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36자) · 아버지 · 10월 20일
한 평 반
긴 셈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민아.
네 편지를 두 번 읽었다. 팔백팔십일. 나는 그 숫자를 몰랐다. 거부 도장을 찍으라고 말할 때마다 교도관이 종이 한 장을 들고 왔다. 거기 이름이 적혀 있었다. 면회 신청인 오금순. 나는 그 종이를 볼 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교도관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 나는 그 횟수를 세지 않았다. 세면 벽에 금을 하나 더 그어야 할 것 같아서. 검은 것도 붉은 것도 아닌 다른 색으로. 그 색이 없어서 안 셌다. 네 어머니가 셌구나. 아니, 네가 셌구나. 한 시간 동안.
유리에 손바닥을 댄 것은 맞다. 네 얼굴을 덮으려고 한 게 아니다. 유리가 차가워서 손을 대면 내 손 모양만큼 김이 서렸다가 사라졌다. 그게 사라지는 동안만 네 얼굴을 봤다. 오래 보면 안 될 것 같아서. 칠 분이었다니 그렇게 길었는 줄 몰랐다.
이제 일요일 밤 일을 쓴다. 시월 십팔일.
그날 저녁 나는 이백다섯 번째 봉투를 다시 썼다. 음성에서 쓴 것은 틀린 줄이 있었으니까. 편지지 한 장에 날짜 두 개를 적었다. 육천삼백칠십삼 일째. 그리고 한 줄. 오늘은 아들이 편지를 보내 준 지 스무날째입니다. 쓰고 나서 오래 봤다. 이 줄을 그 집에 보내도 되는지. 그 부인 앞에서 내 아들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십칠 년 동안 나는 그 봉투에 우리 집 이야기를 거의 안 썼다. 면회 온 날 두어 번. 그게 다였다. 봉투를 봉하지 못하고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밤 열 시에 누가 고시원 방문을 두드렸다. 총무인 줄 알았다. 총무는 열 시에 복도 불을 반으로 줄이러 다닌다. 줄이면서 방마다 문을 한 번씩 두드린다. 불 끈다는 신호다. 교도소 점호와 똑같아서 첫날 나는 벌떡 일어나 문 앞에 섰다. 문을 열었더니 표지훈 씨가 서 있었다. 라면 상자를 안고. 테이프를 몇 번 다시 붙인 그 상자. 복도 불이 반만 켜져 있어서 그 사람 얼굴이 반만 보였다.
“총무가 알려 줬어요. 3층 끝방이라고. 나 여기 동대표 아니에요. 그냥 물어봤는데 알려 주던데요.”
나는 비켜섰다. 방은 한 평 반이다. 두 사람이 서면 가득 찬다. 그 사람이 들어왔다. 천장에 형광등이 하나 달려 있다. 깜빡거린다. 총무한테 말했는데 아직 안 갈았다. 그 불빛이 깜빡일 때마다 그 사람 얼굴이 한 번씩 어두워졌다. 나는 침대에 앉았고 그 사람은 책상 의자에 앉았다. 책상 위에 봉하지 않은 이백다섯 번째 봉투가 있었다. 그 사람이 그걸 봤다. 보고도 아무 말 안 했다. 무릎과 무릎 사이가 한 뼘이었다. 그 사람이 상자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상자가 그 사람과 나 사이를 막았다.
“열두 통 열었어요.”
그 사람이 말했다. 상자를 보면서.
“분식집에서 하나. 그다음 주에 열한 개. 한꺼번에 연 건 아니에요. 하루에 하나씩 열었어요. 저녁 먹고 엄마 주무시면. 열 시에.”
그 사람이 상자에서 봉투 하나를 뽑았다. 뜯긴 것이었다. 안에서 종이를 꺼냈다.
“이거 읽어 봐요. 소리 내서.”
나는 종이를 받았다. 내 글씨였다. 이천십 년 오월.
삼백육십육 일째입니다. 상근 씨가 못 산 날도 삼백육십육 일째입니다. 오늘 상근 씨 아들 생일입니다. 열두 살입니다. 목공반에서 연필꽂이를 하나 깎았습니다. 보낼 수는 없습니다.
