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18자)

모란의 열두 평

중고 명품 감정사 · 채이안

3월 16일 화요일 오후 여섯 시⁠, 감정실 냉장고 문을 연 표소람이 비명을 질렀다⁠. 어제 복도에 내놓았던 갓김치 통이 반쯤 비어 있었다⁠.

“⁠누가 먹었어요⁠? 제 몫이었는데⁠.⁠”

“⁠네 몫이라고 한 적 없어⁠.⁠”

“⁠어머님이 회사 사람들 나눠 먹으라고 하셨잖아요⁠. 회사 사람 일곱 명이면 칠 분의 일이 제 거예요⁠.⁠”

수련은 대답 없이 화면을 보고 있었다⁠. 리셀원 내부 신고 창이었다⁠. 「⁠도원상사 위탁 아르벨 루나 30 — 출처 서류 의심⁠, 칩 번호 중복 가능성⁠. 해당 판매자 물량 전수 재감정 요청⁠」⁠. 보내기를 누르자 품질관리팀에서 자동 답장이 왔다⁠. 「⁠투자 실사 준비로 3월 31일 이후 차례로 답변드립니다⁠. 리셀원은 언제나 고객의 믿음을 감정합니다⁠.⁠」

“⁠선배⁠, 그 문구 대표님이 직접 쓴 거예요⁠. 회의 때 세 시간 걸렸대요⁠.⁠”

“⁠세 시간 동안 감정을 했으면 가방 서른 개는 봤겠다⁠.⁠”

소람이 김치 통 뚜껑을 닫으며 웃다가⁠, 수련이 코트를 입는 것을 보고 웃음을 거두었다⁠. 퇴근 시간에 맞춰 일어나는 선배가 아니었다⁠.

“⁠어디 가요⁠?⁠”

“⁠모란⁠.⁠”

“⁠어머님한테요⁠? 그럼 김치 한 통만 더 부탁해 주세요⁠. 이번엔 이름 써서⁠.⁠”

수련은 고개만 끄덕이고 감정실을 나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휴대전화로 모란역까지 가는 길을 찾았다⁠. 지하철로 오십 분⁠. 다섯 해 동안 명절 말고는 가 보지 않은 길이었다⁠.

*

밤 아홉 시 십 분⁠, 모란역 5번 출구 앞 상가 계단은 기름 냄새와 국밥 냄새가 반반이었다⁠. 1층 순댓국집이 문을 닫으며 솥을 씻는 중이었다⁠. 수련은 어제 감정실에서 출력한 매입 확인서를 가방 속에서 한 번 더 만지고 2층으로 올라갔다⁠.

미순빈티지는 열두 평이었다⁠. 2007년 봄에 엄마가 이 자리에 간판을 달았고⁠, 간판 글씨는 스무 해 동안 해에 바래 분홍이 살구색이 됐다⁠. 유리 진열장 셋에 가방과 지갑이 줄지어 있었고⁠, 계산대 위에는 늘 그렇듯 반찬통이 올라와 있었다⁠. 오늘은 깻잎이었다⁠.

엄마는 단골 손님을 배웅하고 있었다⁠. 시장 떡집 아주머니가 갈색 루나를 품에 안고 계단 쪽으로 나오다가 수련을 보았다⁠.

“⁠아이고⁠, 이 집 딸내미⁠? 압구정 감정사⁠?⁠”

“⁠예⁠, 안녕하세요⁠.⁠”

“⁠엄마가 맨날 자랑이여⁠. 우리 딸이 가방 냄새만 맡아도 안다고⁠. 개도 아니고 무슨 코가 그렇대⁠?⁠”

아주머니가 웃으며 내려갔다⁠. 엄마는 문 앞에 남아 손을 앞치마에 닦았다⁠.

“⁠밥은⁠?⁠”

“⁠먹었어⁠.⁠”

“⁠거짓말⁠. 니 거짓말할 때 안경 올리잖여⁠.⁠”

수련은 안경을 올리려던 손을 내렸다⁠. 엄마는 이미 깻잎 통 뚜껑을 열고 있었다⁠.

