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74자) · 차민 · 10월 30일
셋째 의자
긴 셈 · 남시우
만 19세 이상 이용가
아버지.
이 편지는 처음으로 봉투에 주소를 적어 보냅니다. 아버지가 적어 오신 종이를 남궁 주무관이 어제 저녁 어머니 집 현관에서 읽고 말했습니다. 본인이 알려 주겠다고 하면 규정이 막을 이유가 없다고. 경기도 북쪽, 목공소 옆 지원주택. 글씨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버스가 아니라 책상에서 쓴 글씨라서요. 주무관은 그래도 자기가 한 번 들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이니까, 하고. 이 사람은 규정보다 먼저 가는 게 뭔지 아는 사람입니다.
어제 목요일, 시월 이십구일 이야기를 씁니다. 저녁 일곱 시 전에 있었던 일부터.
오후 네 시에 표지훈 씨가 관리소로 왔습니다. 라면 상자를 안고. 테이프를 이제 아예 안 붙인 상자. 관리소 창구에 상자를 올려놓고 뚜껑을 열었습니다. 이백네 통이 다 뜯겨 있었습니다. 앞쪽 흰 것도 뒤쪽 누런 것도 전부 입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상자에서 나프탈렌 냄새 대신 다른 냄새가 났습니다. 손때 냄새. 사람이 만진 종이 냄새.
“다 열었어요. 그저께 밤에 끝냈어요.”
“혼자요.”
“엄마가 옆에 앉아 있었어요. 안 읽었어요. 내가 읽는 걸 들었어요. 소리 내서 읽지 말라더니 그저께는 읽으라고 하대요. 남은 백쉰세 통을 여섯 시간 동안 읽었어요. 목이 쉬었어요.”
목이 정말 쉬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상자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창구에 놓았습니다. 봉투가 아니라 그냥 종이. 그 사람 어머니 글씨였습니다. 한 줄이었습니다.
사진은 보겠습니다. 벽은 안 봅니다.
“벽은 이미 없다고 했더니, 그래도 안 본다고. 사진으로만 본대요.”
저는 관리소 프린터로 열네 장을 뽑았습니다. 사진이라고 하기에는 거친 종이였습니다. 그래도 붉은 것까지 나왔습니다. 손전등을 비스듬히 댄 덕입니다. 그 사람이 열네 장을 받아 상자 맨 앞에 세워 꽂았습니다. 봉투들 앞에. 그러고는 한 가지를 더 말했습니다.
“다음 봉투 오면 우리 엄마는 안 열어요. 내가 열어요. 그건 안 바뀌어요.”
“압니다.”
“근데 오기는 와야 돼요. 안 오면 우리 엄마가 우편함을 계속 봐요. 안 오는 걸 보려고.”
그 사람은 상자를 안고 갔습니다. 문을 나서다가 관리소 유리에 비친 제 얼굴을 한 번 보고 갔습니다. 눈썹이었을 겁니다.
일곱 시에 4동 오 층에 갔습니다. 아버지는 벌써 와 계셨습니다. 여섯 시 오십 분부터 복도에 서 계셨다고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초인종을 안 누르고. 어머니가 된장을 뜨러 베란다에 나갔다가 창 너머로 복도에 선 사람을 보고 문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현관에 가방 하나를 놓고 서 계셨습니다. 내일 첫차로 가는 가방. 십칠 년 전에 입고 들어갔다는 그 셔츠를 입고. 목둘레가 헐렁한 것을 저도 봤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처음 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손 씻어. 그 손으로 뭘 만졌는지 내가 알아?”
아버지는 부엌 싱크대로 갔습니다. 어머니가 비누를 밀어 줬습니다. 살구색 비누. 약국에서 파는 것. 우리 집은 삼십 년 동안 그 비누만 씁니다. 저는 어릴 때 다른 집 비누 냄새를 맡으면 그 집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두 번 씻었습니다. 손등까지. 어머니가 비누 아끼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그만두고 수건을 찾았습니다. 어머니가 수건을 던졌습니다. 던진 것입니다. 아버지가 받았습니다.