나는 읽었다. 소리 내서.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왔다. 옆방 청년이 연표 외우는 소리를 멈췄다. 벽이 얇다. 그 사람은 내가 읽는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읽기를 마치자 눈을 떴다. 다시 읽으라고 하지는 않았다. 대신 종이를 내 손에서 가져가 원래 접힌 자국대로 접었다. 그 사람 손가락이 접힌 자리를 두 번 눌렀다. 그 집에서 이 종이는 그렇게 접혀서 십육 년을 있었다.
그 사람이 다음 종이를 내밀었다. 이천십일 년 오월. 열세 살. 그다음, 이천십이 년 오월. 열네 살. 그 사람은 열한 통 가운데 오월 것만 골라 온 것이었다. 해마다 오월 봉투. 나는 한 달에 한 통을 쓰면서 오월에는 늘 팔일에 썼다. 그날만은 날을 고르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 생일은 칠월이에요.”
그 사람이 말했다.
“칠월 봉투는 안 열었어요. 무서워서. 근데 오월 걸 열다 보니까 알았어요. 당신이 내 생일을 셌어요. 십칠 년 동안. 우리 엄마는 내 생일에 미역국을 못 끓였어요. 그날이 아버지 제삿날 다음 날이라서. 우리 집에서 오월 팔일은 아무도 안 세는 날이었어요. 근데 당신이 셌어요.”
그 사람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그 사람 얼굴을 보지 않았다. 볼 수가 없었다. 그 사람 무릎 위의 상자를 봤다.
“그게 제일 화나요. 우리 아버지 날을 세는 사람도, 내 생일 세는 사람도 당신뿐이라는 게. 우리 아버지 죽인 사람이.”
그 사람이 상자를 들었다. 들어서, 방바닥에 엎었다.
이백네 통이 쏟아졌다. 한 평 반짜리 방바닥이 흰 봉투로 덮였다. 침대 밑으로 들어간 것, 책상 다리에 걸린 것, 문틈으로 반쯤 나간 것. 오래된 종이 냄새가 방을 채웠다. 나프탈렌 냄새. 옷장 냄새. 그 집 옷장에서 십칠 년을 산 봉투들의 냄새였다.
그 사람은 쏟아 놓고 가만히 있었다. 숨을 몰아쉬었다. 나도 가만히 있었다.
얼마 뒤에 그 사람이 허리를 숙였다. 봉투 하나를 주웠다. 상자에 넣었다. 하나 더. 나도 침대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주웠다. 우리는 한 평 반 방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봉투를 주웠다. 방이 좁아서 서로 어깨가 부딪혔다. 한 번, 두 번. 그 사람은 어깨가 닿을 때마다 몸을 뺐다. 나도 뺐다. 그래도 또 닿았다. 방이 그만큼밖에 안 됐다.
침대 밑에 들어간 것은 내가 팔을 넣어 꺼냈다. 먼지가 묻어 나왔다. 그 사람이 봉투를 받아 소매로 먼지를 털었다. 내 봉투를. 소매로.
줍다가 봉투 하나가 열렸다. 오래돼서 풀이 떨어진 것이었다. 안에서 종이가 반쯤 나왔다. 그 사람이 그걸 집어 들었다가 도로 넣으려는데, 한 줄이 보였다. 나도 봤다. 이천십삼 년 칠월. 오늘 비가 와서 운동을 못 나갔습니다. 상근 씨는 비 오는 날 운전이 제일 싫다고 했습니다. 포장마차에서 들은 말입니다. 그날 밤 이전에. 그 사람은 그 줄을 끝까지 읽지 않고 종이를 봉투에 밀어 넣었다. 손이 빨랐다. 우리 아버지 비 싫어했어요, 하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다음부터 그 사람은 봉투를 주울 때 더 조심했다. 열리지 않게.
다 주운 데 이십 분쯤 걸렸다. 그 사람이 상자 뚜껑을 닫지 않고 봉투를 날짜순으로 다시 꽂기 시작했다. 봉투 겉의 날짜를 보면서. 이천구 년 유월부터. 나는 옆에서 봉투를 한 통씩 건넸다. 그 사람이 받아서 꽂았다. 말없이. 이백네 번.
다 꽂고 나서 그 사람이 말했다.
“그 벽.”
“네.”
“관리원님이 사진 찍었다던 그 벽. 그거 당신 날짜 센 거 아니었죠.”
“내 날짜 맞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상근 씨 날짜입니다. 한 줄에 둘입니다.”
그 사람이 상자를 봤다. 이백네 통이 꽂힌.