*

“⁠루나 어디 있어⁠?⁠”

엄마의 손이 멈췄다⁠. 깻잎 한 장이 젓가락 끝에서 흔들렸다⁠.

“⁠어제 그거 땜시 왔냐⁠.⁠”

“⁠어디 있어⁠.⁠”

엄마가 턱으로 안쪽 진열장을 가리켰다⁠. 수련은 장갑을 꺼내 꼈다⁠. 진열장 맨 아래 칸에 갈색 루나 다섯 개와 검은 루나 셋이 가지런히 앉아 있었다⁠. 먼지 하나 없이 닦여 있었다⁠. 엄마는 좋은 물건일수록 아침마다 마른 수건으로 한 번씩 쓸었다⁠.

수련은 갈색 하나를 꺼내 입구를 벌리고 코를 댔다⁠. 송아지 냄새 아래로 어제 암실에서 맡은 매니큐어 냄새가 손톱만큼 올라왔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같았다⁠. 네 번째 가방을 내려놓을 때 엄마가 계산대 너머에서 목소리를 낮췄다⁠.

“⁠가짜여⁠?⁠”

“⁠엄마는 어디서 받았어⁠.⁠”

“⁠진구 사장⁠. 도원상사⁠.⁠”

엄마가 의자에 앉았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있다가 그냥 무릎에 내려놓았다⁠.

“⁠작년 가을부터 갖고 왔어⁠. 내 빚 있는 거 알제⁠. 그 사람한테 빌린 거⁠. 하나 팔아 주믄 수수료 십오 퍼센트를 빚에서 까 준다 하드라⁠. 이자도 다달이 나가는디⁠, 그거라도 줄믄 숨 좀 쉬제⁠.⁠”

“⁠매입 확인서는⁠.⁠”

“⁠그것도 그 사람이 달래서⁠. 세금 처리할라믄 어디서 샀는지 서류가 있어야 한다고⁠. 내가 산 것도 아닌디 내가 판 것처럼 써 주는 거라고⁠. 도장 찍는 게 뭐 대수여⁠.⁠”

“⁠대수야⁠, 엄마⁠.⁠”

수련은 루나 두 개를 계산대 위에 나란히 올렸다⁠. 갈색 하나⁠, 검정 하나⁠. 휴대전화를 갈색 가방의 안감에 대자 화면이 밝아졌다⁠. 「⁠ARVEL — 루나 30 / 파리 제3공방 / 2025 / 번호 LN30-2503-71946⁠」⁠. 검정 가방에 대자 같은 화면이 다시 떴다⁠. 「⁠LN30-2503-71946⁠」⁠.

“⁠봐⁠. 번호가 같아⁠.⁠”

엄마가 안경을 이마에서 내려 쓰고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쌍둥이 아니여⁠?⁠”

“⁠엄마⁠, 가방은 쌍둥이 안 낳아⁠.⁠”

“⁠색깔도 다른디 쌍둥이믄 이란성이제⁠.⁠”

수련은 웃지 않으려다 코로 바람이 새는 소리를 냈다⁠. 엄마도 따라 웃으려다 말았다⁠.

“⁠아르벨은 칩 하나에 가방 하나야⁠. 공방에서 가방을 다 만들면 안감에 칩을 넣고 번호를 본사에 올려⁠. 같은 번호가 둘이면 적어도 하나는 가짜고⁠, 여기 여덟 개는 냄새가 다 같아⁠.⁠”

“⁠냄새가 뭐가 같은디⁠.⁠”

“⁠풀 냄새⁠. 진짜 루나는 풀을 안 써⁠.⁠”

엄마가 갈색 가방 하나를 들어 코에 댔다⁠. 오래 맡았다⁠.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그냥 가방 냄새여⁠.⁠”

“⁠엄마는 이십 년 동안 가방 냄새를 맡았잖아⁠. 그래서 다 가방 냄새야⁠.⁠”

*

엄마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수련은 진열장을 열어 루나 여덟 개를 차례로 꺼내 바닥 상자에 넣기 시작했다⁠.