식탁에는 의자가 셋 있었습니다. 셋째 의자에 신문이 없었습니다. 방석의 네모난 자국도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방석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아버지가 어디 앉을지 몰라서 서 계셨습니다. 어머니가 턱으로 셋째 의자를 가리켰습니다. 아버지가 앉았습니다. 십칠 년 동안 아무도 안 앉은 의자가 삐걱했습니다. 아버지가 일어나서 의자 다리를 봤습니다. 뒤쪽 다리 하나가 짧았습니다. 종이를 접어서 괴었습니다. 다시 앉았습니다. 안 삐걱했습니다. 어머니가 그걸 보고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흔들리지 않는 의자를 짜는 데 칠 년 걸렸다는 편지를 생각했습니다.
된장찌개. 시어서 냄새가 멀리 가는 그 된장. 어머니가 두부를 크게 썰었습니다. 아버지가 두부를 좋아했는지 저는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첫 숟가락을 뜨고 한참 안 삼켰습니다. 어머니가 짜냐고 물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짜다고 했습니다. 이모 병원 다녀오느라 간을 못 봤다고. 이모는 지난주에 일반 병실로 옮겼습니다. 왼손이 아직 안 올라가는데 오른손으로 병원 밥이 맛없다고 문자를 보냅니다. 어머니가 그 문자를 아버지한테 보여 줬습니다. 아버지가 읽고 웃었습니다. 소리 없이. 저는 아버지 웃는 얼굴을 그날 처음 봤습니다. 투안이라는 청년이 먼저 봤다는 게 이상하게 억울했습니다.
밥을 반쯤 먹었을 때 어머니가 숟가락을 놓았습니다. 저는 그 소리를 압니다. 일곱 번째 편지에 썼습니다. 어머니가 숟가락을 놓으면 무슨 말이 나옵니다.
“팔백팔십일 번.”
아버지가 숟가락을 놓았습니다.
“왜 안 받았어.”
“받으면 그다음 주에도 올 테니까.”
“안 받아도 갔어.”
“압니다. 이제 압니다. 그때는 안 받으면 안 올 줄 알았습니다. 두어 달 오다가 말 줄 알았습니다. 그래야 당신이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당신더러 내 사는 거 정하래.”
어머니 목소리가 올라갔습니다. 식당에서 주문 받을 때 목소리. 부엌이 좁아서 그 소리가 벽에 부딪혀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계속했습니다.
“면회 신청서 한 장에 버스 세 번이야. 왕복 여섯 번. 팔백팔십일 곱하기 여섯. 세 봐. 민이가 잘 세.”
저는 세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셀 수 있는 걸 안 셌습니다. 아버지가 그 숫자를 세는 얼굴이었습니다. 입술이 조금 움직였습니다. 오천이백팔십육. 아버지가 그 숫자를 입 밖에 내지는 않았습니다.
“미안합니다.”
“그 말 하려고 십칠 년 걸렸어?”
“십칠 년하고 다섯 달하고 삼 주.”
어머니가 웃을 뻔했습니다. 안 웃으려고 물을 마셨습니다. 컵을 내려놓고 일어났습니다. 숟가락 서랍을 열었습니다. 맨 위에 있던 봉투를 꺼냈습니다. 여덟 번째 조각. 봉투에서 꺼내 식탁에 놓았습니다. 아버지 앞에. 벽지 조각 위에 삼분의 일짜리 붉은 금. 검은 금 두 개가 옆에 딸려 있는.
“이거 뭐야.”
“당신 오는 날이었습니다.”
“나 못 갔어.”
“압니다. 이모 일은 민이한테 들었습니다.”
“그럼 이거 어떡할 거야. 삼분의 일짜리를. 그 방에는 이제 없다며.”
아버지가 조각을 봤습니다.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손을 대면 크레용이 번지니까. 저는 그때 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문구점에서 산 빨간 크레용이 있었습니다. 시월 초에 천 원 주고 산 것. 한 번도 안 쓴 것. 저는 그걸 식탁에 놓았습니다. 조각 옆에. 왜 가지고 다녔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관리원은 주머니에 든 걸 잘 안 뺍니다.
