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579자)

인치당 열한 땀

중고 명품 감정사 · 채이안

2027년 3월 15일 월요일 오전 여덟 시 오십 분⁠, 압구정 리셀원 4층 감정실에는 주말 동안 판매자들이 보낸 가방 이백열한 개가 상자째 쌓여 있었다⁠. 지수련은 흰 면장갑을 끼고 손가락을 한 번씩 쥐었다 폈다⁠. 장갑 끝이 손톱에 닿는 느낌이 들어야 일이 시작됐다⁠.

첫 상자에서 이탈리아 가방 상표 오델라의 검은 숄더백이 나왔다⁠. 판매자가 적어 낸 값은 삼백사십만 원이었다⁠. 수련은 가방을 감정대 가운데 놓고 고개를 숙였다⁠. 눈보다 코가 먼저였다⁠. 진짜 오델라는 안감까지 식물성 무두질 가죽을 써서 오래된 나무 서랍 냄새가 나는데⁠, 이 가방에서는 새 운동화 가게 냄새가 올라왔다⁠.

“⁠아가씨⁠, 공장이 어디예요⁠? 서류에는 밀라노라고 쓰셨던데⁠.⁠”

옆 감정대의 표소람이 고개를 들었다⁠.

“⁠선배⁠, 또 가방이랑 대화해요⁠?⁠”

“⁠대답을 잘해⁠. 냄새로⁠.⁠”

소람이 제 앞의 지갑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카메라를 보듯 웃었다⁠.

“⁠자⁠, 고객님들⁠. 이 박음질 보세요⁠. 고르죠⁠? 이 구성⁠,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홈쇼핑에서 냄비와 패딩을 육 년 팔다 온 후배였다⁠. 작년 봄 계약직으로 들어와 손은 아직 느렸지만 입은 감정실에서 가장 빨랐다⁠.

수련은 확대경을 들어 오델라의 옆선을 따라갔다⁠. 자를 대고 한 인치 안의 땀을 셌다⁠. 아홉 땀⁠. 진품은 열 땀이었다⁠. 땀 사이 구멍도 고르지 않아 재봉틀이 한 번 숨을 쉰 자리가 보였다⁠. 안쪽 각인은 글자 깊이가 들쭉날쭉했고⁠, 자외선 램프를 대자 실이 형광펜처럼 파랗게 빛났다⁠. 진짜 왁스 실은 램프 아래서 그냥 어두웠다⁠. 수련은 「⁠가품⁠」 도장을 집어 감정표에 눌렀다⁠. 손목에 익은 무게였다⁠.

감정실 벽 모니터에는 경제 뉴스가 소리 없이 흘렀다⁠. 「⁠프랑스 아르벨 본사⁠, 아시아 위조품 소송 확대 — “⁠중고 거래 플랫폼에도 책임 묻겠다⁠”⁠」⁠. 모니터 아래에는 회사가 걸어 둔 액자가 있었다⁠. 「⁠위조 상품 판매는 상표권 침해입니다⁠.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 소람은 액자를 볼 때마다 7년이면 적금 만기가 두 번이라고 했다⁠.

*

열 시 반⁠, 유리문이 열리고 대표 엄도식이 들어왔다⁠. 회사 이름이 박힌 회색 후드 위에 남색 재킷을 걸쳤고⁠, 뒤에 남색 정장 두 사람이 따라왔다⁠. 투자사 심사역들이었다⁠.

“⁠여기가 리셀원의 심장입니다⁠. 하루 이백 개⁠, 전부 사람 손으로 봅니다⁠. 기계는 보조고요⁠.⁠”

심사역 하나가 감정대 위의 도장 둘을 내려다보았다⁠. 「⁠진품⁠」과 「⁠가품⁠」⁠, 빨간 나무 손잡이가 달린 도장이었다⁠.

“⁠통과율이 몇이죠⁠?⁠”

“⁠지난달 91퍼센트요⁠.⁠”

수련이 먼저 대답했다⁠. 도식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경쟁사는 98이라던데요⁠.⁠”

“⁠들어오는 가방이 다르겠죠⁠.⁠”

심사역이 웃었고⁠, 도식도 따라 웃었다⁠. 웃음 끝이 수련에게 와서 멈췄다⁠.