“⁠뭐 하냐⁠.⁠”

“⁠내려⁠. 오늘부터 안 팔아⁠.⁠”

“⁠니가 뭔데 내 가게 물건을 내려⁠.⁠”

“⁠감정사⁠.⁠”

“⁠여기 압구정 아니여⁠. 모란이여⁠. 내 가게여⁠.⁠”

엄마가 상자 앞으로 와서 손을 뻗었다⁠. 수련의 장갑 낀 손과 엄마의 맨손이 같은 가방 손잡이를 잡았다⁠. 엄마 손등에는 오래된 화상 자국이 있었다⁠. 순댓국집 솥에서 튄 기름이었다⁠.

“⁠이거 다 위탁이여⁠. 내 것도 아니여⁠. 니가 내리믄 진구 사장한테 내가 뭐라고 하냐⁠.⁠”

“⁠가짜라고 해⁠.⁠”

“⁠그 사람이 그 말 듣고 빚을 없애 준대⁠?⁠”

계단에서 구두 소리가 올라왔다⁠. 또각또각⁠, 서두르지 않는 걸음이었다⁠.

“⁠사장님⁠, 늦었습니다⁠.⁠”

짙은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머리를 뒤로 단정하게 넘겼고⁠, 한 손에 얇은 서류철을 들고 있었다⁠. 구두 앞코가 진열장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도진구는 바닥의 상자와 수련의 장갑을 차례로 보고⁠, 웃음을 바꾸지 않았다⁠.

“⁠따님이시구나⁠. 사장님이 늘 자랑하시는⁠.⁠”

“⁠도원상사 대표님이세요⁠?⁠”

“⁠예⁠. 도진구입니다⁠. 이번 주 확인서 받으러 왔습니다⁠.⁠”

진구가 서류철을 열어 계산대 위에 종이 한 장을 내려놓았다⁠. 「⁠매입 확인서⁠」 세 장이 겹쳐 있었고⁠, 대표 칸만 비어 있었다⁠. 엄마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동그란 도장을 꺼냈다⁠. 수련이 먼저 손바닥으로 종이를 덮었다⁠.

“⁠이거 가품이에요⁠.⁠”

“⁠감정사님이 그렇게 보신다면 그렇게 보시는 거죠⁠.⁠”

진구가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돌려 보였다⁠. 갈색 루나 사진 옆에 홀로그램 카드 하나가 찍혀 있었다⁠. 「⁠리셀원 정품 인증⁠」⁠.

“⁠지난달에 리셀원에서 진품 카드 받은 겁니다⁠. 따님 회사 감정사님이 직접 보셨어요⁠. 같은 데서 온 같은 물건인데⁠, 어제는 진품이고 오늘은 가품입니까⁠?⁠”

수련은 카드의 번호를 보려고 몸을 숙였다⁠. 진구가 화면을 거두어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칩 번호가 겹쳐요⁠. 두 가방에⁠.⁠”

“⁠본사 시스템 오류가 가끔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가방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서요⁠.⁠”

“⁠냄새도 달라요⁠.⁠”

“⁠냄새는 법정에서 안 받아 주더라고요⁠.⁠”

진구가 서류에서 손을 떼고 엄마를 보았다⁠. 목소리는 처음과 똑같이 부드러웠다⁠.

“⁠사장님⁠, 따님 말씀대로 가품이라고 치죠⁠. 그러면 지금까지 사장님 가게에서 나간 물건은 뭐가 됩니까⁠? 가품을 판 가게가 됩니다⁠. 상표법 아시죠⁠? 7년입니다⁠. 저는 위탁만 했고 판 건 가게니까요⁠.⁠”

엄마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수련은 종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엄마를 겁주는 거예요⁠?⁠”

“⁠법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는 법 밖으로 나간 적이 없어요⁠. 이자도 법정 최고 연 20퍼센트에서 한 푼도 더 안 받습니다⁠. 사장님⁠, 그렇죠⁠?⁠”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는 고개가 자꾸 아래로 내려갔다⁠.

“⁠확인서는 오늘 안 받겠습니다⁠.⁠”

진구가 서류철을 닫았다⁠.

