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23자) · 차민 · 10월 23일
사백열두 명
긴 셈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아버지.
회의는 어제 목요일, 시월 이십이일 저녁 일곱 시에 관리동 이 층 회의실에서 열렸습니다. 오지 말라고 한 대로 안 오셨습니다. 남궁 주무관이 끝나고 저한테 말했습니다. 고시원 창문으로 관리동 불빛이 보인다고 하셨다고. 일곱 시부터 아홉 시 반까지 창가에 앉아 계셨다고. 주무관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고시원 총무가 알려 줬다고 했습니다. 이 동네는 총무들이 다 압니다.
회의실은 교실 두 개 크기입니다. 접이식 의자 여든 개를 깔았는데 모자랐습니다. 뒤쪽에 스무 명쯤 서 있었습니다. 에어컨이 약해서 창문을 다 열었습니다. 창밖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어왔습니다. 안에서는 사람 냄새가 났습니다. 퇴근하고 바로 온 사람들의 땀 냄새, 저녁 반찬 냄새, 모기향 냄새. 누가 모기향을 피워 창틀에 올려 두었습니다.
앞 탁자에 네 사람이 앉았습니다. 입주자 대표 회장, 관리소장, 남궁 주무관, 그리고 청원 대표로 표지훈 씨. 저는 관리원이라 벽 쪽에 서 있었습니다. 마이크 선을 정리하고 출석 명부를 돌렸습니다. 어머니는 가운데쯤 앉았습니다. 반장 아줌마 두 줄 뒤. 반장 아줌마가 어머니를 알아보고 몇 번 돌아봤습니다.
506호 고 영감님이 맨 앞줄에 앉았습니다. 귀가 어두우셔서. 508호 부부는 아기를 데리고 와서 문 옆에 섰습니다. 아기가 울면 바로 나가려고.
그리고 맨 뒷줄, 창가 구석에 여자가 한 명 앉아 있었습니다. 예순쯤. 회색 카디건. 무릎 위에 장바구니를 올려놓고. 저는 그 사람을 몰랐습니다. 어머니가 들어오다가 그 사람을 보고 걸음을 한 번 멈췄습니다. 그래서 알았습니다.
회장이 개회를 했고, 표지훈 씨가 일어섰습니다. 손에 종이 한 장. 청원서 요약.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2동 동대표 표지훈입니다. 청원 내용은 3동 지원주택 지정 해제입니다. 서명하신 분은 사백열두 명입니다.”
그 사람은 숫자를 또박또박 읽었습니다. 사백열두. 단지 전체 세대가 팔백 조금 넘으니 절반입니다.
“사유는 인쇄물로 나눠 드렸습니다. 넉 달 전에 살인죄로 복역한 사람이 3동에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이 죽인 사람은 제 아버지입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습니다. 귀뚜라미 소리만 났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전단에는 그 사람 얼굴과 죄명만 있었지, 피해자가 누구 아버지인지는 없었으니까요. 몇 사람이 뒤를 돌아봤습니다. 맨 뒷줄 창가를.
반장 아줌마가 손을 들지도 않고 일어섰습니다.
“그러니까 해제해야지. 우리 애들 있는 단지야. 3동에 또 누가 들어올지 알아? 구청은 뭐 하는 거야.”
박수가 나왔습니다. 여기저기서. 남궁 주무관이 마이크를 당겼습니다.
“구청 주거복지과 남궁혜입니다. 규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원주택 지정은 구청장이 합니다. 해제 사유는 규정에 네 가지가 있습니다. 건물 안전, 운영 기관 부적격, 수요 없음, 입주자의 반복적 공동생활 위반. 주민 청원은 사유가 아니라 참고 자료입니다. 그리고 해당 입주자는 공동생활 위반 기록이 없습니다. 넉 달 동안 민원은 서른한 건이었는데 전부 같은 분이 넣으셨고 내용은 전부 입주 자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주무관은 그 말을 하고 표지훈 씨를 봤습니다. 사과하는 눈이 아니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한 사람의 눈이었습니다. 반장 아줌마가 규정은 누가 만드냐고 소리쳤습니다. 주무관이 대답했습니다. 사람이 만들죠. 그래서 사람이 고칠 수 있다고, 고치려면 이 회의가 아니라 구 의회에 가셔야 한다고.