손님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뒤 도식이 혼자 돌아왔다⁠. 수련의 감정대 모서리에 손을 짚었다⁠. 손가락 끝이 「⁠가품⁠」 도장 바로 옆이었다⁠.

“⁠수련 씨⁠, 통과율 97로 가죠⁠. 실사가 3월 31일이에요⁠.⁠”

“⁠통과율은 들어오는 가방이 정해요⁠. 제가 정하는 게 아니고요⁠.⁠”

“⁠들어오는 가방은 제가 정하고요⁠.⁠”

도식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판매자 상담 창이 열려 있었다⁠. 「⁠리셀원 감정이 본사 매장보다 까다롭습니다⁠. 백화점에서 산 영수증까지 있는데 감정 불가라뇨⁠?⁠」 비슷한 글이 아래로 줄줄이 이어졌다⁠.

“⁠이런 민원이 한 달에 마흔 건이에요⁠. 진품 떨어뜨리고 판매자가 나가면⁠, 그 판매자는 옆 플랫폼에 가요⁠. 이건 그로스 이슈예요⁠. 감정 이슈가 아니라⁠.⁠”

“⁠영수증은 가방이 아니에요⁠. 가방이 진품이면 통과해요⁠.⁠”

“⁠애매하면요⁠?⁠”

“⁠애매하면 감정 불가죠⁠.⁠”

“⁠애매하면 진품으로 가자는 거예요⁠. 우리가 두 배 보상하잖아요⁠. 리스크는 회사가 지는데 왜 수련 씨가 겁을 내요⁠?⁠”

수련은 대답 대신 장갑 낀 손으로 「⁠가품⁠」 도장을 제 앞으로 당겨 놓았다⁠. 도식이 숨을 한 번 내쉬었다⁠.

“⁠하나 더요⁠. 도원상사 물량⁠, 다음 주 월요일부터 외주로 갑니다⁠. 바른감정이라고⁠, 1차는 거기서 보고 2차를 여기서 봐요⁠.⁠”

“⁠도원상사요⁠?⁠”

“⁠거래액의 18퍼센트예요⁠. 그런데 수련 씨 반려율이 제일 높아요⁠. 판매자가 감정사를 바꿔 달래요⁠.⁠”

“⁠외주가 카드도 찍어요⁠?⁠”

“⁠찍죠⁠. 교차 감정이니까⁠. 바른감정 번호로요⁠. 수련 씨 번호 아니고⁠.⁠”

“⁠제 감정대에 올라온 가방은 제가 봐요⁠.⁠”

“⁠올라오게 안 할게요⁠.⁠”

도식이 감정대에서 손을 뗐다⁠.

“⁠숫자로 얘기합시다⁠, 수련 씨⁠. 감으로 말고⁠.⁠”

유리문이 닫히자 소람이 의자를 끌고 다가왔다⁠.

“⁠선배⁠, 방금 대표님 눈빛⁠, 홈쇼핑 피디가 매진 못 시켰을 때 눈빛이에요⁠.⁠”

“⁠그럼 어떻게 돼⁠?⁠”

“⁠다음 주부터 시간대가 새벽 세 시로 밀려요⁠.⁠”

*

점심은 감정대 옆 작은 탁자에서 삼각김밥으로 때웠다⁠. 김을 뜯는 사이 상담 전화가 넘어왔다⁠. 아침에 가품 도장을 받은 오델라의 판매자였다⁠.

“⁠제가 그 가방을 밀라노 본점에서 샀다고요⁠. 사진도 있어요⁠. 제 얼굴이랑 가방이랑 같이 나온 사진⁠.⁠”

“⁠고객님⁠, 사진 속 가방은 진품일 수 있어요⁠. 저한테 온 가방이 다른 가방이에요⁠.⁠”

“⁠가방이 어떻게 바뀌어요⁠?⁠”

“⁠중고로 한 번 파셨다가 다시 사셨다고 상담 기록에 있던데요⁠.⁠”

전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

“⁠…⁠…같은 걸로 다시 산 건데⁠.⁠”

“⁠같은 모델로요⁠. 같은 가방은 아니고요⁠.⁠”

판매자는 리셀원을 특허청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수련은 위조품 신고는 특허청에 하시면 된다고⁠, 저희도 가품이 나오면 그렇게 한다고 대답했다⁠. 전화가 뚝 끊겼다⁠. 소람이 삼각김밥을 입에 문 채 박수를 쳤다⁠.