어머니가 크레용을 집었습니다. 종이 껍질을 손톱으로 벗겼습니다. 그러고는 조각 위 삼분의 일짜리 금에 크레용을 댔습니다. 끝을 이어서 아래로 그었습니다. 한 번에. 삼분의 일이 하나가 됐습니다. 크레용 냄새가 식탁 위로 올라왔습니다. 된장 냄새 위로. 초등학교 미술 시간 냄새.
“오늘 왔으니까.”
어머니가 그 말만 했습니다. 크레용을 내려놓고 앉아서 밥을 먹었습니다. 아버지는 조각을 오래 봤습니다. 그러다 젓가락으로 두부를 집었습니다. 두부가 부서졌습니다. 아버지 손이 떨려서. 어머니가 새 두부를 아버지 그릇에 놓아 줬습니다. 숟가락으로. 다방에서 노른자를 옮기던 그 손으로.
그 뒤로는 셋이 밥만 먹었습니다. 저는 두 그릇을 먹었습니다. 아버지는 한 그릇 반. 어머니는 반 그릇. 늘 그렇습니다. 식당 하는 사람은 집에서 반 그릇입니다.
아버지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하라고 했습니다. 십칠 년 전에는 어머니가 못 하게 했다고 합니다. 남자가 부엌에 서면 재수 없다고. 어제는 하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싱크대에 서서 그릇 여섯 개를 씻었습니다. 살구색 비누로 손을 씻고, 수세미에 세제를 묻히고. 어머니는 식탁에 앉아 아버지 등을 봤습니다. 저도 봤습니다. 십칠 년 만에 그 등을 보는 사람과 처음 보는 사람이 같은 식탁에 앉아서. 셔츠 등판이 헐렁했습니다. 그 안에서 어깨뼈가 움직였습니다. 물 소리가 부엌을 채웠습니다.
설거지가 끝나고 아버지가 수건에 손을 닦았습니다. 그러고는 어머니 앞에 섰습니다. 종이 한 장을 꺼냈습니다. 주소. 주무관이 오늘 오면 이걸 주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종이를 받아서 봉투 옆에 두었습니다. 여덟 번째 조각이 든 봉투 옆에. 그리고 말했습니다.
“다음 주 목요일에 갈 거야. 버스 몇 번 갈아타.”
“두 번입니다.”
“세 번보다 낫네.”
여덟 시 반에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남궁 주무관이었습니다. 현관에 선 채로 안 들어오겠다고 했습니다. 규정에 들어오지 말라고 돼 있지는 않지만, 하고 웃었습니다. 어머니가 찌개를 반찬통에 담아 들려 보냈습니다. 주무관이 안 받겠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식당 하는 사람한테 음식 거절하는 거 아니라고 했습니다. 주무관이 받았습니다. 반찬통이 뜨거워서 소매로 감싸 안았습니다. 아버지가 주소 적은 종이를 주무관한테 보여 줬습니다. 주무관이 그걸 읽고 어머니한테 돌려줬습니다. 규정이 막을 이유가 없다고. 그러고는 아버지한테 물었습니다. 내일 첫차가 몇 시냐고. 다섯 시 사십 분이라고 했습니다. 주무관이 정류장에 나오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됐다고 했습니다. 주무관은 규정에 나오지 말라고 돼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그 말을 여섯 주 동안 열 번은 했습니다. 열 번 다 다른 일에.
아버지가 현관에서 가방을 들었습니다. 저도 같이 나섰습니다. 고시원까지 칠 분. 아버지가 그것까지는 됐다고 했습니다. 저는 계단까지만 가겠다고 했습니다. 복도에 나서자 3동이 보였습니다. 507호. 새 벽지가 발린 방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휠체어 타는 할머니가 들어오신 지 보름이 넘었습니다. 그 창을 아버지가 봤습니다. 처음으로 4동 쪽에서 3동을 봤을 겁니다. 넉 달 동안 반대편에서만 봤으니까요.
계단 앞에서 아버지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악수를 하려고. 저는 그 손을 잡았습니다. 잡고 나서 놓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손은 두꺼웠습니다. 가운뎃손가락 굳은살이 제 손바닥에 걸렸습니다. 연필 쥐는 자리. 어머니가 다방에서 봤다는 그 굳은살. 손이 따뜻했습니다. 설거지 물 때문이었을 겁니다.
아버지 손에서 우리 집 비누 냄새가 났습니다.
차민.