“⁠따님이 계시니까요⁠. 다음 주에 다시 오겠습니다⁠. 이자는 이번 달도 25일입니다⁠.⁠”

진구는 상자 안의 루나를 한 번 내려다보고⁠, 진열장 위 반찬통에 눈길을 주었다⁠.

“⁠깻잎 맛있어 보이네요⁠.⁠”

구두 소리가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또각또각⁠. 1층 순댓국집 셔터 내리는 소리에 섞여 들리지 않게 될 때까지 엄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

수련은 상자를 다시 열고 루나 여덟 개를 하나씩 계산대에 올렸다⁠. 가방마다 안감에 휴대전화를 대고⁠, 뜨는 화면을 가방과 함께 사진으로 찍었다⁠. 여덟 장 가운데 세 장이 「⁠LN30-2503-71946⁠」이었고⁠, 나머지 다섯 장은 서로 다른 번호였다⁠. 다른 번호라고 진짜가 되지는 않았다⁠. 어딘가에 같은 번호를 단 쌍둥이가 더 있을 뿐이었다⁠. 사진을 다 찍고 나서야 수련은 상자 뚜껑을 덮고 테이프를 둘렀다⁠. 테이프 끊는 소리가 가게 안에서 크게 울렸다⁠. 엄마는 계산대 의자에 앉아 깻잎 통 뚜껑만 만지작거렸다⁠.

“⁠빚이 얼마야⁠.⁠”

“⁠칠천⁠.⁠”

“⁠가게 보증금 때문이라며⁠. 그게 칠천이나 돼⁠?⁠”

“⁠이것저것⁠.⁠”

엄마의 대답이 짧았다⁠. 엄마는 길게 말할 때 거짓말을 못 하고⁠, 짧게 말할 때 다 숨겼다⁠. 수련은 열여섯 살 때 이 계산대 앞에서 손님에게 가방 하나를 진품이라고 말했던 날을 떠올렸다⁠. 손님이 돌아간 밤에 엄마는 지금처럼 반찬통 뚜껑만 만지작거렸다⁠. 손님이 다시 왔을 때 엄마는 받은 돈의 두 배를 내주었고⁠, 딸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엄마⁠, 이거 리셀원에도 들어오고 있어⁠. 도원상사 이름으로⁠. 엄마 도장 찍힌 서류를 붙여서⁠.⁠”

“⁠그게 무슨 소리여⁠.⁠”

“⁠엄마 가게가 출처야⁠. 모란에서 이십 년 장사한 가게에서 샀다고 하면⁠, 서류가 깨끗해 보여⁠. 그 사람은 엄마 가게 간판을 빌려 쓰는 거야⁠.⁠”

엄마가 진열장 유리에 비친 간판을 보았다⁠. 거꾸로 비친 「⁠미순빈티지⁠」 다섯 글자가 살구색으로 흐렸다⁠.

“⁠그럼 나가 가짜 가방을 세탁해 준 거여⁠?⁠”

수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대답이었다⁠. 엄마도 알았다⁠.

“⁠그래도 나 몰랐어⁠. 진짜로⁠.⁠”

“⁠알아⁠.⁠”

“⁠진짜로 몰랐어⁠, 수련아⁠.⁠”

“⁠안다고⁠.⁠”

엄마가 깻잎 통을 수련 앞으로 밀었다⁠. 수련은 장갑을 벗고 깻잎 한 장을 손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짰다⁠. 엄마의 깻잎은 늘 짰고⁠, 수련은 늘 짜다고 말하지 않았다⁠.

“⁠몇 개 팔았어⁠.⁠”

엄마가 손가락을 접기 시작했다⁠. 다섯을 접고⁠, 다시 폈다⁠. 또 접었다⁠. 수련은 엄마의 손이 몇 번이나 쥐었다 펴지는지 보다가 그만 보았다⁠.

“⁠스물세 개⁠.⁠”

엄마가 접은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떡집 언니 것까지 하믄 스물네 개⁠.⁠”

계단 아래로⁠, 아까 갈색 루나를 품에 안고 내려간 떡집 아주머니의 웃음소리가 아직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수련은 테이프를 감은 상자 위에 두 손을 얹고⁠, 엄마의 접힌 손가락을 오래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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