“⁠선배⁠, 지금 고객님을 고객님 손으로 신고하게 만들었어요⁠.⁠”

“⁠신고하면 좋지⁠. 특허청 수사관들은 가방 잘 봐⁠.⁠”

감정실 단톡방에 알림이 떴다⁠. 「⁠감정실 (⁠7⁠)⁠」⁠. 소람이 올린 글이었다⁠. 「⁠오늘의 명언 — 같은 모델로요⁠. 같은 가방은 아니고요⁠. (⁠지수련⁠, 2027⁠)⁠」⁠. 아래에 엄지 그림이 다섯 개 달렸다⁠. 수련은 휴대전화를 엎어 놓고 남은 김밥을 한입에 넣었다⁠. 오후 상자가 아직 백 개 넘게 남아 있었다⁠.

*

오후 세 시 이십 분⁠, 도원상사 상자를 열었다⁠. 아르벨 루나 30이 나왔다⁠. 갈색 송아지 가죽을 둥글게 접어 올린 토트였고⁠, 손잡이 둘이 금색 고리에 매달려 있었다⁠. 판매가는 천이백만 원⁠. 상자를 여는 순간 수련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폈다⁠. 좋은 가방은 상자 안에서도 자세가 반듯했다⁠.

확대경을 가까이 댔다⁠. 옆선의 땀은 손바느질이었고⁠, 실은 오른쪽 아래로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한 인치에 열한 땀⁠. 바닥의 금속 징은 넷이었고⁠, 징마다 「⁠AR⁠」 두 글자가 찍혀 있었다⁠. 안쪽 가죽 조각에 찍힌 열 각인 「⁠ARVEL · PARIS⁠」는 글자 깊이가 고르고⁠, R의 다리 끝이 진품처럼 살짝 굽어 있었다⁠. 휴대전화를 안감에 대자 칩이 응답했다⁠. 「⁠ARVEL — 루나 30 / 파리 제3공방 / 2025⁠」⁠. 자외선 램프 아래서 실은 어두웠다⁠. 저울에 올리자 840그램이었다⁠.

전부 맞았다⁠. 수련은 확대경을 쥔 채 입을 조금 벌렸다⁠. 피렌체에서 가죽 학교를 다닐 때도⁠, 리셀원에서 여섯 해 동안 가방 수만 개를 열 때도⁠, 이렇게 다 맞는 가방에서 손이 멈춘 적은 없었다⁠.

검게 꺼진 옆 모니터에 제 얼굴이 비쳤다⁠. 낮게 묶은 검은 머리⁠, 가는 금테 안경⁠, 흰 셔츠에 회색 조끼⁠, 목에 걸린 사원증⁠. 흰 면장갑을 낀 왼손은 갈색 가방을 받치고⁠, 오른손은 확대경을 눈앞에 들고 있었다⁠. 안경 너머 눈이 동그랬다⁠. 진품을 보는 얼굴이 아니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유리문 밖에 엄마가 있었다⁠.

짧은 뽀글 파마에 꽃무늬 블라우스⁠, 회색 바지⁠. 곽미순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유리 너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목에는 백화점 쇼핑백 하나와 보자기로 싼 반찬통이 매달려 있었다⁠. 소람이 먼저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고⁠, 엄마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수련은 루나를 감정대에 내려놓고 장갑을 벗지도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

“⁠엄마⁠,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아이고 우리 감정사님⁠. 1층 아가씨가 딸 이름 대니까 올려 주드라⁠. 바쁘제잉⁠?⁠”

“⁠바빠⁠. 오늘 이백 개야⁠.⁠”

엄마가 보자기를 먼저 내밀었다⁠.

“⁠갓김치⁠. 너 회사 사람들 노나 묵어⁠.⁠”

“⁠감정실에 김치를 어떻게 들여가⁠.⁠”

“⁠그럼 이거 하나만 봐 주믄 안 되까⁠?⁠”

엄마가 쇼핑백을 조금 들어 보였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손잡이를 쥔 엄마의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엄마⁠, 3층에 일반 접수 있어⁠. 거기 넣으면 순서대로 봐⁠. 이 주 걸려⁠.⁠”

“⁠이 주⁠.⁠”

엄마가 낱말을 입안에서 한 번 굴렸다⁠.