그때 소장이 마이크를 당겼습니다. 소장은 회의에서 말을 안 하는 사람입니다. 이십 년 동안 회의 때마다 뒷자리에서 명부만 챙겼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손이 두꺼웠습니다. 전단 떼다가 벤 손가락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관리소장 방경태입니다. 하나만 말씀드립니다. 저는 그분이 누군지 넉 달 전에 알았습니다. 서류에 나옵니다. 알고도 여러분께 말씀 안 드렸습니다. 규정에 말하지 말라고 돼 있습니다. 그리고 507호 벽지를 일주일 늦게 뜯었습니다. 그건 규정에 없습니다. 제가 그렇게 했습니다. 다음 달 제 재계약 평가에 이 회의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을 안 하려고 했습니다.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합니다.”
소장이 앉았습니다. 이마에 땀이 났습니다. 에어컨을 끈 소장실에서처럼. 반장 아줌마가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고 했습니다. 소장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답할 말을 준비 안 하고 일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고 영감님이 일어섰습니다. 맨 앞줄에서. 마이크 없이. 귀가 어두운 사람은 목소리가 큽니다.
“나 506호여. 그 양반 옆집. 넉 달 살았어. 아홉 시 뉴스 끝나면 벽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났어. 나는 그거 듣고 잤어. 쥐인 줄 알았는디 사람이더만. 그 양반 나가고 나서 나 잠을 못 자. 조용해서.”
누가 웃었습니다. 작게. 영감님은 앉지 않고 한마디 더 했습니다.
“그리고 전단 붙인 거, 나 떼 줄 걸 그랬어. 그건 내가 잘못했어.”
영감님이 앉았습니다. 508호 부인이 문 옆에서 말했습니다. 아기를 안은 채로. 그 아저씨는 새벽에 문을 소리 안 나게 여셨다고. 넉 달 동안 한 번도 애가 안 깼다고. 그 말만 하고 아기가 칭얼대자 복도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제 차례였습니다. 아무도 제 차례라고 하지 않았는데. 저는 벽에서 한 발 나섰습니다. 회장이 저를 보고 관리원이 무슨 발언이냐는 얼굴을 했습니다. 소장이 회장 팔을 한 번 짚었습니다.
“3동 관리원 차민입니다. 507호에 사셨던 분은 제 아버지입니다.”
회의실 공기가 바뀌었습니다. 귀뚜라미 소리보다 크게 사람들이 숨을 들이쉬었습니다. 반장 아줌마가 어머니를 돌아봤습니다. 이번에는 오래.
어머니는 그 눈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반장 아줌마가 물었습니다. 마이크 없이, 그래도 회의실 끝까지 가는 목소리로.
“금순 씨, 그럼 그 사람이…….”
“네. 우리 애 아버지예요.”
어머니는 앉은 채로 말했습니다. 손을 무릎 위에 포개고. 반장 아줌마는 뭐라고 더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습니다. 4동 같은 층에서 십오 년을 산 사람입니다. 어머니가 목요일마다 어디를 다녀왔는지 그 사람은 한 번도 물은 적이 없다고, 나중에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목요일 저녁마다 눈이 부어서 들어오는 걸 보고도. 반장 아줌마가 앉았습니다. 앉으면서 몸을 어머니 쪽으로 조금 돌렸습니다. 등을 보이지 않으려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청원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아들이니까요. 한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507호 벽에 제 아버지가 그린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걸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표지훈 씨가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안 보여 드렸습니다. 오늘도 여기서 안 보여 드립니다. 그 사진을 제일 먼저 볼 사람은 여기 계신 분들이 아니라 표지훈 씨 가족이라서요. 표지훈 씨 가족이 보겠다고 하시면 드리겠습니다. 안 보시겠다고 하면 제가 폐기하겠습니다. 그게 제 일입니다.”
