀렸어⁠.⁠”

소람이 손거울을 내려놓았다⁠. 한쪽 눈에만 속눈썹이 남아 있었다⁠.

“⁠선배는 가방만 보잖아요⁠. 사람은 안 보고⁠. 어머님 오셨을 때도 그랬잖아요⁠.⁠”

수련은 대답하지 않았다⁠. 소람도 더 말하지 않았다⁠. 남은 속눈썹 한쪽을 떼어 휴지 위에 마저 올려놓고⁠, 휴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

저녁 일곱 시⁠, 수련은 회사 앞 편의점에서 퀵 서비스를 불렀다⁠. 우경이 준 지퍼 봉투를 서류 봉투에 한 번 더 넣고⁠, 피렌체 시절 선배가 일하는 구로의 피혁 시험 연구소 주소를 썼다⁠. 「⁠접착제 성분 분석 요청 — 급함⁠」⁠. 퀵 기사가 봉투를 오토바이 짐칸에 넣으며 물었다⁠. 가죽 한 조각에 무슨 급한 일이 있느냐고⁠. 수련은 이 조각 하나에 가방 열네 개가 매달려 있다고 대답했고⁠, 기사는 알아듣지 못한 얼굴로 헬멧을 썼다⁠.

*

밤 열 시⁠, 수련은 집 식탁에서 메일을 썼다⁠. 받는 사람은 리셀원 이사회의 감사위원을 맡은 사외이사였다⁠. 회사 누리집 이사회 명단에서 주소를 찾았다⁠. 제목은 짧게 했다⁠. 「⁠도원상사 위탁 아르벨 가방 칩 번호 중복과 출처 서류 건⁠」⁠. 본문에는 사진 여덟 장⁠, 2월 8일 감정 영상⁠, 오늘 교차 감정 화면을 붙였다⁠. 마지막 줄에 출처 가게의 이름을 쓰고⁠, 한참 있다가 한 줄을 더 보탰다⁠. 「⁠출처 가게 대표는 제 어머니입니다⁠.⁠」

보내기를 누르고 사십 분 뒤 답장이 왔다⁠.

「⁠자료 잘 받았습니다⁠. 4월 13일 화요일 오후 세 시 정기 이사회에 출석해 직접 설명해 주십시오⁠. 대표이사에게도 알리겠습니다⁠.⁠」

오 분 뒤 전화가 울렸다⁠. 도식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차 안 라디오 소리가 났다⁠.

“⁠감사위원한테 보냈다면서요⁠.⁠”

“⁠네⁠.⁠”

“⁠용기 있네요⁠. 그 용기⁠, 이사회에서도 써 주세요⁠. 그날 어머님 이름 나옵니다⁠. 제가 꺼내는 게 아니에요⁠. 수련 씨가 이미 꺼냈어요⁠. 메일 마지막 줄에⁠.⁠”

전화가 끊겼다⁠. 수련은 식탁 위에 휴대전화를 엎어 두고⁠, 엄마가 싸 준 깻잎 통 뚜껑을 열었다⁠. 깻잎은 여전히 짰다⁠. 수련은 한 장을 다 먹고 나서야 물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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