“⁠그래⁠, 이 주⁠. 니 일하는 데 엄마가 끼어들면 안 되제⁠.⁠”

엄마는 쇼핑백을 품에 안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문이 닫히기 전에 한 번 더 손을 흔들었다⁠. 수련은 갓김치 통을 든 채 고개만 끄덕였다⁠.

*

통을 감정실 문 옆 선반에 올려놓자 일 분 만에 냄새가 퍼졌다⁠. 소람이 코를 막고 감정대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자⁠, 고객님들⁠. 지금부터 들어오는 가방은 전부 감정 불가입니다⁠. 갓 냄새 때문에요⁠.⁠”

“⁠가져가서 먹어⁠.⁠”

“⁠퇴근하고요⁠. 지금 먹으면 손에서 갓 냄새 나요⁠. 그 손으로 아르벨 만지면 제가 해고돼요⁠.⁠”

수련은 웃지 않고 루나 앞에 다시 앉았다⁠. 다 맞는 가방이었다⁠. 다 맞는 가방에서 손이 멈춘 까닭을 찾아야 했다⁠.

안감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진짜 루나는 안감을 가죽에 바느질로만 붙였다⁠. 접착제를 쓰지 않는 것이 아르벨 공방의 자랑이었고⁠, 감정사들 사이에서는 루나 안에 코를 박으면 송아지 냄새만 난다는 말이 있었다⁠. 수련은 가방 입구를 벌리고 얼굴을 넣었다⁠. 송아지 냄새 위로 갓김치 냄새가 덮쳐 왔다⁠.

“⁠소람 씨⁠, 저 통 복도에 내놔 줘⁠.⁠”

“⁠선배⁠, 어머님 김치예요⁠.⁠”

“⁠어머님 김치가 지금 가방 냄새를 덮고 있어⁠.⁠”

소람이 통을 안고 나갔다⁠. 수련은 손을 비누로 두 번 씻고 장갑을 새로 꼈다⁠. 루나를 들고 자외선 암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바깥 냄새가 끊긴 작은 방에서 다시 안감 끝⁠, 바닥 모서리를 접어 넣은 자리에 코를 댔다⁠.

아주 옅게⁠, 매니큐어를 바르고 창문을 닫아 둔 방 같은 냄새가 났다⁠. 손톱만 한 넓이였다⁠. 바느질 땀 사이로 투명한 막이 한 겹 비쳤다⁠. 안감 끝을 접착제로 한 번 눌러 놓고 접착제 위를 손으로 꿰맨 자국이었다⁠. 사람 손으로 열한 땀을 맞춰 박은 사람이⁠, 마지막 한 자리에서 일을 서둘렀다⁠.

수련은 암실에서 나와 감정표를 펼쳤다⁠. 「⁠가품⁠」 도장에 인주를 묻히는 손에 평소보다 힘이 들어갔다⁠. 소람이 복도에서 돌아와 도장 자국을 보고 휘파람을 불다 말았다⁠.

“⁠루나를요⁠? 그걸 가품이요⁠?⁠”

“⁠안감에 풀을 썼어⁠.⁠”

“⁠풀 하나로요⁠?⁠”

“⁠진짜는 안 써⁠. 하나면 돼⁠.⁠”

가품 판정을 내리면 출처 서류를 함께 확인해야 했다⁠. 판매자가 가방을 어디서 구했는지 보여 주는 서류였다⁠. 수련은 화면에서 도원상사가 올린 파일을 열었다⁠. 「⁠매입 확인서 — 아르벨 루나 30 갈색 1점 — 매입처⁠: 성남시 모란 미순빈티지⁠」⁠.

맨 아래⁠, 대표 이름 옆에 빨간 도장이 찍혀 있었다⁠. 동그란 테두리 안에 「⁠곽미순⁠」 세 글자⁠. 미 자의 획 하나가 닳아서 끊겨 있었다⁠. 초등학교 때 통지표를 받아 오면 엄마가 계산대 서랍에서 꺼내 찍어 주던 도장이었다⁠.

수련은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유리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밖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엘리베이터 위 숫자가 1에서 멈춰 있었고⁠, 복도 끝 의자 위에서 보자기에 싼 갓김치 통이 혼자 냄새를 내고 있었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