“우리 엄마가 알아요. 내가 봉투 여는 거. 어제 부엌에서 그러더라고요. 지훈아, 소리 내서 읽지는 마라. 나 자는 척하는 거 아니다. 그러고는 방에 들어갔어요. 그게 다예요. 그만 열라는 말은 안 했어요.”
그 사람은 그 말을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왜 우리 엄마한테 안 보여 줬어요. 그렇게 다 그려 놓고.”
“보여 드리려고 했습니다. 구월에. 방석을 하나 더 놓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전단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단을 붙인 사람한테 보여 드려야 한다는 걸 몰랐습니다. 부인한테만 보여 드리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틀렸습니다.”
그 사람이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물었다.
“이백네 통 다 이래요? 날짜 두 개에 한 줄씩?”
“네.”
“나머지 백구십두 통 다 열면 뭐가 나와요.”
“상근 씨가 못 산 날이 육천이백여덟 번 나옵니다. 달마다 한 번씩 적었으니 이백네 번이지만.”
“그걸 내가 다 읽어야 돼요?”
“아닙니다.”
“그럼 뭐예요.”
“그건 표지훈 씨 봉투입니다. 부인 앞으로 갔지만 이제 표지훈 씨가 들고 있습니다. 여는 사람이 정합니다.”
그 사람이 상자 뚜껑을 닫았다. 테이프는 안 붙였다. 상자를 안고 일어섰다. 일어서다가 한 가지를 말했다.
“청원은 안 내려요. 목요일 회의에서 할 말은 해요. 당신이 이 동네에 있는 건 우리 엄마한테 안 돼요. 그건 봉투랑 상관없어요.”
“압니다.”
“회의 끝나면 여기서 나가요.”
“그러겠습니다.”
그 사람이 문을 열었다. 복도 불이 반만 켜져 있었다. 그 사람이 돌아서서 마지막으로 말했다.
“칠월 봉투는 열어 볼게요. 우리 아버지 생일.”
그 사람이 갔다. 상자를 안고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났다. 한 층, 두 층. 상자 뚜껑이 들썩이는 소리도 났다. 테이프를 안 붙였으니까. 봉투 하나라도 흘릴까 봐 그 사람은 천천히 내려갔다. 옆방 청년이 연표 외우는 소리를 다시 시작했다. 갑오개혁 천팔백구십사.
그 사람이 가고 나서 나는 한참 방바닥에 앉아 있었다. 방에 나프탈렌 냄새가 남아 있었다. 창문을 열었다. 시장 뒷골목 생선 얼음 냄새가 들어와 섞였다. 옆방 문이 열리고 청년이 내 방 문을 두드렸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소리가 좀 나서요. 나는 괜찮다고 했다. 청년이 컵라면을 하나 내밀었다. 새우탕. 자기는 시험이 사흘 남아서 오늘은 두 개 먹는 날이라고 했다. 나는 받았다. 물을 붓고 삼 분을 기다렸다. 그 삼 분 동안 책상 위 이백다섯 번째 봉투를 봤다. 그리고 봉했다. 내 아들 이야기가 들어간 채로. 그 부인이 열지 않아도, 그 아들이 열 것이다. 그 아들은 이제 봉투를 연다.
민아. 그 사람과 약속했다. 회의가 끝나면 새길동을 떠난다. 어디로 갈지는 남궁 주무관과 찾아보겠다. 주무관은 월요일에 왔다가 경기도 북쪽에 지원주택이 하나 있다고 했다. 목공소가 가까운 동네라고. 목공은 교도소에서 십 년 했으니 할 줄 안다. 흔들리지 않는 의자를 짜는 데 몇 해가 걸렸는지 나는 이제 안다. 칠 년. 이번에는 네 동네가 아닌 곳으로. 가까이 있고 싶다고 쓴 게 두 주 전인데, 그 두 주로 된 것 같다. 넉 달하고 두 주.
목요일 회의에는 안 간다. 대신 부탁이 있다. 네 봉투에 든 여덟 조각. 그중 여덟 번째, 짝 없는 것. 그걸 회의에 가져가지 마라. 그건 네 어머니한테 줄 것이다. 그날 오지 못한 사람한테. 그날 오지 못한 게 그 사람 잘못이 아니라는 걸 나는 이제 안다. 그 조각으로 그걸 전해 다오.
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