저는 그 말을 하고 물러섰습니다. 준비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벽 앞에 서니까 나왔습니다.
표지훈 씨가 마이크를 다시 잡았습니다. 한참 말이 없었습니다. 종이를 내려놓았습니다.
“청원 대표에서 제 이름 뺍니다.”
반장 아줌마가 뭐라고 했습니다. 표지훈 씨가 손을 들어 막았습니다.
“청원은 하실 분들이 하세요. 서명하신 분들 이름은 그대로 두겠습니다. 근데 저는 빠집니다. 그 사람은 이번 주에 이 동네를 떠납니다. 제가 떠나라고 했고, 그 사람이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걸로 됐습니다. 3동에 다음에 누가 오든, 그 사람들은 제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까지 제가 쫓을 이유가 없어요.”
그 사람은 그 말을 하고 앉았습니다. 앉으면서 무릎 위에 올려 둔 무언가를 만졌습니다. 흰 봉투 하나. 뜯긴 것. 칠월 것이었을 겁니다. 그 사람 아버지 생일.
회의는 그 뒤로 사십 분 더 갔습니다. 반장 아줌마가 목소리를 높였고, 회장이 청원서를 구청에 그대로 내기로 정리했습니다. 남궁 주무관이 받겠다고 했습니다. 규정대로 검토하겠다고. 사람들은 부채질을 하며 나갔습니다. 모기향이 다 타서 재만 창틀에 남았습니다.
제가 쓰고 싶은 건 그다음입니다.
복도에서 어머니가 그분을 만났습니다. 회색 카디건. 장바구니. 윤미숙 씨. 두 분은 계단 앞에서 마주 섰습니다. 저는 의자를 접다가 회의실 문틈으로 봤습니다. 표지훈 씨도 탁자에서 봤습니다. 우리 둘 다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두 분은 한참 서 있었습니다. 십오 년 동안 목요일마다 생선 가게 줄에 앞뒤로 서던 거리. 한 걸음. 윤미숙 씨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내일 목요일 아니지요.”
“금요일이에요.”
“그럼 다음 주 목요일에 봬요. 생선 가게에서.”
“네.”
그게 다였습니다. 두 분은 그 말만 하고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한 분이 먼저, 한 분이 나중에. 두 계단 간격으로. 윤미숙 씨 장바구니에서 대파 끝이 삐죽 나와 있었습니다. 계단참을 돌 때 그 파 냄새가 위로 올라왔습니다. 저는 그 냄새를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표지훈 씨가 제 옆으로 와서 섰습니다. 둘이서 빈 계단을 봤습니다.
“쉰한 통 열었어요. 어젯밤까지.”
“네.”
“그 사진, 나중에 우리 엄마가 보겠다고 하면 달라고 할게요. 안 보겠다고 하면 버려요.”
“그러겠습니다.”
그 사람이 계단을 내려가다가 멈췄습니다.
“관리원님 어머니, 우리 엄마랑 목요일에 생선 사세요?”
“십오 년 동안요.”
그 사람이 웃었습니다. 분식집에서처럼 기가 막힌 웃음이었습니다. 그러다 조금 다른 웃음이 됐습니다.
“칠월 거 열었어요. 우리 아버지 생일. 거기 뭐라고 썼는지 알아요?”
저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봉투를 점퍼 안주머니에 넣고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두 계단씩. 상자를 안고 고시원 계단을 내려갈 때보다 빨랐다고 아버지 편지를 읽고 짐작합니다.
아버지. 회의가 끝났으니 떠나신다고 들었습니다. 떠나기 전에 한 번 목요일이 있습니다. 이십구일. 어머니가 저녁을 하겠다고 합니다. 4동 오 층 가운데. 일곱 시. 이번에는 불이 켜져 있을 겁니다.
그리고 여덟 번째 조각. 어머니한테 드렸습니다. 어젯밤 회의 끝나고. 어머니는 봉투를 열어 보지 않고 받아서 부엌 서랍에 넣었습니다. 숟가락 넣는 서랍에. 하루에 세 번은 여는 서랍입니다. 열 때마다 보이게 맨 위에.
차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